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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망망대해를 알어?” 요트로 대서양을 횡단한 배헌종 선장을 만나다!

2020년 1월호(12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 2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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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니들이 망망대해를 알어?”
요트로 대서양을 횡단한 배헌종 선장을 만나다!

 

7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거친 바다를 누비며 항해하는 배헌종 선장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인천 왕산마리나에 정박해 있는 ‘Tamango’요트에 오르니, 흔들흔들 금방이라도 출항할 것 같은 설레임으로 가득했습니다. 

남자들의 로망인 요트에 오르다
원래 제조업을 운영했어요. 쉰 살 되던 해에 너무 일만 하다 죽는 게 아닌가 해서 마누라 자식보다 한번쯤 나만의 인생을 지내봐야하겠다 결심했습니다. 요트를 가지고 세계 일주를 해보자 한 거죠. 벌써 9~10년 전 일이네요. 
첫 항해를 위해 한 일 년 동안 준비를 했습니다. 인터넷이나 책으로 이론을 공부하고, 다른 사람이 모는 배를 타보다가, 배를 구입하기로 했죠. 크로아티아에 가서 일주일 정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배를 계약했는데, 이것저것 준비할게 꽤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크루징 요트는 떠다니는 집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출항을 위해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게 뻥을 쳤어요. 내가 보트를 한 20년 정도 탔다고 말이죠.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면 항해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속으로는 무서웠는지 스키퍼(Skipper, 작은 배의 선장)를 한명 고용했어요. 영국 사람으로 경험이 많은 사람인데, 사실대로 얘기했죠. “난 생초보다. 사실 너한테 좀 배우려고 한다.”고 하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처음부터 돛을 펴려고 하지 말고, 자동차 운전하는 것처럼 엔진으로 다니면서 익숙해지면 된다.” 그러더라고요. 경험을 중요시 하는 영국 스타일의 가르침이었죠. 엔진으로 하루 반 정도 요트 항해를 하니, 그제야 ‘엔진 소리가 너무 시끄럽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세일을 한 번 펴보자며 하나하나 가르쳐줘서 열심히 배워갔습니다. 그나마 예전부터 작은 경비행기를 몰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바다에서 지도를 가지고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크로아티아에서 그리스의 코린토스 운하를 건너, 라브리온(아테네의 항구)까지의 일주일에 걸친 첫 항해는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항해를 마치고 배를 화물선에 실어 부산에 들여왔어요. 그런데 웬 걸? 배를 일반 화물로 취급해 하역창고에서 보세창고로 옮겨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 비용으로 당시에 2,000만원을 내랍니다. 요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더욱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리 하면 어떡하냐고 부산 세관장과 싸우다시피 해서 겨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들어오는 배는 일반 화물로 취급하지 않고 선상통과를 하도록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요트를 들여와 국내에서 두 바퀴 세일링을 했습니다.


대서양 횡단을 시도하다
국내를 세일링하며 요트가 손에 익숙해질 무렵, 월드크루징클럽(ARC)을 알게 되었습니다. 월드크루징클럽(ARC)에서는 여러 대회를 하는데, 그 중 대서양 횡단을 하는 랠리가 있어요. 저는 당시에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횡단한 경험이 없었기에, 남들 갈 때 같이 가면 좋겠다 싶어 참가를 신청했죠. 또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세일링을 하는지 무척 궁금했기도 했고요. 
요트를 새로 구입해 2009년 9월 달에 프랑스 니스로 날아갔습니다.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출발 전에 세미나를 들어야 하고, 안전에 관련된 규정들을 배울뿐 아니라 보험에도 가입해야 했습니다. 사실 이런 자료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궁금했어요. 유럽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준비를 하고 대양을 여행하는지 직접 보니, 그 자료의 수준과 역량에 있어서 한국과는 정말 천지차이였습니다. 
니스에서 지중해를 건너고 정비를 위해 지브롤터에 들어갔습니다. 도착하니 다들 저에게 ARC 랠리에 참가하냐고 다들 물어보더라고요. 왜 이렇게 묻나 싶었는데, 유럽 사람들한테는 이게 평생소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평생소원을 얼굴이 노란 동양인이 하니 무척 부러웠던 거죠. 지브롤터에서 20일을 머물고 출발지인 라스팔마스항구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15일 정도 세미나와 파티도 하며 준비를 했어요. 참가하는 배의 국기게양식도 하는데 저는 태극기를 게양하는데 교민들이 같이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사관에 문의를 했죠. 그런데 아무 관심이 없더라고요. “라스팔마스 항구에 태극기를 올린 적이 있느냐?”라고 해보았지만 묵묵부답! 그래서 겨우 참가하는 다른 나라 선원들을 빌려서 게양식을 했습니다.
라스팔마스에서 220척이 출항을 했어요. 제 배보다 5배 정도 되는 범선도 있는데, 그런 배들은 유럽의 역사 깊은 가문에 속한 배들입니다. 가문에서 비용을 대고 크루들을 고용해 교육시키고 운영을 하는 거죠. 유럽 조상들이 해적일지는 몰라도 아무튼 몇 백 년에 걸쳐 가문에서 배를 관리하고 운영합니다. 바로 이런 배들이 대서양 횡단 랠리를 하는데 호위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죠. 
총 21일 걸려서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라스팔마스에서 대서양을 건너, 중남미의 세인트루시아(영국령)로 갔습니다. 랠리가 벌어지는 시기는 가장 날씨가 좋은 때입니다. 이런 기상들은 영국에서 400년간의 항해기록을 가지고 통계를 낸 자료에 근거합니다. 한마디로 자기들이 해적 활동을 할 때부터 만든 기록이죠. 우리하고는 아예 게임이 되지 않더군요. 이 대서양 횡단 랠리에 포르투갈, 스페인 해군들도 순시를 하면서 비상 상황에 대처 해주고, 헬리콥터로 대기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움직이는 항적은 다 전산에 처리가 됩니다. 

