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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해양문화를 주도한 동서양의 리더십과 그 리더십이 정상적으로 발휘되기 위해 필요한 사회문화적 시스템

2022년 10월호(15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 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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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해양문화를 주도한 동서양의 리더십과
그 리더십이 정상적으로 발휘되기 위해 필요한 사회문화적 시스템

동양: 장보고(통일신라), 정화(명나라), 서양: 콜럼버스(이탈리아), 넬슨(영국)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현재 해양문화의 패권을 이어가는 미국이 전세계를 주도하는 가운데 우주문화를 개척해야할 시대로의 전환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주문화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대륙문화에서 초기 해양문화로의 전환기에 역사적 포문을 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동서양 리더들의 성공과 실패와 그 원인들을 개인적 사회문화적 시각에서 재평가해보고, 시대를 앞선 이들의 리더십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인 우주시대를 열기 위해 어떤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필요한가에 대한 어느 정도 기준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그러합니다.


초기 해양문화를 주도한 동양/서양 4명의 리더십과 그 실패와 성공을 유도한 사회문화적 시스템
초기 해양문화의 리더십 비교를 위해 동양(장보고, 정화)과 서양(콜럼버스, 넬슨)에서 각각 2명을 선정하였습니다. 4명의 인물들은 각기 처한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이룬 업적의 역사적 의미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초기 해양문화로의 전환 가능성을 여는 독보적인 리더십을 형성하였던 점은 4명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A.동양
A.1. 동아시아 자유무역 리더십을 최초로 형성한 장보고
동북아시아에서 초기 해양문화의 리더십을 형성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코 통일신라시대 장보고(787-841)일 겁니다. 그는 지리적 영토의 확장에만 관심을 가졌던, 한반도내의 대륙문화적 주류 속에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해양문화적 잠재성을 누구보다 먼저 거의 유일하게 간파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재당, 재일 신라인을 중심으로 독자적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동양삼국을 하나의 동북아 자유무역 권역으로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육로 실크로드가 차단되어 그 대안루트로 형성되기 시작한 해상 실크로드를, 동북아 3국으로 확장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던 것이지요. 장보고의 활약상은 신라 뿐 아니라 당과 일본의 역사에도 공식적으로 기록될 정도였습니다. 
1)출신의 한계를 넘고 바다를 넘나들며, 실력으로 당대 세계에서 인정받음
장보고는 통일신라 지방호족 중 낮은 신분 출신으로, 출세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출세 가능성이 없음을 한탄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과감하게 당시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당나라로 건너가 결국 무인으로서 성공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무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당나라의 시대적 흐름을 재빨리 간파하고, 장차 무역이 동양삼국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사실을 깨닫고 다시 신라로 귀국하여, 자신의 꿈을 신라를 통해서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2)해적소탕으로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
장보고가 동양삼국 무역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뭐니 뭐니 해도 당나라와 통일신라의 골칫거리였던 ‘해적의 소탕’이었습니다. 장보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통일신라 흥덕왕에게 당시 신라인을 노예로 팔던 당나라 해적소탕을 약속하고, 1만명의 군사를 요청해 청해진을 그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후 해안에 출몰하는 해적들을 모조리 소탕해버렸고, 막강한 해군력을 형성하여 동아시아 해상을 장악하며 동양삼국간에 안전한 자유무역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3)장보고의 몰락과 원인
하지만, 장보고의 나라 통일신라는, 대륙문화적 경향을 가진, 출신성분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골품제 사회로 왕위쟁탈전이 한창이었지요. 장보고는 청해진을 본부로 한 막강한 해군력과 동양삼국에서의 그에 대한 인지도의 상승으로 중앙 권력자들의 시기질투를 받으며 견제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세력다툼과 암투로 인해 결국 장보고는 암살당하고, 그가 이루었던 청해진의 화려했던 역사는 10년도 채 못가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장보고 개인은 그 시대를 훌쩍 뛰어넘는 리더십으로 유래없던 동북아 자유무역을 꽃피웠지만, 그가 속한 사회는 비록 삼국통일을 이루었어도 이미 형성된 뿌리 깊은 대륙문화에 기초했기에, 결국 장보고와 신라는 이 문화에 휩쓸려 안타깝게도 동아시아 최초로 형성한 해양문화 주도권의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A.2. 세계 최초/최대 대항해 리더십을 형성한 정화
동양의 두 번째 인물로는 중국 명나라의 정화(1371~1434)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서양의 대항해보다 무려 60여 년이나 앞서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에 이르는 초거대 항로를 세계 최초로 개척하여, 동아시아를 넘어선 조공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정화의 해양원정 거리, 기간, 규모, 그리고 배의 사이즈 등은 서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는 점입니다. 단적인 예로 정화의 배에 비해 60여 년이나 뒤진 콜럼버스의 배는 장난감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1)대체 불가능한 실력으로 출신의 벽을 돌파
정화가 환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명나라 영락제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원정함대의 총사령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그의 실력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공신들을 제치고 황제 직속의 정사로 발탁된 것도 무슬림 출신이지만 불교와 도교, 유교에 대한 이해가 무척 높았기 때문이지요. 
1회 해양원정 거리가 186,000km에 이르고, 2년여 기간 동안 20,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데리고 항해해야 했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사전에 세심하게 준비해야했습니다. 또한, 항해하는 동안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도 즉시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판단력과 실행력도 필요했습니다. 정화는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원정항해를 28년 동안 7회에 걸쳐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마지막 7번째 원정 때는 총사령관인 그를 대신할 인물이 없어 끝까지 노쇠한 몸을 이끌고 임무를 완수하였고 귀환한 다음해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2)정화의 실패와 원인
하지만, 대륙문화의 전형인 중화주의(中華主義 중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는 사상) 명나라의 주된 관심은, 자국의 문화적 우월함을 세상에 과시하고 주종관계를 형성하여 조공 네트워크를 확장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한 조정의 신하들도 환관 출신이 원정함대의 총사령관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정부의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것에 늘 못마땅해 하였지요. 그래서 원정항해의 강력한 지지자인 영락제가 죽자, 차기 왕과 조정의 세력들은 정화의 시대를 앞선 도전들(영락제의 주문으로 수행한 일이기는 하지만)을 정치적인 실익이 없는 막대한 재정의 소모로만 간주하여, 해금령(海禁令 바다를 통한 무역을 금지하는 명령)을 선포하고 그동안 쌓아온 모든 노하우와 기록들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 결과, 세계를 주도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를 놓쳐버린 중국은 400년 후 아편전쟁에서 서양으로부터 뼈아픈 치욕을 경험하였지만, 21세기인 지금도 대륙문화적 행위인 비윤리적 땅따먹기에(신장 위구르, 티벳, 대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창천3호라는 우주선을 달 뒤편으로 쏘아올리는 실력은 있으나 우주문화를 창조할 자세와 능력은 한없이 부족한 나라가 중국인 셈입니다. 과거 대륙문화의 역사가 현재와 미래를 짓누르고 있는 셈이지요.

