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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문화(명)과 서양문화(명)가 유사하지만 다르게 중심(종교)에서 파생해 나간 역사(2)

2019년 5월호(11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7. 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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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22]

동양문화(명)과 서양문화(명)가 유사하지만 다르게 중심(종교)에서 파생해 나간 역사 (2)

 

분리, 분석 후의 종합’이라는 서양의 관점이 아닌 ‘총체적, 거시적 관점에서 세부적 연관사항들을 이어나가는 새로운 시도’ 


21세기 우리는 전지구의 양대 문화(명)인 동양문화(명)과 서양문화(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를 형성해 나가는 아주 중요한 과정에 있습니다. 지난 700여 년 동안 세계를 재패한 제국들은 베네치아-네덜란드-영국-미국과 같은 서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지는 해와 같은 서양과 거대한 땅덩어리와 엄청난 자원과 지구 전체의 3/5 이상의 사람들로 구성된 동양이 눈을 활짝 떠서 위험스럽게 대치하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중에 우리는 좁은 의미에서의 세계의 정치적 관점에서 만이 아니라, 전지구의 문화(명)를 ‘분석, 분리 후의 종합’이라는 서양인의 관점을 따라 지구의 멸망까지 예상해야 되는 어리석은 상황을 벗어나야 할 시점에 이미 이르렀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런 관점은 조그만 개미들이 거대한 코끼리를 해체(분리, 분석)해서 나중에 종합하여 결국 길고 긴 뱀을 만들어버린 형국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대신 처음부터 ‘총체적, 거시적 관점’에서 출발해서 ‘세부적으로 연관된 사항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관점은 우리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서양의 것을 모조리 배재하고 우리만의 관점을 가지려고 옛것을 뒤진다면 이미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또 설령 그렇게 해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동양문화(명)과 서양문화(명)의 전쟁’이라는 어리석은 도식(예: 노스코트 파킨슨, [동양과 서양])에 우리 자신도 휘말리고 말 것입니다. 지난 7백년동안의 전지구적 역사를 살펴보면 동양문화(명)가 서양문화(명)에 제압당했기 때문에, 과연 우리가 동양인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의 동양문화(명)를 대안으로 내세울 것이 있는가를 찾으면, 그렇지 않다고 정직하게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서양인들은 물질문화(명)를 이루었다면 우리는 정신문화(명) 혹은 동양종교를 제시하면 된다는 대안도 결국 물질문화(명)과 정신문화(명)를 분리시키는 이원론의 어리석은 길로 가게 만들 뿐입니다. 만약 물질문화(명)과 정신문화(명) 모두를 포괄하여 하나로 만드는 대안이 없으면,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장차 하나의 지구인이 되어 같이 우주로 나서야 할 서양인에게는 의미없는 헛소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리스 철학의 시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스 신화는 동방의 종교내지 신화에서!


