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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기술사’와 22개의 자격증을 딴 군대 공신 안장원 교관

2023년 4월호(16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2.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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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군대에서 ‘기술사’와 
22개의 자격증을 딴 군대 공신 
안장원 교관

 

군에서 일할 생각 1도 없었던 나! 군에 발을 들여놓다
제 고향은 광주 인근의 시골마을입니다. 민주화운동, 학생데모 등을 보고 자랐던 저이기에 군에서 일할 생각은 1도 없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2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장, 공사현장 등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1998년 IMF 시절 입대 영장이 나와 고민하던 저에게 옷 장사를 하며 알게 된 사장님이 직업군인인 부사관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사장님은 힘들더라도 군에서 알뜰히 저축하면 전역 후,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큰 밑천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저는 병무청을 찾아가 바로 지원서를 냈고, 그렇게 저의 군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나를 발견하다
해병대에 입대하고 동료들과 똑같이 머리를 밀고, 옷도 군복으로 입고, 다들 제로선상에 서서 시작하는 그 시점에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제가 머리가 똑똑한 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가정형편이 나은 것은 더더욱 아니고, 좋은 친구,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닌, 너무 평범하다 못해 더 낮은 나인데 스스로 자존감과 자신감이 충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건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아닌 똥고집과 오기였어요. 현실적으로 동기들과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이런 저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진정한 강함!
해병대 훈련을 받으며 체력이 약했던 저는 이렇게 훈련하단 여기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이겨내고 싶었고, 결국 포기하지 않고 숨이 멎을 때까지 견디며 이겨냈습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강함은 내면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것을 훈련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제압하기 위해 외부로 드러내는 강함이 아니라, 내 스스로를 단련하고 컨트롤하며 내 자신을 알아가는 게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체력, 정신력, 의지력, 내면의 강함을 다지는 강한 훈련이 없었다면 제 삶의 방향은 어설프게 흘러갔을 것입니다.

중학교 때 포기한 공부,  스파르타식 공부로 자신감을 얻다
저는 중학교 때 이미 공부로 성공하리라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여러 환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부가 힘들었습니다. 당시 어느 친구도 공부가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기에 제 스스로 ‘난 공부 할 사람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저였는데, 군대에 들어가니 전투에서 승리하고, 부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전략과 전술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이게 다 암기였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스타르타식으로 공부를 하니 신기하게 암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아~ 나도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공부의 신으로 만들어줄 2년 고참 선배와의 만남
음… 2년 차이나는 고참은 대하기가 아주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 선배가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습니다. 선배는 “군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서도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고,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라면 군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서 지원서를 직접 가져와 제 사진을 붙이고 자기 돈으로 접수를 해 주었습니다. “자 이 시험이니 공부해라” 그건 바로 국가기술자격검정시험이었습니다. 제가 보통 선배라면 거절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힘든 훈련이고 저녁이면 피곤해 지쳐 잠을 자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선배는 2년 위 고참에 무엇보다도 집요했습니다. 본인이 잠을 자다가도 “오늘 어디까지 공부했어?” 라고 물어보고, “내가 문제를 내 볼 테니 맞춰봐” 하면서 점검까지 하니 공부를 하지 않으래야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 공부하여 첫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니 너무 기뻤고 선배도 무척 대견스러워했습니다. 선배는 2년 후에 다른 곳으로 갔지만 그 동안 저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선물로 남겨 주었습니다. 스스로 공부하여 성공 경험을 쌓아가면서 저는 군에서 22개의 자격증을 따고 자격증의 최고인 기술사 시험까지 도전해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군 생활이 가능한가??
공부를 하며 꿈을 가지게 되었고, 꿈을 가지고 생활하다보니 행복감을 느끼는 횟수가 많았습니다. 꿈을 가진 저는 매일 부지런한 삶을 살았고 마침내 기술사로서의 꿈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기술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술자격증으로 최상위급입니다. 건축사와 같은 기술 분야의 전문직이죠. 기술사는 과학기술에 관한 전문적 응용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항에 대하여 계획, 연구, 설계, 분석, 조사, 시험, 시공, 감리, 평가, 진단, 시험운전, 사업관리, 기술판단, 기술 중재 또는 이에 관한 기술자문과 기술지도를 그 직무로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방대한 지식과 다방면에서의 경험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기술사 자격증은 박사학위와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를 받습니다. 동등한 대우라는 것은 특정한 직위에 박사학위소지자나 기술사 자격 소지자가 동등한 자격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저는 고졸로 입대해 군대에서 전문학사, 학사, 석사로 최종학업을 이룰 수 있었는데, 군대가 여러 여건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행복하게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체험했기에, 젊은 장병들에게 저의 이러한 경험들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장병들이 자신감, 행복감을 가지고 군 생활을 할 뿐 아니라, 군대의 임무가 사회와 연관성을 가지고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 군부대에서 했던 임무가 건설, 기계분야이다 보니 사회와도 연관성이 깊다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일 뿐만 아니라 조금만 더 깊이 관찰해보면 사회와 연관된 일들이 매우 많습니다.

