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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의 반전, 커피 속에서 피어나다

2023년 9월호(16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6. 1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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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의 반전, 
커피 속에서 피어나다

 

심봤다! ‘에티오피아 아리차’ 
또르르르… 방금 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잔에 따른다. 그와 동시에 입술로 가져가 한 모금 머금었다. 입안에서 온갖 느낌이 피어오른다. ‘응! 이게 뭐지?’, ‘이거 커피 맞아?’ 그 전까지 알던 커피와는 180도 달랐다. 첫 느낌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고개를 매우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엔 황홀하고 기분 좋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마치 심마니들이 ‘심봤다’를 외치듯 나도 맘속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거 같다. 이 맛이 커피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씁쓸한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맛의 커피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커피가 어떻게 이런 다양한 맛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일까? 의구심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맛이 가벼우면서도 쓴맛이 없었고, 잘 익은 과일의 단맛과 적절하게 가미된 기분 좋은 산미, 상큼하면서도 고급진 재스민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 복잡하고 화려한 맛은 나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했다. 이것이 싱글 오리진 커피와의 첫 대면이었다. 바로 국적은 에티오피아~ 아마도 에티오피아 아리차였던 걸로 기억한다. 에티오피아 하면 ‘예가체프, 시다모, 하라’ 지역의 커피가 많이 알려져 있다. 내가 에티오피아를 만났던 그 시점에 ‘아리차’가 떠오르는 신예처럼 나타났고 인기가 있었다. 10여 년 전 커피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높아졌던 난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 첫 핸드드립 수업에서 에티오피아 커피를 만났던 것이다. 


커피와 사랑에 빠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블랜딩 된 에스프레소용 원두밖에 알지 못했다. 핸드드립에서는 대부분 싱글 오리진 원두를 사용한다는 것을 배우면서 알았다. 그 중 첫 대면한 에티오피아 커피 맛에 머릿속에서 전구가 켜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 많은 나라의 커피를 제쳐두고 에티오피아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커피에 비해 독특하고 화려한 향미는 나의 미각을 자극했고, 눈 감고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커피 취향이 만들어졌다. 그 당시만 해도 각 나라의 원두마다 특징이 뚜렷했었다. 난 과테말라의 대명사인 스모키 한 맛을 싫어했고, 인도네시아의 흙내 나는 맛도 싫어했다. 대중적인 브라질의 구수하기만 한 밋밋한 맛도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개성 있고 아름다운 여배우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향미의 에티오피아. 그 화려한 맛에 금방 질린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한다! 아직까지도 가장 원시적인 자연 방식으로 수확하고 가공되는 커피. 어쩌면 지금 시대에 맞지 않지만 아날로그적인 느림의 미학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맛뿐만이 아닌 이런 모습들에 난 마음이 끌린다. 이 시기가 어쩌면 내가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인데 커피 덕분에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빠져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커피만큼이나 다양한 커피도구들을 사용해 만든 커피를 맛보는 일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커피를 만드는 의식은 내겐 귀찮은 일이 아닌 놀이로 다가왔다. 그렇게 배우며 즐긴 세월이 10년을 넘어가고 있다.

홈 카페 바리스타 과정 강의 중


딸과 함께, 홍콩으로 커피 투어를 가다
2019년 2월 운명적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첫째 딸과 단 둘이 처음 해외여행으로 홍콩에 간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커피투어책 속에 바리스타가 가본 홍콩의 카페들이 생각이 났다. 그 책을 들고 그 바리스타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기로 결심했다. 주어진 시간동안 뚜벅이 여행객으로 홍콩의 소호거리를 누볐다. 그 중 첫 번째로 방문한 ‘브루브로스’에서 고민할 것 없이 게이샤를 주문했다. 커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게이샤의 유명세를 알고 있다. 유명세만큼 가격도 비싼 홍콩의 게이샤는 어떤 맛일지 몹시 궁금했다. 게이샤의 첫 모금에 내 얼굴에선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풍미가 있었고, 과일의 달콤하면서도 적당한 산미가 느껴졌다. 마치 꽃을 머금은듯한 기분을 한층 업 시켜 주는 향미였고 마지막은 고급스러운 긴 여운으로 남았다. 내 모습을 본 딸도 너무 궁금했는지 얼른 입에 잔을 갖다 대었다. 맛을 본 딸의 반응은 “엄마, 마치 봄 같은 느낌이에요!”하며 손으로 날갯짓을 해 보인다. “그렇지?” 하며 난 빙그레 웃었다. 커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딸조차도 이 커피에서 봄을 느꼈다는 것도 신기했다. 맛을 표현은 못해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홍콩에서 방문한 카페마다 실패한 곳이 없었다. 실력 좋은 카페를 골라 다녀서이기도 하겠지만 맛에 감탄했고 홍콩에 반한 계기가 되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딸과 함께 의기투합했던 여행은 뿌듯함과 돌아와야 하는 아쉬움만을 남겼다. 그렇게 여행의 잔상이 가시기도 전 한 프로젝트를 만나게 됐다. 


《커피 할래? 여행 할래?》, 제2의 인생이 되다 
‘작가 탄생 프로젝트!’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신중년을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퇴직 후의 삶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한 제안이었는데 친구가 추천해주었다. 살면서 책을 쓴다는 것은 작가들만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책을 써보겠다는 마음조차 갖지 않았던 이유다. 그랬던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시작했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전을 생각하며 난 내 자아를 찾기 위해 참여하기로 했다. 나이는 다르지만 40여 명의 글쓰기 동무들과 한 달간의 여정으로 책 쓰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뭘 써야하는 거지?’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 보름을 소비했다. 시간만 보낸다고 떠오를 리 만무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니 바로 떠오른 것이 커피였다. 얼마 전 다녀온 홍콩 여행도 떠올랐다. 그렇게 남은 보름 동안 글을 써 내려갔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었고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도 아니니 사실 많이 힘들었다. 많이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한 안에 완성했다는 뿌듯함만큼은 넘쳐났다. 
그렇게 완성된 《커피 할래? 여행 할래?》는 출판사 부크크를 통해 POD형태(주문 시 바로 새 책이 주문 제작되는 방식)로 출판하게 되었다. 인쇄되어 나온 책을 만났을 때의 감격이란? 
‘서울책보고’에서 출판 기념회도 가졌고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책을 쓰고 보니 자연스레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이 기회를 잡았기에 그걸 통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는 순리도 깨달았다. ‘공원커피’를 통해 ‘작가와 함께하는 홈바리스타 핸드드립’이라는 특강을 하게 되었다. 작가의 커피스토리와 책이 나온 배경, 세계 커피 역사, 한국 커피 역사 이야기로 시작해, 집에서도 쉽게 나만의 커피 만드는 방법을 실습하고 맛보는 시간이었다. 또 다른 기회는 ‘나도 책 낸다’의 12주차 강의 중 한 강의를 맡게 되었다. 먼저 책을 내 본 사람으로서 나의 경험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커피를 모르고, 책도 발간하지 않고서 내가 그 곳에 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자리였다.

나는 지금도 인생 후반전을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 할 수 있어 기쁘고, 무엇보다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들어있는 쌉쌀 달콤한 커피스토리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최경희, 현) KCSA Barista Instructor 
한국커피창업사관학교 공인자격심사관, 강사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7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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