그러면 당장에 생기는 문제는 조그만 개미들이 어떻게 총체적, 거시적 관점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양문화(명)의 시작이라며 서양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의존하는 그리스 철학을 비롯한 그리스 문화(명)는 특이하게도 총체적 시각을 가졌던 점이 드러났습니다(J.P. 베르낭,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유], F.M. 콘포드 [종교에서 철학으로]). 특히 그리스 철학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의 터키의 해안과 인접한 섬들로 이루어진 이오니아 지역의 자연철학자들과 그리스의 이태리 식민지 도시들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이전에 서양의 독창성과 그리고 동양의 미개함을 맹신했던 서양인들은 그리스인들이 타민족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천재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했지요. 그렇지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보이는 두 가지 특징인, 1) 대립상황을 설정하는 것이나, 2) 유비analogy로 설명해내는 방식은,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라 그리스인들의 신화에 이미 내재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초기 철학은 그야말로 신화에 이미 있던 세계의 구조와 체제에 대한 이해를 그대로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정직한 서양학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만, 객관적이어야 할 학자라 할지라도 서양의 우월함, 반대로 말하면 동양의 열등함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 사람들은 이런 명확하게 드러난 유사성에 결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스 초기 철학의 기초가 되었던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가 독창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이웃하고 있던 세상의 배꼽인 아프리카 동북부 내지 팔레스타인 지역과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스에 신화가 유행하기 천 년도 더 되기 전에 이미 전승되던 것에서 차용해온 것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누구에게나 해독이 되어 잘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창조신화(Enuma Elish)가 3500년 전의 구약성경의 창조기사와 유사하고, 다시 이 둘은 그 후에 그리스에서 전승되던 신화와 유사하다는 것을 본문을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또 문자의 발생에 비교해 보아도 그리스와 동방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동방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미 4000여년전 경에 수메르의 상형문자에서 바벨론의 음절문자(일본어와 같은)가 사용되었고, 3200년 전에는 팔레스타인의 우가릿에서는 설형문자 형태를 응용한 22자의 알파벳이 최초로 발명되었습니다. 그리스 문화(명)의 원조인 크레타 섬의 미노아문화(명)는 철저히 동방과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서 선형문자를 사용했지만, 미케네에 함락된 이후 사라졌으며, 현재의 그리스문자의 시원은 동방보다는 훨씬 뒤진 때에 동방알파벳을 기초로 제작된 것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의 첫째, 둘째, 셋째 알파벳(알파, 베타, 감마)의 명칭만 보아도 히브리어(알렙, 베이트, 김멜)와 우가릿어의 명칭에서 바로 차용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문자로 기록된 그리스의 신화를 통해서 그리스 철학의 시원이 만들어졌으며, 그 그리스 신화는 동방의 신화나 구약성경의 창조기사와 같은 데서 원용한 것임이 선명하게 드러난 겁니다.
이런 그리스문화(명)의 시원인 그리스신화에서 그리스철학이 일어났으며, 총체적, 거시적 시각을 가진 그리스철학은 그 신화를 따라서 우주의 기원이나 존재의 문제를 묻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철학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보다 더 근본에 돌아가서 그리스 신화가 본래 의존하였던 동방과 특히 세상의 배꼽에서의 신화 내지 종교에 주목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그것을 다루기 전에, 이전의 글에서 다룬 글인 동쪽으로 이주해간 인류들에게서 나타난 종교현상과는 정반대로,서쪽으로 간 인류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인류는 동쪽 혹은 서쪽을 향하여 어떻게 이동방향을 선택했는가?


동북부 아프리카에서 팔레스타인에 이르는 지역은 세 대륙(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이 접합하는 곳으로 세상의 배꼽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이 배꼽에서 세상의 문화(명)가 분지되어 나간 흔적을 우리는 살펴보고 있는데, 그 동쪽으로 나간 인류들이 이룬 총체적 삶의 행태를 문화(명)의 출발점이 되는 종교들이 다음과 같았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배꼽에서 서쪽으로 흩어져 나간 무리들은 어떤 문화(명)를 이루었으며, 이들이 가진 종교적 개념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먼저 최초의 인류들이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서 이주해 나갔던 상황을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1) 이주 시에 우선적으로 택할 방향이 해가 뜨는 동쪽일까 혹은 해가 지는 서쪽일까 하는 겁니다. 해가 지는 서쪽보다는 정반대 방향인 동쪽으로 인류가 이동하리라는 추론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서쪽으로 이주하는 것은 아마 어쩔 수 없는 혹은 알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2) 서방의 유럽대륙과 동방의 아시아대륙(메소포타미아, 인도대륙, 중국대륙과 광대한 초원에서 북극) 전체의 사이즈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 비교는 아마 게임이 안될 정도로 유럽이 작다는 것을 지구본을 돌려보면 초등학생이라도 당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3) 하지만 조금 더 복잡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배꼽에서 인류가 이동해 나가기에 얼마나 편리했느냐 하는 것인데 지형과 지리의 문제입니다. 동쪽의 메소포타미아는 광활하지만 두 강이 흘러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복닥거리며 문화(명)를 이루었습니다. 거기서 더 동쪽으로 이동하면 동에서 서로 길게 뻗어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우는 히말라야 산맥이 남쪽과 북쪽의 거대 지형으로 나눕니다. 그 곳에서 인류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진하면 인도라는 거대한 섬과 같은 대륙에 도달하여 매우 독특한 문화(명)를 이루었습니다. 거기서 동쪽으로 더 나가면 아시아 남부와 남중국해의 여러 도서지역에 도달합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진하면 거대한 초원지대와 산맥들과 사막들이 뒤섞인 광대한 지역으로 오랫동안 동서간의 문화(명)의 중간통로 역할을 했던 지역을 마주칩니다. 거기서 더 동쪽으로 이동하면 드디어 중국대륙과 더 동쪽의 태평양 연안에 마주하며, 더 동북쪽으로 나가서 베링해를 건너면 남북으로 길게 뻗은 북아메리카와 이어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쪽은 어떨까요? 열려있는 동쪽을 향한 길에 비해서는 그 진출을 철저히 방해하는 다양한 종류의 산들과 그 속의 깊은 삼림들,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흘러간 강들로 분리된 땅이 유럽입니다. 바로 이런 지리·지형적인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러시아를 제외한 동유럽과 서유럽 전체가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입니다. 무려 2200년 전에 통일을 이룬 중국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거지요. 중국은 너무 빨리 통일되었고, 유럽은 너무 늦게 통일되고 있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동방으로 진출한 후에 뒤늦게 서쪽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가졌을 심리와 사고방식과 삶의 자세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세상에 모든 것을 처음으로 개척해가는 사람들의 자세는 물론 아니었겠지요. 혹시 모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이미 좋은 곳은 다른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난 뒤에 남은 빈자리를 찾아가는 인간 군상들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모습을 이제 본격적으로 역사가 시작되고 문화(명)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뜰 수 없듯이, 문화(명)가 서쪽에서 시작된 일이 없었다!는 겁니다.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유럽문화(명) 즉 그리스 문화(명)는 동방바라기였다! 


