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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숨을 불어넣는 사진을 담아내다- 장일암 사진 작가

2019년 5월호(11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6. 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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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바위에 숨을 불어넣는 사진을 담아내다
- 장일암 사진 작가

기계공학도에서 사진전공을 하셨더군요

 대학 때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아! 내가 수학을 못하는구나!‘’,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때도 지금도 ‘생텍쥐페리’ 광 팬이에요. 흔히들「어린왕자」를 먼저 떠올리지만, 저는 그보다 「야간비행」,「인간의대지」,「남방우편기」의 팬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대를 졸업하면 비행기 제작하는 사람이 될 꺼야! 하는 꿈을 가졌고, 이런 꿈에는 무엇보다 아버지가 군에서 비행기도 조종하셔서 받은 영향이 있기도 했습니다. 기계공학과는 졸업 논문이 따로 없고 설계도를 제출하면서 학창생활을 마무리하는데, 선배들이 겨우 ‘톱니바퀴’하나 정도 설계하고 말더군요. 이게 도대체 뭐냐?” 물으니 “그래, 이것 하나 그려내면 졸업 맞아!”라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순간 너무 허망했어요. 저는 머릿속에 자동차설계, 비행기설계를 꿈꾸고 입학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방황하다 3학년 때 사진 분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장군 출신의 엄한 아버지를 꼬박 3년 동안 설득했습니다. 드디어 1987년 호주 유학길에 오르며, 사진 동아리의 친구 세 명과 청년의 야망에 의기투합했지요. 한 친구는 사진기자, 한 친구는 미학, 저는 광고 사진테크닉을 전공해서 한국에 돌아오면 함께 스튜디오를 열어‘우리가 대한민국 사진을 바꿔보자!’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유학이 무려 13년이나 걸렸습니다.

한국의 현실에 돌아와 상업사진을 찍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자기 사진이 아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사진을 찍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고객 만족이죠. 2011년에는 SK그룹의 TV CF를 찍어 6개월 동안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아이디어로 제 영혼의 작품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술을 제공해 주는 기술자에 불과했습니다. 그 CF에 함께 참여해 연출,조연출, 광고가 정한 콘티대로 찍는 것이지, 저의 창의성을 가지고 작품을만드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후 광고사진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광고사진에서 순수사진으로 전향 하신 건가요?
 그런데 바로 그렇게 전향을 하면, 굶어죽는 지름길이죠!(웃음) 제가 상업 사진을 그만 둠과 동시에 ‘기독 사진가 협회’에 들어갔는데 당시 인원이 2~3천 명 정도 되었습니다‘. 아! 이제야 내 믿음으로 내 사진을 찍을 기회가 왔다!’라며 의욕적으로 하고자 했지만, 사진 전공자가 두 세 사람 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래도 신학을 전공하신 분들에게 사진을 전공한 제가 사진 테크닉을 잘 가르치면, 그들이 습득한 영적인 지식을 더해 사진으로 잘 표현하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으로 무려 6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사진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잘 되어 있지 않고 다들 그저 기술적 사진만 찍어대는 겁니다. 과거에 여러 가지의 시행착오들, 미학적 지식, 철학, 기독교 예술이 융성했던 중세시대로부터의 시각예술등을 공부하며 발전하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개신교 쪽의 시각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지요. 무엇보다 사진 전공자들의 모임이 아니니 단기교육으로 이런 근본적인 차원의 효과가 잘 나올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하는 사진’(이하 생각사) 포토 아카데미
 저 또한 광고 테크닉 분야 공부를 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뭔가 한계를 발견하게 되어, 미학과 예술사를 혼자서 독학해 나갔습니다. 사실 제대로 사진을 찍는 일은 사진 전공자에게도 어렵습니다. 이것을 비전공자들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결국 ‘생각하는 사진(생각사)’이란 과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2009년부터 ‘생각사’를 6개월 과정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2년~3년제 과정으로 발전했습니다. 미학, 실무. 작가연구, 동영상 강의 등의 내용으로 더 체계화시켜갔지요.


사진작가들이 화가들보다 운신의 폭이 더 좁은 것은 아닌가요?
 놀랍게도 우리나라 대학의 사진학과에서는 서양미술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미술역사는 사진의 역사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진의 역사가 183년 정도로 짧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사조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굉장히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은 처음에는 예술로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미학자들이 사진이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이 발명되고 50년 후에 나온 영화가 먼저 예술로 인정을 받는 역설적인 일이 벌어졌지요. 그 원인을 찾아보니 미학적인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머리좋은 사람들이 돈이 된다는 영화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다 보니 생긴 현상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 드러난 셈이지요.

