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문화재의 큰 두 축 ‘보존과 활용’ 김종진 전 문화재청장을 만나다

2019년 1월호(제11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2. 10. 21:22

본문

[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문화재의 큰 두 축

 ‘보존과 활용’

김종진 전 문화재청장을 만나다


 



공직으로 근무한 문화재청

고등학교 다닐 때 가정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큰형, 작은형이 교직에 계셨는데 당시에는 군(軍)에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5·16 혁명이후 군에 다녀오지 않은 교사들에게 사표를 받고 군에 보냈습니다. 두 분의 형들은 군 제대 후 복직이 되지 않았고, 저 또한 그런 환경 속에서 ‘대학에 정상적으로 들어 갈 수 있을까’하는 어린 마음에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여 고향인 김제에서 9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다른 일을 준비한 사이에 군에 가게 되었습니다. 제대 후, 다시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이 공직의 길을 가게 된 것 같습니다. 처음 문화재관리국 기획실에 발령을 받았지만 10개월 후에 문화공보부로 전보되어 매체관리와 홍보 관련 업무를 했는데 아무래도 제 적성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 후,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되면서 공보처에서 매체관리와 여론조사업무를 했지만, 이 일 또한 저와 맞지 않았지요. 총무처에 인사교류 신청을 해서 문화부로 옮겨 문화재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재 업무는 어떻게 보면 공무원이 된지 10년 후인 1991년 10월부터 시작하여 공직을 마칠 때까지(2018년) 이어졌습니다.

30여 년 근무하며 얻은 보람

문화재는 ‘보존’과 ‘활용’의 두 가지 큰 축이 있습니다. 보존은 역사적이고 학술적인 문화재를 새롭게 발굴하여 지정한 것을 제도의 틀 안에서 보존하는 것이고, 활용은 보존된 것을 정비하고 교육,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전주 경기전’을 복원한다든지, ‘전주 전동성당’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도록 토지 매입을 지원하고, 성당보수정비를 하는 것 등 실질적인 보존가치가 있는 실체를 가지고 일을 하는 게 상당히 보람이 있더라고요. 또 고인돌 세계유산 등재 작업도 우리나라에 고인돌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다며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학자들의 문제 제기에, 제가 모르는 분야를 하나씩 알아가면서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을 때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기에 ‘등록문화재제도’를 도입할 즈음, 우리나라 최초 극장인 국도극장이 철거되었고, 삼청각 등의 건물이 허물어질 위기에 있을 때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근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상징성 있는 건축물을 보존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외부 변형이나 활용에 어려움이 있는데 반해, 근현대건축물은 생활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문화재 지정이 아닌 등록으로 신고하여 보존할 부분은 보존하고 건물 외형의 1/4은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내부는 카페를 하든 음식점을 하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록문화재제도를 통해 많은 근현대 건축물들이 보존 된 것이 뿌듯합니다.
특별한 경험 중 하나는 대구 달성 지역에서 ‘입석’이 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땅을 소유했던 사람이 적극적으로 알려 지정되었는데, 사적 지정이 되면 입석과 주변 인접지역을 보존해야 하므로 재산권 사용에 일정 제한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 분이 사업을 하다가 어려워지니 토지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이 분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무릎 꿇고 인사를 하며 딱한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가슴에 뭉클함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관련 전문가를 현장에 보내어 문화재적인 면과 생활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서 검토토록 하여 어려움을 풀어줬습니다.

