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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일탈

2018년 7월호(제10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7. 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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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송문화]

휠체어 일탈


 1950년대, 레일 이음새의 딸그닥 소리가 나무의자를 통해 선명히 들리던 완행열차 객차 칸에 휠체어에 탄 사람이 들어서며 승객들 무릎에 볼펜 같은 용품과 누런 골판지에 주절주절 쓴 사연을 돌리노라면 사람들은 반갑지 않은 표정이 되어 창밖만 보는 척 했다. 이들은 상이용사를 사칭하거나 아니면 가난했던 나라의 무기력에 생활고의 막바지에 오른 진짜 6.25 참전 용사들이었을 수도 있었다. 여하튼 그것은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없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일상이기도 했다.

 

 새삼스레 그 옛날 고국의 휠체어를 떠 올리는 것은 이곳 미국에서,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불의가 배척되며 노력하는 만큼 번다는 미국 땅에서 최근 겪은 ‘휠체어 에피소드’ 때문이다. 


 2018년 1월 어느 토요일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여니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두툼한 A4크기의 봉투를 건네 주었다. “아니, 이게 무엇이지요?” “나는 그저 배달 할 뿐이요. 내용을 읽어 보면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황망히 사라졌다. 배달원의 복장도 아닌 사람으로부터 건네 받은 봉투를 받아 들고 뜯어보니, 휠체어를 타고 아내가 운영하는 매장에 들어 와 쇼핑한 장애인이 장애인 코드를 준수하지 않은 가게 내부 시설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므로 변호사를 통해 우리 매장을 고소한다는 소송서류였다. 수 페이지에 달하는 소장(訴狀)에는 요상한 법률용어와 함께 우리 가게가 위반했다는 별의별 시 장애시설 규정 넘버(코드)가 설명과 함께 나열되어 있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장애인의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최소 X천불 및 이미 발생된 변호사 비용과 향후 발생될 변호사 비용을 배상해야 될 것이라는 구절과, 피고인은 30일 안에 법원에 등록하여 재판 절차를 밟지 않으면 자기네들이 무조건 승소한다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피소된 것은 처음이어서 기분이 떨떠름한 가운데 변호를 맡겠다고 접근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보니 마음은 부산해지고 졸지에 무인고도에 표류한 처량한 신세가 된 것 같았다.



