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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의 역습

2018년 8월호(제10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8. 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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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환경컬럼]



비닐의 역습 





 2018년 4월, 웬일인지 이전과 달리 회사 창고 박스에 포장용 비닐과 비닐 봉투들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직원에게 “비닐을 버리지 왜 모아 두냐?”고 했더니, 건물 관리소에서 “이제 비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했다는군요. 재활용 수거 업체에서 더 이상 비닐을 받지 않으니, 앞으로는 종량제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한다는 말과 함께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 기사를 검색해 보니, 대한민국 전체가 비닐 대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 지하철 역사 내부뿐 아니라, 지하철 바닥에 물이 흥건한 가운데, 승객들 사이에선 서로 “옷이 젖는다. 우산을 치워 달라.”짜증 섞인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4월에 발생한 비닐 대란의 조치로 서울시에서 5월 1일부터 전철에서 우산비닐커버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던 것인데, 우산비닐커버에 대한 보완조치 없이 시행된 제도로 시민 불편을 초래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시민의 불편이 아닌, 환경문제라는 ‘불편한 진실’인 비닐문제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닐봉투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반투명, 불투명하거나 투명한 재질의 질기고 튼튼하며 물이 새지 않는 봉투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 얇고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필름의 원래 재질 이름은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폴리에스터등 입니다. 실제 비닐이란 용어는 PVC 계열의 물질입니다. PVC 파이프는 우리가 익히 아는 회색으로 된 파이프인데, 그 PVC의 V가 바로 비닐의 약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비닐봉투는 비닐재질이 아닌 거죠. 전문가들도 이를 잘 알지만 이미 굳어져버린 ‘비닐’이란 말을 그냥 쓰고 있을 정도로 비닐은 우리 삶과 밀착되어 있습니다. 

 영어권 나라들에서는 그냥 ‘플라스틱 백’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왜 이리 정확한 명칭을 쓰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플라스틱과 관련된 용어 중에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우리가 잘 아는 페트병도 있죠, 페트병에서 P.E.T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halate)란 물질입니다. 영어권에서는 그냥 ‘플라스틱 보틀’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페트병이라고 하죠. 어쨌거나 이 비닐봉투는 ‘비닐봉지’, ‘비닐봉다리’로 아주 오랫동안 사용해 온 정감있는 단어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친근한 ‘비닐 봉다리’는 아주 무서운 녀석입니다. 비닐을 사용한 후 폐기하기 위해 매립을 하더라도 잘 썩지 않습니다. 

 국제적 시민단체인 ‘제로 웨이스트’에 따르면 비닐봉투의 사용시간은 25분이지만 매립 후 최소 20년에서 100년이 걸려야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빠르게 비닐을 폐기 처리하기 위해 소각로에서 태우게 되면 다이옥신이 발생하는 아주 위험한 물질입니다. 지난해 서울시가 사용한 우산비닐커버는 520만장으로 추산됩니다. 작은 편리가 낳은 불편한 진실을 비닐대란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비닐대란의 시발점은 중국에서부터였습니다.

 중국의 환경문제는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개발로 인해 가중되었습니다. 중국정부가 애용하는 문제해결 방안은 어느 날 갑자기 규제를 통해 눈앞의 성과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우악스럽지만 부럽기도(?)하지요. 작년 미세먼지문제로 정상 조업 중인 공장과 회사들의 대표들을 구속시키고 공장을 폐쇄조치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2017년 말부터는 “폐플라스틱, 분류하지 않은 폐지, 폐금속 등 고체 폐기물 총 24종의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해 버렸습니다. 이에 따라 폐비닐을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수출길이 막히게 되었고 처리하는 비용과 수거비용에 타산이 맞지 않아 폐비닐수거 문제가 발생된 것입니다. 

 중국이 수입을 중지하면 당분간은 수출이 어렵기에 고심 끝에 정부가 대안을 제시한 것이 동남아 국가에 수출하자, 또는 비닐쓰레기를 줄이자는 원론적인 얘기로 끝나버렸습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비단 한국만 겪는 상황은 아닙니다. 미국, 캐나다, 영국, 유럽연합(EU) 국가들도 중국으로 수출했던 재활용 쓰레기 물량이 갈 곳을 잃었습니다. 특별히 한국과 미국의 피해가 큽니다. 한국은 세계 최대 비닐·플라스틱 소비국입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64.1㎏으로 미국(50.4㎏)보다 많고, 중국(26.73㎏)보다도 2.5배나 많았습니다. 한국 환경부는 폐기물 처리업체에 대해 수거 가격을 올려주고, 잔여 쓰레기 처리 비용을 4분의 1 수준으로 감축시키는 등 내부단속에 총력을 기울여 사태 진정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내부적으로 보면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회용 비닐봉투사용량은 서울시민 1인당 연간 평균 370여장에 달한다고 합니다. 독일의 1인당 비닐봉지 사용량은 약 70여 장, 스페인은 약 120여 장으로 우리나라 사용량은 이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 또한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 동안 사용하는 1회용 비닐봉투는 약 190억장이라고 했습니다. 이 190억장 비닐을 단 하루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약 5,200만 장의 비닐봉투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원유 약 95만1,600ℓ도 절약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이산화탄소 약 6,700톤이 감축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현실입니다. 비닐과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비닐을 버릴 곳도, 처리할 곳도 마땅하지 않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시민단체들에서 말하는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자원을 절약할 수 있고 원유를 아낄 수 있으며 이산화탄소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비가 오면 불편한’시민들의 삶과는 항상 괴리가 있어왔습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쓰레기 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라고, 지자체가 책임지라 합니다. 자세히 보면 해결책이 없는 시점에서 책임질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부터이고 ‘내 가족’과 ‘우리 회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8년 4월부터 시작된 비닐 대란은 비닐봉투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현재 비닐봉지는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되어 버렸지만, 이것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아니라 나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현재 저와 회사에서 실천하고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간단한 몇 개의 상품만 샀다면 아예 봉투를 받거나 사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종이봉투나 장바구니를 가져가면 좋겠죠! 그냥 불편하지만 손으로 드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 물건을 많이 사게 되었을 경우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박스에 포장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테이프를 붙여야 하니, 재활용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다음은 음식물 배달인데 이게 가장 애매한 부분입니다. 물기가 잘 새지 않는 봉투가 비닐이다 보니 비닐에 담아주는데, 장바구니를 가져가거나 배달을 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해야겠지요. 요즘 중국음식점은 녹말이 들어간 비닐 보자기를 줘서 그나마 괜찮은 편이나, 아예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마지막 방법으로 회사에서 배송하는 제품들에 가능하면 비닐 포장 대신 재활용 할 수 있는 자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품보호를 위해 사용하는 뽁뽁이(에어캡)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도 차츰 뽁뽁이보다는 종이와 같은 재활용 가능한 충진재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비닐봉투를 사용하는 편리성의 중독은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이미 돌아왔습니다. 이번 기회에 가능하면 비닐과 멀어지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요?



그린휠(주) 대표 최승호
www.gbikeshop.co.k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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