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피아노 명품 ‘스타인웨이 앤 선스’ 한국인 최초 마이스터! ‘마이스터 클랑’Meister klang의 주인장 이세호를 만나다

2019년 6월호(11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6. 7. 22:38

본문

[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피아노 명품 ‘스타인웨이 앤 선스’Steinway & Sons 
한국인 최초 마이스터!
‘마이스터 클랑’Meister klang의 주인장 이세호를 만나다

이세호 마이스터
- 2005 마이스터 Metz 도제 입문
- 독일 피아노 제작학교 3년 6개월 졸업
- 독일 피아노 제작학교 마이스터 2년 졸업 
- 독일 연방 정부 인정 마이스터 시험 합격

 

음악의 매커니즘에 재미를 가지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며 매커니즘을 알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그 중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수학으로 풀어가는 강의가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공기로 전달되는 음의 파장을 느끼는데, 특히 그 중에 귀에 듣기 좋은 음질을 배음(倍音 overtone)이라고 합니다. 음향학적으로 돌을 물에 던졌을 때 퍼져가는 파장은 시간 차 때문에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지만, 물이 위로 솟구치는 파장은 디지털 기계의 한계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 연주를 들으며 ‘아~ 이 악기 소리가 너무 맑고 좋다!’라고 하는 것은 위로 솟구치는 이 파장의 폭인 배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지요. 이러한 사실들을 알아가는 게 아주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저의 미래가 걱정되었고, 학교와 피아노 조율학원을 동시에 다니며 준비하던 중, 결정적인 계기를 제 스스로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그 어떤 좋은 환경도 내 스스로에게 선물해주지 않았구나!’
 지방에서 살다보니 서울에 갈 일이 별로 없었는데, 때마침 진주에서 관악구청까지 피아노를 배달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당시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라 서울에 도착했지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습니다. 되돌아 가려고 유턴을 한 순간, 턱하고 서울대 정문이 있지 않겠습니까? 서울대는 텔레비전에서나 봐왔는데 말이지요. 학교 앞이니 버스정류장에 학생들이 줄줄이 서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순간 눈물이 나고 횡격막 경련이 일어나서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정말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서울대 정문을 보고 운 것이 아니라,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보고 운 것입니다. ‘저 학생들은 이곳의 환경, 문화가 일상일 텐데... 학교수업이 싫어서 땡땡이 친 학생도 있을 테고, 학교 가기 싫어하는 학생도 있을 텐데... ’사실 저는 이곳에 오려고 하는 꿈조차도 꾸지 않았던 사람인 거지요. 저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저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해 보지 않은 것에 너무 억울해서 운겁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나는 나한테 그 어떤 좋은 환경을 내 스스로 선물해주지 않았구나!’(부모님 원망은 안하신 거네요?) 제가 스스로‘꿈조차 꿔보지 못해 봤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때부터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나 자신에게 전혀 다른 환경을 줘보자!라고 결심했습니다. 

서울, 일본도 아닌, 독일로 직행!
 그러나 깨달음이 있다고 바로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주위에 딱히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지방이라 들을 수 있는 정보가 풍성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플롯으로 독일의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여학생이 제가 있는 피아노 매장으로 기타 줄을 사러 왔습니다. 물론 그때 저는 독일이 피아노로 유명한 지도 몰랐고 또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었지만 그 여학생을 보면서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 나도 외국에 나가 공부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당장 그 고객에게 독일어를 가르쳐 달라 부탁했지요. 독일을 꼭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에게 전혀 다른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독일어를 배우며 자연스레 독일에 대해 이것저것 묻다보니 독일에도 좋은 피아노 회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가까운 일본의 야마하 아카데미에 지원하려다가 대기자가 너무 많아 포기했던지라 바로 ‘독일로 가자!’ 결정을 했죠. 그래서 여러 독일 피아노 업체들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정말 우연치 않게 한 곳에서 답장이 온 겁니다. “네가 3개월 정도 견학하는 정도는 좋다.” 그 길로 아예 이민을 간다 생각하고 보따리를 쌌습니다.    

