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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로 달려가는, 너무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aristotelic) 서양문명

2019년 3월호(제11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4.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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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20] 

내리막길로 달려가는,
너무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서양문명 

aristotelic   

 

 현재 한국의 미디어들의 제작 기준은 중학교 졸업생이지만, ‘행복한 동네문화이야기’는 조금 높여 고등학교 졸업생으로 기준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 문화의 황혼에서과 새문화의 여명으로]는 더 높여 한국에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졸업생으로 삼았습니다. 이 분들이 조금만 끈질기고 사려깊게 읽어주시고, 또 만나는 분들과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사회에 건강한 여론을 형성하는 주역이 되시기를 바라는 칼럼입니다.


 지금 한국인들이 누리는 거의 대부분의 삶은 서양문명의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전기, 수도, 아파트, 거리구조.... 끊임없이 나열할 수 있으며 심지어 최근 한국에 각광받는 ‘애견산업’도 그렇습니다. 애견이라는 관점은 서양문명의 발생과정인 귀족들의 삶을 서민들이 좇아하던 데서 생겨난 것입니다. 서양의 돈 많은 귀족들이 사냥을 위해 키우며 개 자체를 좋아하는 버릇이 생겼고, 이런 귀족들이 성에서 사는 부러운 모습을 서민들이 따라하면서 애견문화가 서민화 되었고, 다시 이것이 한국에까지 온 것이지요.

 
베이징 교통경찰관 평균기대수명 42세!

 그런데 우리의 삶이 서양화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 내가 편하면 되고 우리가 좋으면 그만인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편하고 좋게 생각하는 서양문화, 문명이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문제들은 서양사람들이 해결하는 방식을 따르면 되지 않느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서양을 그대로 베꼈고, 또 한국의 독립과 발전에 관여한 미국의 삶을 동경했고 미국의 시민권을 따는 것이 이상이 되었던 바로, 그 서양인들이 지금 자신들의 문명이 만든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서 두 손을 들 지경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서양인이 아니더라도 지구의 80억 인구 누구나 당면해 어떻게 해결할 것을 알지 못하는, 19세기부터 서양인들이 미치도록 좋아한 20세기에 각광을 일으킨 석유화학의 결과로 만들어진 비닐과 플라스틱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지 않나요? 21세기 내에 해양자원뿐만 아니라 곤충도 전멸할 것이며, 또 J. 다이아몬드([나와 내일], 2014, 98)의, 매연이 지독한 중국 베이징의 교통경찰의 평균기대수명은 42세라는, 보고를 듣고도 겁나지 않나요? 아니면 망연자실해 있나요?
 
 과연 그들, 서양인들이 잘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이렇게 묻는 우리는 도대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그들이 보기에도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동양인에 불과할까요? 동양인이 서양에 유학을 할 때에 지도교수로부터 받는 정말 황당한 질문은 ‘이 학위에 도전하는 너의 이론이 무엇인가?’입니다.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동양인 제자를 서양인 스승은 또 얼마나 황당해 할까요? ‘저는 단지 선생님의 생각을 잘 배워, 가서 전파하려고 왔을 뿐입니다. ’동·서양의 문화, 문명적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황당한 동문서답아닌가요? 서양인들은 제자가 비록 교수에게 의존한다고 할지라도 교수의 것을 발전시키고 넘어설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것을 정면 도전하는 것까지 받아들이면서도 시간이 가면서 어떤 발전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삶이고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동양인들에게는 선생의 이야기를 그대로 간직했다가 잘 전달하는 것이 제자의 사명이라고 여기니, 사실상 역사의 발전 같은 것은 염두에 없는 셈입니다. 단지 외국어 잘하고 똑똑하게 교수의 이론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 될 줄 알아서 유학을 감행했던 동양인을 잘 헤아리는 자비로운 서양스승들의 도움으로 학위를 구걸하듯이 얻어올 것인가, 아니면 이런 근본적인 문화의 차이에 깊이 충격을 받은 후에 절치부심하여 극복할 것인가는 유학하는 본인의 심정만이 잘 알 뿐입니다. 동양인들에게 역사는 사실상 과거의 무한반복 같은 것일 뿐입니다. 물론 더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이런 태도 뒤에 각 지역의 종교적 태도가 선명하게 존재합니다. 즉 서양의 절대종교(기독교, 유대교)적 일직선적 시간관은 무언가 진행, 발전, 충만 혹은 퇴보, 파멸로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한반도에서는 신라, 고려, 조선의 1500년 동안 내리 섬겼던 동양의 상대종교(유교, 불교)가 가진 시간관은 만상은 영겁반복의 결과일 뿐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저는 종교까지 가지않고 그 직전인 철학에 멈추어서 우리가 헤아려보아야 할 서양문화/문명의 실체를 다루고자 합니다.
 

