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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 놀랍고 극도로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3)

2020년 4월호(12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5. 3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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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32]

21세기 초, 놀랍고 극도로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3)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우한폐렴이 급속히 퍼지자 세계의 공항에서 문전박대의 설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80도로 상황이 바뀌어서 한국의 의료체계를 배우자고 이구동성으로 떠들고 있으며, 6시간 만에 진단하는 우리의 한 기업이 만든 키트를 먼저 보내어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이 땅에 죽을 쓰는 정권이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냈을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공은 결코 이번 정권에 돌아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든 칭찬은 질병관리본부장 정은경을 비롯한 헌신적이고 집요하게 문제를 파고들었던 모든 의료인들, 그리고 침착하게 행동하고 자발적으로 동참했던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모든 국민들, 그동안 우리가 자유롭게 깔아놓았던 최상의 인터넷 연결망, 오랜 시간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구축해 놓았던 의료보험체계에 돌아가야 합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인간 말종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여겨지는 정치가들이 진정한 존경을 얻는 길이 있는데, 한번 해 보실래요? 모든 선출직 공무원들은 진정으로 나라를 섬기려고 유세했고, 지금도 4.15총선을 위해 유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섬긴다는 말만 하지 말고 이런 행동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국민의 혈세를 짜내는 추경을 해서 그것을 입법했다고 생색내는 입만 움직이는 행동은 그만두고 말입니다. 즉 이번 사태가 끝나기까지 혹은 자신이 일하는 기간 내내 자신의 봉급 전액을 국고로 돌리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링컨이나 김구 같은 정치가가 나오겠다는 소망을 국민들이 조금은 가질 것입니다. 정치인들에게 진짜 명예는 지금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한 자리 꿰차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두 정치가들과 같이 생애를 마감하는 데 있지 않나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김구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번 주(3월 22~28일)에 루마니아에서는 진단키트를 포함한 의료장비를 수입하기 위해, 120여개의 다른 국가들이 먼저 채갈까 염려하여 아예 나토의 공군수송기를 2회나 직파했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세계의 주목 속에 정말 줄 수 있는 나라가 된 겁니다. 이럴 때에 꼭 써야 할 말이 있습니다. 세계의 위기는 한국의 기회다! 마치 하늘이 이런 일을 원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한반도, 한민족이 이런 ‘천혜의 기회’에 다음의 세 가지를 해낸다면, 우리가 앞으로 우주시대를 여는 지도자적 민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 중에서 또 반쪽으로 살고 있으며 인구까지 적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1) 우한폐렴의 완전한 극복으로 그 사례를 세계에 보임(지금 하고 있는 일)
2) 건강한 경제질서 수립(곧 해야 할 일)
3) 우한폐렴 이후의 세계에 유럽문화(명)을 대체하는 전혀 새로운 문화(명) 
   제시(장기적으로 성취해야 할 일)   

미디어에서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한반도, 한민족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를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 대한 자부심이 낮은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점은 우리가 앞으로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항상 겸손하게 만드는 기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온 세계에 망해가는 유럽문화(명)를 대체할 새로운 문화(명)세계를 제시할 정도로 높은 위치에 올라가더라도, 더욱 더 겸손하여 세계를 오랫동안 가장 잘 섬기는 패권국가로 만드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예수는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왕이 되려면 먼저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복음 20:27). 그렇지만 아직 이런 종교적 원리에 근거해서 세계의 패권국가가 된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다른 나라를 지배해본 역사가 없고 오히려 지배당하고 학대당한 고통을 뼛속깊이 간직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의 IQ(109)가 싱가포르(110) 다음이기 때문에, 뛰어난 유대인들이 한국을 연구한다는 사실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종교적, 정치적 원리에 근거해서 물질세계를 다스리는 경지에 이른다면, 21세기 이후 오랫동안 세계의 패권은 이동하지 않고 한반도, 한민족 위에 계속 머물 것입니다. 최고의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능력이나 집 앞의 택배를 훔쳐가지 않는 정직한 사회관습과 같이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물론 궁극적으로 도달할 지점은 다음이겠지요.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했으나 이제는 폐기되어야 할 이기적, 정복적, 물질주의적인 유럽문화(명)를 완전히 대체할, 이타적이며 섬기기를 좋아하고 종교적, 윤리적, 정신적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겸손하고도 또 겸손한 새문화(명)를 창조하는 고지(高地)입니다. 