또 19세기 프랑스 시인‘보들레르’는“사진이 무슨 예술이냐, 그냥 현상을 있는 그대로 카피하는 것이 아니냐”며 굉장히 혹평했습니다. 이런 사진이 예술이 된 경위는 그림을 좀 더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더 쉽게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발전시킨 사진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기 사진은 순전히 포토그래퍼 기술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죠. 하지만 후에 정식으로 미술 전공한 사람들이 사진 분야에 들어오면서 미술에서 배운 것을 점점 사진에 확대 적용시켜 갔습니다. 영국의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  프랑스의 ‘루이 다게르’(LouisDaguerre)도 사실 화가이자 동시에 사진 작가였지요.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가서야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았고, 우리나라도 1990년대 이후 미술을 전공한 분들이 사진 분야로 들어와 발전시키면서 미술계가 사진을 예술로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사진학 개론」이란 번역서까지 내셨다고요?
 이 책은 영연방국가 대학의 사진학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인데,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400페이지가 되는 제법 두툼한 「사진학 개론」을 소개하면, 사람들이 사진에 대한 지식과 수준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2년 반 정도 잡지 편집장 일을 병행하며 번역에 집중했지요. 퇴근 후 저녁식사하고 일찍 자고, 제일 조용한 시간인 밤11에 일어나 새벽 4시까지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출근을 해야 하니 새벽 4시부터 오전 7시까지 잠깐 눈을 붙인 후 7시반에 출근했지요. 저는 한번 몰입하면 세상이 뒤집혀지는지도 모릅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도 있잖아요.(웃음)


주로 어떤 대상을 사진에 담으시나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이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예술은, 주목받지 못하는 비천한 것들로부터 소중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천하다’는 말은 천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한’ 것들이라는 말이며 이것에서 소중한 의미를 발견해 낸다는 겁니다. 좀 더 좁혀서 ‘사진의 미학’을 쉽게 설명하자면, ‘보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기에 탁자와 의자가 있잖습니까? 사진작가들은 이것을 봐도 반사되는 빛, 철재의 재질감, 색감 등을 유심히 보면서, 저 의미가 뭘까? 라고 생각하고 유심히 들여다보고 사진에 담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아! 철재 의자네’하며 그냥 지나치지요. 보는 자세와 방식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사진작가들의 임무 중 하나가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놓쳤을 법한 것을 발견해 보여주는 겁니다.

