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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양준일을 품어주는 사회를 꿈꾸며…

2020년 2월호(12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4. 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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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26]

 

제2의 양준일을 품어주는 사회를 꿈꾸며…

요즘 단연 화제의 인물은 데뷔 30년 만에 차트 역주행에 성공하고 뉴스에도 출연한 가수 양준일입니다. 탑골 GD, 시간 여행자 등으로 불리며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양준일 열풍은 단순히 재조명된 옛 가수 수준을 지나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 합니다.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양준일은 이미 1991년에 데뷔한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데뷔 후 잠깐 활동한 것이 전부이고 상당 기간은 음악활동을 떠나 생업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실패한 가수였습니다. 그런 그가 모 케이블 방송사의 <슈가맨>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원래 <슈가맨>은 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던 영화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단 두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사라진 비운의 가수를 찾아 나서는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그 영화의 제목에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을 따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딱 맞는 출연자가 바로 양준일이었던 것입니다. 

90년대는 가히 가요의 황금시대라 불릴 만큼 다양한 곡들이 발표되던 시대였는데 그때에도 양준일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독보적으로 독특했습니다. 이미 30년 가까이 된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펑키한 장르의 음악에 의상, 안무까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느낄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데뷔 이후 2~3곡의 싱글을 내고 활동하던 양준일은 비자갱신이 되지 않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온라인에 ‘탑골공원’이라는 콘텐츠에서 90년대 인기가요 영상을 틀어주는 인터넷 콘텐츠가 있습니다. 벌써 30년이 지난 이 곳에서 80~90년대 생들이 즐겨보며 채팅을 하는 데 양준일은 이곳을 통해 유명해지고 팬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다시 소환되어 <슈가맨>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입니다. 미국에 있던 양준일은 한국으로 돌아와 <슈가맨>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또 뉴스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게 됩니다. 이를 기점으로 양준일은 방송, 광고 등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팬 미팅은 4000석의 좌석이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왜 팬들은 양준일에 열광했을까요? 그 중 하나는 어쩌면 한국사회의 공정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미안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양준일이 비자갱신이 되지 않았던 이유가 비자 담당 공무원의 한마디 “당신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어!”였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분을 샀습니다. 어쩌면 그때 잃어버린 그의 기회를 조금이나마 찾아주고 싶은 팬들의 열망이 모여 이런 신드롬을 만들어 내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한 가지는 그 당시 양준일이 비록 가창력이 뛰어나서 목소리로 사로잡는 가수는 아니었어도 하나부터 열까지 남들과 다름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가수였습니다. 30년 전 당시에는 남들과 다름이 ‘비정상’, ‘열등’으로 평가받는 사회였습니다. 장애인, 다문화가족, 미혼모 등 남들과 다름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 받는 이들이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가요? 우리는 그들의 특별함을 눈여겨보지 않았고 사회의 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한 채 균일한 잣대를 적용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30년의 세월이 흘러 적어도 2020년에는 우리 사회가 서로 다름이 경쟁력이 될 수 있고, 다름이 특별한 개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는 점이 양준일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일 것입니다.

아직은 사회 전반이 ‘나와 다름’을 넓은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 현실이나 분명한 것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억압받고 감춰졌던 권리의 침해를 당당히 주장하는 분위기(미투, 커밍아웃 등)라든지, 자신은 비록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불의에 맞서 당당히 주장하고 정의를 위해 활약하는 TV드라마는 언제나 시청률이 좋은 것 등이 그 예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주위엔 제2, 제3의 양준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진짜 양준일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해서 아니면 아직도 이 사회는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불신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생각과 다채로운 구성원들의 협업은 그 나라의 경쟁력이 됩니다. 우리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아니면 관성에 의해 무시해 왔던 다양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사회는 선진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아는가? 우리 아이들이 제2, 제3의 양준일이 될지… 주변을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봅시다. 우리 사회가 다름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사회라는 믿음을 주는 한 해를 만들어봅시다.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본부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4>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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