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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온통 ‘빵’ 속에 있어요! ‘여섯시:오븐’ 롯데 잠실 총괄매니저 이경화를 만나다

2019년 3월호(제11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4. 1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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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저는 지금 온통 ‘빵’속에 있어요! 

 ‘여섯시:오븐’ 롯데 잠실 총괄매니저 이경화를 만나다

 

빵쟁이가 되기까지

 20대,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패션 디자이너로서 살았습니다. 27세에 부산에서 제 이름을 건 샵을 내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흔한 드라마 주인공처럼 결혼을 했지요. 패션으로 유학을 준비하다 남편을 만났고 결혼이 평안을 주고 안식을 줄줄 알았습니다.(웃음) 그러다 이어진 30대는 육아로 점철되었고 딸 둘을 마치 디자인 일을 하는 것처럼 키웠습니다. 아이들에게 몰입하여 수영 끝나면 발레, 발레 끝나면 미술학원, 아이들 옷도 내 손으로 만들고 심지어 보육교사자격증까지 따면서 말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거나 뭘 배우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 중에도 이유식 사업을 해볼까? 쇼핑호스트를 해볼까? 웨딩디자인을 한 경험으로 웨딩 플래너를 할까? 보육교사자격증이 있으니 어린이집을 해볼까? 줄기차게 계획을 세웠지만 남편의 반대로 매번 포기해야 했습니다. 제가 일을 하면 어떻게 몰입한다는 것을 남편은 잘 알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육아에 전념하길 바랬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저의 성향은 아버지에게서 교육받으며 자란 영향 때문이었지요. 정치가이신 아버지는 당신 뒤를 이어가는 삶을 살도록 저를 키우셨는데, 제가 패션공부를 한다고 하니 엄청 실망하셨죠. “난 네가 재봉틀 박고 있는 꼴은 못 본다”라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 쓰고 맞아가면서까지 패션 공부를 했습니다. 재미난 것은 중학교 때 신춘문예에 나가기 위해 방에 틀어 박혀 글만 쓰다 너무 빨리 좌절을 경험한 후에, 제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며 사는 게 뭘까 생각한 게 옷이었다는 겁니다. 어쨌든 아이를 키우며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고 프리랜서로도 일을 했지만, 어느덧 도달한 40대에 디자이너로 취업하려는 저는 흔히 말하는 ‘경단녀’가 되어있었지요. 좌절하던 저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저를 아셨던 병행수입업체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백화점에 명품 매장을 내려고 하는데 매니저를 해주지 않겠느냐고요. “아무 경력이 없는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질문하니 “나는 물건 잘 파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트랜드를 그 누구보다 잘 읽을 줄 알고 고객에게 잘 설명해주며 권해줄 것 같다. 나는 당신의 이런 점을 원한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유롭게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은 있지만, 하루 종일 12시간씩 하이힐을 신고 서서 일해 본 경험이 없었지만 저는 일단 하겠다고 했습니다. 만2년 정도 근무했는데 저에게는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현재 ‘여섯시 오븐’의 총괄매니저역할을 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제가 빵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어요. 그저 뭘 만드는게 너무 좋았지요. 가끔 엄마들과 포트락 파티를 할 때 한 가지씩 음식들을 해 가지고 오는데, 제가 해온 음식에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떻게 이렇게 했느냐며, 모양이 남다르다고요. 책을 보고는 했지만, 늘 창작의 욕구가 있는 제가 나름 창의성 있게 표현을 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전 워낙 빵을 좋아했어요. 프랑스로 유학 간다고 했을 때 다들 “넌 성공할 꺼야! 왜냐 바게뜨가 질리지 않을 거니까!”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뭘 해봐야 겠다 하고 꽃힌 게 ‘타르트’였어요. 바로 이 타르트가 저를 빵의 세계로 들어오게 한 안내자였던 셈입니다.

명장 곽지원 교수님과의 만남

 곽지원 교수님을 만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였지요. 양평에 과자공방을 오픈했는데 일본 선생님을 모셔 와 수업을 하겠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친구에게 “우리 거기에 참여해보자”며 가게 되었죠. 교수님과 타르트를 만들면서 끊임없이 질문해 대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같이 간 친구를 먼저 보내고 저더러 남으라더군요. 타르트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해보라 하시길래 제가 만든 타르트에 대해 말씀을 해드렸죠. 그랬더니 “참, 신기하네~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지!”하시더라고요. 며칠이 지나 전화가 왔어요.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뵙고 여러 이야기를 하신 후에 “빵을 해보지 않겠냐?”고 하시기에 “넵 해보겠습니다”라고 답했지요. 

