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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탄자니아 촬영기(2) - 아이들에게 희망을 

2020년 7월호(12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9. 1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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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탄자니아 촬영기(2)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정을 해체하는 가난  
‘어구스티노’는 이날 저녁 이웃에게 옥수수가루를 얻기 위해 빈 바가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말로만 들었던 구걸이라는 단어와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발걸음을 나도 처음 목격하게 되었다. 일상이 된 구걸에서도 나눌 음식이 없어 이웃에게 거절당하는 순간을 맞았다. 취재진도 따라가니 당연히 먹을 것을 나눌 것이라는 기대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나는 충격을 받았고 이웃들도 정말 가난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몇 집의 문을 두드리고서야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저렇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탄자니아는 나라가 커서 국민들에게 일정한 땅을 분배해 준다고 했다. 어구스티노네도 제법 넓은 땅에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문제는 농업 생산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옥수수를 심지만 강수량이 워낙 적어서 소출이 나지 않는다. 하늘만 보고 농사를 지어야 하니 굶어죽기 십상이다. 아버지인들 자녀들을 버리고 외지로 떠나고 싶겠냐만 변변한 일이 없으니 고향을 떠서 도시로 나가게 되고, 보란 듯이 성공해서 다시 돌아온다는 건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 아버지가 떠났고 가난에 시달리던 어머니도 집을 나갔다. 점점 나이 들고 쇠약해지는 할머니와 고모, 아이들이 그렇게 한 집에 모여 살아가는 중이다.      
 
해발 2000미터에서는 하늘이 그렇게 가까울 수가 없다. 구름이 머리 위와 수평으로 펼쳐진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빛과 뭉게구름이 형언할 수 없게 아름답고 푸르다. 진흙 빛 땅은 어찌나 강렬한지 카메라에 담으면 색상이 살아서 움직인다. 진창이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황토로 닦여진 길을 따라가면 아스팔트로 닦여진 넓은 길을 만난다. 나는 여전히 닦여지지 않은 황톳길을 좋아하지만, 만약 이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는 날이 있다면 그것은 중국의 기술과 노동자들이 구축한 것일 게다. 그 길을 따라 엄청난 중국의 물자가 뿌려지고, 아직 생산기반을 갖지 못한 아프리카는 앞으로도 여전히 생산해 내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대륙은 유럽에 의해 마음대로 나라와 국경선이 그어졌다. 같은 나라와 민족들이 동강나기도 했고, 적대적인 민족이 한 나라로 편입되어 살아가게도 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중국과 한국을 같은 나라로 묶어서 살게 했으니 아프리카 독립 이후에 나라와 종족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 요인이다. 길과 철도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놓여졌다. 유럽 사람들이 해안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와서 주요한 지하자원과 광물과 사람 노예를 실어 나르기 편리한 방식으로 길과 철로를 놓았다.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식이 아닌 무작위적이고 약탈에 편리한 방편으로 개발되었다.           

커피 맛이 쓴 이유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터로 어구스티노의 가족들을 초대했다. 한국에서 간 사람들이 이 가정에 필요한 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가족들을 부른 것이다. 너른 장터에는 곡식에서부터 옷과 주방용품에 이르는 다양한 물건으로 즐비했다. 한국에서 버려지는 모든 물건과 옷가지들이 이곳에 놓여 지기만 한다면 모두가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이다. 아프리카 내륙까지 공산품이 운반되어서 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물류비가 들어가는 과정이기에 제품의 값은 비싸다. 구제조차도 질이 낮지만 이들에게는 값싼 것이 아니다. 대체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의류와 용품으로 가득하다. 아프리카에서 생산해내는 것보다 중국의 제품이 싸게 들어온다면 아프리카 내부의 생산이 발전할 리 만무하다.
 
아프리카 현지 스텝들과 커피농장에 들렸다. 한눈에 보이는 지평선까지의 모든 땅이 커피나무다. 작은 묘목에서 다 자라난 커피나무에서는 커피 열매가 어여쁘게 달려 있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까지 물 호스가 연결되어서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고 제어하는 장치가 달려 있었다. 커피농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수작업에는 여성들이 투입되었고 3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곳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유럽인들의 기호에 맞춰서 티를 생산하다가 점차 커피로 바뀌었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맛은 감히 기성 커피전문점의 맛과 비교할 수 없다. 스타벅스는 문화를 마시는 공간이지 커피 맛이 좋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이 농장의 넓은 풍경을 바라보며 갓 볶아 내린 커피의 그윽한 향을 즐겼다. 그런데 현지의 아프리카 스텝들은 커피를 즐기지 않고 티를 마셨다. 나는 커피 맛이 좋지 않냐는 우문을 날렸고, 그들은 이 커피는 외국에 수출하는 것이지 우리가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순간 머리칼이 쭈뼛 서는 부끄러운 감정이 일었다. 우리도 과거로 조금만 돌아가면 질 좋은 해산물과 어류는 선별해서 바로 외국으로 수출했던 때가 있었다. 최고 상품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해외 부자나라 누군가의 것이었던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지불한 5불이 그들에게는 일주일을 살아갈 식료품 값보다 더 나간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 

