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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난 티볼트의 죽음

2018년 2월호(제10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2. 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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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들은 음악회]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난 티볼트의 죽음



  [궁궁 쾅쿵쾅... 로미오와 마주한 티볼트. 두 사람은 현악기의 긴장감속에 서로를 주시하며 대치하고 있다. 중간중간 관악기의 중저음 속에 서로의 약점을 노리는 치명타를 주고 받는 가운데 두 사람의 결투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마침내 로미오의 칼끝은 티볼트의 급소를 찌르고 티볼트는 괴로워하며 뒷걸음으로 쓰러지고 만다. 캐플랫 가문은 모두 침통해하며 티볼트의 장례를 거대하게 준비한다. 그리고 몬테규 가문에 선전포고라도 하듯 커다란 무리를 이루어 티볼트를 애도하며 행진을 한다]


  프로코피에프Prokofiev(1891~1953)의 ‘로미오와 줄리엣 조곡 제1번’중 ‘티볼트의 죽음’을 듣는 중에 제 눈앞으로 그려본 스토리입니다. 분명 ‘성남시립 교향악단’이 여러 악기들을 이용해 음악을 제 귀에 들려주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저는 주인공들이 마치 제 눈앞에서 공연하는 듯 했습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더해본다면 ‘티볼트의 죽음’에서 불협화음들을 조금 더 많이 써서 로미오와 티볼트, 이 두 청년의 싸움을 한층 더 심각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 이 음악을 눈으로 보는 발레 공연과 함께 들었다면 나는 오감을 총동원하는 가운데 발레의 동작에 집중하다가 오히려 귀로 듣는 음악의 비중이 제한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이번 공연처럼 시각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 청각으로만 음악을 듣는 것이 오히려 나의 생각을 넓히고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펴기에는 더 좋은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Yuri Botnari. Prokofiev, Romeo and Juliet, "Death of Tybalt"

George Enescu Philharmonic Orchestra.


  148회 성남시향 정기연주회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 조곡’의 전곡이 아니라 제1번 중의 4곡, 제2번 중의 2곡만을 연주했습니다. 이번에 만난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누구나 ‘눈’으로 읽어 잘 알고 있는 스토리를 어떻게 ‘귀’로 듣는 음악으로 적절하게 표현할까, 다양한 장면들은 어떻게 묘사할까”등의 궁금증이 들게 하는 곡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현악기와 금관 및 목관악기, 그리고 타악기와 하프, 심지어 피아노까지 다 동원되어서 제가 알고 있는 악기들이 총동원된 듯한, 그래서 이때까지 참석해보았던 오케스트라 공연 중에 단연 가장 많은 악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 공연에서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같이 연주하는 것을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렇게 문학적 요소를 아주 다채롭게 표현해낸 프로코피에프 덕분에 20세기의 현대음악이 마냥 어렵고 난해하다는 저의 단순한 고정관념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현대음악적 요소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를 표현해 내기에는 더 적절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사실 현대음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해하기 힘들며, 난해한 음악구성과 귀에 편하지 않은 불협화음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들은 프로코피에프의 음악들은 고전음악에 익숙한 청중들을 현대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안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귀에 익은 고전음악과는 무언가 약간씩 다른 화음과 리듬, 그리고 악기들의 배열 속에 귀가 자극을 받아 현대음악에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더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마치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께서 편하고 익살스러운 설명과 다채로운 공연구성을 통해 클래식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일에 성공하시는 것처럼, 20세기 전반을 살았던 프로코피에프도 현대음악을 자연스럽게 저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하는 일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보다 백년 후인 21세 전반부를 살아가는 제가 초현대적인 삶과 음악에서 어떤 성공을 거둘지는 오로지 저의 몫이지만 말입니다.


경기도 군포시 이송아

ssong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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