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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미학을 가르쳐 준 지휘자

2019년 1월호(제11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 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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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통신 노익호의 지휘자 이야기 7]


향수의 미학을 가르쳐 준 지휘자

  


- 행복을 준다는 것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휘자가 있을까요? 또한 세계적인 지휘자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경우는 지휘자의 카리스마적 위용이 나 자신을 압도하여 온몸이 저려오는 전율을 느끼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 한 번도 행복을 느껴보려고 음악회에 간적이 없었다는 거죠. 좋은 음악을 들으면 행복하지만 음악회에 갈 때는 행복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행복 이상의 무엇인가가 존재할 것 같아서입니다. 그것이 무얼까 깊이 생각해보니 ‘권위’더군요.(물론, 가족이나 개인에게 있어서 행복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권위를 넘어서 행복을 가르쳐 준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 대중적인 인기

 카라얀과 번스타인은 20세기 중·후반, 지휘자의 세계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최고로 누렸습니다. 그러니 다른 영향력 있는 지휘자들조차 두 지휘자의 빛에 가리기 십상이었죠. 그런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귀가 유난히 위로 치켜 솟은 지휘자 솔티는 자신만의 세계를 탄탄히 구축하며 나름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인기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외모에서 보여지는 솔티는 언제나 여유만만하며 응시하는 눈빛에 마력이 깃들여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이 없을 듯한 정적 때문에 영화시리즈 ‘별들의 전쟁’의 영향으로 그가 ‘화성인’으로 보여지곤 했습니다. 지구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 같았습니다. 


- 특별한 사람답게

  솔티는 쳄발로가 피아노로 발전된 만큼이나 오케스트라의 기능성을 크게 향상 시켰습니다. 오케스트라의 기능성의 향상은 곧 레코딩 산업과 밀접하게 관련지어집니다. 레코딩은 의외로 중요한데 녹음으로 남겨진 명연주의 대부분은 명 프로듀서의 손을 거치게 됩니다. 솔티의 놀라운 업적 중 하나는 58년부터 무려 6년에 걸쳐(60년 전이라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이때가 LP판의 태동기였으며 스테레오라는 녹음방식에 대단한 정열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세계최초로 완성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을 녹음한 전집일 것입니다. 원래는 당시 지명도가 솔티보다 높은 ‘한스 크나퍼츠부쉬’에게 맡기려던 녹음프로젝트였으나 데카의 명 프로듀서 존 컬쇼가 적극 반대하여 솔티에게 돌아간 것입니다. 경쟁사 EMI의 프로듀서 월터 레그는 이 녹음전집이 50장도 안 팔릴 것이라고 조롱했으나 이 ‘니벨룽겐의 반지’ 세트는 현재까지 약 1800만장이 팔렸으며 클래식 음반 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습니다. 

 솔티는 한참 뒤인 1983년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초빙되어 다시 ‘니벨룽겐의 반지’를 지휘하였습니다. 이때는 별 호평을 받지 못했으니 특별한 사람이라고 항상 히트하란 법은 없나봅니다. (웃음)


- 지휘자 솔티

 1912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106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겁니다. 초등학교라는 공식용어를 쓰지 않고 국민학교, 소학교 식으로 말씀을 나누는 분들을 보면 거리감을 느끼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음악가들의 행적을 훑다보면 그 옛적 인생살이가 지금에 와서 조명해 보아도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교훈을 던져주지요. 솔티는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어 음악적 환경이 열악한 때에도 음악의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유태계인 관계로 스위스로 피해 살 때도 지휘자로 활동이 여의치 않아 다시 피아노를 치며 연명하였는데 삼십 세에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콩쿨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영국 코벤트 가든의 음악감독으로 10년간 맹활약합니다.(그 공로를 인정받아 1972년 영국황실로부터 Sir(경)의 작위를 받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1969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으며 장장 22년간을 지킵니다. 역시 맹활약하면서 ‘시카고 심포니=솔티’, ‘솔티=시카고 심포니’의 등식을 완성시킵니다. 음악감독 자리를 내준 후에도 1997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가졌는데 무려 999회나 했다니 정말 특별한 사람입니다. 지난번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편에서 말러교향곡을 소개했었는데, 1970년대에 말러교향곡을 연주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주역이 바로 솔티경입니다. 이래저래 유명한 사람의 일화는 한도 끝도 없는 법, 우리나라의 조수미씨를 ‘마술피리’공연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게 만든 사람도 솔티경이요, 정경화씨와 함께 녹음한 베에토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명반의 대열에 들게 한 이도 솔티경입니다.


- 그러니까 행복이란?

 그렇죠 행복! 약 25년 전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솔티를 역시 베를린필하모닉 홀에서 만났습니다. 음악가 사진 중 카라얀뿐만 아니라 솔티를 소중히 벽에 걸었을 만큼 좋아했으니 이만저만 흥분되는 게 아니었지요. 연주가 끝난 후 사인을 받으러 접견실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기타리스트’라고 말했고, 그가 뭐라고 대꾸해주었는데 못 알아듣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사인을 받으며 분위기를 둘러보니 뭔가 이상한 겁니다. 솔티 곁에 부인이 앉아 있는 거예요. 몹시 품위를 갖춘 부인에게서 대단히 좋은 향수냄새가 났는데 얼마나 수수하면서도 상큼했는지 모릅니다. 영국의 황실분위기가 이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솔티는 1926년 14세의 나이에 저 유명한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의 베에토벤 교향곡 5번을 실연으로 듣고 감동 받아 에리히 클라이버와 같은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결국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만 이날 받은 향수의 감흥으로 샤넬사가 만든 ‘에고이스트 ’향수를 하나 사고는 행복했고 이날 이때까지 그저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아무튼지간에 솔티는 제게 행복을 가르쳐준 20세기 최후의 지휘자의 제왕이었던 겁니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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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appytownculturestory.tistory.com/395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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