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한국미술 인문학 비평 10]
비록 전체가 약간 흐릿하지만 명확하게 확 눈에 띄는 게 있지 않습니까? 항해하기 위해 견인되는 듯한, 혹은 항해를 마치고 기항하려는 듯한 배입니다. 하지만 서양적 군함의 압도적 위용은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대신 색채감이 거의 없이 오직 흐릿하게 외곽과 실루엣만 쳐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왼쪽으로 기울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자아가 약한 사람이 고개를 약간 꺾은 채로 대화하는 것과 같이. 거기다가 이 배는 바다 속에 잠긴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군요. 또 배 밑으로는 푸른색으로 채색된 것으로 보아 다양한 바람과 조류의 흐름을 보여주는 바다가 틀림없지만, 이마저도 강렬하지 않고 희미하게 처리되었습니다. 중견작가 김동석의 회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나 제목은 ‘어머니’, ‘대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사군자’, ‘환상’, ‘낭만주의’, ‘세발자전거’라고 합니다. 그중에 출발은 어머니인데, 그것은 인간의 얼굴이 아닌 대지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낭만, 환상 등으로 현실 세계에서 떠나 자기에게 침잠해 들어가 여정을 펼치는 모든 작품의 출발점은 어머니의 품입니다. 거기서 떠나 자아를 발견하는 첫 여정은 홀로 등장하는 어린 시절에 타던 세발자전거로 시작합니다.
그러다 드디어 어른을 연상하게 하는 도구의 등장인 배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이 거의 유일합니다. 한편으로는 회화를 통해 깨끗한 동심의 세계를 추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는 열망을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무척 힘들어 하는 엄마 품을 막 떠난 어린아이, 혹은 어쩔 수 없이 홀로의 여정에 떠밀려서 떠나는 어른-아이의 모습을 봅니다. 물론 대 항해시절 세계를 정복해 나가던, 서양의 헛된 욕망, 위선, 허무로 가득찬 배보다 정직하게 자아를 찾아가는 이런 배가 훨씬 진실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과 역사에서의 초월은 매우 쉽게 그것으로부터 도피가 되어, 또 다른 허무, 위선, 욕망의 자취를 낳을 것입니다. 현실과 역사를 맞닥트리는 용기를 발휘하지 못한 동양종교와 미술이 보인 것처럼 말입니다.
정반대로 이런 탁월한 회화실력을 가진 작가가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엄마보다도 영원히 부모가 되어줄 분과 관계한다면, 어떤 활기찬 작품을 창조해 낼 지 즐겁게 상상해 보는 것은 독자의 창조적 자유에 속하겠지요?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배를 그리고 싶나요?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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