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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염원을 담은 ‘통일행진곡’초연 그리고 감동! 구순에 이른 ‘배덕윤’작곡가를 만나다

2019년 2월호(제11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3.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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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향한 메세지]

민족의 염원을 담은 ‘통일행진곡’초연 그리고 감동!

구순에 이른 배덕윤작곡가를 만나다


작년(2018) 연말 안양아트센터 관악홀에서 뜻 깊은 송년 음악회가 열렸었지요. 약 20년 전에 작곡된 통일행진곡이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군포시립합창단, 군포시민합창단에 의해 초연된 것입니다. 하나됨의 긍정적 소망이 가득 담긴 힘찬 곡이었지요. 초연을 마친 장윤성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관객들의 시선이 좌석 중간에 멈추니, 연세가 정말 지긋하신 어르신이 일어나셨습니다. 바로 90세를 넘기신 작곡가 ‘배덕윤’ 교수님이었지요! 황해도 출신으로 분단 이후 현재까지 가족의 생사를 모르는 가운데 통일을 염원하면서 이곡을 만드셨는데, 현재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가 있는 군포에 거주하고 계시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나라 음악계 역사의 산증인인 작곡가 배덕윤 교수님의 삶의 발자취를 한 번 따라가 봅시다. 

저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말과 문화를 없애기 위해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신궁에 참배하게 했지요. 징용, 징병, 위안부로 젊은 남녀들을 끌고 가는 현실을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나이에 이르기 전인 저는 소학교 때 학교에서 우리나라 말을 썼다고 일본선생님에게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운동장 한 모퉁이에서 방공호를 파던 중, 일본천황의‘무조건 항복’이라는 중대성명을 들으려고 모였던 기억이 나네요.

해방(1945)과 연이은 한국동란(1950)이라는 매우 어려운 상황을 지나면서도 제가 교육을 받으며 음악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당시에도 깨어 계셨던 저희 아버님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황해도에는 기독교인이 참 많았고 아버님은 일제 강점기시절에도 교회 장로이셨지요. 포츠담 선언과 소련군이 진주한 이후 북한은 점차 공산화 되어갔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9남매 중 첫째 아들인 저를 제대로 교육시키려고 서울에 있는 이모집에 보내야겠다 생각하셨고 나룻배에 태워 ‘해주’까지 배웅해주셨습니다. 홀로 남겨진 저는 38선을 넘어 서울로 왔는데 그 때 이후 가족 중에서 저 혼자 살아남게 되었지요. 남한에 온 고향사람들을 통해 들은 것은 공산당이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죽일 때에 모두 다 희생당했을 것이라는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저는 공부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또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경복중학교 다닐 때 성악가이자 음악을 가르치셨던 이동일 선생님의 소개로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며 노래를 배우다가, “넌 노래를 잘하니 음대 가는 게 어떠냐?”는 선생님의 권면을 듣게 되었지요. 그렇게 해서 서울음대에 들어가 공부하던 중, 1950년에 6.25가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겨우 졸업했습니다. 그 후 7년 동안은 배화여중과 숙명여고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쟁 통에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것이 늘 걸림이 되어서, 1962년 드디어 결심을 하고 미국 가는 여비만 모아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국의 New England Conservatory of Music를 다니면서, 성악사와 합창지휘 석사학위 두 개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지요. 그 후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서울합창아카데미라는 학원도 운영했습니다.   

이번에 초연된 통일행진곡은 사실 일찍 작곡된 곡입니다. 김대중 대통령(2000년 경)이 김정일을 만나며 북한과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던 시절이었지요. 음악인으로서 한 평생을 살아왔지만 고향을 이북에 두고 있는 실향민이라면 누구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가졌기에 저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결심을 하고 온 국민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통일행진곡을 작곡하게 된 거지요. 이 곡을 다시 오케스트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해서 드디어 2018년 12월 28일 초연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저는 구순의 나이에도 작곡할 때의 깊은 감동이 되살아나는 시간이었지요. 더욱이 가사가 스크린에 띄워져 관객들이 모두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몽골, 중국, 일본 등 외세의 침입을 받고, 속국처럼 살아 왔지.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로 떳떳하게 살았으면 하는 게 내 희망이야!”라고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면서, 그 마음을 통일행진곡에 담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작곡가 배덕윤 교수님과의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띵동’하며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하버드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따님이 교수님과 사모님만 계시는 한국을 방문한 거였지요. 조용한 은퇴의 삶을 살고 계신 두 분에게 우리의 방문과 따님의 방문으로 온기가 피어나는 오후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집을 나섰습니다. 힘차고 긍정적이고 한민족의 소망이 가득담긴 통일행진곡이 불려지고 알려져서 21세기에는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겠다는 염원을 온 국민들이 새롭게 가지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관현악 반주 악보가 필요하신분은 031-393-3185로 연락 하시면 됩니다. 판권은 배덕윤 작곡가에게 있지만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편집부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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