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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바다

2019년 5월호(11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6. 1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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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혜 에세이]

오월의 바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시간이 구름이 흐른다. 
 습관처럼 의무감처럼 그냥 그렇게...
 순간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노스텔지아>의 롱 테이크 기법처럼 알 수 없는 포만감이 찾아든다. 오월이면 눈 감고 카네이션을 한 아름 안은 나를 생각한다. 꽃향기보다 꽃말이 좋은 꽃 카네이션. 내 오월의 바다에는 미래를 잃어버린 내 젊음의 시절이 있었다. 효도란 옆에 있어 주는 것, 같이 밥 먹는 것, 차 한 잔을 놓고 말없이 마주 앉는 사소한 일이라는 사실을 조금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 가보지 않은 낯선 도시에 발을 내디뎠을 때 문득 꿈에 와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오늘 아버님의 부재가 아직도 낯설다. 


 우리 부부는 결혼 첫해부터 15년을 오월이면 양가 부모님과 아이들을 데리고 일명 효도 관광을 다녔다. 남편의 고교 동창 모임에서 시작한 행사다. 남이섬을 시작으로 산정호수, 경주, 설악, 땅끝 마을과 제주도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처음에는 사돈과 여행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부모님들도 나중에는 은근히 오월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제는 살아 계신 분 보다 돌아가신 분이 많아 몇 년 전부터 부부 여행 모임으로 바뀌었다. 친정에서 맏이인 나는 시댁에서는 막내다. 반대로 남편은 본가에서는 막내지만 처가에 오면 맏사위로 격이 상승, 친정 부모님 사랑과 처제들의 관심과 사랑까지 듬뿍 받았다. 맏이의 부담을 벗어 던진 나는 시부모님의 사랑을 원 없이 받았다.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 어린이날이면 TV에서나 볼 수 있는 예쁜 잠옷도 사주시고 정장보다 캐주얼을 즐겨 입는 내게 스튜어디스 유니폼같은 빨간 투피스 정장을 사 주시며 집안 행사 때마다 입으라고 강요하셨다. 벨벳 칼라에 빨간색 투피스를 입으면 예쁘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시며 당신이 사 주신 생색을 내셨다. 해외여행을 가시면 악어백도 잊지 않으시고 여름이면 얼굴 탄다고 양산도 사 주셨다. 계절마다 구두 티켓을 챙겨주셨다. 
 아버님은 군의관을 지내시고 초등학교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하셨는데 틈틈이 시를 쓰셨다. 내가 아버님과 맞는 부분이 있다면 시를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버님은 시를 쓰면 꼭 내게 읽어보라고 하셨다. 당신이 쓴 시를 낭송하면 눈을 감고 들으시며 무척 좋아하셨다. 바빠서 바로 갈 수 없을 때는 전화기로 불러 주셨다. 나는 받아 적어 다음날 정서해서 갖다 드리면 20장 정도 복사해서 좋아하는 분들께 드리곤 하셨다. 이렇게 모은 시를 엮어서 시집도 내셨다. 내가 국악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국악 라디오에 청취 소감을 보내 며느리와 듣고 싶다고 하시며 음악 선물도 주셨다. 무엇보다 나는 아버님의 재무 담당이었다. 아버님의 재산 중 현찰은 언제나 내게 맡기시며 은행 심부름과 통장관리를 맡기셨다. 아버님의 철학은 만 원을 가볍게 보는 사람은 반드시 만 원 때문에 울 일이 생긴다고 하시며 절약과 저축을 강조하시고 몸소 실천하셨다. 
 구십만 원이 있으면 십만 원을 빌려서 백만 원을 채워 저금하는 분이셨다. 때문에 난 아버님께 빌려 드릴 잔돈을 항상 준비해야 했다. 아버님은 가고 안 계시지만 난 인디언들이 죽음이란 생물학적인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때를 진정한 죽음이라 한 것처럼 아버님의 부재 속에도 아직도 아버님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오월의 바다처럼 풍덩 뛰어들지 못하더라도 멀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거리만큼 든든하게 남아 있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 바구니를 들고 아버님 산소라도 다녀와야지. 카네이션 바구니 옆에 시집도 함께 살며시 놓고 와야지. 

수필가 김단혜 
blog.naver.com/vipapple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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