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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 40일 미쿡 횡단 여행기(3)

2021년 5월호(13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5. 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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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

40일 미쿡 횡단 여행기(3)

 

 

비행기에서의 고통스러운 시간은 매우 익숙하다. 다리가 붓기 전, 빈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스트레칭하고 조카와 재밌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한참이 흐르자 창밖에서 웅장한 도시의 실루엣이 보인다. 하도 영화에서 많이 본 터라 단번에 뉴욕임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도착한 공항에는 식당처럼 보이는 테이블마다 태블릿이 하나씩 있다. 사람들이 그걸로 음식 주문도 하고, 게임도 한다. 한국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는 공항 풍경이었지만, 이건 신기하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역시 이게 뉴욕인가?!’


숙소에 가기 위해 부른 택시 기사님은 매력 넘치시는 분이다. 그의 흥과 함께 교통체증 넘치는 뉴욕 메인거리는 금세 뚫리기 시작한다. 인원이 많은 우리가 신기했는지 여러 질문을 건넨다. 대화 중, 자신이 에티오피아인이고, 할아버지가 6·25 전쟁 참전용사였다고 한다. 먼 곳에서 ‘한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니, 흥분되는 일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쪽을 지나자, 기사님은 센스있게 Jay-j의 노래 ‘empire state of mind’를 틀어준다. 창밖에는 미국 영화 속에서 자주 만났던 뉴요커들도 보인다. 상상 속 존재했던 내 로망이 현실에 적셔지는 이 기분 참 좋다.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여유 있던 서부보다는 바쁘고 차가운 도시 뉴욕. 서울의 빠름과 화려함이 느껴지면서도, 뉴욕만의 자유로움이 보인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나이의 사람이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 다니고 있다. 우리는 곧장 세계 경제의 중심 ‘월 스트리트’로 향한다. 가는 길, 애플 스토어도 보고 예쁜 교회에서 사진도 찍는다. 그리고 내 조카 키만큼 큰 서브웨이 샌드위치도 먹으면서 뉴욕을 맘껏 만끽한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고, 침대에 누워 하루를 일기로 마무리해본다. 


‘겉으로는 밝아 보이는 우리 가족에게 존재하는 숨겨왔던 일. 모든 순간을 한 달째 함께하다 보니 예민해져 있는 상태구나. 나의 시간 착각으로 유람선 관광을 놓치는 것이 시작이었다. 말다툼으로 싸우고, 서로 여행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화해하기는 했지만, 쉽지 않았던 시간이었음은 분명해. 뭐, 내일은 좋은 날 오겠지’
고민은 그대로여도, 역시나 아침 해는 떠오른다. 오전에는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해 뉴욕 출근길을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후, 가볍게 센트럴 파크 잔디에 누워서 뉴욕 시민 간접 체험을 했다. 내가 태어난 해에 일어났던 9·11 테러 추모관에 다녀와 아픔에 대해 마음 깊숙이 공감하기도 했다. 특히 “어느 때처럼 평범한 날의 아침, 시간의 기억으로부터 단 하루도 당신을 지울 수 없다”라는 말은 심금을 울렸었다. 이것이 우리의 둘째 날 일정이다. 싸우더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저녁 일정을 준비한다. 

 

 

유람선을 타지 못했었던 이유는 시간 착각 때문이었다. 제 시간에 출발장소에 도착하지 못하고, 소중한 돈만 날린 것이다. 오늘은 1시간 전에 미리 도착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른다. 겨우 탑승했다. 뱃고동과 함께 출발하는 유람선. 때마침 해가 지고 허드슨강 주변은 노을로 물들기 시작한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배에서 가족들과 웃고 떠들며, 풍경에 감탄한다. 높고 빽빽한 건물의 풍경 앞에 넓게 깔린 허드슨강. 그리고 그것 모두를 아우르는 다양한 색깔의 노을들.


우리는 그 시간을 ‘뉴욕이라는 무대 위 짜릿한 뮤지컬’이라고 표현하며, 그날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제는 중반을 넘어 여행의 막바지가 다가온다.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여러 미국을 맛보면서 느낀 점은 이것이다. 미국은 여러 주가 모인 큰 나라지만, 각각의 주는 다른 나라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색깔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 경험은 엠버 데커스의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자신을 미소짓게 만들었던 것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마라” 시간이 흐를지라도, 우리는 이 순간의 경험들에 대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로 남지 않을까? 어제에 비해 오늘은 완벽에 가까운 좋은 하루였다. 앞으로는 또 어떤 하루가 찾아올까? 

 

《위태한 유산》의 저자 제 준

xmfrhd5@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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