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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달 새

2021년 4월호(13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4. 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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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달 새    

  - 권 오 훈

 

하늘 높이 높이에서
까불대는
종달새 한 마리.

찬바람에 날리듯
빛으로 반짝, 나타났다가
하늘빛 속으로 숨어들고
이내
또 빛을 감고
수/ 직/ 으/ 로/
떨어져서는
콕!
보리밭에 박힌다.

쪼로롱!
종달새소리가 까무러친다.
보리싹이 파래진다.

 

같이 음미해 볼까요?

 

코로나19로 힘든 우리를 위로하려듯이 2021년 봄은 약간 일찍 찾아왔습니다. 이 봄의 전령에는 일찍 피는 소박한 봄꽃들도 있지만 종달새도 있답니다. 함초롬히 앉아서 보아주기를 기다리는 꽃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이리저리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뻐하는 것을 조용히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종달새는 하늘과 땅이 자기 세상인양 온갖 곡예를 부리며 까붑니다. 우리를 완전히 수동화시키며, 그 어떤 사념도 버린 상태로 무장해제시키고 입을 벌려 넋놓고 그 움직임을 눈으로 따르게 만듭니다. 이러다가 자칫 침이 나도 모르는 새 흘러나오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4월의 화창한 푸른 들판의 무대에서 녀석은 아직 3월까지 몰아쳤던 찬바람의 움츠린 기억에서 우리를 깨우려는 듯이 반짝, 빛처럼 갑자기 등장합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까마득히 높이 날아올라선 하늘 속으로 감쪽같이 숨어버립니다. 그 뜻을 드러내지만(revelatio) 동시에 신비로 남는(mysterium) 것 같은, 자신을 창조한 분의 행동과 얼추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빛을 휘감으며 또 다시 등장합니다. 이번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그야말로 수/ 직/ 으/ 로/ 떨어지며 이제 막 푸르기 시작하는 보리밭에 콕! 하고 박히곤 또 다시 자취를 감춥니다. 쪼로롱! 하는 소리만 남기면서. 자신의 움직임을 오직 우리의 상상으로만 찾아가도록 애를 태우면서. 청보리밭은 이에 질세라 덩달아 더욱 파래집니다. 파란 하늘과 청보리밭을 조연으로 삼은 4월의 들판 공연의 주연인 종달새는, 늙을수록 세월 흐름을 안타까워하기보다 날마다 푸른 생애에서 한 해 한 해 추수를 위해 애쓰는 것이 정상적 소망이라고 교훈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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