B.서양
B.1. 신대륙 발견으로 서양으로의 패권이동에 불을 지핀 콜럼버스
서양에서 첫째로 선정한 인물은 아메리카 신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이탈리아(제노아)출신의 콜럼버스(1450~1506)입니다. 정화보다 겨우 60년 늦게(1492-1432=60년) 출발하였지만 4회에 걸친 그의 신대륙 항로 개척은 서양이 동양을 추월하여 패권을 쥐게 된 결정적인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서 마젤란과 바스쿠다가마 등이 세계일주와 인도 항로를 발견함으로, 온 서양이 무역을 빌미로 전 세계 패권을 장악하는 기초를 놓았습니다.
1)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집요함으로 대항해시대를 개척
콜럼버스가 누구보다 먼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대서양을 건너 서쪽으로 가면 아시아가 나올 것이라는, 누구나 가지는 생각 때문이 아닙니다. 모두들 그렇게 가면 거리가 너무 멀어서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때에, 유일하게 가능성을 집요하게 따져보며(사실, 엄청난 계산착오가 있었지만요), 끈질기게 주변을 설득하여, 재정적, 정치적인 지원과 함께, 항해할 사람들을 모았던 탁월한 실행력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2)콜럼버스가 거둔 성공같은 실패, 그러나 성공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성공하고 서양으로의 패권 이동의 기폭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동양의 장보고나 정화와는 다르게 ‘아무도 하지 않는 발상과 시도를 용인하고 지지하는 해양문화 초기단계의 사회, 정치적 시스템’ 때문입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네 차례의 원정은 자신이 속한 대륙문화적 관습대로 정복적이고 폭력적인 식민지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수많은 원주민의 노예화, 학살, 착취 등의 윤리, 사회문제를 야기하였으므로, 현대에 와서는 ‘사실상 실패’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지요. 하지만 서양의 해양문화가 패권을 현재까지 장악하는데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B.2. 막강 해군으로 영국 패권시대를 연 넬슨
서양의 두 번째 인물은 영국의 해상 패권시대를 확고히 한 넬슨(1758~1805)입니다. 넬슨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퇴함으로써 나폴레옹의 정복야망을 종식시켜, 막강한 해군력이 영국의 상징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영국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해군력을 앞세워 자국의 영토보호 및 해외식민지 무역의 질서를 새롭게 하였고, 100여년 간의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영국에 의한 평화)’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1)정확한 확신으로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저돌성과 과감함으로 실력을 인정받음 
넬슨이 전투에서의 저돌성과 과감함으로, 문제를 해결해버리는 실행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습니다. 그러나,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면서까지 독자적인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늘 상관들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그런 행동이 전투를 승리로 가져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함으로써 결국 모든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제독과는 달리, 부하들에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작전에 얽매이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할 것을 주문하며 재량권을 부여하여, 그들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낸 리더십(일명 ‘넬슨 터치’)을 가졌기 때문에, 역대 최고의 야전사령관이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2)넬슨의 성공과 원인
넬슨은 늘 부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범접할 수 없는 해군력 형성에 기여하여, 유럽 전체가 100여년 동안이나 평화의 시기가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는 가장 성공적 리더십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공이 가능했던 이유는 ‘명령을 어긴 용감무쌍한 개인의 행위도 관용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양문화적인 영국이란 사회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만약, 조선과 같은 대륙문화적 사회 속에서 태어났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시기 질투하는 선임들과 심지어 임금(선조) 때문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이순신처럼 살았을런지 모릅니다. 