미국의 입법기관이 20년 전 좋은 의도로 만들어 놓은 미 장애인 보호법령(American with Disability Act, 일명‘ADA’)은 일부 악덕 변호사의 돈벌이 도구로 도용되어 수많은 소 상인에게 막심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얘기는 가끔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로 넘기곤 했었다. 휠체어 탄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와 생트집을 잡도록 꼬드기기도 하고, 혹은 머리 굴려 자기의 불운을 ‘돈 버는 수단’으로 개발한 일부 빗나간 장애인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돈벌이 하는 변호사들이 드디어 나에게도 접근 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체 장애인의 쇼핑 애로를 이유로 고소한 나의 매장은 아내가 운영하고 있는 몇몇 매장 중에서도 유독 면적이 넓어 지난 십 수 년 휠체어 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이다. 비디오를 점검해보니 과연 그 날짜에 휠체어에 탄 사람과 그 뒤에 두 명이 따라다니며 쇼핑하는 장면이 포착 되었다. 사실 그들은 쇼핑하러 온 게 아니고 두 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시비거리 수집 차 온 것이었겠지만, 비디오 상에서는 휠체어의 동선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소장(訴狀)에는 지체 장애인이 쇼핑하는 동안 휠체어 이동에 불편한 부분이 있어‘힘들고, 불편했으며 거북했다’고 적혀있었다. 동영상에 잠깐 멈칫 한 곳은 있었지만 조심해 지나가거나 차라리 다른 통로로 돌아가면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지점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고소까지 해야 되었을까? 그곳에는 도와 줄 매장 점원도 있었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두 보조원까지 있었는데…… 가게를 들린 목적이 쇼핑이 아닌 그들에게 이런 물음의 정답은 오직 하나. 총 안든 강도에게 ‘위헌성’이라는 묘한 법률용어로 ‘코드’를 변질시키는 고소 만능의 나라 ‘미국’이 정답이 아니겠는가?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 비디오를 보십시오. 이 휠체어 손님은 아무 이상 없이 매장 안을 다니는 장면뿐인데 무엇이 신체부자유자를 위한 시설 기준을 위반했다고 고소를 해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쇼핑몰 자체에서 무슨 조처를 취해 주실 수 없는지요? ”크고 작은 매장이 수백인 대형 쇼핑몰이니 그들 나름의 도움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묻는 우리에게 그들의 대답은 오히려 간단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갖가지 트집을 잡아 변호사와 작당해 돈을 뜯어먹는 소위 장애 군상들의 횡포로 많은 업소들이 피해를 입고 있으며 쇼핑몰 매니지먼트에서는 책임이 없고 도와 줄 변호사도 없습니다. 각 매장 소유주가 그들과 재판에 임하거나 타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 법원은 장애인 쪽의 손을 들어주게 되어 있으니 억울하더라도 적당 선에서 그들과 타협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몇 군데 아는 업소에 전화 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우리도 당했었는데 변호사를 써서 가까스로 타협했어요. 쌩 도둑들이지요. 돈을 뜯어도 참 치사하게 뜯어가는 고급 거지들인데 그 액수가 작은 액수가 아니에요. 글쎄 어떤 곳은 화장실 거울이 너무 높다고 고소하고, 가게의 계산대가 자기들에게 너무 높다고 고소한데요” 그러고 보니 많은 패스트푸드 화장실에 거울이 없는 것이 이해가 가는 터였다. 말을 나누어 본 스몰 비즈니스 주인들이 당한 액수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몇 천불에서 몇 만 불 가까이 피해를 본 모양이었다. 

 생각 끝에 알고 지내는 상법 전문의 후배를 찾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타협하라는 말밖에 없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싸워봤자 판사는 ‘가여운’ 휠체어의 손을 들어주는 게 통례에요”하며 냉소적으로 내뱉은 지인의 말이 귓가를 뱅뱅 돌며 여운을 남기는데 30일 시한은 점점 지나가고 있었다. CCTV 비디오를 본 지인 법무사는 이길 케이스이니 개인적으로 싸워보라 했지만 처음 해보는 법원 서류 준비가 너무 까다로워 같은 교회에 다니는 미국인 변호사 D에게 전화 걸어 상의하기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교류는 없었지만 재향군인 변호인 협회(Veterans Legal Institute)에서 일하는 D 변호사는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대로 나의 말을 경청해주고 고소장을 서면으로 보내주면 살펴보겠노라 했다.


 “미스터 문, 무료로 법원 등록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법원에서 요구하는 서류 등록비용 500불을 보내주면 우선 법원에 등록하지요. 그리고 혹시 전에 매장동선보증서(Certified Access Specialist(CASp)) 발행처로부터 상품 접근 용이도 증서(Access Inspection Certificate(AIC))를 받아 놓은 게 없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받아 놓는 게 좋습니다”

 전화기 저편의 맑은 그의 음성이 나는 너무 고마웠다. 상대방을 이길 수만 있다면 휠체어 변호사에게 ‘강탈당할 돈’은 화가 나도 내 변호사에게 지불할 돈은 아깝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우선 시작해보자는 그의 말에 나는 강한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다. AIC는 가게 내의 통로들이 휠체어 지체장애인을 위한 코드를 위배하지 않고 있다는 증명을 해 주는 증명서인데 수소문 끝에 한 CASp회사를 찾게 되었다. 우연히 그곳에 근무하는 한국인 엔지니어 미스터 박이 접촉되어 우리 매장을 방문, 매장 내 모든 통로의 폭을 재고 매대 진열 및 구조물들의 배치 상황을 일일이 점검한 후, 이틀 후 증명서가 도착했다.


