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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최초의 자화상 회화전통을 창조한 알브레흐트 뒤러의 자화상 (4)

2023년 9월호(16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6. 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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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과 여명 : 서양문화(명)를 깊이 아는 방식의 하나로서 서양에만 있는 자화상 탐구 5]

 

서양 최초의 자화상 회화전통을 창조한
알브레흐트 뒤러의 자화상 (4)

 

 |동양의 ‘직업’ (職業 Job)과 서양의 ‘소명’ (부르심, 召命, Calling, Beruf)
 사람이 하는 일을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먹고 생존하기 위해 하는 일’로서, 이것은 일반 생물이 하는 행위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둘째, 조금 발전된 형태로‘일정한 사회 속에서 정해진 직분을 행하여 그 사회(단체,공장 등)가 유지,발전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무리를 지어 사는 다른 곤충(벌,개미)이나 짐승(늑대,고래)의 행위와 유사합니다. 셋째, 언젠가는 끝날 나의 생존이나 오래가지 못할 사회의 유지보다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일’로 이것은 인간만 할 수 있는 겁니다. 나의 생애는 언젠가는 짧게 끝나고 말지만, 그 짧은 찰라를 사용하여 절대자가 인정할만한 영원한 가치를 남긴다면 최고의 생애를 보내지 않겠습니까? 상대종교의 동양사회 속에서, 또 매우 고통스러운 현실(조선말기의 부패, 일제의 수탈, 한국동란) 속에서 오래 살았던 우리들에게는 대체로 첫째와 기껏해야 둘째 차원의 ‘일’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이것을 ‘직업’(職業)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천직’(天職 하늘이 내려준 업)이라는 개념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天 ‘하늘’ 자체가 실체가 모호하고 애매하고 보편적이지 않아서, 쉽게 ‘일’이란 첫째와 둘째 차원의 정의에 머물고 맙니다. 반면에 절대종교 아래서 오랫동안 살았던 서양에서는 셋째 차원의 일까지 존재하는데, 서양에서는 이것을 아주 오랫동안 (하나님이 나를 그 일로의) 부르심(소명, 召命, Calling, Beruf)으로 규정해 왔습니다. 물론 지난 500년 동안 세속화가 꾸준히 진행되는 가운데, 일반적으로는 ‘Job’을 단순히 밥벌어먹는 직업으로 여기는 전통이 많아졌고, 그래서 사전에는 그런 의미가 제일 먼저 등록되곤 합니다. 하지만 사전의 아래 항목으로 내려가면, 언젠가는 ‘(신으로부터의) 부르심으로서의 소명으로서의 직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양인인 우리가 뒤러의 자화상을 본다고 하더라도 즉각 그 깊이까지 이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가 서양문화가 그 뿌리부터 가졌던 화가로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소명’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 신의 부르심으로서의 소명은, 1) 능동적이고 2) 자기 존재의 영원한 가치를 절대신 앞에서 확인하는 길로서 이해했다면, 동양에서의 직업은, 예술가로서의 장인정신을 철저히 발휘하는 정도나, 혹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천자나 왕의 칼날이 내려와서 죽을 수밖에 없는, 1) 수동적이고 2) 절박함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뒤러의 위풍당당 자화상-4(1500)의 매우 엄위롭고 당당한 모습은, 바라보는 현대인뿐 아니라 당대 사람들조차 당황하여 매우 교만한 작품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1) 자기 천재적 능력에 대한 큰 확신과 함께, 2)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강직함과 겸손함으로 무장한 그에 대한 철저한 오해일 뿐 아니라, 3) 그가 가졌던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창조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근본적 무지를 드러내는 판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자화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적으로 서양문화가 가지는 셋째 의미에서의‘일’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동양문화에서 뒤러와 같이 이런 자화상을 그린 사람이 있었다면, 목이 백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천자나 왕에게 징벌을 받았을 겁니다. 정반대로 서양에서 존재하는 이런 자화상 문화와 그 속에 담긴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의지는, 동양인인 우리가 만약 영속적인 문화를 제대로 창조하려면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며, 또 철저히 세속화된 서양인들이라면 지금이라도 그 문화의 본질인 이런 자기정체성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이 제가 설명하는 이 글을 읽고 이해하고 심지어 동의하신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절대종교적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미에서의 신이 부르시는 직업 소명을 가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격렬하게 살았고 또 죽음을 건너는 경험을 하며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뒤러의 이 차원의 깊이에 결코 내려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어서 격렬한 투쟁을 보이는 자화상-5, 또 자기 파멸까지 이를 정도로 이룬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생애가 끝나는 것 같은 슬픔과 비통의 자화상-6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격렬한 투쟁의 자화상-5(c.1508)에서 신의 소명을 시대와 공동체, 그리고 개인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치며 격렬하게 투쟁하는 뒤러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 앞으로 몸을 굽힌 채로 커다란 눈을 뜨고 앞을 향하여 쏘아보는 눈으로 투쟁하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 대상은 1) 극도로 혐오하는 외부의 대적이나, 2) 심지어 끊임없이 비난하며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대화를 시도했던 절대자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 대상은 3) 바로 신이 자신을 부르신 직업에서의 사명을 그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다하여야 하는 신의 뜻을 받드는 삶을 거부 혹은 포기하고 싶은 자기 자신이었을 겁니다. 이것이 절대종교에서의 소명으로서의 직업관이 예술가에게 적용된 모습입니다. 
 또 이윽고 생애가 더 이상 그 어느 것도 또 어떻게도 변화시킬 수 없는 늙음에 도달해서 확인하는 슬픔과 비통의 자화상-6(1522)은, 아래에서 설명하는 정신적,영적 태도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동양문화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즉 네덜란드 여행을 통해서 국왕들도 왕처럼 그를 대접할 정도로 유럽 최고의 예술가라는 큰 명예를 누렸습니다(1521). 하지만 외적으로 화려한 이런 평가와는 정반대로,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신이 준 절대 사명을 제대로 이룬 것이 과연 있기나 하나 라는 회의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정도를 넘어서 슬픔과 비통을 경험하는 자아의 단계로 나간 겁니다.  


