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아마추어

[Retrospective & Prospective 12]

 

일상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아마추어

근 1년여의 휴직을 마무리하고 지난 3월 회사에 복직했습니다. 26년 이상을 다닌 회사였지만, 막상 다시 출근을 앞두니 신입사원처럼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휴직을 막 시작했을 때는 ‘내가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을까?’ ‘예전처럼 에너지 넘치게 일 할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내 안의 나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인생의 본질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근육을 단련했다고 느끼고 다시 회사를 마주한 저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시각에 새삼 놀라기도 하고 내심 뿌듯하기도 했습니다.1년간의 휴직 후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일상의 재발견’입니다.

다분히 목표지향적 성향의 저는 주변의 평범한 것들과 일상을 깊이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것들이 주는 작고 사소한 감동들은 저를 다시 일으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복직을 일주일 앞두었을 때 우연히 길을 가다 마주친 현대미술작가의 전시 또한 큰 감동과 여운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작가는 2001년 1월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하늘을 그려온 화가였습니다. 그는 뉴욕에 있을 때도, 여행 중에도, 전시를 준비할 때도 변함없이 그렸습니다. 물론 한 10번 정도 빠뜨리기도 했고, 일요일에 시작한 그림을 월요일, 늦게는 목요일에 완성한 적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가 17년 동안 매주 하늘을 그렸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그는 이 일련의 시리즈에 ‘선데이 페인팅’(Sunday Painting)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영어단어 중에 ‘Sunday painter’라는 단어는 ‘아마추어 작가’라는 뜻인데 다분히 이 의미를 연상시키는 제목입니다. 사실 딱히 특별한 소재도, 기법도, 철학적 의미라 할 것도 없는 이 작가를 다시 유심히 보게 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아마추어’의 라틴어 어원은 바로 ‘아모르(Amor)’입니다. 아마추어든 아니든 좋아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아마추어는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애호하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아모르는 사랑, 아마추어는 애호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아마추어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프로페셔널의 반대 지점에서 미숙함을 의미하게 된 건, 모든 것이 매끄러워야 하고, 능수능란해야 하고, 분업화되어야 하는 현대이후의 일입니다. 

휘트니미술관, 버클리미술관 등 전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지난해에는 구겐하임 재단 펠로우쉽의 순수미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는 이 프로 예술가는 아마추어의 가벼움과 사소함을 담아냄으로써, 특별하지도 않고 설명도 필요 없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가 아마추어든 아니든 그보다는, 그가 아마추어라는 말의 이면에 있는 부정적 뉘앙스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소박함이나 친절함 따위는 현대미술의 미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현학의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여타 다른 이들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오롯이 서서, 그는 ‘당신이 느끼는 것이 곧 당신이 보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바로 지금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응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정현 선수 덕에 스포츠 뉴스에 자주 나오는 테니스 경기를 보며 생각해보았습니다. 테니스에서 1점도 내지 못한 상태를 ‘Love’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0점인 선수가 승부에 상관없이 테니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제 저는 매사 실수 없고 매끄러운 일처리를 해내야 하는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에서 오롯이 일상을 중히 여기고 그 일 자체를 사랑하는 ‘아마추어’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냥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예술의전당 미술부 과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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