젊은 장병들을 깨우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사명감을 장착하다
강원도 전방 사단으로 배치를 받아 가족과 함께 구할 집을 준비하는 동안 혼자만의 시간에 가족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마을 도서관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 분량의 책을 쌓아놓고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적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몇 해 전 군 담당부서로부터 독서코칭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독서의 힘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한 저였기에 그 자리에서 아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독서습관이 부대원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독서코칭을 하며, 독서분위기를 조성하고 토론을 할 때 장병들의 밝은 표정과 반짝이는 눈빛에 참 행복했습니다. 또 불법도박예방교육 강사 교육을 수료했는데, 젊은 장병들이 군대에서 건강하게 생활해야 꿈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누가 시키지도 않은 나름대로의 사명감으로 열심히 배워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자격증 몇 개 땄니》, 《7주 만에 군대 공신되기》책을 내기까지
강원도 전방에 있을 때 고전 위주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이 때 깨달은 것은 수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고전이 사람에게 감명을 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군대에서 꿈을 가지고 공부하면 된다.’는 나의 마음을 글로 남긴다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한 권의 책을 써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글을 완성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는 우리 군인들도 정당한 절차에 의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로 군인들은 사람이 드문 오지에서 근무하게 될 때면, 산, 바다, 강들에 둘러싸여 깊고 넓은 생각을 할 수가 있는데, 이러한 양질의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는 공부로 충분히 꿈을 찾고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줄 곳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도움이 필요할 때 물어보고 찾아 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기회를 열어놓고 싶었던 것입니다.

 

소대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부품을 직접 제작한 안장원교관


이스라엘 ‘탈피오트’와 같은 부대를 꿈꾸며
이스라엘은 고교 졸업생을 간부 후보생으로 모집해 군 복무 3년 안에 학사학위를 취득하게 하고, 5년간 추가 복무를 하는 탈피오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발된 요원들은 무인 정찰기, 로봇 전투원, 드론 전투기, 무인지상차량 등 세계 최첨단 군사기술의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데, 제대 후 창업을 할 수도 있고 이런 전문성으로 사회에 진출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 부분을 생각해 오면서, 우리의 상황에 맞춰 준비하기 위해 발명동아리, 창업동아리, 독서모임을 몇 년간 이끌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는 어느 국가보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습니다. 창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협업’이 중요합니다. 협업은 함께 모여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분석, 융합하는 것인데, 이런 협업을 위해선 ‘공감능력’과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합니다. 공동체보다 개인이 중요시되고, 토론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의 상황 속에서 군대는 ‘협업’을 훈련하는 기회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체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군대의 특성상 무엇을 하더라도 작은 공동체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독서 토론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다면 상대방의 다름에 대한 인정과 이해, 서로의 아이템과 장단점을 보완하고 적용시키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제대 후 본인의 아이템으로 창업시장에 뛰어드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직 장병들을 다치지 않게 하고 싶다는 마음, 발명으로 이어지다
발명과 특허를 진행하면서 모든 게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가보고 싶었습니다. 발명은 과학 또는 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작은 불편만 해결해도 훌륭한 아이디어가 되고 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엔지니어였고 단순히 불편을 해결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가운데 고안한 것이 ‘수류탄 안전장치’인데, 수류탄이 잘못되어 누군가 크게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될 수 있잖습니까? 그리고 그게 내 자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마음으로 시작을 하니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리 단순한 마음이었는데 ‘아!’이것이 발명이라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문의를 받으니 내심 기뻤습니다. ‘밀폐 캔 안전 개봉 공구’에 대한 발명과 특허 출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로 정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장병들이 크게 작게 자주 다치게 됩니다. 제가 데리고 있는 장병들이 다치니 저조차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부모님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장병들을 다치지 않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발명을 한 것입니다.

수류탄 신관안전장치 최종 특허출원

 


같이 가야 하기에 누군가의 불편함, 내가 해결하리라
예전에는 제가 뭔가를 하면 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당장 미흡하더라도, 빠르게 공개를 하고 지도를 받았습니다.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전환하니 그때부터는 주변의 싫은 소리도 감수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생각이 전부 옳다고 할 순 없지만, 누군가가 겪어야 할 불편함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내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 내고자 하는 수고로움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이 중2때 아이디어 공모전에 참가해 육군본부에 초대받음

 


아빠! 나도 한 번 해볼까? 
저는 두 자녀에게 아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예전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아픔을 잘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기쁨, 슬픔, 즐거움, 열정을 보여 준다면 아이들도 아빠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판단하여 배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함께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제가 발명 후 발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더니 딸, 아들도 “아빠! 나도 한 번 해볼까?”라고 하더군요. 딸은 중2때 아이디어 공모전에 참가해 육군본부에 초대받고, 중3때는 육군참모총장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가장 행복할 때는 자녀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할때와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입니다. 이 두 자녀가 세계를 품고,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기에 꿈과 목표를 크게 가지라고 말합니다. 큰 꿈을 꾸는 자는 사소한 것에 결코 쓰러지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녀뿐 아니라 장병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최종적으로 장병들을 향한 마음으로 가는군요)

