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나는 꿈을 꾸는 경찰관입니다.

2019년 1월호(제11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2. 10. 21:39

본문

[경찰관 이야기]


나는 꿈을 꾸는 

경찰관입니다.




작은 시골 버스 정류장이었던 우리집 마당에서 시작된 꿈

저는 하루에 버스가 다섯 번 남짓 들어오는 작은 시골에서 오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을에 버스가 들어왔다 나갈 때 전진과 후진을 할 수 있는 마당을 가진 덕분에 우리집은 버스정류장을 운영했었죠. 그래서 경찰관들은 순찰 코스로 우리 집을 포함시켰습니다. 경찰관들이 올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음료수, 식사를 아낌없이 내주셨고, 그렇게 경찰관들을 가까이에서 대하면서 제복에 대한 로망은 시작되어 자연스럽게 경찰관이 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3 때 발병한 디스크는 생의 좌절을 너무도 일찍 깨닫게 했습니다. 경찰을 하려면 체력이 가장 중요한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잃게 된 건강으로 슬퍼하거나 노여워하며 몇 년을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 봐도 답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일어서기로 마음먹고, 경찰 채용 시험에 도전을 했습니다. 어려운 집안 살림에 자신의 꿈을 포기했던 두 언니들과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 밀어주었고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노력해 대학교 3학년 때 생각보다 일찍 경찰시험에 합격하며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복을 벗고 싶다(?)’ No!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 해본 적 있으세요? 이 말은 지금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죠. 남편은 평소 ‘죽음’을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 저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껄끄럽고 거북스러웠는데 행복과 사랑도 ‘끝’이 있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가 더 소중해졌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저는 매순간 ‘퇴직’을 생각합니다. 두렵거나 아쉬워서가 아니라 ‘오늘’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걸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다행히 아직까지 제복을 벗고 싶다고 느낄만한 고비가 없었던 걸 고맙게 생각하며 늘 마음속에 퇴직을 준비하고 있지요.

「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책을 낸 특별한 이유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서면 그 사람을 ‘하나의 단어’로 기억하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제 마음 속으로 그 분을 곱씹고 새기려는 하나의 노력이라 할까요. 10년 전, 제 인생에서 많은 길을 제시해주신 은인으로 당시 과장님께서 제게 언젠가 ‘책’을 써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분을 떠올릴 때마다 ‘책’이라는 단어가 늘 맴돌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제 가슴에 오랜 시간 남아 더 늦기 전에 그 싹을 틔워보자는 생각으로 이렇게 책을 썼습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무엇이 누구에게나 있듯이 ‘나란 사람도 하니까 힘내’라는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싶기도 했고요. 사실 책이 나왔지만 아직도 실감나진 않습니다. 타인에 의한 삶이 아닌 저만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경찰관들이 겪는 업무적 스트레스를 위한 관리

여러 사건 사고를 많이 경험하다 보니 경찰 조직 내에는 ‘마음동행센터’라고 큰 병원과 연계해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매년 확대하는 추세이고, 이용하는 분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지요. 현재 근무 중인 교통관리계도 과태료 징수나 법규 위반에 대한 단속 업무 등을 하다 보니 거센 항의와 이유 없이 욕설을 듣고 인격모독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월급 안에 포함되었으니 감당하라고들 하지만, 막상 예고 없이 몰아치는 특별 고객님을 응대하는 것은 안 해 보면 그 느낌을 전혀 알 수 없어요. 심장이 벌렁거리고 단단하던 자존감은 언제 구겨진지도 모른 채 밑바닥에서 나뒹굴죠.
 정말 힘들어서 주저앉았을 때는 사랑하는 가족들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결국 가족도 타인에 불과해 바닥에서 일어서기 위해서는 제 손을 뻗고 두 다리에 힘을 줘야 하는 거죠. 스스로 ‘자가 치유’를 하려고 부단히 애를 씁니다.
 저는 지치거나 힘들면 ‘책’으로 도피를 해요. 처음에는 있어 보이려고 시작한 독서였지만 책이 제 안에서 힘을 내도록 많이 도와줬어요. 지식과 지혜의 영역이 아니라, 치유의 수단으로도 참 좋더라고요. 책은 제 마음을 다 들켜도 ‘뒷말’이 없잖아요(웃음)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 속에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

지인들은 저보고 “웃으면서 할 말은 다 한다”고 해요. ‘웃으면서 할 말은 하고 얻을 것은 다 얻자’가 바로 저의 전략입니다. 상대가 섭섭해 할 순 있지만, 웃으면서 할 말은 꼭 해서‘가르마’를 타야 하는 것이 경찰 일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법을 집행해야지 어떤 여지를 두고 융통성을 발휘해서는 안 되거든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니 그냥 가시라고 하면 찾아온 분은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대신, 경찰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설명해 드리죠. 법률적인 지원이나 도움, 신속 정확한 처리, 공정한 수사 등이 본질이지만, 막상 부딪치는 민원 중 많은 부분이 법의 테두리 밖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도 엄연히 사람이라, 각자가 가진 이성이라는 도구 자체가 주관적일 수는 있습니다. 남들은 속여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듯이, 자기 양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선의로 한 사람을 배려하지만, 그 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의가 된다는 사실을 제 스스로에게 자주 주지시키고 있어요.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 어머니