그동안 동양에서 이룬 문화(명)는 지금부터 거의 5천년 전까지 아주 많이 밝혀졌습니다. 이 시기의 동서양을 서로 대비하면, 서양의 출발은 엄청나게 늦었고 정말 보잘 것 없을 뿐 아니라 사실상 황무지와 같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세상의 배꼽이나 이집트와 문화(명)적으로 늘 의존적 상관관계를 가지면서 그 영향을 흡수하였던 그리스의 섬인 크레타도 기껏해야 B.C.1500년까지만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B.C.1200년 경에 그리스 본토에 조성한 식민지인 미케네의 역습을 받아 파멸되었고, 다시 그 크레타는 그리스 북쪽으로부터 도래한 야만족인 도리아인의 공습으로 멸망한 후에 그리스 문화(명)가 아예 초토화되어서 무려 4백년이상을 깜깜한 암흑기를 지납니다. 그러다가 B.C.800년 경부터 그리스 도서지역인 이오니아 해안부터 다시 문화(명)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시초라 여겨지는 세 자연철학자들(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의 고향인 밀레토스는 지금의 터키 지역에 바짝 붙어있는 섬입니다. 정상적으로 말하자면 이 섬은 터키의 영역이 되어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섬에 철저히 무관심한 육지출신의 지금의 터키를 비롯한 소아시아를 차지했던 사람들, 그리고 한사코 섬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된(이 점에서는 일본인과 매우 유사!) 바다의 사람인 그리스인들이 합작해서 만든 작품이 ‘밀레토스’라는 그리스인의 식민지였으며, 그 당시 눈을 동방으로 고정시켜 동방을 대상으로 하는 최대 무역항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을 처음 대하면서 철학자들의 고향을 지리적으로 검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리스 철학이 그리스 본토에서 시작되지 않았고 바로 이 식민지이며 주로 섬으로 구성된 이오니아 지역(터키 서쪽 끝단)에서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제1세대 철학자들을 이은, 제2세대의 철학자들(크세노파네스,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제논)도 모조리 이오니아를 떠날 뿐 아니라 그리스조차도 버리고 서쪽으로 멀리 나가서 그리스가 조성한 이태리 지역의 식민지들(엘레아, 크로톤, 아크라가스)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정작 본격적인 그리스 본토에서의 철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제3세대 철학자들인 소피스트와 그 마지막인 소크라테스가 역사적으로 그리스가 페르샤를 이긴 두 역사적 전투(마라톤전투 B.C.490, 살라미스전투 B.C.480)에서 스파르타와 30여년의 전쟁을 벌인 펠로포네소스전쟁(B.C.430~403)까지 그리스와 이오니아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던 아테네에서 활동했습니다.     
이들 그리스인들이 눈을 서쪽으로 돌릴 이유는 미개한 이태리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하려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관심과 눈이 온통 동쪽에 있는 모든 문화(명)의 출발점인 세상의 배꼽과 메소포타미아로 돌려져 있었던 겁니다. B.C.10 세기경의 헬레네의 납치로 발생한 트로이 전쟁은 바로 이런 후발주자인 서방이 동방인 트로이를 이기려는 심리적 열등감이라는 패턴을 역사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패턴을 후대에 서방에서는 그리스 대신 로마가 이어받아서 동방 출신인 카르타고와의 두 번의 전쟁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카르타고의 명장인 한니발(‘한’(한나)는 ‘자비’, ‘발’은   ‘바알’ 즉 ‘바알의 은혜를 받은 자’)을 비롯한 수많은 이름들이나 관습과 문화가 철저히 세상의 배꼽이나 동방(두로와 시돈)에서 온 종교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에서 카르타고의 동방적 기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들 그리스인들의 문화(명)는 철저히 동방바라기라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의식이 그리스인들에게서 폭발적으로 드러난 시간은 바로 동방,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개화된 정권인 페르샤-메디아 제국이 일어난 역사입니다. 