 |성경의 두 가지 내용과 일치되는 뒤러의 자화상  
 그런데 이런 뒤러의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모습은 그가 사랑했고 몸과 마음과 생애를 맡겼고 이루기 원했던 성경에서 발견하는 두 가지 종류의 삶과 일치됩니다 : 
 첫째, 뒤러의 세 자화상은 신약성경이 그리는 예수의 세 모습과 일치합니다.
둘째, 뒤러의 세 자화상은 구약성경 중에서 지혜서 세 종류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다시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뒤러의 세 자화상은 ‘신약성경’과‘구약성경’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구체적으로 먼저‘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예수의 세 가지 모습과 뒤러의 세 자화상은 내용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세 자화상은‘구약성경’의 증언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이며, 구약성경 중에서 인간의 총체적 경험을 묘사한 지혜서와 일치합니다. 뒤러는 대학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라틴어를 공부했기에, 구텐베르그 이후에 출판되어(1455) 뒤러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이미 시중에 돌아다니던 라틴어 성경을 그가 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1500년 당시 유럽의 출판물은 이미 9백만 권에 도달할 정도였고, 그 중에 가장 인기있는 책은 성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러는 종교적,직업적 자기정체성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아주 자발적으로 라틴어 성경을 탐독했고 또 그 내용을 자기화했을 겁니다. 1522년 9월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경인‘9월 성경’의 요한계시록 판에는 이미 뒤러의 연작 판화가 들어갔을 정도로, 그 번역을 보조하는 미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이번 호에는 첫째 점만 다루겠습니다). 

