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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대장, 좌충우돌 ‘골목 탐색’하다

2019년 3월호(제11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4. 14.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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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문화 탐방기 1]

인천 골목대장,  좌충우돌 ‘골목 탐색’하다

 3월호부터 독자들을 위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골목문화와 그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인천골목문화지킴이’대표 이성진 선생의 글을 격월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골목은 뫼비우스의 띠

 2018년 11월 16일 방송된 tvN 알뜰신잡 시즌 3 ‘부산’편에서 건축가 김진애는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장면을 통해 골목의 미학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 중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있습니다. 박중훈과 안성기가 산등성이 집 주변에서 쫓고 쫓기다가 딱 만나는 장면은 마치 골목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나는 장면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이명세 감독이 정말 천재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실제 이 장면의 촬영지는 부산이 아니라 인천입니다. 속칭 ‘똥고개’로 알려진 인천 동구 송림 6동 달동네에서 촬영한 것이죠. 범인 장성민(안성기)의 애인 김주연(최지우) 집이 송림동 시영아파트였습니다. 그래서 우형사(박중훈)와 김형사(장동건) 두 형사는 잠복근무를 하다가 범인이 찾아오는 것을 발견하고 체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범인은 송림동 철탑 주변을 거쳐 천광교회로 연결되는 골목으로 도망칩니다. 박중훈은 범인을 추적하지만 미로인 골목에서 놓치게 되죠. 그렇지만 미로인 골목은 하나로 통하기도 해 범인과 정면으로 마주 칩니다. 그래서 건축가 김진애는 골목은 하나로 연결되는 길이라는 걸 발견하고‘뫼비우스의 띠’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장면을 통해 이명세 감독이 골목의 속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영화에 담아낸 연출력을 보고 그를 천재라고 극찬한 것입니다.
 
 영화 크랭크 인(영화촬영을 처음 시작하는 것)을 1년여 앞두고 이명세 감독이 인천서부경찰서를 찾았습니다. 당시 영화 <형사수첩>(가제)의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었던 그는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형사들과 함께 생활해보고 싶다는 뜻을 경찰서에 전달했고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이명세 감독은 한 달간 강력계 형사들과 함께 범인 검거 현장을 다녔다고 합니다. 여관방에 묵고 있는 범인을 이명세 감독의 기지로 쉽게 검거할 수 있었다는 후일담도 있습니다. 그래서 범인의 애인 집(시영아파트)도 강력계 형사들과 같이 3일간 잠복근무했던 실제 현장인 동일한 공간을 물색해 촬영한 것이라고 하죠.
 
 그렇다면 건축가 김진애가 이명세 영화감독을 천재라고 극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답을 찾으려면 바로‘골목의 미학’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달동네 골목은 산등성이를 정점으로 여러 갈래 골목에서 올라갑니다. 산등성이로 향해 가는 골목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정도로 좁고, 오징어 발처럼 요리조리 갈라져 있습니다. 잘못 들어가면 헤매기도 하고, 돌고 돌아 헤매고 나오면 한 지점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만나는 지점이 우형사와 범인 장성민이 마주 치는 곳이었죠. 얽히고 얽혀 있는 미로지만 반드시 한 지점에서 만날 뿐 아니라 미로인 골목은 복잡하지만 하나로 관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골목은 결국 달동네 중턱이나 산등성이에서 하나로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골목은 왜 이런 형태로 이루어질까요? 골목은 사람의 신체구조와 비슷합니다. 특히 핏줄과 같습니다. 심장에서 품어내는 피는 핏줄을 통해 온 몸에 퍼지고 다시 핏줄을 통해 심장으로 모입니다. 그 핏줄은 직선처럼 곧게 뻗어 있지 않고 곡선처럼 굽어져 있습니다. 드라마 <뉴하트>의 수술하는 장면을 보면 심장에서 피가 솟구쳐 얼굴에 묻습니다. 혈압이 무척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죠. 핏줄이 직선처럼 곧게 퍼져 있으면 그냥 터져 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혈압을 완충시키기 위해 핏줄은 굽어져 있고 그래서 온몸으로 따뜻한 피가 퍼져 온기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골목도 핏줄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일단 골목은 직선으로 되어 있지 않고 곡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좀 넓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금새 좁은 골목으로 갈라지고, 그래서 골목을 걷게 되면 평안과 온기를 느끼게 됩니다. 사람 냄새를 맡게 된다고 말하는 것도 이에 연유합니다. 핏줄은 여럿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듯이 골목도 마찬가지인 것이죠. 이런 속성 때문에 우형사는 골목 추격전에서 범인 장성민을 놓치지만 다시 마주친 것입니다. 이게 골목의 미학인 것이죠.


 
골목과 단절된 ‘골목식당’

 SBS 인기 프로그램 <골목식당> 은 사람이 떠나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골목 안에 있는 식당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다시 많은 사람들이 오게 하여 그것으로 골목식당이 살아나고, 골목전체가 살아가게 하는 프로그램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가 우선시되고 있기에 골목은 없고 식당만 있습니다. 식당만 살아나면 골목 전체가 살아난다는 일원론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죠. 외식산업의 귀재가 출연해 선정 식당의 메뉴를 맛보고, 이를 평가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오게끔 하고, 그가 극찬하면 방송 이후 해당 식당은 사람들이 몰려와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됩니다. 그러나 무작정 새벽부터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을 보며 성공했다라는 자랑보다는 골목의 서사(narrative) 또는 스토리텔링을 알리고 골목여행을 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골목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도 듣고, 그들을 통해 볼거리도 찾도록 해야 합니다. 골목은 시간의 겹들이 쌓여 이루어진 삶의 공간으로 골목식당처럼 단시간 내 무엇인가를 만들 수 없는 삶의 시간들이 그 안에 축적되어 있습니다. 결코 짧은 시간 내에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없는 한계를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골목이라는 공간을 이용한 자본의 투자는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간 자체가 자본이기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고 건물주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임대료를 인상할 것입니다. 그러면 세입자는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골목’이 있고, ‘식당’도 있는 ‘골목식당’이 되어야 합니다.

이성진
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duruhana@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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