 D 변호사는 모든 양식을 꾸며 법원에 피고인 등록을 해 주었다. “미스터 문, 나도 동의하지만 우리가 이점에 관해 CASp의 의견을 참고해서 상대방과 담판을 하고자 하니 연결 부탁합니다.” 이렇게 해서 D 변호사와 CASp사의 미스터 박 사이에 확인 절차 및 이에 따른 두 변호사간의 공방이 며칠 있은 후, “미스터 문, 고소인 변호사로부터 X천불 내라는 통지가 왔습니다. 내역은 휠체어 장애인의 정신적 피해 금과 고소인 변호사 비용을 합한 금액이라 합니다. 어떻게 생각 하는지요? 내 생각으로는 그들의 요구액이 높은 것 같아 Y천불 수준으로 내리도록 협상 예정입니다.” 저쪽의 협상이 구체적이기 시작하면서 D 변호사 역시 다부지게 대응하는 것이 고마웠지만 서울에서 한 때 유행하던,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 아니라 눈을 뜨고 있는데도 코 베어가는 자들, 그것도 장애인 코드를 온갖 법률용어에 비벼 법원에 고소해 놓고 돈 뜯으려는 ‘고급 거지’를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극히 불쾌했다. 화 나기로 말하면 돈이 얼마 들든 간에 승소해서 저자들이 빈손으로 떠나고 그 곱절을 내 변호사 비용으로 지불해도 속은 시원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고맙습니다. D변호사님. 최선을 다 해 주십시오.” 법정 대결로까지 가면 판례상 휠체어가 유리하고 얼마나 시일을 끌지 모르는 일이며, ‘정신적 피해’를 보는 쪽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나는 어느새 꼬리를 내리는 국산 토종이 되고 말았다.


 “미스터 문, 저쪽과 Z천불에 타협을 보았습니다. 동의하면 보내드리는 서류에 싸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수표를 저쪽 변호사에게 끊어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고소인 의뢰 변호사에 애초 그들이 제시했던 ‘가격’보다 훨씬 작은 액수의 수표를 보낸 후 고소취하 동의서를 받고 한 달 넘게 걸린 휠체어 에피소드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듣기로 그들 변호사는 그 중 지극히 작은 액수만 휠체어 ‘보병’에게 지불하고 보병은 보병대로 열심히 뛰어 ‘앵벌이’ 임무를 다 한다 하니 사는 방법도 여러가지라 하겠다. 그간 두 변호사 사이의 대화와 D 변호사와 나와의 교신은 많았지만 누구 말마따나 법정투쟁으로 이기고 지는 것보다 얼마나 협상을 잘 하느냐가 이런 소송 건에서는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D 변호사의 끈기와 진솔함이 한없이 고마웠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마치 개한테 물린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이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어쩌다 휠체어 탄 사람을 보게 되면 이 일이 연상되어 애꿎은 휠체어로의 편협한 나의 마음가짐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한편 미국의 소위 ‘합법적 냉혈인간들’이 새삼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찌 생각하면 까놓고 날 도와달라 시비 걸던 옛날 한국의 휠체어 군상이 법 절차를 거들먹거리며 떼거지 같은 날강도 짓을 하는 이곳의 파렴치 휠체어 군상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이번 일로 나는 귀한 친구를 얻었고, 아울러 흙탕물을 일어 연못바닥을 어둡게 하는 데는 여러 미꾸라지가 필요 없다는 사실도 보았다.

 “D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보답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애초에 말 했듯이 교우에게 무료 봉사 한 겁니다. 정히 고집하신다면 제가 소속되어 있는 재향 군인회에 기부금을 보내시지요” 나와 아내는 기부도 하면서 동시에 D변호사에게 보답할 방도를 계획 중이나 살 맛 나게 해 준 그 인간성에 말로 표현 못할 감사를 느낀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문병길 

moonbyungk@gmail.com



편집후기

마침 이글을 편집하고 있는 가운데 문병길님으로부터 '장애인 공익소송 한사람이 75건 남발(미주 한국일보 2018.4.20.)'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받았습니다.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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