빵쟁이로서 첫걸음

 처음 두 달 동안은 빵 판매만 했는데 처음부터 딱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앞치마’가 맘에 안 드는 겁니다. “아! 저기 왜 이런 앞치마를 입고 일을 하시나요? 유니폼을 바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되게 당황해하시더라고요. 저는 매일 다른 앞치마를 입고 두건을 쓰고 두 달을 공방에서 일을 했는데, 소문이 나더라고요! “빵집 주인이 바뀌었다고!”(웃음) 
 새벽 4시부터 공방에 나가 교수님과 같이 빵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반죽을 가르쳐주지 않는 겁니다. ‘왜 나는 저기에 못 들어가는 거지?’ 그래서 하루는 “교수님! 저에게 빵 해보겠냐 해놓고서 저는 왜 반죽하는 것을 안 가르쳐 주시는 건가요?”하니 “저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지켜보게만 하시던 교수님이 반죽하는 것을 한두 번 보여주시더니, 학생들을 못 오게 하고 저에게 반죽하라고 하며 나가셨어요. 처음 시집 온 새색시에게 많은 제사음식을 혼자서 해놓으라는 것 같았죠. 저 혼자 장시간 반죽을 했어요. 왜냐? 실수하면 안 되니까!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아, 교수님이 나를 강하게 키우시는구나’교수님은 점차 저에게 반죽의 감을 잡도록 가르쳐주셨는데 “자! 여기 레시피는 있지만, 다른 야채들이 각각 들어갈 때는 야채마다 물성이 달라 배합률을 정할 수 없어요. 이럴 때는 이런 느낌 이어야 해요!” 삼봉빵(봉우리가 3개) 토마토, 시금치, 단호박의 반죽을 다 따로 해서 빵이 나왔을 때 찌그러지지 않고 삼봉이 다 똑같이 나온다면 반죽의 감을 익힌 셈이 되는 겁니다. 삼봉이 똑같이 나오면 엄청 기분이 좋고, 찌그러지면 하루 종일 슬펐지요. 하루는 교수님이 시골 가실 일이 생겼는데 혼자 빵을 만들고 파는 것까지 다 해야 했어요. 정말 열심히 해서 임무완성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 일하러 왔을 때 사모님은 “할 수 있겠어요? 힘든 일 안해 봤을 텐데...”이렇게 시작한 일이 한 달, 3개월, ... 지금은 벌써 6년차가 되었네요.  

빵쟁이의 휴식

 양평에 있는 빵집은 정말 조그마해요! 동화책에 나오는 것 같아서 다들 들어와서 보고 “어머 이렇게 작았나?”하시죠. 사람 3명 들어가면 꽉 차요. 새벽 4시부터 빵을 만들고 잠시 쉬어가는 타임에 차나 커피 한 잔 마시고 창문을 통해 밖을 보면 동이 뿌옇게 터 올라요. 그리고 어김없이 초록색 쓰레기 차가 지나가죠. 이때 쪽문을 열고 바람을 쐬며 온 골목이 빵 냄새로 진동하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아주 좋아요! 양평 빵 공방이나 롯데에서 최근에 개점한 ‘여섯시:오븐’에서 만드는 빵에는 버터와 계란, 설탕이 들어가지 않아 정말 구수한 빵 냄새가 나거든요. 그리고 빵의 촉감이 참 좋습니다. 저는 촉각과 냄새에 예민해서, 옷을 할 때도 원단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몸에 닿는 촉각 때문이었죠. 빵을 만졌을 때의 촉감과 냄새도 저를 굉장히 행복하게 해줘요.   

스승인 곽지원 교수님의 빵의 철학

 저의 스승인 곽지원 교수님은 바위 같은 분이시죠. 빵 공방뿐 아니라 아카데미를 통해 제자들을 키워내십니다. 제자들에게 “빵을 만들어서 부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매일 이 일을 하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죠. 아카데미에는 변호사, 아나운서, 농부 등 정말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분들이 있어요. 교수님의 잘 나가갔던 친구들은 다 정년퇴직을 했는데, 당신은 정말 행복하시게도 매일(월요일 하루 쉬고) 너무 바쁘게 일을 하시죠. 교수님이 가지고 있는 빵의 철학은 ‘늘 먹어도 되는 건강한 빵, 다른 빵과 비교해서 어떻다 라기 보다 내 빵을 만든다’는 겁니다. “빵은 손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다리로 만드는 거다. 12시간 이상 서 있을 수 있는 허리와 다리가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하시지요. 나만의 빵을 만들 때 사람들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있고, 이것으로 많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좋은 먹거리가 되니 무엇보다 자신에게 당당한 빵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곽지원 교수님을 소개하자면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30세에 막연히 뭔가를 배워야겠다며 일본으로 가셨어요. 일본에서 이것 저것을 하며 선택한 것이 빵이었죠. 동경에서 과일가게 노점을 하고 그 돈으로 동경 제과학교의 수업료를 감당하며 8년 동안 몰입하여 공부하고 수석으로 졸업하셨어요. 학원이 신주쿠에 있는데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으셨지요. 그 때에 작성한 노트를 볼 때에 감동이 짠하게 밀려왔습니다. 강의 내용을 다 사진을 찍어 저장을 하고 빠짐없이 기록하면서 ‘난 저 일본인들에게 지지 않겠다’생각하고 치열하게 공부하셨기 때문이지요. 과일노점을 하며 간혹 쫓겨 나기도 했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가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돌아와서도 좀 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또 바로 프랑스로 가셨어요. 프랑스에서 돈을 받지 않고 2년 동안 빵 만드는 것을 배우셨는데, 언어 소통이 잘 되지 않아 구박을 받기도 했지만 일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우셨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빵집을 오픈한 것이 아니라 한국 상황을 알기 위해 나폴레옹 제과에서 총책임자로 4년 반 정도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이후 서울에서 가게를 오픈하고 10년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힘들게 배웠는데 똑같은 고만고만한 동네빵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다 정리하고 양수리로 들어오셨어요. 제가 빵을 배우기 시작할 때 이렇게 유명한 분 인줄 몰랐어요.(웃음)