 1. 뒤러의 세 자화상과 일치하는 예수의 세 가지 모습 
 뒤러의 기본적 인간학은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창조자 예술가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절대자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은, 성육신, 즉 ‘하나님이 인간 예수로 내려오심’으로 주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내려오심’이란 사건 자체는 그가 행할 일의 출발점에 불과하기에, 현대사회에서 그 내려오심의 사건을 크게 축하하는‘크리스마스’는 매우 세속적입니다. 그 결과 그가 오신 본래의 목적 자체가 세속사회에서는 오히려 흐지부지하게 되거나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의 궁극적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 

 1) 인간이 벌여놓은 문제(죄와 악)를 해결할 뿐 아니라,
 2)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답게 창조자로 살 것인가를 제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 흔히 예수를 생각하면 십자가만 고려하는데, 사실 십자가에 달린 사건은 그의 생애 중에 한 주간도 안 된 시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며, 이것은 바로 그가 행한 첫째 일, 즉 인간이 벌여놓은 문제를 해결, 역사와 우주를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해결책이란 인간이 지은 죄와 죄책을 예수가 대신 짊어지고 인간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으며, 만약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그 대신에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얻는 매우 손쉬운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2) 그렇지만 그가 ‘내려오심’이나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된 인간이 새로워진 아담들 혹은 작은 예수들로서 창조주를 닮은 창조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그 죽음의 한 주간의 생애를 제외한, 심지어 그것도 포함하기도 하면서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즉 어떻게 세상에 파송된 기름부음 받은 작은 메시야, 황태자로서, 아주 당당하고 지혜롭고 능력을 보이며 살 것인가를 육신의 몸을 입고 직접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뒤러가 ‘자신의 세 자화상’에서‘예수가 보인 세 실체’ (영광의 예수, 투쟁의 예수, 슬픔과 애통의 예수)와 정확하게 일치되도록 묘사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뒤러가 스스로를 예수와 일치시켰다는 말은, 예수가 행했던 첫째 일인 인간의 죄와 악을 사하는 일을 뒤러가 행했거나 행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간의 죄를 사하고 해결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죄와 악에서 해방된 이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즉 작은 메시야, 작은 예수가 된 사람들이 어떻게 창조자로서 살 것인가에 대해서, 즉 예수의 두 번째 일에서 - 역사 속에서 어떻게 죄와 악과 투쟁하면서 역사를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 - 예수가 보인 본을 따라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을 선명히 뒤러는 의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뒤러는 자신의 세 자화상에서 예수를 빼어다 박은 듯한 매우 독특한 세 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
 자화상-4영광의 예수,
 자화상-5는 격렬한 투쟁의 예수,
 자화상-6는 슬픔과 애통의 예수.  
 1.1. 뒤러의 자화상-4(1500)와 일치되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영광의 예수’
 1.1.1.‘영광의 예수’의 모습은 예수의 일생 중에 두 번 나타났는데, 두 내용은 동일하지만 약간만 차이납니다:
 1) 예수가 세례(메시야 임직식)받는 장면, 
 2) 예수가 영광스럽게 변화된 변화산에서의 모습. 

 1)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사건입니다(마태복음 3:13-17, 마가복음 1:9-11, 눅가복음 3:21-22).
여기서 이 장면과 여기에 쓰인 단어,‘세례’란 단어의 의미를 흔히 모호하게 혹은 잘못 해석하곤 합니다.1) 심지어 이 예식을 주도했던 세례요한조차도 이 예식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을 정도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예식은 죄를 씻는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과거의 왕,제사장,예언자들이 기름부음을 받으면서 공적으로 임직할 때의 예식,‘메시야 임직식’을 의미합니다. 즉 지금부터 예수는 공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서 온 우주의 제사장,왕,예언자로서의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세자책봉식이나 중국의 천자(天子)가 말 그대로‘하늘의 아들’로 공적으로 직분을 행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가 메시야(기름부음 받아서 공적 직분을 행할 자)로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행한다는 것을 법적,공적으로 우주 앞에 선포한 겁니다. 그 때에 하늘로부터 들린 소리가 이것을 말해줍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지라.”
 이 하늘에서 들리는 선언은 다른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즉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등극한다는 선언을 들려준 것입니다. 세례를 베풀던 세례요한조차 메시야 등극식이라는 이 예식의 의미를 몰랐으니, 다른 사람도 그랬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의 자의식 자체에 한 말이라는 겁니다.   

