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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있다!(1)

2019년 1월호(제11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2. 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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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연구여행 4]



중국은 있다!(1)


 


 12월 초 중국을 더 알기 위해 세 번째로 택한 여행지는 중국의 본토를 떠난 또 다른 중국인 대만이었습니다. 30대 젊었던 시절, 대영박물관의 한 섹션만을 일주일동안 집중적으로 보았던 경험을 따라 무려 70만 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고궁박물관을 일주일동안 방문할  하나의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북경에는 고궁은 있으나 박물은 없고, 고궁박물관에는 박물은 넘치나 고궁은 없다’는 말이 있는 그 박물관 말입니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피난할 때에 중국 본토에서 다 쓸어 가져왔다는 그 유물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유물을 되도록 꼼꼼하게 관찰하고 이리저리 살피며 그 배경과 의식세계까지 추론하자는 야심찬 계획으로 시작하였는데, 곧 육체가 도무지 따라가지 못할 교만의 소치였음이 여지없이 판명나고 말았습니다. 영하10도의 한국 날씨에서 갑자기 낮 최고 30도까지 올라가는 대만의 기온 차이가 첫 번째 장벽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지난 10월~12월, 3회에 걸쳐서 ‘중국은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너무 많아서 3개월마다 교체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 유물의 두 번째 장벽 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으면서 ‘중국은 과연 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9년 1월호부터 중국에 있는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추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중국은 ‘신 없는 세속사회’가 무려 3천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중국이야기를 하기 전에 21세기의 서구사회가 가고 있는 현재의 방향부터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 없는 세속사회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겁니다. 먼저 미국은 서구사회 속에서도 매우 종교적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는 특이한 나라입니다(커트 앤더슨 [판타지랜드] 2018). 그래서 이러한 미국에서 성장한 종교사회학자가 전혀 다른 서구이자 미국의 근원이었던 유럽을 경험하기 위해 1년동안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도 했습니다(필 주커먼, [신 없는 사회] 2012).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젊잖고 부드러우며 인간적인 북유럽에 담박에 매료되었지만, 교회에 출석하더라도 실제로는 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고 신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 서양에는 이론적으로 종교를 공격하면서 무신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서양인들은 점점 많아져갑니다(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신화의 역사]). 20세기 초 인류를 영원한 파멸로 이끌뻔한 무지막지한 1,2차 세계대전을 막는데 그렇게 무능하였던 기독교에 대한 반발, 그리고 무자비하게 무력을 추구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혐오, 또 물질주의적 추구와 복지국가에 대한 서양인들의 열망 등이 서구를 무종교사회로 옮아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이런 무종교사회,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 없는 세속사회의 역사가 무려 3천년 이상이나 된다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미 말씀드렸듯이 중국의 태생적 종교인 유학/유교는 매우 현실지향적인 정치도덕철학이었습니다. 또 송대의 주자 등이 창안한 격물지치의 신유학/유교, 명대의 왕양명의 심학, 청대의 고증학은 모두 공자의 테두리를 빙빙 돌며 왔다갔다 하는 사회정치철학에 불과하였습니다. 또 중국 본래의 철학인 도가/도교는 매우 개인주의적 속성을 가져서 단순한 육신의 수련이나 정신의 평안을 얻는 노자/장자의 테두리를 빙빙도는 체계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 철학(유가,도가)이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유교,도교)로 전환하여 갔지요. 또 중국에 들어온 인도종교인 불교도 중국에서 꽃피웠으나 본래의 개인주의적이며 역사초월적인 철학을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3천년간의 긴 종교현상의 역사는 ‘종교의 세속화’에서 시작하였다가 ‘세속의 종교화’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종교에 대한 이런 발현과 변화는 중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동진과 함께 시작된 현상이었습니다. 즉 ‘절대종교’에서 ‘다신론’(서아시아)으로, 다시 ‘만신론/범신론/힌두교’(인도서쪽)로, 다시 인간이 신이 되는 ‘불교’(인도동쪽)로, 그리고 ‘신 없는 무종교사회’(중국)로 전개되는 큰 흐름의 일부가 중국의 종교현상이었지요. 