아카데미의 시작

 제가 양평에 있는 빵 공방에서 일할 때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천연발효빵을 배우고 싶다’, ‘빵가게를 열고 싶다’등의 요구에 교수님은 일일이 다 설명해 주셨죠. 그것을 옆에서 보다가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이런 만남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말고, 저분들에게 빵을 가르쳐주면 어떨까요?” 이렇게 해서 1기를 시작으로 지금 11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올해 안에 이런 역사를 담은 ‘아카데미 스토리’라는 책을 써 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희들에게‘1기의 전설’이라고 통하는, 장흥, 남원, 청도, 아산 등지에서 올라오신 분들이 빵을 배우며 생긴 여러 인생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거든요. 아카데미는 3개월이 지나면 방학을 하고 다시 이어져 총 6개월로 마무리됩니다. 한 번은 제가 먼저 학생들 가정 방문을 가자고 제안하고 지방 네 곳을 교수님과 순회하였지요. 돌면서 이분들의 삶을 보고 생각한 것은 ‘우리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허투루 가르치지 않았구나’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우리가 한 사람의 다음 인생을 준비시켜주고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요. 물론 강의료는 받지만, ‘마음을 다주며 가르치자’라며 돌아왔지요. 무엇보다 1기에서 11기까지 선후배 사이가 돈독한 게 저희 아카데미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사실 아카데미가 생기면서 제일 큰 수혜자는 바로 저인 것 같습니다. 제과와 제빵을 3년 정도 교수님께 배우고 함께 가르치면서 빵을 더 확실하게 체득하게 되었고, 이어서 실무경험으로 롯데의 ‘여섯시:오븐’을 맡게 된 것이죠.“이제 너는 나가서 뭐든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야”라는 말씀을 들으면서요. 교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풀어낸다면, 엄마와 주부를 넘어 또 옷 만들던 사람을 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저의 두 번째 직업이죠.


‘여섯시: 오븐’ 

 ‘여섯시:오븐’은 롯데와 명인이 함께하는 협업매장입니다. 그래서 롯데에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여섯시:오븐’은 천연발효종을 사용하여 식사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백화점 빵이 다 달달한 빵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빵을 만드는 집도 있다는 차별성을 드러내는 거지요. 밀가루는 우리밀을 주력으로 프랑스밀, 호주 유기농밀을 블렌딩해서 사용하고 설탕, 버터, 계란이 들어가지 않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달라졌어!

 ‘여섯시:오븐’에 총괄매니저로 일을 시작하면서 전 옷이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유니폼에 앞치마 맨 채로 매일 출근했다가 앞치마 두른 채로 퇴근하기 때문입니다. 제 친한 친구가 “네가 옷 입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빵을 좋아할 줄 몰랐다”고 하더군요. 늘 유니폼에 만 원 짜리 가방을 메고, 백화점을 돌아다니고, 집에 가거든요.(웃음) 저희 아이들이 그래요. “엄마! 빵 공방에 있을 때만 해도 전시도 많이 보러가고, 옷도 사기도 했는데... 엄마가 달라졌어!” 첫째 아이가 올해로 대학 3학년인데 작년 크리스마스 때 저희 백화점 행사 매장에서 1주일동안 아르바이트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이 아이가 아침에 저랑 똑같이 앞치마 입고 출근하고, 앞치마 두르고 퇴근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어느 날 남편이 “당신 거기 백화점이니까 이러저러한 장을 봐와”그 말을 듣던 큰 딸이 하는 말 “아빠! 엄마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하더군요. 그 한마디로 상황종료였습니다. 저는 지금 온통 빵 속에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

 지금은 사이버대학 4학년에 재학중인데 조리영양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입니다. 학문과 기술을 겸비한 사람으로 준비하려고요. 저에게 사명감과 소명이 생기게 한 것이 아카데미였고, 저의 미래와 관계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빵과 건강한 먹거리’로 세상에 손짓하는, 그 손짓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얼마 전 아버지가 그 동안 딸을 잊으려고 했는데, 이젠 화해하겠다며 “네 일하는 것은 좋은데 네 꼴이 말이 아니다”며 하루에 네 번을 매장에 오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대로 저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무조건 열심히’가 아니라 ‘뭔가를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실현시켜가며 스승도 당황하게 만드는 ’제자 빵쟁이 이경화 매니저에게는 청년의 패기와 50대의 넉넉함이 함께 공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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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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