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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은 행복

2022년 4월호(15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4. 1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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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은 행복

 

나는 별똥별이다. 요즘 내가 쓰는 별칭이다. 작년 말에 어린왕자를 여러 차례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졌다! 갑자기 떨어진 별과 같다’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왕자 이야기를 읽어서였을까 참 엉뚱하지만 딱 나 같은 별똥별이 떠올랐다. 


1982년 아주 추운 겨울이다. 입춘이 막 지났으나 아직 봄기운이 느껴지지도 않는 날, 어두운 새벽 1시가 넘어서 큰 달이 뜨는 음력 정월대보름,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강원도 고한에서 태어났다. 어느 책에선가 우주의 균형이 깨지면서 사람이 탄생한다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절대 균형에 있지 않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글귀를 읽으며 난 어떤 에너지 균형이 깨져 났단 말인가? 추운 겨울의 깜깜함과 크고 밝은 보름달이 대비되는 날을 닮은 나를 그려본다. 


강원도 고한은 당시 탄광촌으로 조금 과장하자면 현재로서는 대기업과 같은 탄탄한 국영기업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강원도에서 살았다고 하면 농사짓고 구수한 사투리도 쓰며 얼굴도 햇볕에 그을린 그런 아이로 자랐을 것이라 상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다수가 깨끗한 직원 아파트에서 정시 출퇴근하는 아버지와 살림을 도맡은 엄마, 그리고 한두 명의 자녀들로 구성된 단란하고 안정된 생활환경이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였을까? 아버지는 늘 회식이 있었고 술을 하루라도 드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곳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 2학년까지 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마구 웃고, 아이들과 뛰놀고, 때때로 집 앞 산에서 진달래와 아카시아도 종종 따먹었던… 
하지만 8살 즈음, 탄광은 국영에서 민영화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있었고, 아주 큰 노사분규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폭력이 난무했다. 집에서도, 아빠 직장에서도 어디에서도 평화나 안정감은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9살이 되던 해에 이혼하셨고, 언니와 나는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이사 왔다. 서울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엄마도 없었고 시골에서 왔다고 아이들은 “사투리 좀 해봐”라며 놀리기 일쑤였다. 힘들게 구한 집은 습기가 많은 반지하로 작은 방 한 칸과 부엌이 전부였다. 이때 어리긴 했지만 모든 것에서 불행이 삶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감지했던 것 같다. 한없이 생각이 없던 내가 갑자기 철이 들기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잠도 자지 않고 새벽까지 책과 씨름하며 공부를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시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승부욕이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큰 간극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에 온지 일 년이 넘었을 때 엄마가 찾아왔고 가족이 다 같이 살게 되었다. 엄마가 있으니 마음은 더 안정되었으나 생활은 너무 어려웠다. 다행히 고1때까지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고, 늘 부정적인 생각이 날 지배했지만 밝은 가면을 유지하면서 나름 원하는 만큼의 성과도 내고 잘 살아 왔다. 갑자기 사춘기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고2가 되면서 이런저런 의문이 들었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면, 내가 원하는 성공이라는 걸 하는가?’ 어디에서 그런 답이 나왔는지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나는 누구인가, 행복은 무엇이고 어떻게 얻어지는가?’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편의점에 가서 과자 하나 고르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당연히 학교수업도 집중이 안 되고 공부도 되지 않았다. 성적은 뚝 떨어졌고 수능도 어떻게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힘든 시기였다. 그래도 취업이 잘된다는 간호학과에 입학해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며 이때 신앙도 갖게 되었다. 병원에 취업했지만, 신약개발 하는 제약회사에 다시 입사했고, 미국 이민과 유학을 준비하며 나를 다시 찾아보겠노라고 발버둥을 쳤으나, 행복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았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며 탄탄한 경력을 쌓아놓지 못한 내 삶이 보였고, 위기가 느껴졌다. 마음에 안정감을 담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고, 그 불안감을 이겨내고자 일이 많은 회사로 옮겨 5년 동안 죽도록 일했다. 다행히 5년이 지나고 나는 작은 꽃 하나를 피운 듯 했다. 내가 평가하는 나보다 회사의 평가는 더 좋았고 그래서 승진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인생의 길을 배회하는 것 같았다. 남의 옷을 입고 있는 듯, 불편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동안 쌓은 신약개발 경력을 바탕으로 인력 관리하는 업무로 나의 경력을 개발했다. 인력관리는 조금 더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다. 그동안 혼자 읽은 심리학, 코칭, 자기계발서들이 도움이 되었고, 삶과 사람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새로운 궁금증들 -회사는 왜 계속 성장을 추구하는가? 왜 직원을 돌보지 않는가? 리더쉽이란 무엇인가? 왜 진정한 리더쉽을 찾을 수 없는가?-도 풀어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미래 꼭 필요한 기술인 빅데이터 관련 공부도 하고 싶었다.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궁금증들을 풀어가면서 빅데이터 경영대학원에 진학했고 숨이 막힐 정도로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그동안 나를 돌보지 않고 죽도록 일했던 여파로 불행감, 불안, 부정적인 생각이 건강 문제로 나타나 소위 말하는 화병, 병원에서 말하는 공황장애가 나타났다. 이에 더해 아버지가 말기 간경화로 병원에 수시로 입원하게 되셨고 엄마도 건강이 좋지 않아 언니와 내가 번갈아 가며 병간호를 해야 했다. 상황이 이러니 행복을 위해 찾던 나의 정체성에 대한 끈질긴 질문도 놓아버렸다. 그냥 나는 정신 줄을 겨우 부여잡고 내 인생에서 가장 노력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그곳에 있기만 했다. 때가 되면 학교에, 때가 되면 회사에, 그리고 아버지와 엄마를 돌보는 자리에, 그렇게 지금까지 4년을 지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데도 결실들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선후배, 언제나 든든한 언니와 형부 그리고 생각지 못한 업무 성과 등. 내가 누구인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몰라도 평안한 지금에 도착했다. 평안하니 행복하다. 여전히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때때로 불안하지만 말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노력이 나를 지금에 도착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돌아보면 아주 불행한 때가 나를 가장 밝은 빛으로 인도했다.


그동안 내가 추구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정체성을 찾기 위해, 성공을 통해, 가족을 통해 오는 ‘행복’이었을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고 있음을 알고, 눈으로 보는 세상 속에 내가 있음을 느끼고 자각하고, 그렇게 내 존재를 세상과 같이 보고 있다면, 그게 정체성이고 내가 무엇을 하든 내 길 위에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둡고 차가운 겨울 밤, 가장 밝고 큰 달을 볼 수 있는 정월대보름. 그 달을 마흔 번 보고서야 그렇게 끈질기게 찾던 질문의 답을 조금 안듯하다. 방황하는 누군가에게 약간의 위로나 힘이 될 수 있을까 싶어 부끄럽지만 일기 쓰듯 내 삶을 이야기했다. 사람마다 인생에 특별한 이야기보따리가 있듯이, 나의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 감사를 전한다.

 

서울시 강동구 별똥별 
shinesalt@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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