독일에서의 생활
 2005년 바이에른에 있는‘스타인웨이 앤 선스Steinway & Sons’(이하 스타인웨이) 대리점 역할을 하는 회사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한국에서 쥐꼬리만큼의 독일어를 배웠기에 일단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손짓-발짓-웃음짓으로 때우면서 오전에는 어학원, 오후에는 견습을 하고 허드렛일도 엄청 도맡아 했지요. 그런데 어라, 3개월이 지났는데 이곳에서 오라 가라 말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1년을 출근했죠. (생활비는 어떻게?) 단돈 10원도 못 받았죠. 왜냐하면 그곳에서 돈을 지불하는 순간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고용하는 게 되니까요. 그렇게 시간은 흘러 점차 비자도 만료가 다 되어 가며 걱정이 되었고, 비자연장을 위해 이리저리 알아 봤지만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안절부절하다 절박한 심정으로 마이스터에게 이야기했지요. “나에게 자리를 달라! 네가 자리를 주지 않으면 한국에 들어 가야한다. 그러면 두 번 다시 나는 나올 여유와 여력이 없다. 지금 당신이 내 인생의 칼자루를 쥐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1년이상 얼굴을 보며 정이 들었던 마이스터도 당연히 고민이 되었겠죠. 그 당시 저 말고 도제교육을 받던 독일인도 있었는데, 둘을 동시에 가르치기에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마이스터는 “독일친구 마치고 2년 후에 다시 오면 안되겠냐”고 하더군요. 저는 더 절박한 심정으로 이야기했어요. “무조건 나에게는 이곳이 배수진이고 갈 데가 없다” 그러자 마이스터는 1주일 정도 고민을 하더니 자리를 주겠다고 승락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 분은 저에게 둘도 없는 좋은 스승이요 친구가 되었습니다. 제가 마이스터가 되고 난 다음 하는 말이 걸작이었지요. “내가 그때 네 눈빛을 보니 너를 받아주지 않으면 넌 할복해 죽을 것 같더라. 그래서 겁이 났다!”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피아노 앞에 서면 절실한 생각으로 일하는 편입니다. 어렵게 얻기도 했고 안 될 것을 되게 했다는 느낌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드디어 도제교육을 받다
 비로소 마이스터와 계약을 하고 학교도 가게 되었습니다. 독일 도제시스템은 회사를 가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습니다. 피아노의 도제교육은 마이스터의 실무 하에 지도를 받고 이론은 학교에서 3년 6개월 배우는 것입니다. 도제교육을 받으면 월급을 약 50만원 받습니다. 이 돈으로 오롯이 3~4년을 버터야 하는데 제일 힘든 시간이었지요. 그래도 독일은 학생 천국이라 학비도 내지 않고 기숙사비도 주 정부에서 보조를 받아 15만 원 정도면 해결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학교를 가면 사람들은 ‘드디어 피아노 만드는 것을 배우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피아노 제작은 커녕 심지어 조율조차도 배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피아노로 전반적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음향학, 예술사, 물리, 화학, 수학, 설계, 세무, 회계 등을 가르쳐줍니다. 특히 피아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 물리적인 힘인지, 아니면 화학적인 재료 혹은 소재가 문제인지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하지요. 특히 배음에 문제가 있을 때에도 스스로 유추해서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배웁니다. 그래서 우습게도 독일에서 막 한국에 돌아오면 처음부터 일을 잘 하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한 가지만 10~20년 할 것을 독일에서는 여러 가지의 다른 것들을 병행하도록 하며 계속해서 눈을 넓히고 성장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더 이상 눈을 넓혀가지 못하면 거기에서 끝인 것이죠. 
그래서 3~4년간 기초를 착실히 다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도제시스템을 견디고 나면 졸업시험과 국가자격증시험 둘 다를 합격해야 정식 직원이 되고, 이때부터 월급이 제대로 나옵니다. 저는 2010년에 모두 합격을 했습니다. 그 후 2년의 마이스터 과정인 ‘파크슐레’(직업과정에서는 최고과정)을 하고 마이스터가 된 후, 드디어 ‘마이스터’라는 타이틀을 제 이름 앞에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이스터 시험을 칠 때 피아노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해 보는 시험을 쳤습니다. 그 이후, 2013년 스타인웨이 본사로부터 콜을 받았지요. 

‘스타인웨이’와의 본격적 인연
 마이스터 과정을 밟을 때 스타인웨이 본사 생산라인에 있으면서 직원들과도 알며 사귀게 되었고 점차 제 존재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프랑크푸르트 지사로 발령을 받아 스타인웨이 고객들을 응대하고 그 도시의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일하게 되면서 2013년도부터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부터 프랑크푸르트 대학 음대의 피아노를 제가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스타인웨이’회사의 문화
 한마디로 말하자면 역설적으로 ‘완전 열려있으면서 고립되어 있는 문화’를 가진 회사입니다. 즉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관대한 반면에, 새로 들어가려는 사람에게는 너무 폐쇄적이라는 말이죠. 독일 사회, 문화 자체가 거의 그런 것 같아요. 독일 안에 들어와 있으면 외국인이든 독일인이든 다 친구로 여기지만, 그들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전까지 말은 스스럼없이 하지만 마음으로 잘 받아들이지 않는 벽이 있는 셈이지요.  