‘보존’과 ‘개발’이 충돌될 때의 어려움


1997년 1월  풍납동 일대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백제토기 등 유물다수가 출토 되었습니다. 백제 초기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건물지의 발견과 더불어 고고학적인 의견이 사적으로 지정해야 되지 않느냐며 재건축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조합원들은 재산상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지요. 제가 그 당시 서기관으로 결정은 하지 않았지만, 고대역사를 규명하는 그 자리에 재건축이 되었다면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보존해야 함에도 개발을 하여야 않느냐는 요구가 강하게 제기될 텐데 힘들지만 사적으로 지정된 게 역사적인 측면에서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지역주민들에게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기 때문에  재산상의 보상을 해주기 위해 기획예산처에서 예비비를 740억원을 확보하여 서울시에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보상은 해주었지만, 지역 주민들은 아파트를 짓고, 좀 더 좋은데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문화재업무를 하다보면 역사적으로 물려받은 것을 지켜야 하고, 또 지역 주민과 어려움을 풀어가는 게 제가 하는 업무 중 하나인데 필요한 일이면서도 힘들고,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보존과 개발의 문제로 국민들과 단체, 기관 등 조율을 할 때 가장 필요한 것

기본적으로 보존결정은 문화재청에서 하고, 서울시는 보상을 집행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그런 과정의 협의를 해 나갑니다. 저희는 중앙 행정기관으로 의사결정을 하지만,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것을 실행하기까지는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들의 공감을 잘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많이 필요하죠. 풍납동 문화재보존을 결정할 때도 저희들이 문화재 위원들에게 충분히 설명도 하고, 주변 주민들이 와서 데모하는 가운데 수없이 만나고 설명을 했습니다. 주민들도 감정이 복받치지만 보존의 필요성을 이해해주었고, 빨리 보상을 해서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의견을 주어 서울시와 함께 협력해서 예산 설명을 할 때도 같이 했습니다. 문화재청에서 정책을 총괄하지만 문화재 관리 체계상 실질적인 것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와 조율이 필요합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와 마인드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문화재를 발굴하고 활용하는 차원에서 우리나라와 외국과의 차이점

문화재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면에서 국가 간의 큰 제도적인 차이점은 없습니다. 역사적이고 학술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나오면 보존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환경, 국민들의 의식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지가 한정적인 가운데 경제적인 고속성장 속에서 부를 축척하는 수단이 부동산이다 보니 다른 나라에 비해 문화재 보존에 따른 재산상의 손해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우리보다 낫고, 유럽은 대부분 건축물 중심으로 되어 있어 건축물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하게 보존하고 그에 수반되는 불편을 감수합니다. 그리고 그 건축물이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관광자원이 되죠. 로마의 구도심을 가봤는데 거의 전체가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호텔도 옛날 건축물을 그대로 활용하는데 엘리베이터에 3명밖에 못 타지만 그 불편을 감수한다는 거죠. 우리 같으면 건축물을 과연 그렇게 보존할 수 있겠는가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도 문화재 보존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를 해줍니다.


문화재 보존에 대한 시민의식


20년 전 보다는 많이 나아졌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문화재에 대해서는 보존해야한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문화재나 문화를 통해서 지역이 성장하고 브랜드화 되는 모범사례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주의 경기전과 풍남문을 연결하고 기존의 재래시장인 남부시장까지 전체 권역으로 묶어 하나 된 지역 공동체가 형성된 것입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문화재는 아니지만 지역적 공간으로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죠. 남한산성도 과거에는 행락지로 음식점이 많았는데 문화재 관리를 하면서 기준과 용도를 더 명확히 하고 복원도 하며 주변을 정리하다 보니 지역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즘은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하고 잘 보존해서 지역거점의 지속가능한 발전 자원으로 활용을 하려는 선진국형으로 조금씩 지역발전의 개념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하면서 실제적인 어려움과 가치

세계유산은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입니다. 문화유산은 사람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고, 자연유산은 말 그대로 자연이 주는 것이며, 복합유산은 두 가지를 합쳐놓은 것입니다. 세계유산을 등재할 때에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유네스코에서 정하는 10가지 세계유산 기준이 있는데 그 중에 문화유산 6가지, 자연유산 4가지가 있습니다. 매우 독창적이거나, 인류역사에 문명의 교류를 보여주는 것 등 보편적 가치를 뽑아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즉 탁월하고 보편적 가치를 설득력 있게 입증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서울의 창덕궁과 종묘가 세계유산에 등재 되었는데 종묘는 천재성이 있는 건축물이라고 인정받았고, 창덕궁은 자연지형을 살리면서도 건축적인 면이 있다고 인정받았습니다. 백제역사지구는 중국에서 넘어온 왕실의 건축과 사찰을 한국식으로 잘 발전시키고 그것을 또 일본에 전수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사이의 문명의 교류를 보여준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남한에 있는 조선왕릉 40개는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원래 북한의 2개를 포함하면 42개인데 남북관계가 원활하게 되어 향후확장등재를 하면 좋겠지요.