 이렇게 신 없는 세속사회를 오랫동안 경험한 중국이 이제 서구에서 막 시작하려는 신 없는 무종교사회를 향해서 엄청나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역설적이지 않나요? 마치 중국인들이 서구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너희들이 지금 신 없는 세속사회를 시작하려고 하니? 우리는 그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어. 그러니 우리에게 와서 배우지 않을래?”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첫째 주제는 바로 중국에는 신을 걷어 치워버린 인간들만이 살았던 세속사회라는 매우 긴 역사가 있다! 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신 없는 무종교사회 혹은 무신론을 주장하는 서구인들이 신 없는 세속사회인 중국 역사의 초입에 서서 현대인들을 거기로 걸어 들어가 보라고 말하는 전도사와 같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이미 신이 없거나 무신론을 주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래 전에 그런 사회를 지나서 모든 행동의 동력이 세속성인 사회를 매우 오랫동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신이 없다는 서구의 무신론은 ‘어떤 것이 없다’고 말하는 ‘부정주장’인데,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이 있는가 하는 ‘긍정주장’은 말하지 않고 단지 신을 없애라고만 말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역사를 관통하여 중국인을 총체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세속성의 사회’라는 긍정주장을 표현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세속성의 중국이 종교에 대하여 가지는 큰 자산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바로 중국인들이 이런 인간 세속성의 삼요소(물질욕, 성욕, 지배욕)를 엄청나게 거대한 땅덩어리 위에서 마음껏 그리고 오랫동안 부렸던, 결코 부인할 수 없으며 파괴될 수도 없는 명명백백한 삶의 자취와 결과라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의 긴 역사를 안다면 우리 중에 과연 세속성 자체가 종교가 된 그런 비참하고 역겹고 불행하며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사회 속에 들어가서 살고 싶은 사람은 과연 누굴까요? 사방으로부터 분출하는 지배욕들이 중간에 놓인 땅 중원을 지배하기 위하여 구심력적으로 서로 충돌한 것이 중국의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500년 정도 지속된 조선왕조에 비해 중국의 정권들은 반 정도 밖에 안되는 200여년 정도 유지하였고, 같은 정권 안에서도 오랜 시간 지속된 엄청난 내적투쟁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까요? 과연 중국의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신 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서구인들은 그 사회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할 용기가 있을까요? 


 둘째는 중국에는 서구인이 경험하였던 종교의 모든 위선이 자리할 곳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겁니다. 기독교를 기초로 발전된 서구사회가 역사 속에 행한 가장 큰 두 가지 악이 있습니다. 먼저는 칼이 아니면 코란을 받으라고 달려드는, 변용된 절대종교인 이슬람을 향해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했던 순교로 이겨내지 않고 칼로 되받아치면서 ‘십자군운동’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또 신대륙 발견 이후 서양이 시행했던 ‘노예제’와 ‘제국주의’라는 악을 서양기독교가 서구 내에서 처음부터 처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치적으로 제국주의를 하면서 동시에 의료,교육으로 선교하는 기독교의 위선은 중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진정한 절대종교란 1) 역사성을 가지며, 2) 마음>정신>물질의 우선순위를 지키며, 3) 인간 삶을 총체적으로 유익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모든 절대종교는 그 자체로 거짓이거나 적어도 불완전한 것임을 드러냅니다. 세속적 서구인들도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신 없는 무종교사회를 외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정직하게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초기기독교가 칼이 아닌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을 따라서 순교를 통해 로마를 정복했던 그 위대한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요? 이들이 정신나간 광신자들이었다면 과연 여러 세대에 걸쳐 거의 3백년 동안이나 죽음을 관통하는 핍박을 견디어낼 수 있었을까요? 거짓되고 위선적인 십자군 운동과 노예제도와 제국주의의 기독교, 그리고 예수가 말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참 종교는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는 실제로 항상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과 같은 교회 안에 기독교의 이름 아래서 엄청난 악을 행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가라지의 비유’라는 가르침으로 이미 경고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요? 