우리는 2020년 2월호부터 ‘21세기초, 극도로 놀랍고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제목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다룬 내용은 다음입니다 : 
  A. 한반도 한민족에게 매우 유리한 네 가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1) 유럽문화(명)의 위기의 시대 (문명(화)사적 관점) 
  2) 동아시아의 패권시대 (정치, 국제관계의 관점 2020년 2월호)
  3) 포스트-세속주의 시대Post-secularism era(종교, 철학, 사상의 관점)
  4) 80억의 지구인에게 드디어 도래한 우주시대(2020년 3월호)

이번 호에 다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B. 한반도 한민족의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C. 우리만 가진 유일한 장점들을 살릴 때다(5월호)

한국에 오래 살았고 한국을 너무 사랑하는 나이든 영국기자가 있습니다. 그가 ‘제발(촌티 나고 집단주의적 사고를 드러내는) 노란 자켓 그만 입으세요’라는 기사에서 언급한 말이 생각납니다. 북한이 쳐들어와 전쟁이 터지면, 가족은 다른 곳으로 피난시키고 자신은 종로저항군으로 남아 레지스탕스로 싸우겠다는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저도 오래 전에 유학하려고 떠날 때에 이와 비슷하게 생각하여, 혼자서 한국에 들어와 비폭력적 저항군으로 싸울 것을 비행기 타기 전에 결심했습니다. 유학하는 것이 자칫 나와 내 가족만 살려고 내가 태어난 나라와 역사에서 도피할 유혹에 넘어갈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1910년경 하와이에 이민가서 성공했으나, 고향인 정주(오산학교가 있었던)에 돌아와서 교회를 세우며 민족의 새벽을 깨웠던, 먼 친척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신, 호랑이 할머니의 거칠고 쩌렁쩌렁한 음성이 유학시절 내내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곧 한반도, 한민족에게 매우 놀라운 세계사적 기회가 주어질 터인데, 어려움을 피하려고 피난가거나 국적을 버린 사람들을 후회하여 다시 돌아오게 만들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를 위축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가 가진 치명적 약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회피하여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직시하며 부정적 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린다면, 그런 우리의 모습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법칙을 흔히 ‘지피지기’(知彼知己 타인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것)면 백전백승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한 단계 높은 최상의 전략이 있습니다. 알아야 하는 순서를 바꾸어서 지기지피(知己知彼 자기를 먼저 알고 타인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우선적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2회에 걸쳐서 현시대정신과 상황,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다양하고 매우 강력한 외부의 힘들(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을 살폈지만, 사실 이 지기지피전략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강력하게 보이는 외부세력에 대해 너무 겁을 먹기 때문에, 그 외부의 세력이 사실상 얼마나 허황되고 뿌리 없으며 너무나 엉뚱해서 전혀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우선 알리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차분하게 드려다 볼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전략이 놓여 있습니다. 즉 먼저 우리 자신의 아프고 나쁜 악한 실체를 있는 그대로 언급하고, 이어서 우리만 가진 최상의 장점을 소개하는 전략입니다. 새 문화(명)를 창조하는 일에서 우리는 정치나 전쟁이라는 단순한 차원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문화(명)를 완전히 새롭게 하려고 총체적, 역사적 차원을 가짐과 동시에 더 근본적으로 나아가 종교적, 정신적 차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종교나 어느 정신적 교훈이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출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부인(하기)입니다. 즉 ‘지기지피’하려고 할 때 바로 부딪치는 문제가 ‘자기부인’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성경도 말합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 자기부인이라는, 절대 겸손을 뼈 속까지 이룬다면, 바깥세상은 넉넉하게 이긴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이 자기부인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1) 하나는 자기의 잘못된 모습과 단점, 약점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반발심으로 행동하지 않고, 냉정하게 그런 약점을 시인하되 절치부심해서 극복하고 오히려 승화하는 방향입니다.
  2) 다른 하나는 잘난 모습과 장점조차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더 발전된 장점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새로운 장점을 창조해서 그것을 습관화하는 방향입니다. 먼저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전략 네 가지부터 시작해 봅시다. 이번 4월호에서는 두 가지만 다루겠습니다.
 
