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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휴전선 걷기 동행 6

2019년 5월호(11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7. 1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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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 여행기 나라다운 나라, 나다운 나 6]

아들과 휴전선 걷기 동행 6

아들이 손을 쭈욱 뻗어 내민「아빠가 되면 바보가 되나 봐」(김동화 글/그림)가 눈에 번쩍 들어온다.

“아들이 읽을 게 아니라 아빠가 읽을 책을 골랐구만. 꽤 늘었어. 아빠 골리는 거. 그래, 맞다. 아빠가 되면서 바보가 되었지만 또 당당해지기도 했지.”

‘바보는 당당한 거야. 남들이 보면 바보지만 바보는 자기가 바보가 절대 아니거든.’아들의 혼잣말이 아빠의 귀에 들어온다. 책방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만화책장을 넘긴다. 나는 한참을 찾아야 했다. 한 권을 고른 게 아니라 몇 분 사이에 열권이나 골라놓았다.

아들이 다가왔다. 만화책을 펼쳐 아빠의 얼굴에 들이민다.
빨랫줄에 빨강·노랑·파랑·회색 양말들이 걸려 있는 그림 위에 써 있는 글씨.
‘우리 아버지는 바본가 봐. 젤 먼저 골라 신는다는 게 만날 구멍 난 양말이라니깐.’
 
“그래... 아버지가 되면 바보가 되나봐.”
 
“아까 말 취소. 아빠는 바보가 아니네. 구멍 난 양말은 안 신잖아. 아빤. 꼭 직접 꿰매 신잖아. 몇 번이고 청승맞게. 근검절약이라나 뭐라나 하며. 가끔 왼쪽 오른쪽 짝짝이 양말을 신기도 하지?”이러면서 골라 쌓아놓은 책들을 본다.
 
“이걸 다? 짊어지고 가게? 진짜 완전무장하고 행군하려고? 아님 나보고 집에 갖다 놓으란 건... 설마 아니지?”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규칙위반은 하고 싶지 않다. 이 중 하나만 아들이 골라줄래?”
 
“다 두꺼운 책들이네. 음...”「월북한 천재 문인들」(이만재 평론집)을 골라 내민다.
 
‘왜 이 책?’하는 표정으로 아들을 보았을 것이다.
“걔 중 그래도 제일 얇은 걸루 골랐지. 아빠를 끔찍하게 생각해주는 아들의 마음!”
이런 류의 책은 아빠 서재에서 못 본 것 같다며, 마침 북쪽 땅을 많이 보고 걸어야 될 테니 하며 책 표지를 가리킨다.
 
‘남과 북이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면서도 추구하는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지리적인 단절이 있다고 해서, 막무가내 한국문학의 카테고리에서 도외시하거나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글로 쓰인 문예작품이면 모두를 한국문학에 포용해야 한다.’
 
“아빠도 같은 뜻이지?”
우리는 출판단지의 버스정류장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서울 신촌으로 아들을 보내는 버스를 기다린다. 문득 생각이 든다.
‘교육은 사제 간의 극단적인 의견 차이를 완화시켜 양쪽이 동시에 선생이며 학생이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립을 해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파울로 프레리
 
부자간은 더욱 그러하리라. 아들 손을 잡아본다. 얼마만인가.
 
“참, 책을 사면 아빤 꼭 산 날짜와 장소를 적어두지?”하며 만화책 앞장을 펼쳐 보인다.
 
“이번엔 서로 책을 바꿔서 써볼까?”
서로의 제안에 둘은 고개를 동시에 끄덕거린다. 나는 아들이 산 만화책에 톨스토이를 썼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시간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 톨스토이
 
버스가 왔고 아들에게서 건네받은 북한 문인들의 글이 들어있는 책을 번쩍 들어 버스 안의 아들에게로 흔들어 손짓한다. 아들도 버스에서 그 만화책을 흔들며 대답한다. 버스가 사라진 뒤 아들이 방금 전까지 앉았던 자리에 앉는다. 아직도 아들의 궁둥이 열 기운이 남아있다. 내 엉덩이로 그 기운이 옮겨온다. 뭐라 썼나? 책을 펼친다.
 
‘포기하지 않는 아빠가 멋지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아빠는 불안해.
가슴 짐, 등짐 가볍게 하고 무조건 즐겁게 다녀야 하는 거야.
약속! 사랑해! - 영원히 못된 아들이’

 

또바기학당, 문지기(文知己) 오동명
momsal2000@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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