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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6일, 남해안 관통 공동체로 우주문화를 창조하는 문화, 역사기행을 하다

2022년 10월호(15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 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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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5박6일,

남해안 관통 공동체로 우주문화를 창조하는 문화, 역사

기행을 하다

A. 여행준비
올해 대폭 길어진 추석기간은 자칫 잘못하면 여느 명절처럼 허망하게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섬세하게 시간과 일정을 배열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문화역사기행을 다음과 같이 조정해 약 1달간의 준비를 거쳐서 시행해 본 결과를 여기에 올립니다.

1) 시간 - 일정조정과 여행공동체 :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분들은 추석기간의 여행을 위해 일단 가족방문을 미리 하거나 혹은 추후에 하기로 하고 가족들의 양해를 미리 얻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추석전 하루(9월8일 목요일) - 추석연휴 (9월9일~12일) - 추석후 하루(9월13일 화요일)인 총 5박6일로 정했습니다. 각자의 회사에 추석 전후 이틀간 휴가를 미리미리 신청함으로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에 참여하는 분들의 직업은 모두 달랐으며, 남녀 불문하였고, 초등학생에서 70세가 다 된 분들, 네팔 출신과 중국인까지 포함해 하나의 여행공동체가 되어 움직여 보았습니다. 여행의 별미는 어디에 가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있지 않고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있다고 하는데, 평소 이 운동에 동참한 분들이니 어느 정도 친밀도가 있었습니다.

2) 공간 - 방문지 결정 : 2017년 우리는 일본의 ‘큐슈지역’을, 2018년 중국의 ‘남부지역’ 상해와 그 근교에서 문화역사기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방문지의 문화나 역사에 대한 사전연구와 사후연구를 통해 그 지역을 깊게 이해하려고 해보았는데, 이것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여행을 하면 먹고, 보고, 자는, 그야말로 1차적 욕구만 충족하려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곧 여행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며, 그곳이 그곳처럼 보여 여행 자체가 심드렁해지기 매우 쉽습니다. 스위스의 환상적 경치라도 처음에는 ‘와’를 연발하지만, 그런 경치가 계속되면 자연의 신선한 느낌도 곧 사라지지요. 그래서 인간 속의 ‘먹는 욕구’나 ‘보는 욕구’와 같은 1차적 욕구보다 인간 행동과 삶의 의미를 찾는 더 깊은 차원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행을 위한 ‘사전연구’와 ‘사후연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나로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국내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해안과 서해안은 관광지로 적합하지만, 문화,역사 기행지로는 적절하지 않기에 자동적으로 남해안으로 좁혀졌지요. 이렇게 ‘내륙’이 아니고 ‘해안’을 찾은 이유는,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서 계속 기획하고 있는 [대륙문화-해양문화-우주문화] 시리즈에 걸맞은 지역이 해안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무조건 대륙문화적 바탕이 되는 땅을 떠나 바다로 나가야 하며, 더 훨훨 공중을 날아 심지어 우주로 나가보려고 시도해야 하는 21세기에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해안 동쪽 끝인 부산 동쪽에서부터 남해안 서쪽 끝인 진도까지로 범위를 설정하였습니다. 이번 기행이 임진왜란과 이순신이 활동했던 남해안 전체 영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김훈의《칼의 노래》, 김탁환의《불멸의 이순신》, 영화 [명량],[한산] 등을 각자가 미리 (다시)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행의 관심은 임진왜란과 그것이 일어난 한 시점을 훌쩍 넘어 우주 시대의 한반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된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3) 여행목적 - 문화의 현상적 껍질 뒤에, 늘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인간 행동의 이유와 형성하는 문화의 동기 발견하기 : 인간이 형성하는, 눈에 보이는 사회와 문화현상 배후에는 항상 그렇게 행동하는 인간의 이유와 문화적 패턴을 형성했던 동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문화의 외면’만 보면서 ‘문화의 내면(속)’을 추론하지 않으면, 결국 문화 이해에 실패하고 형성한 문화의 근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맛있는 음식과 눈에 띄는 색다른 광경에 주목하기보다, 그 안에 담기기 마련인 ‘문화’, ‘역사’, ‘세계’라는 보이지 않는 세 영역을 상상하면서, 현상들의 상호 연관관계를 늘 염두에 두면서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혀 다른 지역들을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직접 경험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지와 관련된, 혹은 대륙문화1(정주문화), 대륙문화2(유목문화), 해양문화, 우주문화라는 ‘초거시적 시각’과 관련된 그 어떤 주제라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미리 선택해서 사전에 연구하고, 생각하고, 상호토론하면서 이동해갔습니다. 그리고 하루씩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에 모여, 각자가 연구, 생각, 준비한 자료를 배포하고 발표한 후에 질문, 대답, 토론하는 시간을 1시간 정도 가졌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생각한 것이 너무 엉뚱할 정도로 주관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게 들려야 할 정도는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문화역사기행을 한다는 관점에서 반드시 글을 쓴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적당한 긴장감을 가진 가운데, 경험한 유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더 집중해서 관찰,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행 중에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들인, ‘지나치게 흥청거림’, ‘배불리 먹거나 실컷 자는 것’, ‘감상에 빠짐’, ‘피곤함에 절음’을 방지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매일 7시간씩 매우 규칙적으로 잠을 잤으며, 일정한 시간에 취침과 기상을 하는, 기분 좋게 여행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필수법칙을 지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지요.

