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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과 일본인 - 아소산을 방문하며

여행/일본 규슈 공동체여행기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6. 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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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형]

 

 

 

아소산, 불을 내뿜는 산이라는 뜻이랍니다.

‘아소산’은 일본여행을 처음 준비하며 많이 염두에 두었던 곳입니다. 여러 블로거들 의 사진과 여행일정 등을 보고 단순하게 화산 하나 정도 있는 곳이라 생각했었지요. 그 런데 아소산의 거대한 화산 지형과 규모, 대자연의 장관을 본다면 인터넷의 사진 몇 장 으로 보여지는 것들로는 얼마나 부족한가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소산으로 출발

하루 일정으로 아소산과 구마모토 성을 방문하기로 하여 새벽같이 서둘렀습니다. 첫 째 만남의 장소인 사나이Sanai 오토캠핑장까지 나가사키 소노기에서 2시간 44분이 걸 립니다. 번갈아 운전하기로 하며 다른 사람들은 잠을 청했습니다. 일본의 도로는 좌측 통행으로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어 신경을 바짝 세워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장거리를 자동차로 이동해야 하니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죠. 고속도로를 한 시간 쯤 달려 기 름을 넣기 위해 준비해 둔 비장의 일본어를 유창하게 사용했지요“. 가소린 레규라 이빠 이데스”미리 앞 차량에서 일본어 하는 일행이 외국인들이 올 것이라고 얘기는 해두었 다지만,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힘들 수 밖에 없었지요“. 케시 오 카도”무슨 소리인지? 그냥 말없이 기름을 넣어줄 줄 알았는데, 또 무엇인가를 나에게 물어오다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현금이냐 카드냐를 영어로 물은 것이랍니다. 얼른 카드를 건네주었지요. 이 렇게 기름을‘이빠이(가득)’넣고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다시 한참을 달리다 보니 우측으로 멋진 산들이 등장합니다. 자세히 보면 산들이 아 니고 길게 연결된 고원지대 같았습니다. 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저렇게 산들이 연 결된 긴 지형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계속 달립니다. 나가사키 고속도로를 달려 이 제 1차 약속 장소인 사나이(Sanai) 오토캠핑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히타시에서 국도로 내려왔습니다. 지방도로로 달리다보니 태고부터 간직하고 있는 자연의 속살을 그대로 내보여주어 다들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지요. 멀리 보이는 긴 산과 삼나무들, 아기자기한 일본의 전통가옥들을 따라 산 속으로 계속 차를 몰았습니다. 하 지만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고 안개로 앞이 가려지는 것 같더니 어느덧 구름 속에 들어 와 있었습니다. 간간히 보여지는 멋진 풍광들은 정말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습 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는 이 구간이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라고 하더군 요. 앗차, 조금 더 천천히 가면서 감상할 걸!


아소산을 향하여

원래 아소산 전망대 에서 아소산 분화구까 지 케이블카로 이동하 는 로프웨이가 있었는 데, 2016년 10월에 일 어난 분화로 인해 접근 금지 상태여서 정말 섭 섭했지요. 그래도 멀리 서 화산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출발합 니다. 아소산으로 가는 지형은 마치 제주도의 중심부나‘오름’을 지나는듯한 모습입니 다. 화산지형이라는 얘기죠. 제주에서는 오름이라 부르는 분화구 또는 솟아오른 지형 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도 곳곳에 솟아오른 곳들과 넓은 평야 같은 지형을 볼 수 있 습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과 말들이 마치 예전에 윈도우 98에서 바탕화면으로 보았던 푸른 잔디 언덕들 같았습니다. 이렇게 구름 속을 달려 언덕이 끝나는 지점에 다 다랐을 때 정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대한 산 둘레 속에 분지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또 다른 광활한 고원지대가 보였고 요.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고,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산을 내려와 평야지대를 지나 다시 산으로 오릅니다. 이곳이 아소산 중심의 분화구 지대입니다. 빨 간 흙과 검은 흙이 뒤섞여 속살을 드러내는 면과 풀들이 자란 부분이 갈라져 있어 화산 의 움직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삼나무가 이쑤시개처럼 곧게 뻗어 있는 구불 구불한 산을 오르고,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이 산의 정상 부근의 평지 지역입니다. 화산 이 분화하고 다시 메워 져 있었죠. 이곳에 도착 하니 넓게 펼쳐진 언덕 들과 멀리 구름에 쌓인 아소산 분화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산 물, 아소산과 주변지형

