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학교, 가정, 지역주민 모두가 아이들의 보호자, 선생님이 되면 어떨까요?

2020년 2월호(12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4. 4. 16:11

본문

학교, 가정, 지역주민 모두가 
아이들의 보호자, 선생님이 되면 어떨까요?

 

갑작스러운 사고… 기간제 교사에서 학교사회복지사가 되기까지
30대 후반,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순직한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책임져야 했던 저는 기간제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며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덧 50을 훌쩍 넘기는 나이가 되었지요. 100세 시대에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나이가 더 들면 일할 학교를 찾는 게 쉽지만은 않아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2의 직업을 생각하고 있을 즈음, 동료 교사로부터 사회복지를 공부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마침 근무하던 중학교에 교육복지실이 있어 복지사라는 직업이 낯설지만은 않았거든요, 4년 동안 담임교사로 근무하면서 교육취약계층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사제동행 및 빛깔있는 학급 운영, 교복 및 생필품 지원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추진한 공로로 교육감 표창까지 받았으니 이미 교육복지에 발을 들여 놓은 셈이었지요. 교사를 그만두면 학교에서 복지사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2년 후, 생각은 현실이 되어 군포의 한 중학교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되었답니다. 그곳에서 맡게 된 ‘라고 음먹은 대로 될지어다’의 ‘오바마교실’은 어쩌면 나에게는 우연이 아닌, 운명적인 일이 아니었을까요?

‘오바마 교실’을 소개합니다.
학교사회복지사는 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도 생소한,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입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군포중학교에서는 2010년 4월부터 시작하여 10년째 진행하고 있는 야간돌봄교실인 ‘오바마교실’을 담당하고 있어 오후 1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을 하죠. 군포중학교는 저소득 가정과 다문화가정 등 집중지원대상의 비율이 높아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저녁 식사와 문화 활동, 학습 멘토링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매년 3월 새학기가 되면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을 만나 필요를 살핍니다. 그리고 필요한 프로그램과 자원봉사자들을 발굴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죠. 그 후 1학기 혹은 1년 동안 프로그램에 잘 출석하도록 유도하면서,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께 피드백을 받아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 관찰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저의 업무입니다. 교사가 아닌 복지사로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는, 다른 학생들이 그 학생을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이 쓰여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요. 복지사가 만나는 아이들은 형편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바마 교실은 선별적인 학생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군포중학교 학생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이루어지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소중한 시간들
오바마 프로그램은 정규 수업과 같은 강제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약속한 시간에 아이들이 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게다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을 때는 참 난감하죠. 특히 1:1 멘토링 시간에 선생님은 와 있는데, 아이가 안 오면 입술이 바싹 마르고 애가 탑니다. 기다리는 선생님께도 미안하고,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도 되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면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잠들었다거나, 게임을 하느라 시간을 놓쳤다고 할 때는 힘이 쭉 빠지죠. 이때는 따끔하게 훈계를 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약속시간에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나 싶어 낙심이 될 때도 있습니다.
힘들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멘토 선생님과 친해지고 신뢰가 쌓이면서 출석률도 높아지고 학습 태도가 좋아지는 아이들도 많거든요. 은아라고 하는 여학생이 있는데 1학기 내내 멘토링 수업에 흥미가 없었어요. 그러다 2학기에 새로운 대학생 언니 멘토를 만났는데 태도가 달라졌어요. 너그럽게 자신을 이해해 주는 멘토 선생님과 만나면서, 수업도 빠지지 않고 늦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마지막 수업에는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을 많이 아쉬워했죠. 
지난해 9월부터는 학습 멘토링 외에도, 재능기부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코딩이나 포토샵 수업도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런 수업은 학교에서 접하기 어려울뿐더러, 많은 아이들이 배우고 싶었던 거라 무척 기뻤죠.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서 수업시간에 맞춰 오고 미리 와서 연습까지 하는 거예요. 그러다 2019년 12월 27일에 오바마교실이 종료되어 야간에 학교에서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계속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어 자원봉사자 선생님과 함께 이곳저곳 장소를 찾아다녔어요. 가까운 당동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수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자 기뻐하시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참 뿌듯했어요.

 

또,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외부에 나가 공연까지 하는 멋진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인형극단 친구들’공연팀이 자원봉사로 오바마교실에서 그림자인형극을 가르쳤어요. 1, 2학년 6명의 학생들과 함께 주1회, 두 달 수업을 했죠. 기간이 짧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요. 지난 1월 8일에 기쁨지역아동센터의 초등학생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직접 만든 대본에 감정을 실어 목소리 연기를 하면 그에 맞춰 무대 뒤에서 인형을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대견했는지, 공연을 무사히 끝내고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 두 손 모아 큰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강사님의 열정과 학생들의 노력이 맺은 기쁨의 결실이었죠. 이런 벅찬 감격을 경험하지 않고서야 누가 알겠습니까?(웃음)

공평한 잣대를 버리고 마음으로 아이를 품는 복지사가 되기 위해
학교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전, 15년 동안 교사로 일하면서 가슴 한편에 늘 아이들을 향한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담임을 맡아 반 학생들을 돌보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수업과 업무에 쫓기다 보면 아이들 모두에게 신경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아이들을 대할 때도 언제나 공평한 기준을 가지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한 명 한 명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조심스럽죠. 행여나 어떤 학생에게 좀 더 기울어진 태도를 보이면 학생들은 편애라고 생각하기 쉽기에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밖으로 사고를 치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에너지를 외부로 발산해서 괜찮은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얌전한 아이들 중, 고민과 고통을 안으로 삭이며 우울증에 걸린 아이들이 의외로 많죠. 돌아보면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위로와 관심의 손길이었을 텐데, 그렇게 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파요. 
하지만 이제는 학교사회복지사로서 그런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제게 주어진 것 같아 참 감사해요. 학교사회복지사로 아이들을 만날 때는 더 편하게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거든요. 그 속에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해주려 노력하다 보니, 더 빨리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공감해주는, 자신의 편을 만들고 싶어 하잖아요. 조금만 잘해줘도 아이들은 금세 마음문의 빗장을 열고 다가오는 걸 볼 수 있어요.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말하는 바람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요. 

더 크고 넓은 교육과 돌봄의 울타리를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방과 후 야간돌봄교실인 오바마 교실의 문턱을 낮추어 마을에 거주하는 아이들의 이웃과 어른들도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교육함에 있어, 학교와 가족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을과 지역의 어른들이 각자의 재능을 기부하고 선생님이 된다면, 아이들은 더 큰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마주치는 이웃의 어른들이 자신들의 선생님들이라면 든든하기도 하고, 더 행동도 조심하게 되겠지요. 더 나아가 그런 아이들이 성장해 다시 자신이 받은 선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행복한 마을을 만들고 싶은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군포중학교 학교사회복지사 배미영
bmy1490@korea.kr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4>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