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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한다는 것.

2021년 1월호(13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2. 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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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한다는 것.

 

위례 신도시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니 그다지 낯설지 않지만 밝은 오후에 본 학교의 풍경은 새삼 멋지게 보였다. 세련된 디자인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고 운동장 주변으로는 아늑한 타운하우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교실을 지나 도서관을 거쳐 다목적 공간으로 이동했다. 건물 안의 공간 배치에서 대학 분위기가 나고 외국학교의 느낌도 들었다. 개인 사물함이 놓인 넓은 공간이 있었고 깨끗한 탈의 공간과 남녀 화장실이 보였다. 정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남녀가 뒤섞여 쾌활한 목소리를 내며 복도를 오갔다. 
해외의 학교에 와 있는 것인지, 요즘 우리 고등학교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져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어리둥절한 내 모습을 보아서였는지 옆에서 선생님이 한마디 거둔다.


“우리의 학교시설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답니다.”


‘저널리즘 및 연출’에 관심이 있는 학생을 만나러 이 학교에 왔다.
10여 명이 조금 넘는 남녀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노라니 반가운 안도의 숨이 절로 나왔다.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이 주류를 이루는 시기에 학생들과 대면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반응을 살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큰 기쁨과 편안함으로 다가올 줄이야.


저녁 5시에서 7시에 걸친 두 시간의 만남이니 피곤할 법도 한데 눈빛이 흔들리지 않고 살아있다. ‘스스로 원해서 자리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좀처럼 생기 넘치는 눈빛을 기대하기 힘든 대상들에게서 그런 기운을 주고받으니 강의가 수월하다 못해 흥이 솟는다. ‘그래 그런 눈빛과 깨어있음으로 내일을 준비해나간다면 나름의 소망함을 이룰 수 있을 거야, 꼭 그 꿈이 아니더라도 삶의 여정에서 새로운 길과 가능성을 만들어가기 기원한다.’


이젠 너희 나이의 아이를 둔 학부모의 심정으로 두 시간의 만남을 이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내 고등학교 시절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초·중학교를 걸어서 등하교하다가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고등학교를 다녀야 했다. 사대문 바깥 변두리에서 사대문 안에 있는 혜화동 언덕 위의 학교까지는 꽤 긴 등하교 시간이 걸렸다. 때론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맡기며 처음으로 대중교통의 피곤함을 경험했다. 자그마한 교실에 꽉 들어찬 60여 명의 학생들이 바글거렸고, 수업을 마치면 바로 이어지는 야간부 학생들의 수업을 위해 급히 청소를 마치고 교실을 비워야 했다. 


학생들로 바글거리는 학교에서는 그 많은 학생을 일일이 챙기며 각 사람에게 주목할 만한 여력이 없어 보였다. 각자 알아서 경쟁의 대열에서 정신 차릴 것.
서울 성곽이 우리 학교의 담장으로 연결되는 한 지점이었다는 사실은 졸업한 이후에 발견했다. 성곽 둘레길을 걷는데 성곽의 주춧돌 위로 나의 고등학교 건물이 지어졌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지만 역사적으로는 의미 깊은 사실에 관한 뒤늦은 깨달음이랄까…
한 세대만큼의 세월이 지나서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찾아간 셈이다. 


그 사이에 학생들의 수는 줄었고 학교는 학생들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다. 시대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와 미래를 재단할 수 없고, 창조적인 정신과 인간미를 발현하는 ‘더불어 함께’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여러 생각이 몰아쳤고, 가장 따뜻한 격려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잎이 지며 겨울을 알리듯, 추위 끝에선 다시금 봄이 피어오를 것이다.  

 

 

기획자 프로듀서 이준구

brunch.co.kr/@ejungu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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