페르샤 이전의 패권국인 앗시리아 제국이나 신바벨론 제국은 정복한 곳의 문화와 종교를 철저히 말살하고 그 민족정기를 없애기 위해서 지배국들의 백성들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서 많은 원한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효과적 제국운영기술이나 자체 생산을 조성하는 기반을 만들지 않았고 단지 전쟁을 통한 약탈경제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정권은 대개 백년 정도나 그 이하로 유지될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슬기로운 페르샤의 고레스(그리스식으로는 Cyrus) 대왕은 지배하는 나라의 종교, 문화, 인민의 생존권을 존중하였으며, 다만 정치적, 경제적 패권만 장악하는, 고대에서는 매우 드문 현명한 제국운영체제를 창조해 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알렉산더 대왕이 이 나라를 200여년 만에 갑자기 무너트리지 않았더라면 그 후 수백 년 이상으로 패권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견고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국이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이집트의 패권을 장악한 B.C.540 년경에 힘을 뻗어서 관심을 집중한 곳이, 바로 소아시아의 서쪽 끝에서 주로 섬들에 식민지를 이루어서 동방의 젖줄에서 에너지를 얻으며 행복하게 자생하고 있던, 그리스인들이 통치하던 이오니아 지역이었습니다. 이렇게 동방에서 힘이 서쪽으로 밀려왔을 때 페르샤에 복종하지 않던, 1세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고향이자 최대 항구였던 밀레토스가 파괴되었고, 2세대 철학자들은 서쪽으로 도망쳐서 둥지를 틀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즉 페르샤의 패권장악 후(B.C.540) 50년이 채 안되어서 서양이 동양을 극복하는 계기가 마련된 마라톤전투(B.C.490)가 일어난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과거 600여년의 역사에서 서양문화(명)가 동양문화(명)를 앞지르게 되었을까요? 핵심적으로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 자세한 것은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1) 유럽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 바다의 문화(명)였다는 겁니다. 인간 활동을 스스로 움직이는 힘과 다른 힘을 빌려서 힘을 배가시키는 것으로 나누어서 생각한다면, 세계를 제패하고 문화(명)를 지배하였던 방식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인간의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며, 전쟁시에는 보병이 활약하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이 도구 중에서 효과적인 도구인 짐승을 이용하는 것인데, 전쟁 시에는 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셋째, 말보다 훨씬 큰 도구로 지구의 2/3에 해당하는 면적을 가진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도구를 만드는 건데, 바로 강이나 인근 도서 정도가 아니라 해양을 가로지르는 함선을 운용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셋째 것을 이루기에 그리스와 그를 이은 로마, 베네치아, 네덜란드, 영국, 미국 모두 완벽했습니다. 먼저는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였지만 망망한 대양과 유사하게 여겨졌던 ‘우리의 바다’ nos mare, 지중해를 오랫동안 돌아다니면서 장차 대양을 확실하게 지배하는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자 훨씬 더 넓고 거친 대서양과 태평양과 인도양을 정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동양은 첫째와 둘째를 완성한 후에는 땅에서 바다로 나올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서양에서 이렇게 셋째 방식이 출발하게 된 계기는 바로 섬사람 그리스인들이 바다의 민족이었다는 겁니다.

2) 위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동방은 세상의 배꼽에서 점점 지리적으로 문화(명)적으로 멀어져 갔지만, 서양은 정반대였습니다. 즉 서양은 역사적으로 세상의 배꼽이 마련한 세 가지 강력한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아주 밀접한 관련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가졌왔다는 겁니다. 이것이 종교와 문화(명)를 이원론적으로 바라본 동방과는 천지 차이로 서양이 일원론적으로 보는 관점을 만들어낸 겁니다. 절대신 앞에서 문화(명)에 대해 절대적으로 하나의 관점을 가져야 일관된 진리체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010-6844-0609/segensong@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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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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