 2) 세 제자(베드로,야고보,요한)를 데리고 올라간 변화산에서 보이신 영광의 모습입니다(마태복음 17:1-8, 마가복음 9:1-9, 누가복음 9:28-36).
 사랑하는 세 제자와 함께 올라간 산에서 예수의 용모가 희게 변화된 가운데 들려진 하늘에서의 음성은 그가 누구인 것을 선언하는 것이며 또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에 순종하라.”
 첫째 장면과 내용이 동일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이 선택한 메시야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음성을 들을 대상은 예수라기 보다 예수가 사랑한 세 제자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첨가된 내용(‘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은 그들이 이 메시야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이 땅에 만들기 위해 공적으로 세운 이 우주와 역사의 황태자에게 절대적 권위,권세,권능을 주셨기 때문에 그에게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1.1.2. 자화상-4에 나타난 ‘영광의 뒤러’  

자화상4 : 30세 Duerer's self potrait (1500)

 이런 영광의 예수의 모습을, 뒤러는 자화상-4에서 나타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너무나 당당하고 신적인 포즈를 취하는 모습으로 자기화하며 ‘재현’(再顯represent)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소위 예술가들이 말하는 정도의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실제로 뒤러 자신이 작은 메시야, 작은 예수로 예술계에 등극하여, 그 세계를 재창조하는 일을 하여야 할 존재로서의 자의식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광은 뒤러 스스로 만들거나 이룩한 것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먼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행동을 절대적으로 믿었고 절대적으로 온 인생을 걸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약속인 죄와 죄책에서 해방과 자유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예수를 닮은 신의 (작은) 아들, 즉 작은 메시야가 되어 세상을 섬김으로서 통치하고 다스릴 권위,권세,권능을 부여받았다는 절대적 자기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이런 절대적 정체성을 가진 자를 세상에서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그렇지만 이 모든 영광과 능력은 자신이 이룬 그 어떤 노력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절대의탁한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신 정체성이니, 뒤러 스스로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겁니다. 누구든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인간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되어 오셔서 그 모든 고통을 겪으신 분을 절대의탁하기만 하면, 이런 확신 속에 살 수 있는 너무나 자유롭고 영광스러운 선물입니다. 물론 뒤러는 예술가로서의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철저하게 노력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런 완벽한 자아를 나타낸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만약 그 노력이 뒤러의 전부라면, 그 이후의 매우 특이한 자화상-5와 더욱 더 특이한 자화상-6을 그릴 수 없었을 겁니다. 그 뿐 아니라 그가 했던 격렬한 내면투쟁을 -앞의 글에서 이미 전에 묘사한대로- 결코 할 수 없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매우 자의식이 충만하고 아주 교만한 인물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물론 레오나르도는 결코 그 교만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어리석음을 보이지는 않았고, 또 그의 삶과 작품이 아무리 치열하고 탁월해도, 그에게 영원히 감동할만한 종교적 열정의 기초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에게 있어서 전부는 세상의 모든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기초가 되는 영원함이 보장되는 종교성은, 보이지 않거나 막연하기 때문에,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그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가 가장 탁월하게 창조한 두 작품 중 종교 작품인 ‘최후의 만찬’조차 그 내용적 피상성 때문에 실망할 수밖에 없을 정도입니다(다른 하나는 ‘모나리자’).
 그렇지만 뒤러는 매우 교만하게 보이고 그렇게 오해하기 너무나 쉬운 자화상-4가 이런 종교적 자아정체성에 기초한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시작된 예술가의 삶이며, 영원과 완전을 향해 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가 본을 보인 것처럼, 뒤러도 작은 예수로서의 본을 역사에 남긴 셈입니다. 28세의 뒤러처럼 혹은 30세의 예수처럼, 이러한 영광의 자기 정체성을 가진 청년들로 한반도가 가득 찬다면, 얼마나 탁월한 세계 역사를 한반도,한민족은 이룰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뒤러의 자화상이 예수의 둘째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1.2. 자화상-5(c.1508)와 일치하는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투쟁의 예수  
 1.2.1. 투쟁의 예수 