잠도 못자고, 세일(돛)도 찢겨나가고

출발하기 2~3일 전에는 잠을 잘 못잡니다. 설레거든요. 출항을 하고나서는 긴장을 하느라 또 잠을 잘 못자죠. 처음 대서양을 건너니까요. 바람을 타고 가는 요트는 순풍방향으로 가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한 번 출발하면 되돌아 올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간은 정신없이 지내다가, 그 다음 일주일간은 정말 외롭습니다. 같이 간 크루가 있어도 말이죠. 매일 ‘얼마 남았지’만 체크합니다. 지겹기까지 해요. 그러다 2주가 지나가면 적응이 됩니다. 사람 마음이 그런 것 같아요. 
처음 대서양 횡단할 때는 사고가 많았습니다. 대서양 같이 거지같은 바다는 처음 봤어요.(웃음) 하루 종일 배가 흔들흔들 롤링을 해요. 배가 뒤에서 부는 바람으로 파도에 따라 출렁출렁하면서 가는데 굉장히 피곤합니다. 밤에는 크루와 교대로 깨어 세일(돛)을 지킵니다. 그날도 크루한테 맡기고 잠을 청했는데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깨어서 보니 세일(돛)이 없는 거예요. 바람에 끊어져서 배 아래에 걸쳐 있더라고요. 그걸 끌어올리다가 손을 다치기도 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세인트루시아에 도착해 수리를 했습니다. 

철저한 외로움과의 싸움
파나마에서 갈라파고스를 거쳐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까지 남태평양을 21일 동안 걸려 간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외로워서 울면서 갔죠. 부모님 생각도 나고, 예전에 싸우던 친구생각까지… 내가 살아온 60여 년 동안의 모든 것이 스쳐가는 거예요. 몇 백 킬로미너 내에 아무도 없는 가운데 그 누구도 저를 구해줄 수도 없는 외로움을 경험했지요. 불교신자들이 벽을 보고 도를 닦는다고 하는데 항해도 비슷한 것 같아요. 바쁘게 일하며 살다보면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왜 살아야하는지 고민조차도 못하는 경우가 많잖습니까? 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아무도 없는 나 혼자만의 여행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시간이 되죠. 저는 세일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70세 ‘똘아이’ 세일링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다
나이 들면 몸과 마음이 위축이 됩니다. 제 또래를 보면 골프치고 조금 움직이는 것이 전부인데, 그래서 저보고 ‘똘아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 ‘똘아이’는 세일링을 하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요. 이제 70세가 되어 힘이 좀 달려 젊은 사람들과 같이 다니지만, 여전히 활력이 넘칩니다. 바다에서는 지위도, 재물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어요. 바다 한 가운데서 뭐 할 거예요? 생존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거죠. 그런 면에서 눈동자를 흐리멍텅하게 하고 살지 않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요트로 대양횡단 할 때 제일 중요한 것, 자신감!
심리적인 것이 제일 큽니다. 그중 자신감이 중요한데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 한 가운데 가면 그 누가 도와주지 않고, 설사 엔진이 고장 나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스스로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풀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마주치게 됩니다. 물론 자신감이 없다면 그 이후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한 달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일 년을 준비합니다. 그 일 년이란 것이 즐거움이거든요. 준비하는 것부터가 항해입니다. 지금도 요트 2천여 척이 세계를 돌고 있어요. 항해 시 어려움들을 극복하면서 다른 분야에도 그것을 적용할 수 있는 체력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같이 다닐 크루들이 있으면 지중해, 그리스까지 가고 싶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가 이제 힘이 좀 달려서요. 저 혼자 하는 것보다 젊은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리고, 저의 경험을 가르쳐주는 것들이 좋습니다. 그래서 작년 12월 말부터 시작하는 동남아시아까지 가는 항해도 젊은 크루들과 같이 갑니다. 저는 처음부터 배우느라 생고생했지만, 하나하나 같이 하면서 보여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일링 문화에 대한 체계를 세우고자 합니다. 그래야 단절 되지 않고 이어질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말로만 망망대해를 이야기하는데,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에게 이런 세일링 기회를 주고 싶어도, 다들 공부에 매여서 오지를 않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만 하는 공부가 아니라, 바다를 통해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고 싶은데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학생들 혹은 젊은이들과 많은 부분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Tamango 요트 배헌종 선장
inwangco@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3>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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