B. 한반도 한민족의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1)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으로 둘러싸임 → ‘아사비아 이론’을 따라서 잘 준비하고 훈련하면 모든 위협을 극복하고 힘의 중심이 될 수 있음
먼 과거에 지구의 수위가 낮아졌을 때 중국대륙, 한반도, 일본은 서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왕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수위가 높아진 후에 지금과 같은 매우 특이한 지정학적 구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지리가 만들어졌습니다. 한족 지배하의 중국인 한나라가 한반도 북부 일부에 한사군을 설치한 짧은 시기 외에는 한반도, 한민족은 중국 내부에 속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난 그 어떤 한족정권(송, 명)이라도 강력한 고구려, 발해, 고려로 이어진 한반도, 한민족을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중원을 정복한 요-금-원-청으로 이어지는 유목정권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해 들어왔지만, 실효적으로 중국영토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한반도, 한민족은 징키스칸의 후예가 가장 정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아예 부마국으로만 삼을 정도였습니다.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때 청이 조선을 공격하였는데, 그 이유는 남쪽의 명을 칠 때에 뒤에서 반격할까 두려워했기에 배후를 단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으로 중국인들은 한반도의 실효적 지배는 있을 수 없는 일로 간주하여 조공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지금 중국을 대체로 무시하는 편입니다.
물론 한반도, 한민족 역사에서 저와 여러분이 가장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제-패배한 백제의 후예들이 망명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그 억울함을 늘 품고 살았던-에 의해 36년이나 지배당했다는 사실입니다. 대체로 하나의 정권은 250~300년 정도 지속되면, 통치의 피로감과 여러 요소들이 어울려져서 정권교체가 일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조금 후에 말씀드리겠지만, 한민족이 종교를 믿으면 그 종교가 발원한 곳보다 더 원리적으로, 더 철저하게 신봉한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즉 조선이, 그것이 발원한 중국에서는 이미 지나간 공자해석인 신유학으로 불리워지는, 주자학을 아주 정성을 다해 섬겼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살인사건의 절반은 묘지다툼 때문인 사실을 정약용이 한탄했다는, 정말 어이없는 사실이 소개되었습니다(매일경제 20200326). 유교에서는 조상이 중요하고 조상을 잘 섬기는 전통을 가졌고, 중국에서 온 또 하나의 헛된 학문전통인 풍수설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약점을 오히려 뒤집어서 진정한 절대종교적, 정신적 자산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장점으로 승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것은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이런 일제에게서 벗어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지정학적으로 서로 너무 다른 네 초강대국으로 둘러싸였다는 변화시킬 수 없는 사실, 즉 ‘정치적 고정상수’앞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장점이 될 가장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사비아 이론입니다. 주위에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민족과 국가가 망하기보다 그 힘들의 방향을 바꾸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린 역사가 제법 있다는 겁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로마, 네덜란드, 이스라엘입니다. 이 세 나라와 민족은 매우 작게 출발했고 주위는 막강한 힘들로 둘러싸였지만, 그 흐름을 바꾸어서 전격적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힘이 도는 구조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이 이론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네 번째 나라가 될 수 있는 셈입니다.
물론 ‘아사비아 이론’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힘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내부의 힘입니다. 우선 외부에서 밀려들어오는 힘의 원천과 세기를 정말 깊이 연구해서 파악해야 합니다. 너무나 다른 네 문화(명)적 행태를 가진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을 정교하게 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각 힘의 근원인 종교부터 문화(명)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물질 사용에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대략적으로 이 네 나라의 정체성과 실질적인 능력이 얼마나 천박하고 엉성하며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더 나가야 하며 더 깊이 연구해야 하는데, 저 자신도 더욱 더 깊이 연구하려고 합니다. 트럼프와 시진핑, 그 사이에서 아베와 푸틴이 벌리는 국제정치적 행위가 얼마나 구시대적인 것인지, 그리고 이제는 서로 으르렁거리는데 사용했던 힘을 이제는 합하여 우주시대로 나가야 할 것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들은 우주에 가서도 지구에서 서로 땅따먹기를 위해 싸우던 행태를 계속하려고, 달과 화성에 자기 땅을 세우려는 매우 고리타분한 지구중심적 사고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이들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 
  1) 이제는 지구인이 아닌 우주인이라는 정체성 세우기
  2) 우주시대를 열어갈 문화(명)적 가치를 설정해서 제시하기
  3) 실제적 우주실력, 기술을 가지기
  역경과 난관을 수없이 뚫고 나왔던 한반도, 한민족의 근성과 실력으로 이런 일들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2) 오랫동안 공격당하고 지배당한 역사적 경험 → 고통받는 자를 도우고 섬기는 능력으로 전환   