B. 매일의 세부일정
제1일 (9월8일 목요일 경기도에서 부산의 동부까지) : 태풍 힌남노가 출발 전날 방향을 정확하게 우리가 가려는 남해안을 관통했기 때문에, 모두는 여행이 가능이나 할까 염려했습니다. 심지어 여행지에 가서 여행이 아니라 복구를 위한 노력봉사만 하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가장 먼저 들른 부산은 역사와 문화가 아주 많이 쌓인 곳이기에 이틀을 잡았습니다. 내려오는 오후에 부산국립과학관을 바로 들러서, 5백여 년을 이어간 서양의 해양문화가 우주선을 우주로 쏠 정도까지 발전하게 된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해운대와 광안리 근처의 수영이라는 지명이 조선의 ‘경상좌수영’의 줄임말인지도 알 수 있었지요. 참고로 조선시대의 좌우 방향은 현재 우리가 보는 지도와는 정반대로, 수도인 서울에서 임금이 아래를 향해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정해져, 이순신이 수사로 있었던 ‘전라좌수영’이 이억기가 수사로 있었던 ‘전라우수영’보다 현재의 지도상에 오른쪽에 있는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숙소는 광안리의 환상적인 밤풍경을 최고로 감상할 수 있는 금련산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으로 정했습니다. 여기서 게임중독에 빠졌지만 친구 따라 천문대에 갔다가 천문학을 공부하게 된 입심 좋은 해설자의 유쾌한 설명이 우리의 피곤을 녹여주었습니다. 비록 150만원짜리 망원경이었지만, 두둥실 떠오른 깨끗한 밤하늘의 보름달과 토성과 그 고리들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지요. 또 다양한 전국의 천문대에서 경험하곤 하지만 언제든 생생한 느낌을 주는, 천체투영관을 통해 청명한 가을의 입구에서 우주 전체를 상상해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제2일 (9월9일 금요일 부산의 감천마을까지) : 본격적 부산 탐험으로 일정이 빡빡할 것이기에, 아침에 재빨리 움직여 UN군이 최초로 창설되고 참전한 것을 기념하는 UN기념공원을 방문했습니다. 19세의 나이로 산화한 파란 눈의 젊은이들의 무덤은 정의로움과 삶의 의미를, 동시에 21세기의 우리는 이들의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다른 나라, 백성을 진정으로 도우는 국가,민족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역사적 시간으로는 조금 더 앞인 일제시대를 만날 수 있는, 근처의 국립일제 강제동원 역사박물관으로 옮겨서, 징병,징용,성노예의 역사를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여행하는 우리 중에는 일본의 탄광에 끌려가서 죽을 고생을 하다 돌아오신 분의 아들이 거기서 부친의 이름도 찾아낼 수 있어서 같은 감격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번호’ ‘일본식이름’이 아닌 부모님 지어주신‘이름’을 통해 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부친과 아들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역사적 시간을 더 앞으로 이동하여 조선 후기의 조선통신사역사관이 있는 근처(옛 자성대)로 방문하여, 왜 ‘일본통신사’는 없었던가를 질문해보았습니다. 일본의 쇼군은 조선통신사를 지방의 다이묘들이 쇼군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거창한 행렬을 지으며 에도를 1년마다 방문했던 산킨교타이(참근교대제)의 일부로 선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즉 조선이 그런 다이묘처럼 숙이고 복종한다는 것으로 통신사를 소개했을 것으로 추론해 보았습니다. 그곳의 관장님은 명절에 역사여행을 하는 우리를 한 가족으로 생각하시고, “멋진 할아버지에 멋진 가족들이라고!!” 감동하며, 역사관 밖에까지 나와 배웅해 주었지요. 오후에는 지금은‘영도’로 줄여서 말하는 ‘절영도’로 옮겨 해양대학교 앞에 있는, 오륙도(5-6도)가 정면에서 시원하게 보이는 국립해양박물관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한국이 따라잡은 엄청난 해양기술과 해양산업은 원래 지난 5백여 년 동안, 해양문화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켜 현재까지 패권을 장악해 왔던 포르투칼-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이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면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이러는 동안 무려 3면에 바다를 끼고 있었던 조선은 왜 큰 바다(해양)로 나갈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 결과 외부로부터‘은둔의 나라’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화려한 해양과학과 기술을 축척한 자부심보다 더 크게 엄습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다시 조금 더 서쪽으로 옮겨, 한국이 외국과 관련을 맺은 매우 현실적 장소로, 부산역 맞은편에 놓인 차이나타운과 텍사스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동안, 요즈음은 러시아, 타지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에서도 진출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리의 케밥과 중앙아시아식 빵은 우리의 입맛을 살짝 돋우었지요. 자~ 이제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니 부산이면 우리가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부산의 진면목을 간직한, 추석인파로 법석을 떨고 있는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입니다. 숙소로는 조금 더 서쪽으로 이동해 감천문화마을에서 자리를 잡았고, 환상적 바람을 안고 어스름하게 떠오르는 보름달과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감천만의 밤풍경과 바람은 오랜 피난민들의 숙소를 개조한 곳에서 여전히 새어나오는 약간의 불편함도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제3일 (9월10일 토요일 통영까지) : 부산을 떠나 서쪽으로 가는 가운데 놓칠 수 없는 곳이 을숙도생태공원입니다. 