박물관을 방문하고 나 서야 아소산과 그 주변 의 지형들에 대한 의문이 풀렸습니다. 아소산은 높이 1,592m, 둘레 120km, 가로로 17km, 남북 25km의 거대 지형 화산으로, 폭발하는 에너지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에‘파국화산’破局火山이 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거대한 폭발로 화산이 생겼고 다시 지각변동으로 가운 데 부분이 꺼졌다가 다시 폭발하여 화산이 생긴 구조입니다. 그래서 처음 폭발하였을 때 120km 둘레를 가진 화산이었다가 중심 부분이 내려앉으면서 큰 칼데라가 생겼습니다 (칼데라 지형 – 스페인말로 냄비라는 뜻으로, 화산이 폭발해 마그마가 지표로 분출되고 그 빠져나간 자리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무너져 내려 땅이 크게 함몰된 지형) 백두산의 천지가 동서 3.5km, 남북 4.5km, 둘레 13km인 것과 비교하면, 아소산의 규 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약 9만 년 전의 폭발로 지금과 같은 지형이 생겼고 1707년의 폭발로 인해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었다고 하네요. 분출물 역시 후지 산의 1000배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 화산재는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는 물론 한반도까지 날라 왔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인 규모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비슷한 규모로는 세 군대 가 있다고 하더군요. 박물관의 여러 자료와 지형도를 보면서 고속도로를 달려올 때 보았던 산은 바로 아소 산의 외륜산, 즉 최외곽의 산이었고 올라오면서 보았던 지형들은 화산이 만들어낸 아름 다운 자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덕 끝에서 다시 다른 산으로 오른 것이 아니라 거대한 외륜산 속의 중심 산을 오른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이해 하고 난 뒤, 자연에 대한 또는 태초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이런 지형을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을 뿐 아니라 특별히 자동차로 이동하며 그 지형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거대한 산과 가운데 넓은 평야지대,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작아진 나 자신의 모습을 대비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화산지형과 일본인

이런 거대한 화산과 화산 지형을 보고 또 체험한 일본인들은 어떠한 심리를 가지고 살 아갔을까요? 우리가 주로 방문했던 큐슈지역은 우리나라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역입 니다. 이미 1400여 년 전 백제 멸망기의 백촌강전투에 일본군 파병, 임진왜란, 메이지유 신, 이후 조선침략 등의 주체가 바로 큐슈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큐슈지역의 대표적인 화산이 가고시마의‘사쿠라지마’와 구마모토의‘아소산’입니다. 두 화산 모두 활화산으로 최근까지도 큐슈지역에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나면 일본인들은 호들갑을 떨지 않고, 숙명처럼 죽음과 피해를 받아들이 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일본인들에게 직접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백두 산이 아직 터지지 않았고 역사적으로 화산의 경험이 없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 습니다. 즉 좁은 일본 땅에서 어디로 갈 수 없기에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얘기였지요. 얼핏 보면 숙명론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이 역사에서 보여준 것은 정반대로 화산 같이 분출하는 면, 즉 화산처럼 폭발하는 기개와 같은 것입니다. 역동적이고 때로 는 매우 과격하며 무지막지하게 몰아치는 폭발력이 일본인들 속에 잠재한 것 같습니다. 가고시마 현의‘사쿠라지마’에는 메이지유신의 핵심 세력인 사쓰마번의 시마즈 가문이 있습니다. 이 가문은 임진왜란 때도 조선에 엄청난 많은 피해를 미쳤던 사람들이기도 합 니다. 구마모토 역시 임진왜란 당시 2대 선봉장인‘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의 지역입 니다. 이들은 화산처럼 한반도를 두 번이나 집어삼켰습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화산에 대해 가진 또 다른 시각은 화산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신처럼 받들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미신을 많 이 섬기는 섬나라 일본에서는 더더욱 화산을 섬기는 것이겠지요. 활화산인 아소산은 아 직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또 언젠가 내부의 에너지가 집중되면 폭발할 것입니다. 요 며 칠 일본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의 도리를 매우 조용하고 깔끔하게 지키는 그들의 면 모를 보았지요. 하지만 일본의 화산들처럼 에너지가 모이게 되면 어디로 폭발할지 모르 게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무서운 진실 앞에 내 자신을 돌아보며 100년 전의 우리 조상들이 이웃을 잘 모르는 무지는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광활한 지역의 풍광과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해준 아소산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과 일본인에 대해 생각하며 아소산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나중 에 제 회사가 커지고 여력이 되면 직원들과의 단체 워크샵을 기약하며 아소산 방문을 마 무리하려고 합니다.

최승호

jslv1@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92호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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