이안 브레머 Ian Bremmer의 「우리 대 그들, 2019」「Us vs. Them, 2018」

 최근에 약간은 부정적 역사관을 가졌지만 눈을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하고 예리하게 관찰하여 설득력있게 주장하는 것을 반박하기 매우 까다로운 사람인, 이언 브레머(Ian Bremmer)가 2018년에 쓴, NYT나 Amazon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우리 대 그들」「Us vs. Them」이 소개하는 서양문명에 대한 비판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억만장자 40명이 80억 인구 전체의 부의 50%를 차지함.
2)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반감의 폭증과, 이를 이용하는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정치의 실세가 됨.
3) 청교도적 정신이 빠져나간 미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실패하거나 포기함.
4) ‘내가 좋아하는 것’만 몰입하게 만들어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몰이해와 분열을 심화시키는 소셜미디어의 깊은 늪에 빠져드는 현대인
5) AI와 로봇공학의 발달로 평범한 노동력 가진 사람들이 불필요하여 폐기될 위기
 
 그렇지만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분석을 거쳐서 부정적, 비관적 견해를 가지는 사람들의 대체적 성향은 비판에는 능하지만 해결책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고 순진하다는 겁니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거나, 아이들에게 변화의 소망을 걸어서 사회적 관계의 첫걸음을 떼는 일이 스마트폰 앱을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서양문명에 철저하게 절망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거기에 소망을 거는 서양인들이 끊임없이 돌아가곤 하는 소위 ‘사회계약’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현하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이 주장은 근본적으로 18세기의 루소가 말한 ‘사회계약’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루소가 그런 주장을 한 것은, 그가 종교개혁의 후손들이나 17세기의 청교도들이 강조하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계약)사상이 기반이 되던 스위스의 칼빈주의 사회에서 자라났기 때문인데, 정작 그가 말하는 것은 거기서‘신(God)’을 살짝 뺀 ‘신 없는 인간끼리의 사회계약’일 뿐입니다. 늑대 같은 욕망덩어리인 인간들 사이에 그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걸까요? 루소를 따르거나 그의 아이디어를 빌려서 사상을 펴내고 실행에 옮긴, 지난 250년의 서양이 주도한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사회계약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확립해야 할 것은 ‘각 인간의 개인화’, 즉 ‘(절대자 앞에) 절대적 자유와 책임을 진 존재로서의 인간’입니다. 그런데 절대신을 버려가는 서양인을 차치하고서라도, 절대신 대신에 동양의 칼 가진 자(일본)나 전제군주나 황제를 절대자 대하듯 머리 숙여 절하며 수천 년을 살아온 동양인들의 내면에 이런 인간상이 하루 아침에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 지나치게‘아리스토텔레스적인’aristotelic 서양문화

 이참에 우리는 이언 브레머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서양인들이 전제하고 서 있는, 불변하다고 생각하는 서양적 근본인 그 철학적 전제를 한 번 흔들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바로 내리막길로 내달리는 현대 서양문화가 너무나 지나치게 ‘아리스토텔레스적’aristotelic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 때문에 걷잡을 길이 없이 각자가 자신이 선택한 것만 분리, 분석하는 내리막길로 달리기만 하다가 소멸하거나 죽을 뿐, 도대체 책임지고 종합, 정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식물원에 갔을 때에 처음에 전체 조감도부터 본 후에 조금씩 세부적인 것을 찾아들어가야 할 것인데, 서양문화는 처음부터 세부를 찾아들어갔으며 아예 조감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 꼴이었고, 분리와 분석의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겁니다. 분리, 분석 후에 종합한다는 변명들을 합니다만, 그것은 개미가 큰 코끼리와 같은 우주를 낫낫이 쪼개어 놓고 나중에 서로 본드로 붙여버리는 꼴과 같은 것이 된 겁니다.
 ‘지나치게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는 말은 서양의 두 철학적 전통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중에서 후자에 아주 많이 경도되었다는 뜻입니다. 흔히 서양철학사 2500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라는 주제에 대한 변주’Variations on the themes of Plato & Aristotle라고 말하곤 하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서양적 수용의 역사