최정예 군수 요원을 양성하는 ‘육군종합군수학교’
제가 근무하는 ‘육군종합군수학교’는 예로부터 수많은 유학자를 배출해 온 유서 깊은 교육의 도시 대전광역시 유성구 자운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군에서 군수 요원이라면 꼭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입니다. 전쟁에서 군수 지원을 떼어놓고서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데 모든 전쟁의 역사에는 군수 요원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답니다. 또한 산업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곳 종합군수학교 출신들이 많습니다. 군 생활을 할 때는 군수 요원으로서 국가를 지켜냈고 전역 후에는 국가 발전을 위해 산업 현장을 이끌어 나가는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주역들입니다. 이렇듯 육군종합군수학교는 최정예 군수 요원을 양성하는 전군 최고의 군수 교육의 요람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교관으로 있지만 저 또한 이곳에서 교육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내가 하는 공부가 국가에 힘이 되고, 우리 군을 강하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교관님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교관님들처럼 존경받는 교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는데 정말 이루어졌습니다. (육해공군이 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나요?) 네, 종합군수학교에서의 교육은 주로 육군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되 일부 공군, 해군 장병들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병기교육단 동료들에게 발명품을 소개하고 있음

 


“정(情)이 살아있는 수업을 받았습니다. 교육이 이리 즐거울 수가!!”
수업이 있는 날에는 평상시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 수업준비를 합니다. 교실, 방송, 교재, 교육용 장비 등을 점검합니다. 교육생들이 도착하기 전, 쾌적한 환경을 위해 미리 청소, 정리정돈과 냉난방기 작동,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틀어놓습니다. 수업준비를 하는 것부터 교육생을 맞이하고, 수업을 진행하기까지 모든 일련의 과정이 저에게 행복을 줍니다. 교육생들과의 교육기간이 길수록 헤어질 때도 서운함이 커집니다. 교육생들은 교육을 마치고 부대 복귀한 후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전화를 부리나케 합니다.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난 후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으면 안심이 됩니다. 그것은 잘 해결했다는 뜻이니까요. 교육을 받고 너무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어떤 경우는 편지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정(情)이 있는 공부는 행복합니다. 수업 중에도 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고, 부담 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며 교육이 이리 즐거울 수가 있다는 것을 교관님을 통해 깨닫고 갑니다.”라고 쓰여있던 편지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24년 군 생활, 장병들 세대 간의 차이
확실히 다르긴 다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람의 본성입니다. 정을 주면 정을 느낀다는 것, 무관심하면 싫어하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 그래서 정을 주고, 칭찬과 격려를 해 주면 올바르게 자라는 게 사람입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갈수록 칭찬과 격려를 듣고 살아온 사람들이 적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개인주의가 더 많아진다는 것은 확실히 느끼는데 그만큼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다섯 가지 재능, 장병들을 위해 
군에 대해 1도 생각 안한 저에게 꿈과 희망을 준 국가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매번 합니다. 나에게 지금까지 기회를 주고 꿈을 펼쳐 나갈 수 있게 해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제가 후배 장병들을 위해 그 역할을 하려 합니다. 내가 얻은 다섯 가지의 재능인 공부, 발명, 특허, 독서와 글쓰기를 전할 것입니다. 저의 영향으로 장병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군 생활을 하는 것, 그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우리 장병들은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이끌어나가야 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과 함께 안전한 나라, 부강한 나라,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네~ 저도 결코 교과서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작년에 육군종합군수학교 교관이 되기 위해 지원을 했고 합격을 했습니다. 20년 넘게 입었던 군복을 벗어야 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가장 먼저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고2 딸, 중2 아들이 다 중요한 시기여서 동의를 얻지 않고는 이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합격했지만 너희들이 가지 말자고 하면 안 가마. 하지만 아빠의 마음은 교관이 되면 좀 더 행복할 것 같다”고 하니 딸아이가 다음날 “아빠! 갈 거면 빨리 가자 계속 있으면 가기 싫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사진제공 [육군본부]

 

안장원(1978~ ) 
현) 육군종합군수학교 교관

수상경력
2012 국제평화유지활동 표창
2012 UN평화유지군 UN기장
2017 군장병발명경진대회 입상

특허
수류탄‘신관안전장치’발명
방독면‘밀폐캔 개봉안전공구’발명
예초기‘이너케이블용 그리스도포공구’발명

학위
부산대 기술창업대학원 창업학석사

저서
군대에서 자격증 몇 개 땄니?(2019, 넥센미디어)
7주만에 군대 공신되기(2020, 공감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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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에 대한 감사와 대한민국 장병들을 생각하는 안장원 교관의 마음은 참으로 남달랐습니다. 민간인인 저에게도 그 말, 생각들이 쏙쏙 박혔지요. 특히 공신으로서 안장원 교관이 가진, 군대에서 공부하며 꿈을 가지고 군 생활을 할 때, 그 시간을 좀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고 절대 헛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저에게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안장원 교관의 다섯 가지 재능이 장병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데 빛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저도 발걸음을 힘 있게 내딛었습니다.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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