자화상 5 : Nude self- potrait (c. 1508)

 예수가 행한 투쟁의 궁극적 대상은, 자기를 죽이도록 선고한 ‘로마총독 빌라도’를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나를 네게(빌라도)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요한복음 19:11)라고 빌라도에게 점잖게 충고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적 권위가 예수에게 집중되자 이를 시기하여 자기를 이방인에게 넘겨주어 죽게 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투쟁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모른다고 부인한 11명의 제자나 자기를 돈을 받고 팔아넘긴 가롯유다를 향한 투쟁도 아니었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요한복음 18:36). 침묵하고 배신할 제자들을 향해서는, 예수는 오히려 이 고통의 시간이 지난 후에 전혀 새롭고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을 예고하면서 할 일을 미리 가르쳐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너희는 가 있으라. 거기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마태복음 26:32).
 예수의 투쟁은, 무엇보다도 궁극적으로 자신을 이런 죽음의 길로 예정하신 아버지, 성부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잡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했던 기도의 내용은, 이 십자가의 길 외의 다른 길이 없느냐고 하나님께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수 있다면 이 (십자가 고난의)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세 번 반복된 이 기도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격렬했고 절절했던지, 예수는 제자들에게까지 그 고통을 미리 고백했을 정도입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되어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마태복음 26:38). 심지어 그 기도의 격렬함은 그가 흘리는 땀방울이 특이한 형태임을 통해 알 수 있었다고 보고합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44).  
 그렇지만 더욱 격렬한 것은 바로 임종 때 했던 절규에서 나타났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 평소에 늘 하나님을‘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깊게 표현하였지만, 십자가에 수동적으로 잡혀서 죽는 이 순간에는 그렇게 부를 자격이 주어지지 않고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기 때문에, 겨우‘나의 하나님’이라고만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 바로 직전에 이미 모든 것을 성취한 것을 알고 다음의 두 마디를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 또 온 세상을 향해서는,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라고 선언하고 임종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의 투쟁의 대상은 더 깊이 살펴보면, 결국 그 어느 누구나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자기 자신일까요? 만세 전에 성부 하나님과 약속했던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순간이 막상 다가오자, 그 대신 다른 길을 타협하려고 하나님께 애걸하는 자기 자신이 사실 투쟁의 궁극적 대상이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투쟁했던 예수는 그 시간이 지나가자,“하나님과 예정했던 모든 뜻을 다 이루었다”는, 감히 그 어느 인간도 할 수 없는 말을 만물 앞에 차분하게 선포하고 마지막 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1.2.2. 자화상-5‘투쟁하는 인간, 뒤러’
 자화상-5에서 보이는 뒤러의 격렬한 모습은, 뒤러의 그림뿐 아니라 그 어떤 서양미술에서나 자화상에서도 사례를 결코 찾을 수 없는 유일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자화상을 이미 ‘격렬한 자화상’이라고 피상적으로 명명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격렬함이라는 감정이 발생한 원인은, 그가 (내적으로) 치열하게 벌였던 투쟁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떤 투쟁일까요? 뒤러의 삶 속에서 그 어떤 내적, 외적 힌트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다른 작품으로 추론할 수는 있습니다. 즉 자화상-4자화상-6이 철저히 예수의 모습을 의식한 작품이며 또 자신은 창조주 예수를 따르는 창조자로서의 삶을 사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뒤러의 자화상-5에 나타난 투쟁하는 모습을  예수가 투쟁했던 정체성과의 일치할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과연 자화상-5는 위에서 미리 소개한 처절하게 투쟁하는 예수상과 정교하게 대응합니다! 이에 비해서 무려 80여점이나 제작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일관되게 그때그때의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보이긴 하지만, 현실과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자신을 고즈넉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일 뿐이니 싱겁습니다(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미술전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엄청나게 고양된 ‘영광의 자화상’(자화상-4)에서, 지옥문 입구에 선 것 같은 ‘투쟁의 자화상’(자화상-5)으로 고꾸라지는 것과 유사한 작품은 후대의 그 어떤 미술가에게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즉 이것은‘영광의 존재’에서‘투쟁하는 존재’로 현격하게 변화하는 예수의 모습 외에는 다른 비유를 찾기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뒤러가 이 자화상에서 보인 격렬한 투쟁을 했던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첫째,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예술의 천재를 알아보지 못해서, 결혼한 지 몇 개월이 안되어 뒤러로 하여금 베네치아로 튀도록 만든, 너무나 평범한 아내 Agnes Duerer는 아니었을 겁니다. 물론 뒤러의 절친한 인문학자 친구는 그녀가 뒤러의 예술성을 갉아먹는다고 불평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둘째, 당대 로마교의 부패상황이나 그 상황에 맞추며 타락을 일삼으면서 뒤러에게 이것저것 요구했던 사람들도 투쟁의 대상은 아니었을 겁니다. 셋째,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개혁된 독일에서 벌어진 농민전쟁(1525)이나 개혁가들끼리의 의견충돌로 벌어진 마르부르크 토론 Marburg Colloquy(1529)을 일으킨 지혜롭지 못한 종교개혁가들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의 투쟁이 내면적이었다는 것을 그가 그 즈음에 만든 세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습니다. 즉 1) 심리적 고통([Melanchoria i] 1514)과, 2) 좌절([Despair] 1516)을 나타내는 작품, 그리고 3) 그것에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성경에 의존(Sola Scriptura)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한 작품([St. Jerome in his Study] 1514)에서 그의 내면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이것은 거의 유사한 내적 투쟁을 현실적으로 겪는 과정을 통해서(three Solas‘오직 은혜로’,‘오직 믿음으로’,‘오직 성경으로’) 종교개혁을 자신의 삶에서 먼저 돌파한 마르틴 루터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성취한 종교개혁이 준 해방을 경험한 이후에도 그의 내면은 편치 못했고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겁니다. 앞에서 말한 외적으로 벌어진 두 사건(1525,1529)이외에도 뒤러를 더 근본적으로 고통스럽게 했던 투쟁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으로 받은 자신의 영역인 예술세계에서, 종교개혁 자체의 연약함,경직성과, 루터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물려받은 신플라톤주의적인 이원론을 따라, 플라톤이 문학과 예술을 멸시했던 것처럼, 자신의 예술성이 종교개혁 세계에서 긍극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개혁된 유럽사회 속에서 예술을 비롯한 문화가 전반적으로 화려하게 꽃피우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근본적 두려움 말입니다. 즉 투쟁하는 뒤러의 모습은
 1) 독일과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과정과 또 그 메시지를 자기화하는 과정에서도 있었지만,
 2) 종교개혁 이후의 독일의 교회와 사회와 문화 전반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느냐는 문제와 씨름할 때에도 이어졌을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뒤러의 환상 Duerer's Vision(1525)