한 번 스친 인연, 한 줄의 문장 등이 저를 살리기도 했지만,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분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제 삶의 기준점이기도 하지요. ‘엄마보다 힘들지 않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고 다짐을 하죠.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엄마처럼 힘들어 본 적은 없거든요. 제가 타인으로 목격한 삶이 그 정도인데,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억척스럽기만한 생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용서하고 활짝 웃을 수 있는 엄마를 통해 저는 삶을 배웁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동네 깡패도, 거지도 다 쓸모가 있다. 사람 천대하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봉사라는 게 따로 있나. 동네에 혼자 사는 할머니께 추어탕 한 그릇 퍼다 드리는 게 봉사다.”

경찰관으로서 가지는 삶의 의미와 가치

사람.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피도 눈물도 없이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이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게 참 아이러니 할 수도 있는데, 모든 사건과 사연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 아닐까요. 제가 물질로 많은 것을 줄 수는 없지만 대신 돈 안드는 건 아낌없이 내주려고 해요. 경찰이라는 직업이 저와 딱 맞기도 한 것 같은데 사복을 입고 지나가도 어렵거나 힘든 사람을 보면 말을 걸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오지랖을 보여요. 그렇게 국민들에게는 물론, 동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요. 쓰레기 하나 줍는 일이 지구 모퉁이를 깨끗이 한다는 자부심으로 확장되듯, 한 사람의 경찰관이 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이 소소한 힘이 모여 세상은 움직이는 거니까요.

여자 경찰관, 엄마 경찰관, 부부경찰관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남자들의 조직에 들어와 여자라서 특별한 혜택들을 누렸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체력적으로 조금만 두각을 나타내도 많은 격려와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런 면에서는 분명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해요. 그 외에는 다른 워킹맘들이 겪는 고충들과 유사한 것 같아요. 특히 아이가 어리거나 아픈데 상황이 생겨 출동을 해야 하거나, 일반 직장처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들도 많이 생기고요. 기동대에서는 당직이나 동원, 특히 몸으로 부딪치는 일들이 많다보니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오랜 연애기간 중 남편이 저를 따라 경찰관이 되어 저는 경감, 남편은 경위로 일하고 있어요. 남편과는 계급과 업무가 다르다 보니 집에 와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업무의 범위가 확장되기도 하고 남자들의 강점인 넓고 깊게 보는 법을 남편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또 업무상의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좋고 방향에 대한 결정과 판단을 할 때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후배 경찰관, 앞으로 경찰관이 되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대부분 사람들은 경찰만 되려고 노력할 뿐, 어떤 경찰관이 되겠다는 준비는 하지 않은 채 경찰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경찰 중에서도 수사 형사, 정보, 경비, 교통, 지역 경찰 등 다양한 보직이 있습니다. 경찰관으로 들어와 모든 부서를 두루 경험할 수는 없지만 어떤 분야든 자신에게 주어진 그 위치와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직업도 쉽지 않지만, 경찰은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경찰이 되었다면 조직이 원하는 방향에 최대한 자신을 맞추면서도 자아실현을 이루고 자존감을 지키는 부분에서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취미든, 꿈이든, 그 무엇으로든 자신의 삶을 충분히 멋지게 이끌어가는 사람, 그래서 주도적으로 자기 삶을 챙기는 경찰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꿈과 계획

일반적으로 경찰관이면서 다른 꿈을 꾼다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일에만 집중해도 시원찮을 판에 다른 것을 꿈꾼다고? 라고 보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직업으로서 경찰관을 꿈꾸고 달려왔지만 이제부터는 나의 잠재력을 찾아 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어도 객관적으로 검증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는 제 꿈의 시작점입니다. 처음 경찰을 시작했던 그 마음으로 이 책과 함께 걸어가려고 합니다.
 누구나 시작은 부족하듯이 이것을 토대로 앞으로 작가로서 확장된 일을 하고 싶어요. 경찰이라는 직업이기에 할 수 있는 저의 경험을, 상상력을 통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 꿈 때문에도 이 경찰 일을 하는 것이 설레고 소중하지요. 아이들이 조금 자라고 여유가 생기면 드라마 작가가 되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삶의 희노애락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엄마의 삶과 못다 피운 꿈을 가졌던 큰 언니의 꿈도 글을 통해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어! 경찰관이 이렇게 친절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장신모 경감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 험난한 일을 하시려고!’ 하지만, 이 생각을 날려버리는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내내 외유내강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성적으로 사람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하는 분이더군요. 이렇게 만나는 것도 귀한 인연이라며 선물과 손 편지를 꺼내놓는데 인터뷰어인 제가 참으로 감동했습니다. 이런 분이 우리나라 경찰관직을 지키고 있는 한, 시민들은 참으로 따뜻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서경찰서 장신모 경감
sinmo82@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1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