건너오면서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인 낙동강 하구언 방조제와 그 옆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삼각주인 을숙도는 정말 대조적이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이긴다는 확신이 갈수록 점점 옅어질 것인데, 서양인들은 자신이 주도하고 일구었던 해양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인인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하든지 이들을 따라잡는다고만 생각하고 추격해서 따라잡기는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서양인들이 만든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를 만들어 문명의 파멸(기후변화)을 막으면서도, 동시에 해양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우주문화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요? 가덕도-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에서 강원도 후발 팀과 합류한 후에,‘촤~’하는 소리를 내며 파도와 함께 몽돌들이 구르는 환상적 거제도의 몽돌해변을 포기할 수 없어서 잠시라도 들렀습니다. 물론 중간에 여유가 있었다면, 원균의 패배로 조선수군이 전멸할 뻔했던 ‘칠천량해전’의 장소를 의도적으로라도 찾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승전보다 패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스라엘군의 전통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순신동상은 전국에 넘쳐나나 패전기념관 같은 것은 아무도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원균의 칠천량 패전 때문에 이순신의 명량해전의 승리가 더욱 돋보이게 된 역사적 아이러니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가정에 불과합니다. 재빨리 통제영이 있던 곳인 통영에 배 시간에 늦지 않고 도착해, 한산대첩(1592.7.8.)의 장소인 한산도로 페리를 타고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이 얼마나 제때에 일사불란하게 흔들거리며 파도에 떠밀리는 바다 위에서 학익진을 펼치고 거기서 포로 일제사격을 훈련했을지를 연상하면서, 느릿느릿 ‘승리를 제조하는 곳’을 뜻하는 제승당을 향하여 걸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바다에 여유롭게 떠다니는 어스름한 저녁에 불을 켠 호화 쌍동선은 점차로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염려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바다가 가까이 보이는 아름다운 펜션에서 맞이한 시원한 밤공기 속에서 행복한 잠자리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제4일 (9월11일 주일 여수까지) : 통영의 정식 명칭인 (삼도수군)통(제)영은 좋은 출발점이었습니다. 현재는 소박하게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동양과 전 세계에 최첨단의 혁신을 이룬 곳이었던 이 장소의 주인공인 이순신을, 우리가 제대로 존경하고 따르지 않는다고 일본인들이 오히려 우리를 비난하는 데, 이는 어떤 점에서는 정당합니다. 우리는 영웅으로 받들기는 하지만, 실제로 300년 후에는 그 일본에 제대로 정복당했고, 일본은 오히려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거머쥐기 전에 그 전쟁의 주인공인 도고 헤이하치로는 한산도의 사당에서 제를 올리며 이순신을 군신으로 모실 정도이니 말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점은 제승당 오른편에 죽 늘어서 있는 역대 삼도수군통제사의 공덕비들 같은 것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이들은 이순신 이후 단 한 번의 혁신도 없이 단지 이순신의 과거만 반복한 인물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바로 진주성대첩을 이룬 진주성으로 옮겨서 군민일체의 단결과 논개의 희생으로 이긴 전투의 비장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이날의 패배를 잊지 않고 다시 침략하여 완전히 진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전시품들은 칠천량해전과 마찬가지로 이 패배한 전투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는, 역사(해석)의 위선 같은 것이 엿보였습니다. 과거에 거둔 일부 승리만 가르치고, 패전과 함께 그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어른들에 대해서 지금의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것을 느낄까요? 다시 거북선전시관과 이순신의 가장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의 이순신 순국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1)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이후 일본으로의 후퇴를 결정한 고니시 유키나카, 2) 그를 도우기 위해 동쪽에서 떼로 몰려왔던 일본군들, 고니시의 뇌물에 준동하던 명나라 장수들, 3) 죽음의 장소와 순간을 스스로 결정한 것 같은 이순신의 결의에 찬 마지막 전투, 4) 거기에 걸맞은 가장 많은 적선의 대파 - 가장 많은 적군 사살 - 가장 많은 조선군의 죽음, 5) 명나라 장수 등자룡의 죽음과 이순신 자신의 죽음, 6) 일본의 움직임을 시간대 상황별로 정확하게 예측하여 출동한 노량, 7) 이어 일본군이 황급하게 큰 바다인줄로 생각하고 도망칠 곳을 정확히 지명하여 ‘가자, 관음포로!’라고 호령한 이순신 등의 전투의 전과정이 생생하게 상상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녁 즈음에 한려수도(閑麗水道)의 줄임말인 여수에 도착하여 낭만적인 ‘여수밤거리’를 흥얼거리며 한적하게 거닐었지만, 승리의 기념탑과 같은 이순신광장과 패배의 기념물과 같은 소녀상을 한 공간에서 동시에 경험하는 이상한 시간이었습니다.