저는 지난 18년 동안 '주천강’에 있는 바위를 찍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고개를 갸웃뚱하는데, 저의 아버지도 그렇게 반응했으니까요“. 거기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자주 가냐”하시면서요. 처음에는 바위의 외형적이고 표면적인 것만 보고 해석하다가 점차로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사실들을 보게 되더라고요. 비록 바위가 무생물이고 화강암이며 광물인 규석 덩어리이지만, 주기적으로 가서 바위와 대화하듯 묵상과사색을 하니 이젠‘바위나라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겠다고 농담 삼아 말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바위 내면의 언어를 알 수 있다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현재의 바위 모양이 되기까지 3억~5억년이 걸렸습니다. 인간은 길게 살아봐야 100년으로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바위에 비하면 하루살이 같은 존재지요. 그래서 바위를 바라보면 그냥 겸허한 마음이 생깁니다. 나는 잠깐 왔다가 사라지는 아침 안개 같은 존재구나!’저 바위에 새겨진 시간과 역사의 흔적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우며 무슨 삶의 의미를 깨달을것인를 정말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찍는 바위는 산 속에 있는 바위가 아니라, 강폭이 60~100미터인 주천강에서 깎여 나가고 다스려진 바위입니다. 군 제대하자마자 26살에 처음 그곳에 갔었지요. 그때 그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형상에 반해 오로지 어떡하면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찍을 수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제가 찍은 사진들을 보는 보통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세상에 우리나라에 이런 신비스러운 바위가 다 있네!”하면서요. 2002년 호주에서 귀국 후, 바위를 다시 찍기 시작하면서 온 우주가 하나님의 작품으로 바위를 기기묘묘하게 다듬은 것도 하나님의 손길이다 라는 생각을 매번 합니다. 물살에 의해 바위가 깎여나가고 구멍이 파이지만 넉넉하게 견디고 몇억년동안 그대로 존재하는 바위 앞에서 숙연해지며, 소리치지 않는 바위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영향 받은 사진작가
 미국 서부의 사진작가인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과 프랑스의 ‘으젠느 앗제’(Eugene Atget)입니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사진계의 피카소라고 불릴 만큼 근대 사진계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렌즈는 인간의 눈보다 많은 것을 본다”는 예술관을 지닌 사진작가로 정확하고 날카롭고 치밀한 세부 묘사로 선명하게 찍힌 사진들을 아무런 조작없는 본연의 상태 그대로 두면서 사물 자체를 보여주는 사진을 찍는데 몰두한 사진작가 입니다. 으젠느 앗제는 100여 년 전 사람으로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사진가인데, 예술적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아티스트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습니다. 사후에 재조명된 분이지요. 으젠느 앗제의 사진을 일컬어서 ‘포토제니’(photo genie) 라는 별칭을 붙여줍니다. 포토’는 ‘빛’, 제니’는 ‘영’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개념에 걸맞게 주로 이른 아침에 그가 찍은 파리의 풍경 사진을 보면, 굉장히 번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인적이 없어서 마치 고요해 죽어있는 것 같고, 안개가 끼여 심지어 신비스러워 보이기까지합니다. 이런 철학을 염두에 두고 제가 찍었던 것이 바로 물속에 누워있는 가을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바위입니다. 찍으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들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바흐의 음악이 400년을 넘어서 현대 사람들에게도 음악의 원천이라고 할 정도인데 예술의 영원성을 어떤 차원에서 보고 있나요?
 “예술은 영원하지만 항상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 미술사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되지만, 해당 시대마다 어떤 관점으로 예술을 다루었느냐가 다릅니다. 영국의 ‘제라드 햄소스’ 교수가 방한 중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축하하는(celebrate) 예술’이고, 둘은 나와 내 주변에 ‘질문을 던지는 예술’이다. ”지금의 예술은 전자. 즉 예술은 내가 즐기는 것, 사진으로 보면 ‘벚꽃이 예쁘네’하며 찍고 즐기는 겁니다. 후자는 ‘저 의자 의미가 뭐지?‘, 저 버려진 자전거의 의미가 뭘까?’, 바닥에 난 크랙의 의미가 뭘까?’ 이런 것에 자꾸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을 구하는 거죠. 그래서 ‘곰브리치’는 “예술은 없다! 다만예술가가 존재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예술가가 발견했던 환영(illusion)을 관람자에게 전달해주고, 관람자들은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감상하는 행위를 예술이라고 본 것이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술은 영원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늘 성장하고, 파괴되고, 다시 재생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예술은 재생된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의심하라!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상업문화’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동양인인데 미의 기준을 서양에 놓고 자꾸 서양 사람들을 닮아가려고 하는 겁니다. 미의 기준이 잘못 된 것입니다. 아시아인들은 원래 7등신이고 유전자가 다른데, 왜?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의 외모를 닮아가려 할까요? 특히 21세기에는 남녀 모두가 상업적으로 인정된 외모를 닮지 못하면, 패배자로 여길 정도이니까요. 이런 흐름에 대해 ‘왜? 이런 기준이 생겨났지?’라고 끊임없이 반론을 제기하고 저항하면서 사는 것이 예술가라고 봅니다. 그래서 사진을 가르칠 때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라’고 합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동굴 속의 죄수로 교육을 받아 더 깊은 정신세계를 발견하지 못하고 거짓된 것들, 그림자 연극만 보면서 그게 실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제가 바위를 찍으며 위안을 받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쉽게 변하고, 가볍게 등 돌리고, 배신하고, 뒷통수 치지만, 바위는 정반대로 변하지 않는 든든한 산성,반석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항상 눈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미혹 당하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카메라의 본질 세 가지! 조리개, 셔터속도, 초점
 사진을 가르칠 때 제일 많이 듣는 말 중에 “저는 사진기술이 없으니 카메라라도 좋아야 해요”라는 변명(?)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답답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카메라의 본질은 딱 세 가지인 조리개, 셔터속도, 초점입니다. 이것만 잘 맞추면 본인이 원하는 사진은 다 찍을 수있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자기 카메라인데도 그 카메라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를 다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자동화시키고 인공지능을 넣어서 더편할 것 같은데,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용하기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원초적인 카메라를 보여 주면서 이게 카메라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흔히 라이카(Leica)카메라를 굉장한 브랜드라고 생각하는데, 저에게도 55년도 모델이 있지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20만 원짜리 카메라로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사진을 한다고 하면 ‘장비 빨’로 명함을 내밀고 장비 자체가 우상이 된 것을 보며 그런 현실 자체에 속이 상하고 또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많은 애로를 느낍니다.


현대 예술의 여러 가지 주제 중 가장 중시하는 게 ‘정체성과 영성’이라며 ‘Who are We?’ 라는 주제로 10~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두 번의 그룹전을 진행했다는 장일암 사진작가. 그분에게서 소년이 간직한 것 같은 순수함이 눈과 마음에 진하게 배여 있는 듯 했습니다. 18년간 바위를 찍으면서 사진에 대한 본질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의 정신세계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추구하는 현 시대에 유독 빛나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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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엡스탱’(Jean Epstein)은 <에트나 산 위에서 본 영화>(Le cinématographe vu de l'Et na)에서 ‘포토제니는 회화에서의 색채와 조각에서의 볼륨처럼 예술 고유의 요소를 의미한다’고 정의했고, 레옹 무시나크’(Léon Moussinac)는 ‘포토제니의 본질은 시각적 리듬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음.

                                                                                                 stephen61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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