많은 학자들과의 만남

문화재 행정에 특징이 있습니다. 공무원들에 의해서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중간에 ‘문화재위원회’라는 제도가 있어서 문화재를 조사하고 지정한다든지 문화재의 현상을 보존 또는 변경할 때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문화재 심의를 거쳐서 청장이 행정을 해야 합니다. 중간에 민간 기관들과의 의견을 잘 조정하고 받아들여서 그것을 행정에 반영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굉장히 민주적인 제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성격 급한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과감하게 해야 하는데 왜 문화재청이 그런 걸 못하느냐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그런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해석해서 지정을 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공무원들이 독자적으로 하지 않고, 불가피하게 개발을 할 때에도 적정한지 여부를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들로 하여금 검토토록 하는 것은 민주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효율성면에서는 떨어질 수 있지만, 문화재 가치 판단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면에서 너무 효율성만 보면 놓치는 것이 많습니다. (학자들끼리 견해가 안 맞는 경우도 있겠죠?) 물론 의견 차이가 있긴 하지만 ‘문화재위원회’에서 토론하다 보면 거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도달하게 됩니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투표를 하지만 대부분의 결정에서는 토론이 매우 중요합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의 수많은 문화재들을 등재하는 등의 과제

뒤늦게 석사논문을 쓰면서 남북한 문화재와 관련해 자료 조사를 했는데 북한과 우리와는 문화재를 보는 관점에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고요. 우리는 말 그대로 역사적, 학술적, 인류 보편적 발전을 위해 보존하는 건데, 북한은 민족에 대한 애국을 강조하기 위해 보존을 합니다. 나머지 제도나 운영 면에서는 거의 일맥상통합니다. 조사하고 지정할 때 북한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로 분류하는데 북한은 물질유산, 비물질유산, 자연유산으로 되어있습니다. 지정할 때도 물질유산위원회, 비물질유산위원회, 자연유산은 명승지 천연기념물위원회가 있어 평가하고 등록합니다. 
우리는 ‘지정’이라고 하지만 북한은 ‘등록’이라고 하죠. 만약 남북한이 통일이 된다고 할 때 문화재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만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제도의 운영 부분은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요. 기본적으로 큰 틀은 북한도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은 우리와 동일합니다. 예를 들어 건설공사 시 문화재가 나왔을 때 보존 대책을 수립을 해야 하는 면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공적으로 섬기는 공무원으로서 삶의 기준과 후배들을 위한 조언

저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공직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공무원은 경제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공무원에게는 국가가 준 기능이 있어요. 소방, 환경, 안전, 문화재관리 등 공무원이 그 기능을 잘 보고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부분이 발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자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단순히 반복적,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방향이 맞는지, 내가 했던 일이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과 효과를 가지고 오는지를 생각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정책과 제도를 만들 때도 쉽게 생각하며 그냥 해왔으니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공직에서 청장의 자리까지 오며 두 번 정도 퇴직을 하여 국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공직을 접하기 꺼리거나 약간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시선을 갖지 않도록 더욱더 친절하게 민원 등을 처리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공직자도 시대가 변하면서 직업에 대한 의식도 달라지겠지만, 건전한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내내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올곧은 공직자의 면모를 보는 듯 했습니다. 최근 산사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면서 재미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얽힌 스토리를 알아가는 시간이 좋았다며 웃으셨습니다. 막상 근무를 할 때는 행정적인 일 처리로 여유가 없었는데 앞으로 문화재와 관련된 많은 숨은 이야기들을 발굴해서 설명하는 일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1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