15년 동안 독일사회, 문화를 경험하며 본인에게 가장 체화된 점
 바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저 스스로도 어떤 현상이 있으면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들을 잘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독일에서는 문제 밑에 뭐가 있는지 보려고 노력 하고, 그것을 볼 수 있는 교육과 시스템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보기 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런 생각하는 법을 배운 것이 저에게는 정말 감사한 것 같아요. 피아노라는 악기를 기능만 생각하면 두드리고 소리가 나면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피아노를 통해 음악예술을 표현하기때문에 전체적인 것을 보며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제가 피아노에 있어서만큼은 전체를 보고 필요한 자료들, 책,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는 것입니다. 

동양인이자 한국인 마이스터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갔을 때 반응
 엄청 재미있었죠! 보통 독일에서 ‘스타인웨이의 마이스터’라면 머리가 하얗고, 좀 퉁퉁하고, 키도 훌쩍 크고... 한마디로 근사하게 생긴 독일인 노신사 마이스터가 오리라고 생각했을 텐데, 피부는 노란 젊은 동양인이 똘래 똘래 와서 스타인웨이에서 왔다고 마이스터 명함을 내밀면 처음에 잘 받아들이겠습니까?(웃음) 바로 신뢰해주지 않지요. 특히 음대 교수들은 더 심했죠. 만약 우리나라 국악기를 고치고 싶은데 태국인이 와서 따따부따하면 저 같아도 쉽게 신뢰하지 않을 겁니다. 외국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정서와 문화가 독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 이리저리 태클 걸고 굉장히 힘들게 까탈을 부려 고생깨나 많이 했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들도 점차 해결이 되어 프랑크푸르트 음대 메인 홀 2개,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하우스, 유럽중앙은행, 도이치뱅크 프라이빗 저택(도이치 뱅크 VVIP고객들만이 와서 즐기는 곳)에도 가게 되었죠. 인종 차별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한국 안에서도 서로 괴롭히고 왕따 시키고 차별이 있는데 하지만 그것을 차별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더 이상 헤쳐나 갈 길이 없어요. 그런 부정적인 생각보다 내 길을 가야죠. 

마이스터로서 갖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매력
 다양성입니다. 피아노뿐 아니라 다른 악기에서도 여러 시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수 있지만, 특히 음역대가 넓은 피아노는 하나의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래 고전음악은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했습니다. 그 당시의 포르테피아노는 연주자 손가락 냄새만 맡아도 건반이 움직일 정도였는데, 그만큼 가볍고 원활하게 움직이는 악기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피아노는 무려 25배 이상 에너지가 들어가야 합니다. 사운드 볼륨을 키우기 위해 메카닉을 육중하게 넣어서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만큼 복잡해졌습니다. 따라서 연주의 감성은 연주자가 만들지만, 음악의 효율이나 표현의 다양성을 창조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악기이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피아니스트 제이슨 배(Jason Bae)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이태리차인 스포츠카 ‘뷰가티’로 비유 하던데요.
 뷰가티의 좋은 점은 스포츠카로 빠르고 출력도 좋지만 제동력이 더 좋습니다. 장점만이 아니라 장점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더 좋아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졸작이 되는 것이죠. 스타인웨이 같은 경우 나무 자체가 아예 달라요. 보통 유럽에서 좋은 명기를 만들 때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가문비나무를 사용하는 게 기본입니다. 굉장히 춥고 힘든 지방의 나무는 자랄 때에 힘들게 자라기 때문에 나이테가 아주 촘촘해서 좋은 피아노의 효과를 낼 수 있거든요. 피아노 제작용 나무를 벨 때도 가장 추운 겨울인 12월~1월, 그리고 나무가 물을 가장 적게 흡수할 때인 그믐달에 벌목합니다. 그 반대인 보름달이 되면 달의 당기는 힘 때문에 나무가 물을 먹으니 그 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또 나무를 악기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울림 때문인데 소리는 공기중에서 1초에 약 360~380 m의 속도로 전달되는데 비해, 나무는 1초에 약 4000m, 스타인인웨이에서 사용하는 나이테가 촘촘한 나무는 거의 6000m 가까이로 전달됩니다. 이런 나무의 속성 때문에 훨씬 빠르고, 전달력 깊은 입체적인 소리를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로 사운드보드를 만들고 피아노를 둘러싸는 테두리를 형성해서 긴장감을 균형 있게 유지시키는 겁니다. 줄이 당겨지는 힘에 따라 음정이 결정되는데 이 힘은 피아노 한 대 당 약 20톤 이상에 이릅니다. 줄이 브릿지를 누르는 힘은 사운드의 파워로 나타나는데 그 힘은 500~600kg에 달합니다. 저 같은 사람 6명 정도가 올라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만약 사운드보드가 펑퍼짐하게 되어 있으면, 위에서 눌렀을 때 소리가 훅하고 꺾여버리겠죠.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운드보드를 아치로 만들어 이 힘이 양끝으로 분산되게 했습니다. 한마디로 소리의 입체감과 공간감이 최상인 피아노를 스타인웨이가 만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백년 써도 멀쩡하다, 명품이다’라는 말들을 하는 이유도 이런 제작방식 때문입니다. 다른 데서도 이렇게 만들고 싶어 하지만 생산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피아노에서 중요한 것은 1만 2천개나 되는 수많은 부품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풍성한 음향을 제대로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능들 속에서 줄 수 있는 수많은 효과들, 또 그 효과들로 연주자가 표현할 수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스펙트럼이 바로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탁월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주는 의미와 행복
 피아노가 저를 잡아먹었죠!(웃음) 제 삶이 다 녹아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 속에 너무 빠져 있다 보니 개인적 삶의 다양성이 너무 줄어든 것 같아요. 한번 피아노 앞에 앉으면 화장실조차 가지 않고 하루 8~10시간을 줄기차게 있어야 합니다. 피아노를 손대려면 건반 88개를 손대야 하는데, 88개 움직임은 여려 겹들이 쌓여서 하나의 동작을 만듭니다. 그 여러 겹의 동작들을 어느 정도하다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점심을 먹는다고 자리를 뜨면, 그 다음 동작으로의 연속성이 끊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피아노가 날 잡아 먹는다는 표현을 했군요) 
저와 함께 시간을 같이 보낸 피아노로 연주자들이 연주해 줄 때에 저는 제일 행복합니다. 들으면서 내가 부족한 것, 만족한 것들을 찾아내거든요. 

