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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커서 슬픈 사람들

2018년 6월호(제10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6. 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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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통신 노익호의 지휘자 이야기 3]


키가 커서 슬픈 사람들 


 한번은 서수남, 하청일씨가 TV대담쇼에 출연했습니다. 윗트 넘치는 서수남씨가 이렇게 말했죠. 어떤 분이 저와 하청일씨를 번갈아 보며 한다는 말이“저게 빙신인줄 알았는데, 이게 빙신이네!”라더군요. 항상 둘이 붙어서 출연하다보니 하청일씨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 난장이가 아닌가 했다가 직접 보고선 서수남씨의 키가 워낙 크더라는 얘길‘우스개 소리화’했던 겁니다. 서수남씨의 키가 187cm로 당시엔 몹시 키가 큰 사람이었고, 하청일씨는 175cm로 꽤나 준수한 키였는데 말이지요.

 

 제 키는 159cm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래서인지 173cm의 키를 가진 여자를 만나 결혼하기로 마음 먹었더랬습니다. 173cm를 넘어서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았고, 173cm에 못 미치면 후회할 것 같아 잡는다고 잡은 키가 173cm였던 겁니다. 결과요? 물론 될 뻔했으나 운명은 다 그런 것. 제 아내의 키는 153cm입니다. 살다보니 만만하고 좋더군요.

 

 여기 다니엘 바렌보임의 첫번째 아내인 키가 큰 여인‘재클린 뒤 프레’가 있습니다. 영국의 자랑이며 역사상 최고의 여성 첼리스트인 재클린 뒤 프레는 장신입니다. 그녀는 아무도 그리 연주할 수 없던 때 현이 끊어질 듯 호쾌하게 연주하며 기막힌 감성까지 곁들일 줄 아는 천재 중의 천재 음악가였습니다. 영국의 작곡가 엘가가 그토록 심오한 첼로협주곡을 작곡했음을 알리는 데에 있어서 최대의 공헌자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재클린 뒤 프레입니다. 이때까지는 일반인들에게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이 최고였더랬으니까요.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그녀의 연주로 들어보면 음악성에 기인한 폭발적인 에너지와 심금을 울리는 애절함이 뭉클 느껴집니다. 재클린 뒤 프레의 연주를 듣고 나면 누구나 첼로를 켜보고 싶어집니다. 실제로 재클린 뒤 프레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무렵 영국황실의 세자를 비롯하여 첼로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바렌보임과 재클린 뒤 프레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재클린 뒤 프레와 인기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다니엘 바렌보임’은 결혼하게 됩니다. 재클린 뒤 프레의 가족들은 왜소한 바렌보임과의 결혼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랑은‘슈만과 클라라’에 비유되는 세기의 사랑이야기가 되었으며, 두 사람은 연주에 더욱 빛을 발하여 왕성한 연주활동을 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이런 것인지, 첼로로 세상을 뒤흔들던 재클린 뒤 프레가 온 몸의 근육이 굳어가는‘다발성(뇌척수) 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리고 맙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렌보임은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쉬키로바와 동거를 하게 됩니다. 재클린 뒤 프레는 아마도 절망감 속에서 병을 감당하다가 42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그녀가 죽자 바렌보임은 엘레나 바쉬키로바와 정식으로 결혼하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왜소했던 바렌보임은 키 큰 여자 재클린 뒤 프레가 부담스러웠을까요?

 

 아무튼 1987년에 요절한 재클린 뒤 프레의 실연(實演)을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녀의 활동기간은 10년 남짓으로 그리 많지 않은 연주들을 남겼지만 남긴 연주들 모두가 대단한 명연주로 남아있습니다. 그녀의 연주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지난번에 소개한 바렌보임의 두번째 부인인 엘레나 바쉬키로바의 피아노 독주회는 한번 볼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홀을 가득 채운 청중들에게 그녀는 대단히 매력적인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청중들의 갈채에 앵콜로 몇 곡을 더 연주해 주었습니다. 끊이지 않는 앵콜에 대한 마지막 곡으로 그녀는 슈만의‘트로이메라이(꿈)’를 선사하며 청중들을 잠재웠는데 제 음악 감상 이력에 트로이메라이를 그토록 기막히게 친 피아니스트는 엘레나 바쉬키로바 뿐이었습니다. 연주회장이라는 특수 상황이 가져다 준 감흥도 물론 있었지요.

 

 주인공인 우리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작년에 아르헨티나의‘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모차르트의‘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도 연주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참고로 바렌보임은 1942년생으로 현재 75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1941년생으로 76세입니다. 다니엘 바렌보임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으니 서로의 정서가 딱 들어맞지 않겠습니까? 연주를 들어보면 바렌보임이 결단코 밀리지 않습니다.

 

 바렌보임은 음악가들과 두 번 결혼했으나 그외 이렇다 할 염문이 없는 깔끔한 신사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재클린 뒤 프레에 대한 바렌보임의 비신사적인 처사 때문에 뒷말들이 분명 있습니다. 아무튼 지휘계의 거장으로 명실공히 최고의 지휘자로 칭송되어지는 바렌보임이 장수하여 명연주의 신화들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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