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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을 위한 연가 5

2020년 12월호(13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 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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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을 위한 연가 5

김 승 희

 

인당수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저는 살아서 시를 짓겠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을 구하지 못하여
당신이 평생 어둡더라도
결코 인당수에는 빠지지 않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여기 남아 책을 보겠습니다

나비여,
나비여,
애벌레가 나비로 날기 위하여
누에고치를 버리는 것이
죄입니까?

그 대신 점자책을 사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점자 읽는 법도 가르쳐드리지요

우리의 삶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외국어와 같은 것-
어디에도 인당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 볼까요? ----------------------------------------

아버지(심봉사)와 딸(심청이)이라는 전통적인 부녀관계를, 애증으로 발전하기 십상인 엄마와 딸이라는 모녀관계로 멋지게 뒤집고 비틀었습니다. 헬리콥터맘인 엄마에 의해 양육받아 결혼해서까지도 엄마에 의해 철저히 지배되는 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육신적, 정신적 연약함을 딸에게 호소하여 자신의 장래라도 희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엄마의 딸이 될 것인가? 딸은 첫 두 연부터 인당수에는 결코 빠지지 않겠다고 두 번이나 당차게 부인합니다. 대신 ‘시’와 ‘책’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제3의 길을 가겠다고 엄마에게 대들듯이 선언합니다. 


헛된 미래 소망으로 죽음이 기다리는 길이 아닌, 자신은 ‘여기 남고’ 비록 엄마는 ‘평생 어두운’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길 말입니다. “에구, 이런 지독한 딸 같으니라구!” 하지만 어머니, 당장에 경험하는 나의 현실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매이지 마세요. 대신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과정에서 냉정하게 사물의 본질을 보세요!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하여 자신이 한때 똬리를 틀었던 누에고치를 박차고 나오는 것이 어째서 죄란 말인가요? 내가 단지 애벌레로, 착한 엄마의 딸로 죽어버리는 대신, 한 여성으로서, 아니 한 놀라운 인간으로서 성숙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렇다고 제가 현실적 대안이 없이 이상적 주장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 대신 점자책을 사 드리고 점자 읽는 법도 가르쳐 드리려고요. 그래서 만인과 정상적 관계도 이루고 또 하고 싶으신 일을 마음껏 하시게 하려고요. 이렇게 상식들을 뒤집고 비트는 도발을 제목으로부터 표현합니다. ‘배꼽을 위한 연가.’ 어머니로부터 배꼽이 떨어진 후 독립적 존재로서의 정체성!


그렇지만 어머니,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보편적 진실들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라고 한국인들이 부르는 각자의 ‘어머니’와 ‘나’의 인생이란, 어릴 적에 자동적으로 배우는 모국어가 아니라, 기를 쓰고 악착같이 배워야만 습득하는 ‘외국어’와 같다는 것 말입니다. 둘째, 이런 살 떨리는 현실과 정반대로 우리가 막연하게 믿었던 ‘인당수’라는 몽롱한 실체는 ‘없다’(허구)라는 사실입니다. 셋째, 우리 각자는 ‘스스로 눈을 떠야 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책임을 남에게 넘기며, 난관을 만날 때마다 도와줄 사람(주로 남자)를 찾아 눈을 두리번거리고, 자신의 속을 철저히 감추는 요조숙녀 근성이 세상에서 가장 농후한 한국 여성들을 깨우는 시가 한국 여성에 의해서 쓰였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쓴 분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직접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나요?


사족이 되지 않는다면, 이 시에 조금만 덧붙이고 싶군요. 첫째, “우리는 스스로 눈을 감았기에, 스스로 눈을 떠야 하는 존재”라고요. 내가 눈을 감았기에 내가 눈을 떠야 한다고요. 인간은 가족, 민족, 문화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형성되어, 스스로 눈을 감아 일그러진 자화상을 내면에 만들 수도 있습니다. 둘째, 인간이란, 그런 현실적 한계들을 넘어서서, 목적없이 세상에 던져져 방황하는 불행한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려는 본성이 가슴 깊이에서 약동하는 존재가 아닌가요? 셋째, 이 ‘영원한 것’이란, 있다가 없어질 인간이 아니라 나와 우주를 만드신 분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또 이 분이 나를 이 뒤틀린 세상에 보내신 놀랍고 영원한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면, 이 분이 내미신 절절한 도움으로, 왜곡된 현실 속에서라도 가슴 닫고 마음 닫아 형성했던 비틀어진 자화상을 스스로 고칠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나요?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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