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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영과 첨성대

2020년 2월호(12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4. 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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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역사칼럼 17]

알영과 첨성대

 

 알영이란 이름은 ‘알영정’이란 우물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알영은 알영정에 사는 용의 오른쪽 옆구리 배를 가르고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마치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박혁거세 탄생 신화에는 불교적 윤색이 없는 반면 알영 신화는 불교적 윤색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두 탄생 신화의 완벽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알영의 탄생 신화는 불교 수용 이후 만들어졌고 ‘여성’ 탄생 신화인 점을 고려하면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때나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알영의 탄생 신화는 처음 우물에서 태어났던 이야기에서 나중에 용의 배를 가르고 태어났다거나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로 재편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구려, 백제와 달리 유일하게 신라에서만 여왕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을 ‘골품제도’의 ‘성골의 남자가 다했다’라는 ‘성골남진(聖骨男盡)’으로 보고 있지만, 여성 탄생 신화를 갖고 있었던 신라의 여성 존중 전통도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선덕여왕의 ‘성스러운 조상을 가진 황제 고모’란 뜻의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존호의 ‘성조’는 가깝게는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 멀게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말할 수도 있지만, 박혁거세와 더불어 두 성인[二聖]으로 추앙받았던 알영의 후손이라는 의미도 있답니다.

 첨성대는 별을 바라보는 천문대입니다. 천문대로 보지 않는 견해도 있지만 적어도 나라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여기서 하늘의 별을 관측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첨성대의 생김새이지요. 선덕여왕이 세운 첨성대의 생김새는 마치 땅에서 솟은 우물 모양으로 옆구리 쪽에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알영이 우물에서 나온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알영탄생 신화와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둘은 관련성이 없을까요? 알영 신화를 건축물로 형상화한 게 첨성대라고 생각해 봅니다. 첨성대의 모양은 우물 모양이고, 우물에는 용이 살고, 첨성대의 옆구리 구멍은 용의 옆구리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황사의 우물에도 용이 살고 있었고 용의 딸인 태조 왕건의 외할머니도 우물을 통해 바다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합니다.

 첨성대는 알영의 탄생 신화를 건축물로 형상화한 신전입니다. 신전하면 남성 신전을 떠올리기 쉽지만 첨성대는 알영 신화를 담고 있는 여성 신전이지요. 여성 신전이 천 년 전 신라의 수도 경주 한복판에 세워진 거랍니다. 그동안 박혁거세의 신화에 묻혀 알영 신화는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그러나 새에게 두 날개가 있듯이 세상의 반도 여성이지요. 신화도 마찬가지랍니다.

 위 글은 필자가 2020년 1월에 출간한 <<나만의 한국사>>란 책의 일부분입니다. ‘나만의’란 뜻은 ‘나만의 당신’처럼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동안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에 글을 싣고 독자분들과 소통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2020년 새해 건강하시고 운수대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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