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ospective & prospective 26]
요즘 단연 화제의 인물은 데뷔 30년 만에 차트 역주행에 성공하고 뉴스에도 출연한 가수 양준일입니다. 탑골 GD, 시간 여행자 등으로 불리며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양준일 열풍은 단순히 재조명된 옛 가수 수준을 지나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 합니다.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양준일은 이미 1991년에 데뷔한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데뷔 후 잠깐 활동한 것이 전부이고 상당 기간은 음악활동을 떠나 생업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실패한 가수였습니다. 그런 그가 모 케이블 방송사의 <슈가맨>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원래 <슈가맨>은 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던 영화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단 두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사라진 비운의 가수를 찾아 나서는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그 영화의 제목에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을 따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딱 맞는 출연자가 바로 양준일이었던 것입니다.
90년대는 가히 가요의 황금시대라 불릴 만큼 다양한 곡들이 발표되던 시대였는데 그때에도 양준일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독보적으로 독특했습니다. 이미 30년 가까이 된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펑키한 장르의 음악에 의상, 안무까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느낄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데뷔 이후 2~3곡의 싱글을 내고 활동하던 양준일은 비자갱신이 되지 않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온라인에 ‘탑골공원’이라는 콘텐츠에서 90년대 인기가요 영상을 틀어주는 인터넷 콘텐츠가 있습니다. 벌써 30년이 지난 이 곳에서 80~90년대 생들이 즐겨보며 채팅을 하는 데 양준일은 이곳을 통해 유명해지고 팬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다시 소환되어 <슈가맨>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입니다. 미국에 있던 양준일은 한국으로 돌아와 <슈가맨>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또 뉴스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게 됩니다. 이를 기점으로 양준일은 방송, 광고 등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팬 미팅은 4000석의 좌석이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왜 팬들은 양준일에 열광했을까요? 그 중 하나는 어쩌면 한국사회의 공정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미안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양준일이 비자갱신이 되지 않았던 이유가 비자 담당 공무원의 한마디 “당신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어!”였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분을 샀습니다. 어쩌면 그때 잃어버린 그의 기회를 조금이나마 찾아주고 싶은 팬들의 열망이 모여 이런 신드롬을 만들어 내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한 가지는 그 당시 양준일이 비록 가창력이 뛰어나서 목소리로 사로잡는 가수는 아니었어도 하나부터 열까지 남들과 다름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가수였습니다. 30년 전 당시에는 남들과 다름이 ‘비정상’, ‘열등’으로 평가받는 사회였습니다. 장애인, 다문화가족, 미혼모 등 남들과 다름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 받는 이들이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가요? 우리는 그들의 특별함을 눈여겨보지 않았고 사회의 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한 채 균일한 잣대를 적용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30년의 세월이 흘러 적어도 2020년에는 우리 사회가 서로 다름이 경쟁력이 될 수 있고, 다름이 특별한 개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는 점이 양준일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일 것입니다.
아직은 사회 전반이 ‘나와 다름’을 넓은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 현실이나 분명한 것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억압받고 감춰졌던 권리의 침해를 당당히 주장하는 분위기(미투, 커밍아웃 등)라든지, 자신은 비록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불의에 맞서 당당히 주장하고 정의를 위해 활약하는 TV드라마는 언제나 시청률이 좋은 것 등이 그 예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주위엔 제2, 제3의 양준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진짜 양준일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해서 아니면 아직도 이 사회는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불신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생각과 다채로운 구성원들의 협업은 그 나라의 경쟁력이 됩니다. 우리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아니면 관성에 의해 무시해 왔던 다양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사회는 선진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아는가? 우리 아이들이 제2, 제3의 양준일이 될지… 주변을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봅시다. 우리 사회가 다름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사회라는 믿음을 주는 한 해를 만들어봅시다.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본부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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