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칼럼 & 커피스토리 38]
나의 오래된 친구, 클라리넷 그리고 커피
서울시향 클라리넷티스트 이창희
바람은 불었지만 햇볕이 제법 따뜻했던 지난 3월 아침, 이창희 선생님의 집 근처 조그마한 까페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한쪽 테이블에 앉은 아줌마들의 와글와글 수다를 뒤로하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선생님은 입을 열어 오스트리아 빈, 가난한 유학시절 커피를 만난 그 때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1985년부터니까 제가 원두커피를 마신지는 근 30년이 넘었네요.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가면서 만났으니까요. 그 당시 제가 살던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세일할 때 커피를 구입하곤 했는데, 커피 주전자를 사면 멜리타 드립퍼를 주었어요. 커피를 가는 기계는 없어서 커피를 갈아와 드립해 마셨지요. 그러다 집 주인 여자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거기서 브랜딩해 내린 커피를 대접받았는데, 그 커피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드립 한 커피와는 비교도 안 되었죠. 그래서 제대로 된 커피를 먹고 싶을 땐 가끔 그 집에 가기도 했었습니다. 비엔나커피라고 들어보셨죠? 오스트리아에선 ‘멜랑슈’라고 하는데, 커피에 아이스크림 또는 생크림을 얹어 먹는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단 것을 싫어해서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는데,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큰 머그잔으로 2잔을 마십니다. 밥 먹으면서 한잔, 후식으로 한잔! 아무래도 유학시절 밥 대신 빵을 먹으며 이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커피중독’은 아닙니다. 평소에 커피를 자주 마시지만, 1주일 정도는 안 마셔도 견딜 수 있거든요.
이제 클라리넷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저희 집은 경남 진해입니다. 아버지 세대 때부터 진주고에 다니셔서, 모든 형제들이 무조건 진주고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저는 4남1녀 중 막내인데 리듬밴드도 하고, 중학교 때는 남자다워지기 위해 유도도 했지요. 그러다 음악을 하고 싶어 밴드부에 가니 제 체격이 좋다고 섹소폰을 불어보라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가서 서울예고 앨범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 앨범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도저히 진해에서는 할 수 없는 활동들이 앨범에 담겨있는 것을 보고 저는 결심했죠. ‘난 예고에 갈꺼야!’ 하지만 그 당시 음악을 하는 것을 ‘딴따라’를 한다고 생각하시던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죠. 형들이 “서울예고 시험보고 떨어지면 진주고 시험 보는 거다”라고 협상안을 내놔서, 일단 서울예고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필기는 붙었고 실기로 플룻을 준비했는데 웬걸! 여학생 3명이 너무 잘하는 겁니다. 그걸 본 형이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다른 악기로 바꿔라!”하며 권한 것이 클라리넷이었습니다. 입시 한 달 전이었죠. 때마침 가족처럼 지내는 진해 해군 군악대 중위에게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12시간을 하드 트레이닝 했습니다. 선생님이 알려 주시는 것을 다 외워서 불었어요. 제가 음감은 있지만, 악보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악보를 보지 못했거든요.
그렇게 노력해 예고에 들어가니 할 게 너무 많았습니다. 밤늦게 까지 연습하다가 통행금지에 걸려 하숙집에 못 갈 때도 있었는데, 수위 아저씨가 “여기서 자라”하며 아침에는 밥도 챙겨주셨죠. 형이 처음에는 제가 외박을 하니까 엄청 뭐라 했는데, 연습하느라 입술이 다 터져있는 것을 보고 그 이후론 아무 말도 않더군요. 유럽에 유학 가서도 집에 도움 받을 상황은 아니니 자급자족을 해야 했죠. 호프집에서 알바하다 맥주를 거품없이 만땅으로 따르니 손님들은 다 좋아했지만 주인에게 하루 만에 해고되기도 하고, 제 몸집이 좋은걸 보고 하역작업을 권유받아 했다가 4일 동안 몸살이 나기도 했죠. 그러다 때마침 일본 친구가 오케스트라를 같이 해보자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수석까지 맡게 되어 큰 도움이 되었죠.
클라리넷의 매력은 소리가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의 소리와 가깝다는 것과, 음역이 무궁무진하고 넓어 재즈나 현대 음악 등에도 잘 어울리고 여러 기법들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대 음악작곡가들이 목관악기 중 클라리넷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물론 오보에와 플릇도 있지만, 클라리넷은 다양한 현대 연주기법을 사용하여 협연이나 솔로를 할 수 있거든요. 특별히 피아니시모로 감각적인 세기를 클라리넷으로 연주할 때 저와 하나 된 관객이 숨을 죽이고 듣고 있을 때는 전율을 느낍니다. 또 다른 연주자들과는 솔로나 앙상블 등을 같이하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완성도를 높여 가는 게 환상적으로 좋습니다. 클라리넷 퀸텟(5중주)을 준비하며 연주자들과 서로 시간을 조율하다보면 어떤 때는 새벽 1~3시에 할 때도 있습니다.
‘가비양’과의 만남은 꽤 되었는데 가비양은 커피를 각 나라별, 종류별로 다 맛볼 수 있어 좋습니다. 저는 특히 차처럼 꽃 향이 살아있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거기다 가비양 커피는 아무리 진하게 드립 해 먹어도 탄 맛이 나지 않아 더 좋습니다. 커피클럽 회원으로 매달 편하게 커피를 배송받고 있지만, 매번 부족해 필요할 때마다 2~3kg씩 사와 냉동실에 저장해 먹고 있어요. 집에서 커피는 제가 다 내립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벌써 세 번을 내렸습니다. 둘째 딸 아이는 “내가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아빠는 금방 하는 것 같아”라고 하면서 커피를 주문하네요. 핸드드립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만, 사실 5분밖에 안 걸려요. 물론 좀 숙달은 되어야겠죠. 연주자로서 가비양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할 때면 그곳이 ‘놀이터’같아서 좋습니다. 시간만 허락되면 얼마든지 가비양에서 연주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평생 힘닿는데 까지 연주하며 살아가겠다는 클라리넷티스트 이창희 선생님. 특히 클라리넷을 연주할 때 사용하는 리드를 30년 넘게 직접 깎아 음을 정확히 나오도록 하는 손재주까지 탁월해서, 지난달 미국 뉴욕대에서 ‘핸드메이드 리드 메이킹’ 강연으로 외국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손수 완벽한 음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가는 선생님의 열정이 제자들을 통해 세계 속에 더욱 빛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가비양 커피클럽 문의 010-9405-8947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0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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