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양 커피스토리 40>
커피스승 ‘고노’를 추억하며
7박8일 일본 큐슈 나가사키 역사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첫날, 여독을 풀기위해 좀 쉬었으면 했지만, 가비양 양동기대표의 정신과 커피의 스승이었던 ‘고노’사장 스토리를 듣기 위해 피곤을 무릅쓰고 한걸음에 달려 가비양 서현점으로 도착했습니다. 양대표는 여러 손님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더군요. 잠시 후, 당연히 커피를 내려줄 줄 알았는데 차를 마시면 차분해 진다며 따뜻한 보이차를 대접합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며 나눈 커피 스승 ‘고노’의 이야기를 톡톡 튀는 양동기 대표의 말로 들어볼까요?
고노사장을 만나기까지의 여정
제가 형제 중 막내이다 보니 조금은 자유롭게 생각하며 자라서 그런지, 동양 삼국에서 한 번씩 살아보는 게 꿈이었어요. 1992년 일본에 가서 5년 정도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중국의 북경과 상해로 가려고 하던 차에, 커피 사업을 하는 큰 형이 직원이 그만두었으니 잠시 도와달라는 겁니다. 모든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형을 도와줘라”며 성원하는 통에 우연찮게 커피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잘못된 만남(?)이 되어 올해로 21년째 커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나이 28세 때 일본으로 커피를 배우러 가기 전, 1996년도 일본에서 커피를 배웠다고 하는 서초동 다도원의 ‘박원준’이란 분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지요. 키가 작고 깐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더군요. 저를 위아래 훑어보고 고노 기구의 드리퍼로 조용히 커피를 내리는데 숨도 못 쉬겠더라고요. 한데 그때 마신 커피 맛은 지금까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이분 또한 커피에 대한 지식을 나눠주는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상당했습니다. 그 이후,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일본에 있는 커피와 커피 잡지책을 있는 대로 보내 달라하니 잡지 30권을 보내왔습니다. “그 때 보내왔던 책이 이것입니다”라고 하며 양대표가 직접 펴서 보여주는데, ‘이 책은 가비양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이와 같은 커피전문잡지를 만들지 못합니다. 처음 이 잡지를 접했을 때 엄청난 흡입력으로 읽기 시작했죠. 일본에 있는 67곳의 커피 자가 배전하는 사무실 전화번호를 보고, 큐슈부터 시작해 계속 전화를 해 대며‘너희들은 커피를 어떻게 볶냐?’물어봤습니다. 그러다가 동경에 있는 고노 사무실에 전화하니 때 마침 직원이 바로 고노사장을 바꿔주더군요. 고노사장은 대뜸“너 뭐하는 놈이냐”하며 묻더군요. 저는 “한국에서 커피를 볶습니다”라고 답했죠. “몇 년 됐냐?” “2년 되었습니다.” “무슨 기계 사용 하냐?” “독일 프로바트사의 제일 좋은 기계를 사용합니다.”“어떤 원료를 쓰지?”“콜롬비아커피 중 제일 좋은 스프리모를 사용해 다양한 맛을 냅니다”라고 답했지만 사실 과장이 섞인 거였죠. 그러자 고노사장은 “우리는 커피 볶는 기계가 60, 30, 10, 5kg짜리 각 4대가 있고, 커피 볶는 사람만 4명, 사용하는 커피원료가 40가지, 40년 동안 개발한 브랜드는 30가지고, 그날 볶아 바로 납품한다”고 하더군요. 이어서 저에게 “한번 일본에 놀러올래?” 했고, 저는 이 말을 즉각 받아 일본으로 직행! 이렇게 스승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지요.
20년이 지난 일본 커피잡지로 가비양의 소중한 자산
1997년 IMF 경제위기가 있던 해 9월~10월 ‘고노’사장(77세)을 만났고, 정확히 11월30일에 가비양 사업자 등록을 했습니다. 그해 12월, 일본으로 커피를 배우기 위해 두꺼운 털옷을 입고 일본에 상륙하여 고노사장과 날마다 술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커피도 배웠죠. 사실 그전까지는 커피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고노사장이 담배를 피우며 로스팅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고, 무엇보다도 저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게 커피라면 나도 커피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고노사장을 잠시 소개하자면, 의사집안으로 2차 세계대전 즈음에 ‘사이폰’을 발명한 사람입니다. 그 전에는 커피를 천에 내려 마셨는데, 고노사장이 이 사이폰을 발명하면서 커피를 추출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때 사이폰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지금 일본의 커피는 이렇게까지 발전하지 못했다고 일본 커피업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행운이게도 이분의 인격적인 면을 볼 기회까지 있었습니다. 도쿄 한복판 ‘스ㅋ가모’라는 곳에 6살 유치원생들이 우우~~하고 들어오더니 “할아버지 뭐해요?”합니다. 커피를 볶던 고노사장은 유치원생들과 30~40분을 눈높이에 맞게 놀아주고 가르치는데, 언어선택도 아이에게 맞춰 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노인과는 너무나 달랐죠. 77세 노인이 유치원 아이들과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좌우명을 정했죠. ‘고정관념을 갖지 말자’ 그런데 웬걸 이제 나이 50에 들어선 저는 완전 고정관념 덩어리가 된 것 같습니다. 고노사장은 87세에 돌아가셨지만 그 때의 커피를 내리셨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고노 커피회사와 지금까지의 관계
현재는 아들이 사장이 되어 가비양과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고, 커피 정보도 많이 교류합니다. 한국에 고노커피 기구를 제가 직접 판매하며 한국에 판로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또 한국 학생들에게 커피를 제대로 배우도록 일본에 고노아카데미를 연결해주고 다시 한국에 와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했으니 고노사장이 저를 아낄 수밖에 없었지요.
가비양의 미래
최고 목표는 국민의 2%를 ‘가비양 커피클럽에’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가비양이라는 무대에서 저는 현재 이 꿈을 먹고 삽니다. 전체 직원은 17명으로 이 목적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며 특히 고도의 전문화를 달성하기 위해 애씁니다. 알다시피 커피클럽 회원이 되면 신선한 커피는 15일 단위로 배송 받고, 문화적 소통은 덤인 거 아시죠? ^^
일본 큐슈 아소산을 향해갈 때 잠시 쉬어 고속도로 자판기에서 원두커피를 마셨는데요! 사실 가비양 커피만 먹는 제가 그만 반해 버렸습니다. 과연 일본 커피는 다르더군요! 양대표에게 인터뷰하는 지금도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커피하면 가비양이다’는 잣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 양동기대표의 노력이 아닐까요?
가비양 커피클럽 문의 010-9405-8947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안골로 33 (서현동)
이 글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92호>에 있습니다.
< 가비양 커피클럽 & 커피스토리 바로가기 >
가비양은 커피를 매개로 한 소통장소입니다.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고 드립도하지만, '최고의 인테리어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이 머무는 장소를 만들려고 합니다. [가비양 커피클럽 & 커피스토리]는 그 속에서 머무는 많은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스토리 46 바로가기]
가비양과 20년을 함께한 일본의 가족기업 커피회사 고노!
3세대 사장 ‘고노 마사노부’에게 직접 듣다
[스토리 39 바로가기]
30년지기! 권웅 가비양 양동기 대표를 말하다!
[스토리 41 바로가기]
인생이 힘드니까 커피가 맛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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