 뒤러가 그가 가진 아주 섬세하고 창조적인 예술적 감각으로, 식은 땀을 흘리며 꿈을 꾼 후에 격렬하게 그렸던 [뒤러의 환상 Duerer's Vision](1525)은, 단지 같은 해에 있을 농민전쟁만 예상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먼저 뒤러와 루터가 버리고 떠났던 로마교와 그 근거가 되는 남유럽의 국가들(스페인,포르투칼,프랑스,이태리,특히 베네치아)이 가졌던 ‘은총(교회)과 자연(세속)’이라는 신플라톤주의적인 이원론은 종교와 역사,우주,문화의 연관,연속된 상관관계를 만드는 대신, 종교의 문화 지배를 보편화시켰기에, 세상을 중세 이상의 고통으로 몰고 갈 것이 뻔했습니다. 또 뒤러가 속했던 루터의 독일교회는, 궁극적으로 국가가 월급을 주고 지지하는 국가교회(Landes Kirche)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루터교회는 이 신플라톤주의적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로마교의 이상(교회의 세상 지배)과는 정반대로 교회가 정치,사회,문화의 시녀가 되는 꼴이 지난 5백년 역사 동안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독일사회가 격렬하게 변화되던 근세에 핵심인 독일의 정치통일을 교회가 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가 이룬‘위로부터의 통일’(1871)이라는 무리수로 독일인들은 철저히 수동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연약하지만 최선의 정치제도인 민주주의가 독일사회에 정착하지 못하여, 국가지상주의 혹은 국가사회주의에 지배당하여 독일이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교회가 막지 못한 것입니다. 또 학문적으로 철저한 신플라톤적 이원론에 근거한 철학인 낭만주의와 그 후기철학(칸트,피히테,쉘링,헤겔,포이에르바흐,마르크스)이 바로 다른 곳이 아닌 이 독일에서 꽃피울 수 있었던 조건이 되었습니다. 뒤러의 섬세한 예술적 촉각이 독일과 세계에서 벌어질 먼 미래까지 뻗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과할까요?  