이것은 위에서 말한 사실과 한꾸러미의 진실입니다. 한반도, 한민족은 바깥을 지배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반도, 한민족이 밖으로 웅비하며 펼쳐보았던 힘의 증거를 역사에서 찾으려고,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해상왕국을 이룬 백제나 장보고의 청해진의 역사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남을 지배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도 자존심이 상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능력이 되지 않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지금으로서는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중국문학가 루쉰이 ≪아큐정전≫에서 말하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그는 약자가 강자에게 얻어맞고 나서 ‘너는 철이 없어서 폭력을 쓰는구나, 나는 너를 어린아이로 보니 형인 내가 승리자다’라고 말하며 소위 ‘정신승리’라는 위선을  부리는 것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대로, 21세기는 대서양시대를 이어서 태평양시대에 이르렀지만, 한반도, 한민족은 거기서 더 나아가 우주시대를 미리 준비하여 개척하고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겁니다. 세계에서 우한폐렴 진단키트를 요구하고 드라이브스루, 드라이브워크, 놀라운 의료시스템을 배우려고 실제적으로 손을 내밀 정도의 우주실력을 먼저 갖추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지배당한 경험을 역설적으로 되살리는 길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지배하는 민족과 지배당한 민족 중에 숫자적으로 무엇이 더 많을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대부분 땅이 좁고 민족수도 적거나 강대국 사이에 끼인 민족입니다. 우리는 숫자적으로 더 많은 이런 이들의 심정을 잘 알 수 있고 이들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매우 탁월한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며, 이들은 우주시대를 함께 개척할 놀라운 인재들입니다. 앞으로 아프리카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옳은 이유는 아프리카의 자원뿐 아니라 인내와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새로운 삶을 절절히 소망하며 자신의 실력을 키우려고 절치부심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지배해본 민족을 보면, 대부분 교만과 자만심을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다른 민족들을 깔보는 악한 문화적 관습에 몸이 쩔어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지배는 주로 강압적인 물리적 지배여서, 무수한 희생과 고통을 동반한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타민족을 강도질,도둑질해서 지배했던 것에 불과합니다. 도둑질, 강도질해서 얻는 자산이 오래갈까요? 물론 영국은 300여년의 세계재패를 식민화로 완전 정치지배를 꾀하지 않고 상업적 지배가 주였다고 변명합니다. 그런 온건한 요소가 어느 정도 있었기에 가장 온건한 세계지배를 오래했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아편전쟁과 같은 지울 수 없는 치욕의 역사를 영국이 가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남자는 징병, 징용으로 여자는 화냥년, 위안부로 끌려간, 진저리 쳐지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가졌습니다. 이태리에서 영향을 받은 한국가곡은 이태리 풍에서 비롯되었기도 하지만, 한결같이 그 속에 슬픔을 품고 있는 점에서 신나고 쾌활한 이태리 가곡과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한(恨)의 민족, 원통의 민족’이라고 스스로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한’을 나에게 해를 가한 대상을 향해서 품고 있으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과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만드는 도구로 변하는 것이 인간 심리의 진리입니다. 어떻게 이 ‘한’을 처리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용서한다고 선언하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한이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대로 ‘정신승리’로 자신을 속이기 십상입니다. 이 ‘한’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내가 먼저 절대자로부터 절대적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절대적 용서를 경험해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세계종교 중에서 절대용서를 선물하기 위해 인간 몸을 입고 온 경우는 예수의 종교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 있는 로마교, 개신교는 이 종교의 모습을 아주 조금만 가진 종교단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존경을 얻지 못하지만, 예수 자신의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용서를 인간에게 선물해 주었기 때문에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곱 번 용서해줄까요?”라고 묻는 제자의 질문에 대해서 말입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즉 무한정으로 용서하라는 말이지요. 이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나 자신의 잘못과 악을 무한정으로 용서하는 절대용서를 경험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경험한 절대용서를 우리는 일본을 향해서 먼저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와 동일하게 지배당한 민족들에게 용서를 가르치면 됩니다. 친절하던 베트남이 돌변해서 공항에서 우리 비행기를 내 쫓은 사건은 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앙심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트남인들을 만날 때마다 먼저 돈 때문에 파병했던 사실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겠지요. 그런데 예수의 종교와 유사한 유대교와 이스라엘인들은 정반대로 용서할 줄 모르고 또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심리는 매우 비뚤어졌을 수 있으며, 앞으로 이스라엘이 커질 때에 독일인에게 어떻게 할지 매우 염려됩니다. 즉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활개치는 유대인들이 세계를 재패할 때, 어떤 두려운 피바람이 불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에 한반도, 한민족이 진정한 절대용서를 배운다면,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1) 그 절대용서를 지배당한 민족에게 소개하는 것, 
   2) 지배한 민족에게 용서를 빌 줄 아는 자세를 가지는 것.
   그렇게 한다면 21세기에 한반도, 한민족에게 주어진, 이 세계를 종교적, 정신적으로 지도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010-6844-0609/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6>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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