그날 시장에서 그 집에 필요한 한 달 치 분량의 식량과 아이들의 옷과 주방용품 등을 사 주었다. 어렵더라도 꼭 학업을 이어가서 배움의 힘으로 가난을 몰아내기를 기원했다. 농사에만 의지해서 살 수 없는 상황이기에 어린 암염소 두 마리도 선물했다. 암염소는 금방 자라서 새끼도 낳을 것이고 젖도 생산해 낼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통해서 음식도 바꿔 먹을 수 있고 미래를 기약할 수도 있다. 일용할 양식이 오늘을 버티게 한다면 교육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임을 믿는다. 우리 일행은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들려서 학용품과 축구공을 선물하며 선생님과 학생들을 격려했다. 어렵더라도 학업을 잘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학업을 멈추면 삶이 더 비참해진다. 공부를 이어가면 그래도 더 나은 미래를, 더 나은 희망을 꿈꿀 수 있다. 이것은 개인만의 상황이 아니다.        

 


다시 만난 그 아이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2년 전에 촬영했던 아이의 집을 방문했다. 다리가 불편해서 학교에 못 나가고 남동생을 돌보던 여자아이 ‘마리아’의 집.
주머니에 있던 우리 돈 1만 원 가량의 현지 화폐로 음식물을 샀다. 감자와 양배추, 양파와 바나나를 두 손 가득 움켜쥔다. 우리나라에서 10만 원 정도의 물건을 산 것 같은 돈 가치의 마술에 놀란다. 기억을 더듬어 산꼭대기 집을 찾아간 현지 스텝 ‘콜럼바니’의 기억력이 놀랍다. 이젠 네비 없이는 길을 나서기가 힘든 나와 대비되었다. 동생들은 부쩍 자라 있었다. 다리를 절던 아이는 폐렴에 걸려 다른 공간으로 격리되어 있었지만 나를 알아보고 반가운 눈빛만을 교환해야 했다. 다 허물어져 가고 구멍이 송송 뚫려진 오두막은 제법 흙으로 벽을 둘러쳐 모습이 번듯해 있었다. 부엌도 공간을 따로 둬서 밥 지을 때의 그을음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한국에서 도움을 준 덕분에 염소도 눈에 띄고 옥수수도 자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집 나갔던 부모가 돌아와 다시금 자녀들을 건사하고 있었다. 감사했고 고마웠다. 이 가정을 회복시킨 모든 이의 마음씀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가장들이 집을 나서 타지로 나간다. 벌어먹을 것이 없어서 떠난 도심에서 염소 한 마리를 사서 다시 귀향할 꿈을 꾸지만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그래도 이 집은 염소 한 쌍으로 인해 집나간 부모를 다시 불러들였다. 살아갈 소망이 생긴 곳에는 다시금 행복이 피어나는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편집을 마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절이 뒤바뀌는 것과 시차로 인한 피로감도 있었지만, 아프리카의 가난과 아픔을 어떻게 하면 시청자에게 더 잘 전할까 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편집을 위해 다시 보는 영상 속에서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냉정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마음을 다잡고 엉덩이를 붙여서 한 땀 한 땀 그림을 이어 갔고, 마침내 내 손을 떠나 음악작업에 작품의 감동을 맡긴다.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원두를 갈아 뜨겁게 물을 내렸다. 향을 맡고 한 모금 음미하며 주방으로 향한다. 개수대에 쌓인 그릇을 보며 물을 내린다. 시원스럽게 물을 뿜어내는 수도꼭지를 한동안 희한한 듯 내려다본다. 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지만 물을 세차게 틀어놓지 못한다. 내가 닦아놓은 그릇들이 미끈거리고 찜찜하다는 아내의 핀잔에도 나는 물을 물 쓰듯 하지 못하며 설거지를 한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온다는 사실은 기적 같은 축복이다. 내 몸을 해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애써 구하고 마셔야 하는 누군가의 일상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정결한 물이 그들의 대지를 적실 수만 있다면’
흥얼거리는 콧노래와 즐거운 상상을 곁들이며 말끔하게 그릇을 닦아 낸다.     

 

기획자 프로듀서 이준구

brunch.co.kr/@ejungu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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