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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꿈꿀 수 있는 세상 만들기 

2018년 2월호(제10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2. 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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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사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꿈꿀 수 있는 세상 만들기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 그 행동이 가치 있음을 느끼죠. 그 가치를 전하기 위해 모인 인천대학교 사회문제해결 프로젝트팀인 ‘INU문화기획단’이 인천광역시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았습니다. 사무국장님과 시각장애인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시각장애인의 삶을 곁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인터뷰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육아는 어떤지, 요리는 어떻게 할지, 청소할 때 힘든 점은 무엇인지, 다양한 질문이 오가던 중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패션산업학과 학생입니다. 혹시 지금 입고 계신 옷은 어떻게 고르셨나요? 잘 어울리십니다.” 


이 질문을 받고 모두의 시선이 그녀의 옷과 메이크업으로 향했죠. 그러고 보니 색의 매치도 너무 좋고, 심지어 잘 어울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빛을 보지 못하는 1급장애인입니다.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생활해야 하죠. 하지만 옷을 선택하는 것은 시각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저는 저만의 노하우를 마침내 터득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은 매장 직원에게 일일이 색을 물어볼 수도 없고, 또 매장까지 나가기도 힘들어서 불편함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저에게 맞는 홈페이지 몇 개를 ‘즐겨찾기’ 해둡니다. 그리고 그 속의 ‘후기’를 예민하게 참고해요. 컴퓨터에 글을 대신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마우스를 올리면 그 내용을 읽어주거든요. ‘보통 55보다 크게 나왔어요.’, ‘팔이 생각보다 길어서 팔 짧은 분들에게는 비추입니다.’ 이런 후기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같이 갔던 우리는 그 순간 일제히 “앞으로 후기 정말 열심히 작성하겠습니다!!”라고 외쳤지요. 때론 귀찮아서 1분의 시간조차 내지 않고 뒤로 미루었던 후기 적는 일이 우리에게 가치 있는 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후기를 적는 순간만큼은 시각장애인을 떠올릴 수 있는 작은 마음 하나가 생긴 것이죠.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쯤, 지금껏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남학생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 저희 어머니가 스트레스로 잠시 시력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어머니에게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혹시 가족 중 누군가가 장애를 갖게 된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장애인의 90%가 후천적 요인으로 인한 장애인이라고 해요. 선천적으로 시각장애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시력을 가지고 있다가 잃게 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정말 힘듭니다. 남의 신세지기는 정말 싫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자신감이 떨어지며 점차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갑니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고, 가족들과 갈등이 생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장애인 이혼율도 상당히 높아요. 한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그 역할까지 배우자가 해야 하니까요. 당사자도 가족도 모두 심리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는 거죠. 극복하려면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데 기관까지 가는 것 역시 가족의 도움이 필요해요. 안타깝게도 가족을 잃고 재활시기까지 놓친 후에 찾아오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만약 장애인 가족이 무언가 하려다 힘들어하면 “하지 말고 그냥 둬요, 내가 할테니까”라고 말하는 것보다 “우리 같이 할까?”라고 말해주세요. 도와주겠다고 꺼낸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저 마음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치밀한 지식과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겁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고, 또 끊임없는 관심이 있어야만 그들을 다시 세상과 연결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INU문화기획단’은 소중한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던 정보들을 빠짐없이 복기해 보았습니다. 외출할 때 주머니마다 지폐를 따로 넣고 외워야한다, 컴퓨터 자판과 단축키를 모두 외워야 컴퓨터를 시작할 수 있다, 요리할 때 액상 조미료의 양 조절이 힘들다, 캔 음료 위에 쓰인 점자는 모두 ‘음료’여서 쥬스인지 탄산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규칙은 다르지만 볼링, 사이클, 야구 등 스포츠를 이들도 즐길 수 있다, 점자전공서적 변환 작업 중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기호는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반 문학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학기 중 학업에 어려움이 있다, 안내할 때 내 팔꿈치를 잡게 도와주면 방향과 높이를 예측할 수 있다 는 등이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연한 일을 그들도 함께 당연히 누리고 꿈꿀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을 모아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였습니다. 


  먼저 어떻게 하면 가장 일상적이고 매일 해야 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부터 고민해보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제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인식개선을 위해 마련된 활동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검색하고 자문을 구했죠.


  우선 어린 시각장애인과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입은 초기 단계에는 식사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흘림방지식판’을 가상으로 설계해 보았고,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달린 숟가락-포크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요리할 때 액상조미료의 양 조절이 힘든 점을 개선하기 위해 3D프린터로 양 조절 디스펜서를 제작해보기도 했죠. 또 흰지팡이 보행을 할 때 바닥에 물이 고여 있으면 미리 알기 힘들기 때문에 지팡이 손잡이에 다양한 센서를 달아보는 아이디어도 냈습니다. 스릴있는 스포츠를 즐기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센스 스포츠 체험전’도 기획했지요.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상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경기도 구상해 보았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체험전은 과연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홍보되고 진행되었는지 알아보았고, 현장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보기도 했습니다.


  복지관을 다시 찾아 복지사와 사무국장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여 활용도가 높을지, 실제로 제작된다면 어떠한 점이 고려되어야하는지 꼼꼼하게 설명을 듣고 수정해나가는 작업을 반복하였습니다. 


< 액상조미료의 양을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도록 3D프린터로 만든 디스펜스 >


  첫 프로젝트는 시간과 비용 등의 문제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3D 프린터로 제작된 제품, 수수깡과 찰흙 등으로 만든 모형, 3D 설계 프로그램으로 만든 도안, 그리고 기획안 등이었습니다. 비록 실현되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지만, 우리는 이후에도 아이디어를 나누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며 실현시킬 방법들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내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을 더 할 수 있다는 우월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함께 섞여 호흡하며 살기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달라져갔습니다. 주변에 시각장애인이 있는지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갑작스레 만나게 될 그분들을 위해 언제라도 팔을 내어줄 준비를 하게 되었지요. 지하철에 적힌 점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혹여나 점자가 지워지지 않을까 지폐 한 장도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걸음을 내딛으며 장애인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먼저 바꾸고 이어서 행동변화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희보다 훨씬 이전부터 많은 고민들로 지금의 작은 날개짓을 만들어내신 국장님, 그리고 기탄없이 불편함을 말씀해주신 사회복지사님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INU문화기획단’은 앞으로 더 많은 세상의 실제 현실을 바라보고, 더 많은 분들과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고민하려고 합니다. 당장 눈에 드러나지 않더라고 서서히 대학, 기업과 지역사회, 그리고 나라에 긍정적 영향력이 스며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가 만들려고 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행복과 변화를 많이 응원해주시고 기대해주세요.


문화기획단 기획자
장재연/ 김지아/ 조세화
010-3009-4620(조세화)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0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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