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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은 세상,의미있게 ‘화’를 풀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화난사람들’

2019년 5월호(11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6. 19.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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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알지.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률 포털]

모든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은 세상, 
의미있게 ‘화’를 풀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화난사람들’

  법과대학에 들어온 후 신나게 몇 년을 놀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합격한 친구들도 있었고요.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법조인으로 사는 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상을 좋아하고,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법 공부’는 너무 딱딱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평생 법조인으로서, ‘법 공부’를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몇 달간 방황하며 내가 진짜 원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 봤지만 재밌게 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 외에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진짜 인생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어려운 공부를 피하고 싶은 핑계는 아닐까’라는 나에 대한 의심도 들었습니다. 결국 ‘일단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그리고 그 후에 다시 재밌게 사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변호사 자격이 있으면 지금보다는 더 넓은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을 내린 후로는 공부하는 게 괴롭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또 막상 ‘법 공부’를 시작해보니 처음 느낀 것처럼 딱딱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법과 판례를 공부하면서 재미를 느낀 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연수원에 들어간 후에는 ‘일단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재밌게 사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던 나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연수원 공부는 사법시험 공부보다 훨씬 더 어려웠고, 학기마다 큰 시험을 치르다보니 먼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하루하루, 한 학기 한 학기를 보내기 바빴습니다. 연수원에서도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의 재판연구원이 될 수 있는 성적을 얻어냈으니 재판연구원이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등법원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도 물론 대단한 기회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재판연구원 임기가 2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내 인생 전체를 계획하는 고민을 2년 후로 미룰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일한 2년은 빈말이 아니라 정말 굉장한 경험이었습니다. 수십 년의 경력과 뛰어난 실력을 지닌 부장판사님들 바로 곁에서 그분들이 어떻게 일하고, 생각하시는지 보고 들으며 많이 배웠습니다. 옆에서 보니 판사님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판사의 일이라는 것이 하다 보면 재미를 느끼는 순간도 있겠지만 재밌게 할 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재판연구원 임기가 끝나가면서 또 진로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나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사법시험 공부도 열심히 했고, 연수원에서도 열심히 공부했고, 법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며 일했으니, ‘열심히 공부하는 내’가 아닌 ‘공상을 좋아하고,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 내’가 할 만한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법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법원에서 실제 사건들을 다루면서 ‘법’은 평등한데, ‘법을 이용하는 것’은 평등하지 않다는 문제 의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한 ‘법을 잘 이용한다’는 개념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미리 해야 할 조치, 분쟁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해야 할 대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구제수단을 적절히 잘 이용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잘 아는 사람,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법을 잘 이용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법을 잘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법을 잘 이용하려면 법을 이용하는 방법이 편하고, 쉽고, 저렴해야 합니다.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인터넷에서 화풀이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화를 의미있게 풀 수 있는 공간, 한마디로 ‘법을.알지.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률포털(이하 법.알.못.을 위한 법률포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도전을 좋아하고, 아이디어가 많은 선배와 이런 얘기를 나누다가 집단분쟁 플랫폼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피해를 입은 건 맞지만 개인적으로 소송에 나설 정도로 큰 피해는 아니거나 상대방의 힘이 너무 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단념하고 맙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많이 모이고 변호사와 잘 연결된다면 단념하지 않아도 됩니다. 법적인 절차를 통해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피해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걸 가능하게 할 플랫폼이 없었습니다.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법적 수단을 이용해 권리를 되찾을 수 있게 하는 집단분쟁 플랫폼은 내가 꿈꾼‘법.알.못.을 위한 법률포털’을 여는 대문이 될 수 있겠다고 직감했습니다. 

  재판연구원 임기를 마친 후, 무엇을 만들겠다는 목표와 열정만 가진 채 (회사 경영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채로)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만들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보니 ‘화난사람들’이라는 우리의 이름과 ‘불 붙은 분노’(참여자를 모집 중인 집단분쟁), ‘예열 중인 분노’(집단분쟁으로 진행될 만한 이슈), ‘나의 분노, 너의 분노’(각자의 분노스토리), ‘분노상식’(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은 법 관련 이야기) 등 사이트에 필요한 메뉴도 술술 떠올랐습니다.‘B급 감성’이라는 테마도 확실했습니다. 

  화난사람들을 시작하자마자 마침 대진침대와 까사미아침대 라돈검출 사건, BMW 화재 사건 등 대형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집단소송에 참여할 피해자들을 모은다고 소문난 변호사님들에게 무작정 연락해 화난사람들의 집단분쟁 솔루션을 이용해 보시라고 청했습니다. 이나마 자리를 잡은 데에는(자리를 잡았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수준이기는 합니다만) 당시까지 정체불명이었던 화난사람들을 이용해 주신 변호사님들의 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화난사람들이 가야할 길은 너무나도 멉니다. ‘법.알.못.을 위한 법률포털’이라는 지향점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분명하지만, 그 지향점까지 어떻게 가야할 것인지 매일매일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몰라서 용감하게 이 길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알아야 할 일, 해야 할 일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금 아는 걸 그 때도 알았다면 이 길에 쉽게 들어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왕 이 길에 들어온 이상 목표한 곳까지 가기 위해 일단 최선을 다 해보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은 세상, 의미있게 ‘화’를 풀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달려봅니다.

화난사람들 대표, 변호사 최초롱
www.angrypeople.co.k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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