 1.3. 뒤러의 자화상-6(1522)과 일치하는 슬픔과 애통의 사람, 예수 :
 1.3.1. 슬픔과 애통의 사람, 예수

자화상 6 : Man of sorrows (1522)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에 그 건물의 소유주인 도미니칸 수도원의 수도사는 예수의 얼굴에 어떤 표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했고, 그 말을 따랐기에 약간 맹하게 -그래서 실패한- 묘사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예수는 보편 인간들의 경험들과 감정들, 그리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표정을 지었음을 신약성경은 말합니다. 예수가 죽을 예정으로 예루살렘으로 제자들 앞서 단호하게 걸어나갈 때에 주위에서 그 모습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따라가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마가복음 10:32). 예수는 자유롭게 다닐 때는 그 말의 능력을 나타내면서 그 대적들과 매우 ‘능동적,적극적’으로 싸워 이겼고,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을 향해 했던 기도도 아주 ‘도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스스로를 잡히도록 내어준 후에는 철저히‘수동적’이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심문할 때에나, 로마인인 빌라도에게 넘겨준 후 모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침묵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수다로 일관했습니다. 약간의 변명이나 설명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이상하게도 침묵하였으며, 정반대로 가만히 있으면 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뒤집어쓰려고 작정한 듯이, 상대를 고함치게 만들 정도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쓸데없는 말로 수다스러웠습니다. 특히 빌라도가 ‘너는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을 때에, 이 말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설명과 변명없이 ‘네 말이 옳도다’라고 답변하며, 오히려 그들이 설치한 올무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마태복음 27:11). 사실 이 ‘옳도다’는 말이 하나님과 우주와 온 역사의 관점에서는 맞기는 합니다. 또 예수가 스스로를‘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자, 실용주의자인 로마인 빌라도는 그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초조해 하지만, 총독으로서의 자신의 권세를 내세웁니다. 자신은 예수를 놓아줄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이에 대해 예수는 아주 무서운 말로 빌라도에게 대응합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네게) 없으리라. (그래서 네가 나에게 해를 가하면 그것이 너의 죄가 되느니라). 그렇지만 (네가 행할 죄보다)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요한 19:11).    