음악인의 사랑방, 서초동의 ‘마이스터 클랑’(Meister klang)
 마이스터 클랑은 작년 9월에 오픈해 본격적으로 운영한 것은 5개월 정도입니다. 음악인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여기서 연주를 마치고 뒷풀이 문화를 하고 싶었거든요. 유럽에서 연주를 하고 나면 사람들이 연주도 연주이지만 삶의 여유를 누리는 문화를 즐기러 오는데 한국은 연주가 끝나면 박수치고 바로 가는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마이스터 클랑’에서는 연주 프로그램을 한 시간 내외로 하고 재미있는 뒤풀이를 하는 거지요. 여기 오는 사람들이 각각 나눌 음식 한 가지씩을 가져오고 저는 와인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몇 번 하다보니 단골손님들도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연주된 음악을 중심으로 대화하고 즐기면 연주자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연주가 좋아서 왔든 노는 것이 좋아서 왔든 ‘마이스터 클랑’에서 서로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좋고, 무엇보다 연주 후에 인사만하고 가 버리는 뻘줌함을 없애고 제대로 된 놀이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주로 무대에서 연주하기 전에 이곳에서 처음으로 리허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주 후에 나름 비평을 주고받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진짜 좋은 악기로 연주자들이 행복하게 연주하도록 만드는 게 꿈이에요.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전제가 있습니다. 항상 붓은 관리가 잘 되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피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아노를 꼭 스타인웨이만 쓰라는 것은 아닙니다. 비싼 것을 쓸 필요는 없지만, 잘 닦아주고 잘 정비하며 관리해야 하는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피아노가 연주자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악기를 다스려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는 것이죠. ‘어 이 피아노에서는 안돼’ 또는 ‘이 피아노가 먹먹해요’등의 말이 나오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악기 수준에 맞게 연주를하면 연주자의 감성은 나오지만, 효과와 사운드에 제약을 받으니 제대로 연주되기 힘들겠지요. 최소한 연주자가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마음껏 풍성하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피아노를 만드는 것과 최고의 관리 및 정비를 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피아노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자 마이스터 과정과 스타인웨이 회사에서 일했을 뿐이라며 사실 품질이나 고객 만족을 못시키면 어떻게하나 하는 책임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피아노를 20년 이상 다룬 마이스터이지만, 계속 배우며 일을 하자는 겸손한 의미로 ‘Meister klang’(마이스터의 울림)에서 ‘k’를 소문자로 했다고 하더군요. 인터뷰 내내 과연 마이스터로서 피아노의 모든 숨결을 예민하게 다스리는 분인 듯 했습니다.  

한국 마이스터 클랑 대표  
이세호 마이스터 
02-586-1253 
info@meisterklang.co.k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6>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