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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아카게라의 밤하늘 은하수와 별자리에 홀리듯 빠져든 날

2023년 9월호(16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3. 1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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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아카게라의 밤하늘
은하수와 별자리에 홀리듯 빠져든 날

 

선선한 초저녁 바람이 불어오자 삼삼오오 모닥불 앞으로 모여들었다. 진홍색 노을이 서편의 하늘가를 물들이니 빨간 불꽃색이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아카게라의 캠핑장은 전기펜스를 둘러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는 공원 내의 안전지대다. 범상치 않은 동물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풀벌레 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면 사방은 온통 고요와 적막으로 뒤덮인다. 이 무렵이면 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눈다. 캠핑장에 놓인 의자에 모여들지만 대부분은 준비해 온 개인용 간이 의자를 펼쳐서 대형을 만든다. 저녁은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간소해서 담소에 집중하느라 먹는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은 느낌을 준다.  


반면, 우리 한국팀은 캠핑장의 한구석에 위치한 불판 주변으로 모였다. 이번에도 장작불 위에 삼겹살을 구워 낼 계획이다. 지난번 우기철에는 물을 머금은 나무에 불을 붙여서 밥을 지어먹는 게 쉽지 않았는데, 건기의 장작은 화력이 무섭게 타오른다. 나무의 은근한 향기에 어우러져 지글지글 노릇노릇 기름기가 쏙 빠지게 익어가는 목살을 여럿이 함께 먹으니 입에서 살살 녹는 형언키 어려운 황홀함이다. 기온이 내려가서 선선한 가을 날씨쯤으로 변하니 쾌적하고 상큼한 숲의 공기로 가득하다.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며 질펀하게 고기를 구워 먹는 게 우리 한국 스타일이랄까! 더불어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문화와 개인에 집중하는 유럽의 느낌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만찬을 즐기고 난 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난번엔 구름이 잔뜩 끼어 별 보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의 밤하늘은 달랐다. 주변에 불빛 한 점 없는 어둠과 구름 한 점 없는 천체엔 황홀하게 빛을 발하는 별들로 가득했다. 별의 형상이 또렷해서 북두칠성과 전갈자리 등 말로만 익숙한 별자리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고 매혹적인 은하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밤하늘에 박혀 있는 은은한 보석처럼 별무리를 이루며 영롱한 빛깔을 발산하고 있었다. 언젠가 몽골의 초원에서 올려다보았던 별들이 이 지상에서 본 최고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는데 이곳의 하늘을 바라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땅과 하늘과 천체가 이렇게 광대하고 오묘하며 신비롭게 빛나서 운행되고 있음을 새삼 깨우친다. 검은 하늘에 보석처럼 알알이 박힌 별들을 사진기로 담아보려다 이내 포기한다. 그 빛깔과 느낌을 포착해 내기엔 나의 능력이 부족하고 그냥 눈으로 담아 가슴으로 기억해 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여럿이 함께 텐트에서 자서 춥진 않았다. 깊이 잠들어 동이 트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본능적으로 여명의 빛을 보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고 야영장의 높은 곳을 찾는다. 혹시나 싶어 아들을 깨우니 벌떡 일어나서 일출 앞에 선다. 아직 추운지 침낭을 몸에 감고 떠오르는 태양을 포착하느라 셔터를 눌러 댔다. 너른 지평선과 호수 위로 모습을 드러낸 광선은 붉은색으로 시작해서 파란색으로 변하며 사방을 밝히기 시작했다. 신성한 여명의 시간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부지런히 사파리투어에 돌입했으니 이번엔 기필코 동물의 왕 사자님을 만날 수 있길….

 
랜드크루즈의 지붕을 열고 대자연을 바라보며 선 아들의 눈은 환호와 희열로 반짝이고 있었다. 유유히 뛰고 달리는 얼룩말의 역동을 처음 접했고 우리에 갇혀 있지 않는 생명체들의 자유로운 일상이 신비했으며 손에 닿을 듯 유유히 걷는 기린의 걸음과 여유가 인상적이라 말한다. 그의 손에 들려진 사진에는 어떤 풍경과 동물의 모습이 담겼을지 궁금하다. 하루 종일 몇십 킬로의 러프로드를 달린 끝에 얼룩말과 영양의 무리를 노려보는 사자 가족의 모습을 포착했다. 나무 덤불 아래 몸을 감추고 무리를 덮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가늠하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정해진 길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 있는 지라, 망원경이나 사진을 확대해 보지 않으면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거리다. 그래도 집중해서 살피니 사자의 꼬리가 살랑거리고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놈들은 배가 부른 지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설 마음이 없다. 사자의 방향으로 경계를 서던 영양의 무리도 서서히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세렝게티가 아니면 쉽사리 사자를 볼 수 없다. 각 양의 동물들이 인간을 구경하며 “왔어!”하고 인사하는 곳과 종일 찾아다녀야 겨우 몇몇 그룹의 동물을 만나는 공간엔 엄청난 규모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자의 꼬리라도 본 것으로 만족한다. 그보다, 지난밤의 별빛과 떠오르는 여명, 자유롭게 질주하는 동물들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네 얼굴에 쓰인 희열과 열정, 환희를 포착할 수 있어서 기뻤다.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열정적인 인간의 삶도 그래야 한다.  

 

 

CMC프로덕션 제작이사/PD 이준구
brunch.co.kr/@ejungu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7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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