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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오랑캐 꽃

환경/숲해설사 이야기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9. 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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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해설사 이야기 8]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오랑캐 꽃

 

  ‘제비꽃’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꽃이 있을까요? 산비탈에서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인 제비꽃은 한국, 시베리아동부, 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전 세계적으로는 400여 종이 자생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70여 종이 있고 원예종으로 새로운 종을 개발하고 있으니 종류는 더 많아질 것입니다. 제비꽃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꽃인데, 왜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질까요? 아마도 우리 조상들의 수난이 담긴 애틋한 꽃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비꽃은 꽃샘바람 부는 봄이 되면 피어 서리가 내리는 가을까지 생존합니다. 제비가 올 무렵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꽃 모양이 날렵한 제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제비꽃이라 불리기도 한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제비꽃을 ‘오랑캐꽃’으로 불렀습니다. 북방의 오랑캐들이 침략하는 시기에 핀다 하여 ‘오랑캐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용악 시인이 발표한 ‘오랑캐 꽃’이라는 시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제비꽃의 뒷모양이 오랑캐의 변발 모습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비중 있어 보입니다. 자, 그럼 시를 한번 낭독해 볼까요.

 

오랑캐 꽃 
                     이 용 악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구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 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께
울어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제비꽃은 줄기가 없고 뿌리에서 잎이 모여서 옆으로 퍼집니다. 전국에 분포되어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어느 식물보다 고도의 생존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키가 작은 제비꽃은 이른 봄부터 서둘러 꽃을 피우죠. 다른 초목들이 그늘을 만들기 전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제비꽃은 다양한 색깔과 맛있는 꿀샘으로 곤충들을 불러들입니다. 그 뿐 아니라 씨앗 한 쪽에다 당, 단백질, 지질이 함유된 방향체(Elaiosome)를 붙여 놓아 개미같은 곤충들이 이것을 식량으로 생각해 옮기도록 만들어 번식하는 아주 영리한 풀입니다.

 

 

  그리고 여름이 가까워 오며 숲이 우거져서 화려하게 핀 꽃들에게 유혹당한 곤충들이 제비꽃을 돌아보지 않을 때도 결코 슬퍼하지 않고, 또 다른 생존전략인 닫힌 꽃을 피워 자신의 꽃가루받이로 ‘유성번식’을 합니다. 더 나아가 딸기나 양지꽃처럼 땅위로 혹은 땅속으로 기는 줄기에 눈을 내어 ‘무성번식’도 하지요. 이렇게 번식력이 강력한 제비꽃은 겨울을 제외하고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 되었습니다.

 

  제비꽃은 하나도 버릴 데가 없는 식물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민간요법으로 매우 요긴하게 쓰인 식물이었죠. 뱀에 물렸을 때 해독을 가라앉히는 해독제가 되었고, 염증치료제로도 쓰였으며, 어린순은 춘궁기를 해결하는 나물로도 먹었습니다. 요즈음 제비꽃에 오렌지의 3배가 넘는 비타민C가 함유되었다는 연구문헌이 발표되기도 했으니, 앞으로 제비꽃을 가까이 볼 날도 드물지 않을까 오히려 염려되기도 합니다. 식물들에게는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삶의 지혜가 있지요. 그것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서로 돕고 상생하려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겁니다. 번식을 하기 위해 곤충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제비꽃의 지혜와 같이 말입니다.

장병연(시인, 숲해설사)
bomnae59@hanmail.net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8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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