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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2023년 1월호(15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6. 2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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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선장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보면, 인생 목표가 ‘선장님처럼’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며칠 전 20대 친구들 여럿이 배에 놀러 와 이런저런 바다와 항해 이야기를 듣더니‘부러운 삶’이라고 지금 나의 삶을 간단히 정의해 주었다. 곁들여 친구들은 배를 어떻게 타게 되었는지, 배가 얼마쯤 하는지 등 배를 몰며 그간 수백 번 들은 그 질문들을 다시 던진다. 요트에서 세일을 펴고 바람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 선장의 겉모습만을 읽다보면, 두 직업을 가지고 먼 지방으로 유학을 온 딸아이를 돌보며 교육비, 생활비 벌이를 고민하는 가장의 고민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으레 답하는 말이 있다. “인생이 짧아요. 우리 의지 밖으로 태어난 우리가 떠날 때는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몰라요. 그러니 내일 말고 오늘,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몇 년 전 담낭염으로 전신마취를 하고 3일쯤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산통에 비견되는 고통과 그로 인한 병원 생활, 일상의 붕괴 속에서 삶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붓다가 말한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의 뜻을, 솔로몬이 말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일상 모두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별로 지루할 것이 없게 되었다. 자주 드나드는 한강에, 자주 지나다니는 다리들이지만 하루도 같은 구름, 같은 윤슬, 같은 노을빛, 같은 하늘인 적이 없었다. 매일 겪는 일상들이라도 자세히 뜯어보면 모두가 새로운 하루다. 오래 자연을 바라보며 인생 80년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잠이라는 매일의 죽음을 연습하며 하루에 하루, 그 하루에 또 하루의 살이를 잇대 운이 좋으면 80년 정도를 존재하게 되는 것임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 인생의 절반을 넘기며 거울을 바라보니 먼저 눈에 띄는 건 늘어난 뱃살과 떨어지는 순발력과 체력,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허덕이는 뇌 같은 것들이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소멸해 가는 뇌세포들을 달래어 남은 절반의 인생은 더더욱 하고 싶었던 일들을 꾸역꾸역 해보기로 했다. 중학교 때부터 꿈꿔왔지만 딴 짓(?)들을 하느라 선뜻 용기내지 못했던 일들, 책 쓰기가 그것이다. 등단은 해놓고 제대로 한 권 묶지 못한 시들을 책에 묶고, 묵혀 둔 바다 이야기들, 판타지 소설, 광야의 예수 이야기들도 그 끊어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이어볼 생각이다. 김 선장이 새 요트를 사기 위해 유럽에 가서 배를 보고 있고 조만간 대서양, 인도양, 더 먼 바다로 요트를 가지러 함께 가자니 가보지 못한 큰 바다에서의 새로운 모험들도 함께 진행될 것 같다. 이 새로운 일들에 끊임없이 도전하려는 힘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죽음을,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마지막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괴테의 표현대로 내게 주어진, 찬란히 경작할 시간들은 매우 넓어 보이지만 한정되어 있고, 이 시간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파우스트》에서 세상의 모든 쾌락을 맛보고 늙어 눈이 먼 파우스트는 자신이 건설할 새로운 세계가 세워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과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며 악마 뫼피스토텔레스와 계약한, 자신의 영혼을 빼앗길 그 말을 던진다.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하지만 천사들은 “언제나 열망하며 노력하는 자, 그 자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노라”라고 하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이끌어간다. 죽음이라는 끝을 인지하며 도리어 삶에 대한 갈망과 열망이 강해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파우스트처럼 원하고 있으나 아직 오지 않는 날들, 나의 소원과 이상을 꿈꾸며 현실의 살아갈 힘을 얻는 것 또한 인간의 삶이다. 
새해에는 더 깊이 내 인생의 끝을 돌이켜 생각하는 삶이길 소망한다. 마지막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언제일지 모른다는 그 절박한 마음으로, 내 인생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살며, 남의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우둔한 인간들이 던지는 말들에 내 에너지를 주지 말고, 그 힘을 아껴 그 동안 원했으나 용기 내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전해주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들을 더 많이 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일들, 여행이 나를 새롭게 이끌어 가도록 그곳에 나를 던져두는 삶의 모험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P.S: 글을 퇴고하는 오늘, 여수에서 활동하시던 위대한 요트 미케닉의 급작스런 부고를 듣게 되어 이 지면을 빌어 기록해 둔다. 마음 속으로 요트 스승으로 모시던 신행식(58) 사장님. 그 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Memento Mori.

 

 

세일링서울요트클럽, 모아나호 선장 임대균
keaton7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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