  

 만약에 무종교사회를 넘어서 신 없는 세속사회의 역사를 오랜 기간 가진 중국인들이 바로 이런 예수의 가르침을 일점일획을 버리지 않고 행하며 인간의 삼대욕망을 근본적으로 정복한 절대종교를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신 없는 사회나 무신론을 말하지만 사실상 자기 자신의 삼대욕망은 결코 부인하지 않는 위선적 서구인들보다 훨씬 더 정직하게 반응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중국이 장차 진정한 절대종교를 만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역설적인 놀라운 가능성입니다. 만약 14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지구 전체에 미칠 파급효과는 얼마나 클까요? 이것이 바로 종교에 있어서 중국이 있다! 라고 주장할 수 있는 첫째 내용입니다.



둘째. 중국에는 백가지나 되는 사상/철학이 있습니다! 


 무려 2500여년 전에 ‘제자백가’(諸子百家), 즉 100가지나 되는 사상이 분출했던 사회가 중국입니다. 물론 정확하게 백가지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큰 사상으로 말하자면 열 개 정도가 되고, 거기에 각종 사상가들이 다양한 유파를 이루어 파생했습니다: 유가(공자, 맹자, 순자), 도가(노자, 장자), 묵가(묵자), 법가(상앙, 한비자, 이사), 병가(손자, 오자서), 음양(오행)가, 농가, 명가. 유사한 시기에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사상들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칼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the Age of Axis(1947)라고 불렀습니다. 인도에서 불교와 다양한 힌두교 유파들,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파르메니데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자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일어났지요.    


 그렇지만 절대종교의 발생지인 팔레스타인에서 가까운 서구에서는 종교적 전제들이 언제든지 그 철학과 사상 배후에 존재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도 그가 사형언도를 받은 이유의 하나에 그가 신을 모욕하였다는 죄목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반면에 중국의 경우는 아예 신의 존재를 전제하거나 가정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공자 이전부터 사실상 진행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 없는 사회에서 인간들이 마음껏 자기의 사상을 펼쳐본 역사가 중국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백가의 사상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부분 서주에서 동주로, 다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중국사회가 점점 살벌하게 변화되는 중에 이런 철학/사상들이 나왔다는 겁니다. 먼저 공자는 서주시대의 이상적 정치인 주공의 예식인 주례를 회복하는 것을 자기 사상의 본질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례는 사실상 그 전의 상나라의 ‘태양의 종교’에서 ‘천(天)의 종교’라는 조금은 추상적인 형태로 변화된 것을 체계화한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그것에서 종교성을 제외하고 단지 사회의 안정과 유지에 관심을 쏟은 정치체계를 주장했던 거지요. 공자는 이미 춘추시대의 약간은 낭만적인 상황에서 전국시대의 살벌한 상황으로 변해가는 시대에 조금 더 보수적 사상인 ‘인’(仁)과 ‘예’(禮)를 강조하였으니 현실적인 정복과 영토확장을 원했던 왕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지요. 정반대로 이런 사회현실을 알고 그것에서 탈피하는 사상을 말한 노자가 공자의 선배 격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은 - 공자가 실제로 노자를 찾아가서 물어보았지요 - 이런 혼란스러운 정치현실 속에 나타나는 당연한 역설적 반응이었습니다.