제5일 (9월12일 월요일 진도까지) : 자, 이제는 극단적으로 시간의 반대되는 점까지 이동할 시간입니다. ‘한쪽 극단’은 현재와 앞으로 항구적인 미래 시대인 우주시대를 향하는 것을 상징하는 고흥의 나로우주발사전망대입니다. 나라 전체가 잿더미로 된 지 70년 만에 우주선을 쏠 수 있는 전 세계 10개국 안에 드는 나라가 되기까지 이룬 발전을 생각하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주에까지 가서 지구에서 하던 전쟁을 하면 안 되는데, 우주정거장운영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하며 지금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이어나가는 러시아와 유럽의 미래가 염려스러워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쪽 극단’은 인간이 살기 전의 먼 과거로 돌아가서 지구의 주인공이었던 비봉공룡공원입니다. 10센티 정도 크기의 공룡알은 그렇게도 거대한 몸집의 공룡들이 되어 전 지구를 덮었던 시절을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서 좋았습니다. 또 더 서쪽으로 이동하여 완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에 오자마자, 방문지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한 일을 하나 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달려들어서 그 긴 해변에 널려있는, 분해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쓰레기를 1시간 정도 걸려 청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거기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은 우리가 지불한 돈 때문이 아니라, 할 일을 제대로 한데서 생기는 작은 자부심 때문에 조금은 더 맛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깨끗하게 만든 해변의 속살인 아주 가는 모래를 맨발로 걸으며 얕게 부딪치는 파도를 온 발로 느끼는 기쁨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드디어 울돌목의 해남 쪽의 다리 아래 도착해, 명량해전 당시(1597.9.17.) 아침에 북서쪽을 향하여 급하게 흐르며 도는 해류를 따라 손쉽게 돌진해 오는 왜군을 홀로 맞이하며 분투한 대장선의 이순신, 그리고 초요기를 흔들어 “이놈 안위야, 네가 살 것 같으냐!”라고 호통치던 이순신, 마침 물길이 정오가 되자 잠시 정지된 후에 다시 남동으로 해류가 완전히 바뀌어 흐르는 가운데 소용돌이에 뒤범벅이 된 왜군 133척의 배들을 12~13척의 배로 몰아치며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던 이순신을, 조류의 시간별로 잘 계산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쁨은 거기 가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겁니다. 바로 그 바다 앞에서 우리는 많은 수의 왜군과 적은 수의 조선군으로 편을 둘로 나누어서‘명량해전실습’을 즐겁게 해본 후에 진도유스호스텔에서 꿀 같은 밤의 휴식을 가졌습니다.