 1) 아테네와 같은 만 명 단위 시민이 중심이 된 도시police의 삶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사고했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알렉산더의 세계재패라는 뜻밖의 현실이 이루어짐과 함께 심각한 도전을 받으면서 헬레니즘 시대(332BC)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서구의 근간이 되기 전(313AD 기독교 공인, 325AD 기독교 국교화)까지 600년동안 고대서양철학사에서 중요한 세 가지 사조는, 신을 인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세상에 속해있으나 초탈한 삶을 주장하는 스토아철학, 그 정반대로 개인의 행복에 몰입하는 에피큐로스 철학,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였습니다. 그런데 신플라톤주의가 거대한 제국화 된 정치사회적 현실이 만연한 헬레니즘 시대에 살아남았던 것은 그래도 세상의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세계를 초월한 이데아의 세계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물질주의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 백과전서적 철학이 근근히 살아남았던 것은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곳에 엄청난 도서를 모았던 도서관 구석에서였을 뿐입니다.
 
 2) 이런 중에 헬레니즘 시대의 신플라톤주의가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와 일치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원론입니다. (신)플라톤주의가 가진 이데아와 현실의 이원론이 있었다면, 기독교는 세상과 천국의 이원론을 가진 겁니다. 유명한 고대 기독교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도성」은 바로 이런 이원론에 근거한 것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좀 더 들어가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이해하자면, 그런 세계관이 자신만의 성경해석에 근거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보복할 것을 허용한 구약(출애굽기 21:24)에 비해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44)라고 말하는 상반된 것을 조화시키는 간단한 방법이 이원론적 해석을 하는 겁니다. 구약을 굳게 붙드는 유대인들은 독일과 유럽인들이 자신들에게 행한 악들을 결코 잊지 않고 보복할 것을 예상할 수 있지만, 이들과 구분되어야 하는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해석은 세상의 방식(구약적)과 천국의 방식(신약적)을 나누는 이원론에 호소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세계에 이룰 시대의 상황(경륜)에 맞게 계시를 주신다는 생각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경직된 해석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에 신플라톤주의를 이용했지만, 역으로 그것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역사가 중세기와 지금 현재의 로마교의 해석인 겁니다. 3·1운동 당시에 천주교(로마교)가 정종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모든 교인들이 참여하지 않도록 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다양한 세계(물질계와 영계) 모두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살리지 못한 거지요. 국가와 상인들은 악랄한 식민주의와 돈벌이를 한 죄악을 용서받으려면, 교회에 헌금하고 성당을 지어주면 되는 식의 구조를 로마교는 만든 겁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신약과 구약의 성경 전체로 말하자면, 모든 형태의 이원론은 그 자체로 이단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과 함께 헬레니즘 시대를 주도하던 신플라톤주의가 서양의 중세를 내내 지배하였으며, 그 눈에 띄는 결과물들이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100년씩 걸쳐서 지은 대성당들인 겁니다. 이 세상에 있지만 철저히 천국을 지향한다는 거지요. 이런 경향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의 책 자체가 서양에서 없어질 정도로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백과전서적 철학은 이슬람지역에 가서 꽃을 피웠고, 우리가 지금 알고 쓰고 있는 ‘알고리즘’과 같은 수학적 용어가 그들 속에서 만들어졌을 정도였습니다. 십자군운동의 결과로 이슬람의 동양과 접촉을 하던 서양인들은 그들이 이룬 학문적 업적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무슬림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번역했던 것들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었습니다. 이제 서양인들은 아랍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서양의 언어인 라틴어로 재번역해서 서양에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시작된 것이 14~15세기의 르네상스라는 사실은 이제 불변하는 역사의 진실이 되었습니다.
 
 3) 15세기 이후의 서양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천문학, 뉴턴의 물리학, 화학 등이 15~16세기 이후에 발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인데, 이것이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더 넓게 더 깊게 전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합니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알렉산더 대왕은 전투로 미지의 동양을 점령해 나가는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발견한, 그리스에서 보지 못한 동식물, 인간의 장식과 문화들을 정리해서, 스승을 존경하는 의미로 아테네에 있는 스승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백과전서적인 것이었고 그것이 21세기에 이르는 서양문화의 확고한 경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알렉산더는 드넓은 세상에 나가면서 스승이 가진 그리스 우월주의의 한계를 보고 말았습니다. 자신들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기는 그리스인들이, ‘바바리안’즉 야만인이라고 욕하던 동양인들이 구석구석에서 이룬 삶에서 정말 좋은 것이 있으며, 어떤 것은 그리스보다 우월한 것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한계는 인간이 그것도 그리스인들이 경험한 한계 안에서 머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그리스 장군과 페르샤의 공주나 귀족의 딸들과의 결혼을 주선하는, 그리스인들이 보기에는 이단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현대문명의 특징 : 지나칠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적! 

