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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향한 절규, 꽃으로 피워내는 능소화

환경/숲해설사 이야기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8. 1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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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해설사 이야기 12]

하늘 향한 절규, 꽃으로 피워내는 능소화

 

 

 

  요즘 ‘능소화’가 한창 피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피는 꽃을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라고 표현하셨지요. ‘매우 탐스럽거나 한창 성한 것’이라는 국어사전의 해석처럼, 능소화는 흐드러진 꽃을 피워 올려 돌담을 넘기도 하고 고목을 타고 올라가서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길을 잠시 잡아 두곤 하지요. 예전에는 능소화를 양반꽃이라 하여 천민들이 마당에 심으면 불려가 곤장을 맞았다고도 하는데요.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겠지만, 반상(班常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분명했던 옛 시절에는 꽃으로도 서열을 정해놓으려 했던 인간의 욕심을 보는듯하여 씁쓸해지기도 하지요.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의미를 지닌 능소화(凌霄花)는 원산지인 중국의 한자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정확하게 부르자면 ‘능소화과의 낙엽성 넝쿨식물’이랍니다. 서양에서는 트럼펫을 닮아 벽을 타고 오른다고 하여 ‘trumpet creeper’라고도 부릅니다. 한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을 계속 피워 올리기 때문에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는데, 요즘은 공원이나 길거리에서도 이 꽃을 흔하게 보는 행복을 누리는 계절이지요.
  흡착근이 있어 타고 기어오르기를 즐기는 이 꽃은, 낙화하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요. 시들고 변색되어 떨어지는 여느 꽃들과는 달리 고운 자태 그대로 똑 떨어져 한층 애처로워 보이죠. 이렇게 떨어지는 꽃을 ‘절명화(絶命花)’라고 하는데, 절명화의 대표적인 꽃이 ‘동백꽃’과 ‘능소화’입니다.

 


  능소화에는 기다림으로 일생을 다한 ‘소화’라는 궁녀의 슬픈 이야기가 깃들어 있답니다. 궁녀였던 소화가 임금의 눈에 띄어 시침을 한 후 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후로 소화를 다시 찾지 않았답니다. 소화는 언젠가는 임금이 자신의 처소를 찾아 줄 거라는 희망을 안고, 매일 임금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위해 담장 밑에 쪼그려 앉기도 하고 담 너머로 고개를 올려 보기도 했죠. 기다림에 지친 소화는 병이나 죽게 되자 시녀에게 죽으면 담 밑에 묻어 달라고 했답니다. 넋이 되어서라도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고 유언을 하면서 말이죠.
  그 이듬해 봄이 되자 소화가 묻힌 자리에서 싹이 돋더니 그 싹은 담을 기어오르면서 목을 길게 빼고 담장 너머의 소리에 귀를 바짝 기울이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꽃송이들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예쁜 꽃봉오리를 닫지 못한 채 떨어지고 말았지요. 마치 나이 어린 궁녀 소화의 일생처럼 말이지요.


  이런 능소화를 보면서 저는 먼 하늘 고독을 향해 제 몸을 던지는 모습처럼 느껴져, 마음 한편이 아려 온답니다. 하늘로 뻗은 가지, 돌담을 넘는 꽃! 가문의 법도와 관습이라는 틀에 갇혀 일평생 갇힌 담장에서 벗어 날 수 없었던 양반집 여인을 생각나게 하는 능소화! 어쩌면 하늘로 뻗은 저 가지가 세상을 향한 염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심정으로 시 한 수 써 봅니다.

 

  '능소화'

                                   장병연
  이런 꽃 보셨나요.
  하늘향한 얼굴 내려 볼 수 없어
  붉은 표정 슬픔으로 일렁이네
  글(筆)로 다져진 사슬 벗어두고
  갇힌 울타리너머 손 내민 곳, 이끼 낀 돌담

  삭아진 고목보다 더 높게 오른 자리
  저, 빈 곳
  낡은 시간 걸린 녹슨 고독의 꼭대기
  오르고 또 오른다 허기진 절망일지라도

  바람으로 표백된 묶인 굴레
  휘어질 줄 모르는 꼿꼿한 슬픔 서러워
  뻗어 올린 빈 마음, 허공 손짓

  이런 꽃 보셨나요.

 

시인. 숲해설사 장병연
bomnae59@hanmail.net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4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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