제6일 (9월13일 화요일 귀가하기) : 전날 저녁에 짧게 경험한 울돌목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해남 쪽에서 출발하는 명량케이블카를 타고 진도로 이동해 또 다시‘명량해전실습’을 한 후에,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건너와서 두 가지를 체험했습니다. 먼저 명량대첩해전사기념관은 역사를 잘 정리해 청소년들이 알기 쉽게 소개할 뿐 아니라 놀랍게도 세계해전과 명량해전을 비교하기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또 어제 비로 걷지 못한 울돌목 스카이워크를 걸으며 매우 빠른 물살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귀가하는 길에 역사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는데, 고창고인돌공원과 고인돌박물관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박물관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유독 한반도에 고인돌이 많았던 것이 역사에 대한 자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인돌을 만든 동기가 죽은 사람이 이 지상에서와 같은 삶을 영원히 살기를 소망하는 가운데 만들어졌다면, 또 단지 죽은 사람을 위해서 동원되었을 깐깐한 조직력과 노동력이 많은 억압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다면, 꼭 자랑할 만한 것일까요?

여행의 목적은 결국 경험의 획득입니다. 즉 다른 사람, 다른 관점, 다른 역사, 다른 문화 등에 대한 경험입니다. 코로나19로 중지된 ‘유럽문화역사기행’ 대신 기획된 이번 여행이 가진 매우 독특한 목적을 대부분 이루었다고 조심스럽게 판단해 봅니다. 여행에 동참한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쓴 글들이 이‘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 실리는데, 이 글들은 대부분 여행 자체보다 대륙문화-해양문화-우주문화라는 초거시적 관점으로 문화,역사,세계라는 세 주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여행의 성공 여부는 우리가 판단하기보다 독자들이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공부,생각,토론하는 여행을, 특별히 아이들과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많이 할 것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많은 것이 고착화되어버리기 쉬운 중,장,노년들의 여행은 대부분, 특별한 자극이 되어 생애가 변화되는 놀라운 경험이 되기보다 단순한 소비행위로 쉽게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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