 다시 지나치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서양문명이라는 주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1) 먼저 스승인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어떻게 보았으며, 둘이 동시에 살아있다면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을지 가상적으로 추적해 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밑에서 오랫동안 배웠습니다. 스승 플라톤은 늘 구체적 사물들을 주워 모으고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제3자로서 관찰하고 여러 가지 요소들을 정리해나가는 이 제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며 결론적으로 어리석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변화무쌍한 그 어떤 것도 본질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데아’와 ‘현상’을 나눈 후에 현상은 이데아에서 유출된다는 구조를 창안해 내었지만, 관심은 늘 변함없는 일자의 세계인 이데아였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은 변화되는데, 어떻게 그것을 궁극적으로 의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스승인 플라톤에게 ‘그래도 세상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먹고 살아야 하지 않아요?’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라고 스승이 물었다면 제자는 이렇게 답했을 겁니다. ‘분리, 분석 이후에 종합이요!’그런데 문제는 이 ‘분리, 분석 이후에 종합’이라는 시스템은, 앞에서 말했듯이 식물관 조감도 없이 바로 현장에 들어가 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겁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스템은 이미 인간이 벌여놓은 일에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는 고장난 것이라는 점을, 서양문화의 황혼기에 들어선 21세기의 초입에서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진학할 때에 자기가 좋아하는 전공을 선택하고 그것을 깊숙이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은 사실상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리, 분석 이후에 종합’이라는 매우 어리석은 시스템을 따른 셈이었습니다. 파리에서 13세기에 대학이 설립된 이후에, 모든 것의 통합성을 보장할 기구 하나 마련하지 않은 채, 학과들은 끊임없이 분리, 분석되어 왔습니다. 나중에서야 ‘융합’, ‘학제간의 연관성’, ‘복잡계’니 하면서 해결의 목소리를 찾았다고 떠들어대곤 합니다. 하지만 그 ‘융합’이란 이미 말한 대로 우주와 같은 큰 실체를 아주 잘게 쪼갠 후에 그것을 붙이면 된다고 착각하는 작은 개미들이 하는 짓에 불과한 겁니다. 현대문명은 지나칠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쪼가리가 난 셈입니다.
 
 2) 그러면 다음과 같은 논리 정연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
 (1) 총체적 관점을 확립한 후에, (2) 분리하여 분석하되, (3) 그 개별적 결과들을 단순히 종합하기 전에 각 결과들이 총체적 시각에서 옳은지 점검하며 겸손하게 기다리기, (4) 그 옳고 확실한 것을 종합하기입니다. 서양이 주도하는 현대문명은 그동안 (2)에만 집중하는 시스템이었고, 21세기에 들어와서 겨우 (2)에서 바로 (4)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시작했을 정도입니다. (1)과 (3)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가운데, 이 세상은 그 동안 벌인 짓으로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말았습니다.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으며, 인간이 AI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겁나는 문제 앞에 우리는 벌벌 떨게 되었습니다. 화학계통을 전공하는 대학에 진학할 때에 면접 시에 학장님이 화학에 대한 엄청난 확신과 자부심을 표현하셨는데, 그 자랑스러워하셨던 화학이 끼칠 폐해를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렇지만 (1)-(2)-(3)-(4)라고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에게 과연 이 (1)총체적 시각, 관점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사실 전체, 총체(이데아)가 먼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추구한 스승 플라톤의 핵심을 거부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뿐이 아니었습니다. 플라톤 역시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인간 자체 알기’)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초월적인 ‘여신의 길’)가 제시한 도식을 거부한 겁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파르메니데스 역시 그 전의 중요한 근원에서 떠나버렸기 때문에, 서양의 철학사는 근본부터 (1)총체적 시각이 불가능했던, 배신의 역사였던 셈입니다. 계속해서 다음호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010-6844-0609/segensong@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4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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