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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루 앞둔 제자 영한에게…

2019년 12월호(12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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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24]

결혼을 하루 앞둔 제자 영한에게…

영한아! 이제 하루만 지나면 너의 결혼식이구나. 대학원생이던 꼬꼬마가 어엿한 숙녀가 되어 결혼을 한다니 더구나 그 성스러운 결혼식의 주례를 나에게 맡겨주다니 조금은 떨리지만 고맙고 영광스럽다. 

소개로 만난 너의 반쪽 신랑은 국내굴지 기업의 로봇 인텔리전스팀에서 일하는 촉망받는 청년이더구나.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신부인 너 또한 문화재단에서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이끌고 있으니 앞으로 너희 가정의 행보가 기대된다. 
처음 주례 부탁을 받았을 때 당황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부담감이 밀려왔었어. 주례라는 건 신랑 신부의 예식을 주관하는 자리이고 결혼생활의 본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인데… 과연 내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 되돌아보게 되더구나. 그러다가 부담감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제자의 결혼을 축하해 주고 싶었고 꼭 당부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라 주례 자리를 수락하게 되었단다. 내일 결혼식장에서 주례사로 너희 부부에게 딱 세 가지 미션을 말해주려고 한다.

첫째, 신랑과 신부는 서로의 성장을 응원해주는 지지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세상이 바뀌어 사회적 성취와 성공은 남녀의 구분이 없어지고 실제로 대학에 가면 성적도, 리더십도 여학생이 더 좋은 경우가 많더구나. 많은 여성 후배들이 결혼을 두려워하는 것은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성취가 꺾일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또한 남성들의 경우는 아마도 자유로움을 많이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야. 
나는 결혼을 하고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적 안정을 바탕으로 더욱 일에 집중 할 수 있었단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일과 우리 분야를 잘 이해해주는 배우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도 처음부터 그렇게 너그러운 분은 아니었어. 우리나라 보통의 중년 남성처럼 오히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편이었지. 하지만 내가 고마워하는 것은 자신의 아내가 얼마나 자기의 일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인정해주고 지지해 주었다는 점이야. 그 고마움을 알기에 나도 남편이 결혼으로 인해 못하는 일은 없는지 포기하는 일은 없는지 살피며 살아가고 있어. 최대한 남편의 자유와 의사를 존중해주려고 노력한단다. 
남편은 아내를 향해 아내는 남편을 향해 그의 꿈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 꿈을 이루게 해 줄 수 있는지, 내가 도와줄 것은 무엇인지… 서로의 성장을 열렬히 응원해주는 지지자가 되어주길 바래.

둘째, 신랑과 신부는 서로 상대방 부모님의 효자, 효녀가 되어주길 바란다. 내가 지금도 믿고 있는 것은 누군가가 효자, 효녀라면 기본적으로 인간 됨됨이가 바른 사람이라는 것이란다.
결혼과 동시에 인간관계의 확장으로 혼란스럽고 조금은 번거로울 수 있겠지만 그런 확장된 인간관계를 잘 운영해가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 될 거야. 그리고 꼭 물질적으로 잘 해야만 효자, 효녀인 것은 아니지.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는 것, 알아서 매사에 어른답게 잘 하는 것,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이런 것이 효도의 기본이란다. 

마지막으로 오늘보다 5년 뒤, 또 그보다는 10년 뒤, 20년 뒤가 더 행복하도록 끝없이 노력해 주길 바란다. 나에게 주례를 부탁했을 때 내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되더구나. 결혼식을 했을 때가 벌써 25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혼 때보다는 5년 뒤, 그리고 그보다는 10년 뒤가, 또 그보다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단다. 그러고 나서 나의 결혼생활이 썩 괜찮았구나 느꼈을 때 주례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 물론 그 시간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2년 전 나의 건강문제로 우리 가정도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그런 인생의 고난과 위기는 사람을 더욱 강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내일 결혼하는 너희 부부도 결혼 생활을 하다보면 탄탄대로, 고속도로 같은 길을 만나다가도 거친 돌이 많은 길, 가시덤불이 있는 길을 만날 수도 있어. 그런 고난이 다가올 때 서로를 신뢰하고 두 손 꽉 잡고 그 어두운 길을 헤쳐나간다면 분명히 인생의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오늘보다 5년 뒤, 그리고 그보다는 10년, 20년 뒤가 더 행복한 부부의 모습으로 남을 수 있을 거야.

영한아! 내일이면 새 가정을 꾸리는 신부가 되어있겠지? 나에게 주례를 맡겨주어 다시 한 번 고맙구나.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너의 결혼을 축하한다. 너라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내일 만나자.

 

 

 

 

 

 

 

 

 

예술의 전당 교육사업부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2>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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