우주시대를 위해 필요한 리더십과 그 리더십이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준비되어야할 사회문화적 시스템
A.리더십의 준비
우주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을 준비하기 위해 동서양 4명의 초기 해양문화 리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자신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한계를 뛰어넘기입니다. 동양의 장보고나 서양의 콜럼버스는 자신이 속한 시대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삼아, 그 환경을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버렸지요. 
2)탁월한 실력으로 독보적 리더십 형성하기입니다. 동양의 정화나 장보고, 서양의 넬슨처럼 누가 문제를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가장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하느냐가 결국 열쇠임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B.우주시대에 준비될 리더십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반드시 필요한 사회문화적 시스템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인의 탁월한 리더십보다 그런 리더십이 발휘되기 위하여 현재의 대륙문화가 아니고 다가오는 해양문화에 걸맞는 사회문화적 시스템이 준비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곧 맞이할 우주시대에 필요한 사회문화적 시스템은 어떠해야 할까요.
1)먼저는 전 세계가 지구인이라는 하나의 자의식으로, 전지구적 공통된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우주 혹은 세계(단일)정부 설립이 필요합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평화를 위해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을 만들었지만, 강력한 구속력이 없었던 한계 때문에 실패하여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였고, 그 이후에 크게 보완하여 지금의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이 결성되었습니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한국이 최초의 수혜국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유엔의 구조에서는 핵심 역할을 하는 5개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러시아와 중공이 대륙문화의 잔재인 땅따먹기 욕심을 버리지 못해 세계의 평화와 안보, 공통된 가치를 훼손하는 주범이 되고 있어, 새로운 구심점과 구속력을 가진 세계(단일)정부가 필요한 겁니다.  
2)우주정부가 강력한 결속력과 구속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한 국가를 초월한 전지구라는 더 큰 시각에서, 각 나라의 법과 전통에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우선하는 상위법(우주법)을 수립해야 합니다.
3)그리고, 여기에는 이러한 법과 윤리의 출발점인 종교에 대한 관용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전쟁이 없는 따듯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종교가 앞장서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문화가 요구됩니다. 세속주의나 이데올로기도 모두 일종의 종교이기 때문에 이것이 전통종교를 핍박하지 못하게 해야합니다.
4)지속가능한 우주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전지구적 공통과제인 우주개발과 기후변화 대응이, 각국의 정권이 바뀌어도, 독립적으로 세계(단일)정부와 협력하여 진행될 수 있도록 자국의 법을 개정/재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출신, 나이, 성별, 민족, 영역을 초월하여 실력과 인격이 탁월한 인재를 리더로 발탁하는 문화를 가져야 합니다.
6)우주시대를 열기위해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난제들(우주에너지, 우주식량, 시공을 초월한 이동, 우주건축, 우주쓰레기, 소행성 충돌 등)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을 모두 중요시 여기고,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첼렘 추광재
caleb.kj.cho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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