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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카위에서 사바섬까지 #2

2023년 9월호(16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6.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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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일주 요트 여행기] 

랑카위에서 
사바섬까지 #2

랑카위마리나의 야경

 

랑카위 공항에서 비행기에 내리니 탁 트인 평원과 특유의 더운 훈기가 이곳이 남쪽 섬임을 알려준다. 이 공항의 느낌을 어디서 느꼈었더라? 생각해 보니 4년 전 필리핀 팔라완 코론 섬 공항에서 보고 느꼈던 그 풍경들과 비슷하다. 이고 지고 온 짐을 다시 이고 지고 택시를 잡는데 한국 생활에 익숙한 크루들이 짐이 많아 택시가 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을 한다. “걱정마, 이곳은 한국이 아니야, 기사들이 어떻게든 실어주고 가니까 염려 붙들어 매셔!” 국산 소형차보다 좀 더 큰 택시를 그랩 앱으로 불렀다. 트렁크에 큰 가방 세 개가 가까스로 실리고 남은 짐들은 안고 탄다. 현지 시간으로 8시. 아직 선셋 후의 노을빛이 길게 남아 30분이 넘는 시간을 이동하며 랑카위를 ‘주마간산’(走馬看山) 으로 둘러본다. 평범한 남도 섬인데 차량들은 작은 일제 차들이 많고 도로가 깨끗하다. 중간중간 큰 마트들이 보이고 곳곳에 marine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간판들이 여럿 보인다. KFC, 맥도날드, 스타벅스, 나이키 등 익숙한 다국적 간판들이 보이고 마리나에 가까워질수록 시골에서 점점 도회지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 ‘밥 굶지는 않겠군!’ 비행기 기내식으로 먹은 이곳 특유의 향신료 음식들이 불편하니 맥도날드 간판이 반갑다. 

랑카위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심에 마리나와 숙소인 라마다 호텔이 있다. 호텔 라운지 앞에 마리나의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져 있고 명기형과 김석중 선장님이 호텔 앞 식당에서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명기형을 꽉 안는데 몸이 3/4쯤으로 줄어있다. ‘지난 몇 개월간 고생이 심했구나…’ 숙소에 짐을 풀고 피자와 타이거 맥주를 시키고 둘러 앉아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장장 16시간의 여독이 맥주 거품에 파묻혀 씻겨 내려간다.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새 소식을 듣는데, 모레 출발이 현지 휴일 사정으로 4일로 미뤄졌단다. 이곳은 금-토요일이 휴일이라 관공서의 문을 닫아 출국 심사를 할 수 없어 그렇단다. 어쩔 수 없이 랑카위에서 강제 휴가를 보내야 하는 상황. 일정이 뒤로 밀리니 준비할 여유가 있어 좋은데 뒷 여정이 빡빡할 것 같아 반은 좋고 반은 나쁘다. 맛있는 피자에 맥주 석 잔을 마시니 세상이 빛이 난다. 마리나로 가서 새로 산 제네시스호를 둘러본다. 50피트 급 배라 내부가 무척 넓은데 방치된 짐들로 정리가 덜 되어 있다. 사람이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본다. 짐 정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옆의 김석중 선장님의 자뉴 오디세이 52.2 배로 간다. 딜리버리 운항 중인 제네시스호(50ft)와 달리 선주가 몇 년간 깔끔히 관리한 배라 내부가 잘 정리되어 있다. 우리 클럽의 엘사호도 비슷한 연식의 자뉴 오디세이 기종이라 내부를 살펴보는데 이런 저런 부품들과 내부 가구들 디자인이 비슷하다. 같은 회사의 크기만 다른 같은 기종이니 농담으로 ‘언니’ 배라 부른다 농담을 하고 선장님께로부터 맥주와 망고를 대접 받으며 이런 저런 항해 이야기를 듣는다. 30일간 엔진이 고장 나 지부티에서 몰디브까지 인도양 절반을 바람으로만 건넌 이야기부터, 러더(방향타)가 고장 난 요트를 몰며 혼자 사투를 벌인 이야기 등 곳곳에 아직 지구 바다 위의 생생한 모험의 세계들이 펼쳐진다. 하루 종일 이런 저런 요트 업그레이드와 수리에만 집중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모든 선장은 다 똑같구나. 나 혼자 하는 고생이 아니구나’하는 위안이 생긴다. 밤에 와 명기형과 호텔에서 잠을 청한다.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방 침대에 오랜만에 몸을 누이고 코를 고는 명기형의 표정이 좋다. 다행이다.

다음 날 호텔(마리나 앞 라마다) 아침 조식은 무척 훌륭했다.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동남아 특유의 풍미 좋은 과일에 빵, 야채, 누들 등 모든 음식들이 맛있다. 밥을 먹고 두 김 선장님들과 홍콩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는 부품 샵에 갔다. 없는 게 없다. 요트 부품 하나를 구하려면 온라인에서 이것저것 주문해 오래 기다리고, 제품 값보다 비싼 배송료로 택배를 받으며 고생하던 일들이 갑자기 떠올라 다소 억울해진다. 물건이라도 잘 맞으면 감사한데, 온라인으로 하나하나 찾아서 오다보니 잘못 와 쓸 곳이 없는 부품들도 창고에 몇 개씩 쌓여 있다. 지름이 거의 10센티가 되고 가격이 개당 20만원이 넘는 샤프트 아노드를 보니 배 크기가 짐작이 된다. 이런 건 아마 슈퍼 요트에서 쓰겠지. 한국에 있는 마린 샵은 팬더(배 보호 쿠션), 샤클, 시트(요트 줄) 정도의 리깅 정도만 구할 수 있고 실제 수리에 필요한 엔진 부품, 라이프 가드 등은 따로 공업사에서 제작해서 쓰던지 수입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 5년간 배 수리를 하며 찾았던 대부분의 물품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실제 수리에 필요한 것들이 없는 게 없는 마리나 옆 진짜 마린 샵. 외국에서 온 배들이 언제든 편하게 와서 배 수리를 할 수 있겠다. 부품 하나 구하기 위해 고생하며 배 손보던 일들을 생각하면, 이런 환경들이 몹시 부러워진다. 마린 철물점?에서 나와 한국에는 없는 레이마린 판매점에 들러 새 풍향계, 속도계 등을 구경한다. 다시 배로 돌아와 카메라를 들고 마리나와 폰툰 이곳저곳을 기록으로 남긴다.

배에 가니 찌는 한낮. 폰툰 아래로 대여섯 종,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의 열대수족관이 펼쳐져 있다. 김 선장과 한국에서 어렵게 구해온 볼트로 붐을 새로 고정하고 이런저런 수리를 돕다가 김석중 선장님 배에서 밥을 얻어먹는다. 한국 나온 지 며칠 안 되었지만 김치, 멸치 등의 기본 반찬과 갓 지은 따뜻한 압력 용기 쌀밥에 문득 한국의 가족 생각이 난다. 

 

세일링 서울요트클럽, 모아나호 선장 임대균
keaton7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7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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