 둘째는 중국의 철학/사상은 대부분 정치사상을 위주로 된 것이었습니다. 종교가 없는 가운데 사람들이 당연히 관심을 가지는 문제는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인데, 그 중에 가장 응급한 문제가 바로 인간 사회의 기본인 정치였습니다. 이런 정치에 대한 질문에 답한 사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치사상이 중국사상의 기본골격이 된 겁니다. 묵자는 진정한 정치는 공자가 말하는 단순한 ‘인’즉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겸애’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이런 묵자에 반대하여서 맹자는 공자의 ‘인’을, 또 순자는 공자의 ‘예’를 강조하였으며, 그 다음 세대에서는 그 예의 일종인 ‘법’을 강조하는 법가가 나오게 된 겁니다. 결국 진시황의 통일기에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어떻게 하면 법가를 더 완전하게 실현할 것인가로 경쟁했으며, 그것에 가장 철저했던 진나라가 통일을 이룩한 것은 이런 경향의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셋째는 중국의 철학/사상은 결국 거대한 중국 땅덩어리의 통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단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자, 모든 다른 사상들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상가들의 문서를 불태우는 희대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을 일으킵니다. 다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고조와 그를 이은 문제와 경제는 진나라의 철저한 법가 사상에 따른 정책에 염증을 느껴 정반대로 노자의 무위사상으로 통치하였고, 그것이 평화롭고 번영한 ‘문경지치’시대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무제는 동중서를 통하여 유교를 근본적 정치이념으로 할 뿐 아니라 그것으로 모든 교육체계와 정치체계를 이룩하게 만들면서 후대의 모든 정치체계의 기초를 제공하였습니다. 


 넷째는 중국의 철학/사상은 매우 경험적, 실천적, 역사적인 것이었습니다. 절대종교의 계시같은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을 경험과 실천에 의존하여 진행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은 자연히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갔습니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것을 실험하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과 사회 자체가 일종의 실험동물이 되는, 너무나 큰 단점이 발생했습니다. 황제들이 이런 저런 정치철학을 실험적으로 가동하는 동안 백성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요?


 다섯째는 중국의 철학/사상은 한족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었을 뿐 유목민족/기마민족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민족에게는 이런 사상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으며, 단지 생명에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을 채우는 것이 관건이었을 뿐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침투 뿐 아니라 정복을 마다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들 이민족들은 선비족의 북위의 경우와 같이 정주민족에게서 정치철학을 자기화하는 차원도 있었지만, 철저히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대로만 통치한 몽골족의 원도 있었으며, 중국의 정치철학을 한족에게만 적용하는 지혜롭거나 혹은 약아빠진 만주족의 청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철학/사상은 그 엄청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긴 역사 중에서 3/10 기간만 독자적 통치를 이루거나 유목민족의 통치를 받았던, 정주민족의 무능한 정치철학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첫째 주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세속사회의 중국이 가지는 이렇게 많은 철학/사상은 21세기에 더욱 더 신 없는 사회로 들어서려고 하는 서구사회에 주는 교훈이 있을까요? 대답은 당연하게 교훈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훈인가요? 정주적인 성격을 띈 문명 속에서 철학/사상을 운운할 것이지만, 결국은 항상 정치 혹은 경제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즉 먹고 사는, 극히 단순한 짐승과 같은 문제로만 귀결된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얼마든지 서구사회가 주도하는 현대문명 속에 중국의 ‘법가’와 같이 냉혹하게 법지상주의를 외치는 사상들이 새로운 이름으로 부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단순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적 삶을 살자는 ‘공자식의 이상적이고 보수적 사상들’이 다시 나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의 삼대욕망을 가진 탐욕스러운 정치가들에 의해서 거부당할 것입니다. 여기서 더 우측으로 나가서 ‘묵가’식으로, 즉 거의 종교적 열정을 가지지만 종교는 없는 가운데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는 사상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그 외에 철저한 개인주의로 빠지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재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철학/사상의 풍성함, 그리고 결과로서의 그 허무함은, 신 없는 21세기 현대사회의 장래를 비춰주는 그림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중국의 철학/사상이 2500년 이상 실험하고 시행해 보았던 결과는 신 없는 서양문명 위주의 철학/사상이 갈 중요한 좌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중국의 철학/사상은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신 없는 사회나 무신론이라는 또 하나의 종교를 주장하는 교만한 현대의 서구인들이 과연 이 교훈을 중국에서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서구인 자신들이 지난 5백여년 동안 스스로 만들어 놓았던 ‘동양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때문입니다. 둘째는 오래된 중국이나 현대 서구의 출발은 바로 종교, 진정한 절대종교를 버림에서 출발한 것인데,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과연 그것을 떠난 것이 잘한 일이었던가를 엄밀하게 평가해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 21세기 인류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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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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