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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다시 찾은 나의 행복

삶의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6. 2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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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삶의 스토리]

그림으로 다시 찾은 나의 행복

 

작품명 : 보라카이의 밤

보라카이 여행 중 만든 작품입니다.

 

  낙서로 시작된 저의 첫 그림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싸인처럼 그리던 이모티콘이었습니다. 그때 유행하던 TV 만화주인공 얼굴을 그린 후에 한껏 촌스럽게 싸인을 휘갈기고 그 옆에 V자의 손을 보여주고 있는 강속구(만화주인공 이름) 얼굴이었지요. 그 이후 좀 더 진지하게 그리기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친구가 보여준 단행본 만화책 한 권으로 중·고등학교시절 총 6년 동안 만화에 푸욱 빠져 지냈습니다. 물론 초등학생 때 엄마가 저를 미술학원에 보내기도 했지만, 그건 제 의지보단 저의 재능(?)을 일찍 눈치 채신 엄마의 불타는 교육열 때문이었고. 정작 제가 좋아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습니다. 수업시간 특히 문학 수업시간에는 교과서 여백마다 본문 내용에 맞는 낙서를 가장한 만화를 그렸고, 한창 좋아했던 아이돌의 팬 아트도 종종 그려 친구들에게 뿌리기도 했지요.

 

  당시에 각 대학마다 만화과 신설붐이 일었고, 만화를 전공하기 위해선 실기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말, 정확히 12월 26일, 엄마와 함께 미술학원으로 찾아갔습니다. 평소 엄마는 뭐든 다 해주셔도 만화보는 것은 그렇게도 싫어하셨는데, 어째서 그렇게 쉽게 허락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네가 미술학원에 가고 싶다던 날, 네 눈빛을 보니 이건 못 꺾겠다 싶더구나’하시더군요.

 

  그렇게 고3때 정식으로 실기시험을 칠 수 있는 학원과정을 밟았고 운이 좋았는지 지원한 모든 학교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만화과는 아니었지요. 안전빵으로 지원해 버린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수석 혹은 장학금 성적이었습니다.


  그 이후 제 진로는 점점 바뀌어 갔습니다. 산업디자인과의 제품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 욕실제품 디자인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가서는 내가 알지 못하던 다양한 종류와 기능의 양변기 디자인에 호기심이 생겨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일에 눌려 기계처럼 회사에 다니는 신세가 되었지요. 점점 제 자신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뭐랄까… 직장인이라는 갑옷을 너무 오래 입고 있어, 그 갑옷이 원래 내 옷이었는지 아니면 사회생활 때문에 입혀진 옷이었는지 구분하기 힘들어졌지요. 그러던 차에 지방에서 서울로 발령을 받아 독립적으로 생활하게 되었는데, 이 틈을 타 결심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자유롭게 그려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여행하며 그림 그리는 모임인 ‘골목그림’을 만났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모이는 ‘골목그림’은 서울의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그 동네의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장소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지 않고 적어도 2~3시간을 머물며 그 풍경을 그려낸다는 것이 매력적이죠. 짧은 기억이 아닌 되도록 긴 시간이 가득 담긴 그림을 그리면 그 곳과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동이 됩니다. 심지어 그곳의 냄새, 소리까지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지지요. 그리는 장소와 날씨와 제가 혼연일체가 되는 셈입니다. 다양한 골목 그림을 그리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뿐 아니라 이제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과 저 자신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아동문학가도 되고 싶었고 만화가도 되고 싶었던 그 어린 시절이 있었고, 어른이 된 지금 그 때 꿈꾸던 그 직업과는 다른 직업으로 살아가지만, 제가 그림 때문에 행복해진다면 그 직업들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실제 꿈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내가 행복해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림을 다시 시작한 것도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찾아 그 누구의 권유가 아닌 오롯이 제가 설정한 목표를 향한 선택이었으니까요. 그 선택을 한 후 4년이 지난 지금 비록 완벽히 행복하다 할 수는 없지만, 작년보다는 올해가 그리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씩 행복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단숨에 행복해지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행복해지는 것으로 오늘도 시작해보려 합니다.


  참, 그리고 그림 그릴 때 팁tip이 있다면... 거창하게 모든 도구를 사기보다 우선 A4종이든 어떤 크기든 상관없이 종이와 펜 하나로 시작하세요. 가벼운 낙서로 시작해 익숙해지면 주변의 친숙한 물건을 그려보세요. (가족이나 반려동물은 피하세요. 왜냐하면 내가 그림을 그릴동안 그들의 인내심이 나보다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심있는 대상의 그림을 찾아보고 계속해서 따라 그려보세요. 마지막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망쳐봐야 그림 한 장이니까요. ^^

 

서울 방배동 김혜림 / Artist
www.facebook.com/hyerim.kim.1481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1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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