 1.3.2. 자화상-6과‘슬픔과 애통의 사람’, 뒤러 : 

Man of sorrows(1493)

 그렇다면 이렇게 잡혀서 이제는 십자가에서 죽을 예정이 그래도 성취될 일만 남은 상황 속에서의 예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윽고 빌라도가 예수를 유대인들의 강압에 의해 넘겨줄 작정을 한 후에 유대인들에게 한 말이“이 사람을 보라. 너희 왕이다”(요한복음 19:14)입니다. 라틴어 Esse Homo(‘이 사람을 보라’)는 서양 종교화의 하나의 장르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때의 예수의 얼굴을 어떤 것으로 상상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예수의 얼굴을 [Man of Sorrows 슬픔의 사람]으로 그렸고, 뒤러 역시 매우 일찍부터(1493) 가시면류관을 쓰고 채찍과 몽둥이를 들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그리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엉뚱하게도 이 Man of Sorrows 라는 제목을 보잘 것 없는 (연)필화로 그린 자화상 앞에 붙인 사람은 뒤러가 유일합니다. 물론 이 그림에서 예수의 머리에 씌였던‘가시면류관’은 없지만, 예수의 전유물로 표현되곤 했던‘채찍’과‘몽둥이’는 뒤러의 손에는 들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이 뒤러 자신인 것은 그의 1) 긴 머리칼과 2) 얼굴 형태로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예수의 삶과 일치시키는 것을 매우 신성모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매우 종교적인 사람인 뒤러는 이 일치를 아주 자연스럽게 여겼습니다. 어거스틴의 이원론에 깊이 주저앉은 로마교나, 종교개혁을 이룬 이원론적 루터교의 입장에서는, 뒤러의 일원론적 생각에서 파생한 이런 표현은 매우 부자연스러웠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적대적이었을 겁니다. 뒤러가 인생의 최후반에 처절하게 느낀 슬픔과 애통은 육체적으로 가해진 핍박이나 세상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해서 생긴 안타까움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바로 이렇게 좁게는 유럽문화에서, 넓게는 역사의 먼 미래에서 일원론적 세계관으로 이루는 창조적인 문화의 기초나마 제대로 만들 수 없다는 자각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저의 이러한 뒤러 해석은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1) 예수의 세 가지 모습을 철저히 자기 내면화했을 정도의 종교적 자기정체성을 지녔으며,
 2) 자신 영역에서 천년에 한번 나올 천재이면서,
 3) 일원론적,총체적 세계관을 지닌 가운데 새로운 문화를 꿈꾸었던 뒤러 같은 사람을,
 이 글을 쓰는 21세기의 둔재가 아무리 오랫동안 연구해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깊은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런 과도한 지점까지 상상력을 펼치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첫째 요소로 지적했던, 슬픔과 애통의 사람 예수를 완전히 자기 내면화했을 정도로 종교적 자기정체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개인의 경험이나 역사의 현실자체를 초월해서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추론해 보는 겁니다.     


 (이어서 뒤러의 세 자화상이 구약성경 중에서 지혜서 세 종류의 내용과 일치함을 다루겠습니다)


1) 여기에 쓰인 동사 baptizoo는 원래‘물에 잠긴다’는 뜻인데, 이것이 흔히‘씻는다’로 해석되기도 해서‘죄를 씻는다’는 한 가지 뜻으로만 고정되어 해석되곤 했습니다. 이 점이 세례요한이 예수에게 baptizoo를 행하라고 했을 때에, 자신은 죄사함을 얻게 하는 세례만 행했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없다고 처음에는 거부한 겁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른 뜻으로 혹은 구약성경의 메시야 임직식의 의미로 이것을 행하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물’은‘성령’을 상징하며, 예수가 지금부터 성령에 완전히 잠기게 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를 다스릴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이 예식을 행하자마자, 성령이 예수 위에 임했으며 그 때 이후로 놀라운 능력을 행했습니다.

2) Isaiah Berlin, The Roots of Romanticism, 2013; F.C.Beiser, Enlightenment, Revolution, and Romanticism, The Genesis of Modern German Political Thought 1790-1800, 1992; J.H.Billington, Fire in the Minds of Men, Origins of the Revoluionary Faith,1999.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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