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들과의 휴전선 걷기 동행

2019년 2월호(제11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3. 20. 21:16

본문

[오동명 여행기 나라다운 나라, 나다운 나(4)]

아들과의 휴전선 걷기 동행


아침 6시 전,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아들이 침대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보통 늦잠을 자는데 의외다. 

“일찍 일어났네.”

“같이 가려고.”  

“어딜?”

“휴전선”

“강의는?”

“오전만 걷다 오려고. 강의는 오후 2시 너머로 잡아놨거든. 대신 밤 12시까지 해야 돼.”

“왜?”

“왜긴? 아빠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아담 스미스는 사랑받는 사람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신중하기에 자기 자신을 돌보는 사람. 

둘째는, 정의롭기에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사람. 

셋째는, 선행을 베풀며 다른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


‘신중하긴 한데 자기 몸은 거의 돌보지 못하는데, 정의롭다곤 할 수 있는데 비판(해치는) 할 사람은 꽤 많은데, 선한 마음을 갖긴 했지만 선행을 베풀기엔 아직 마음도 재력도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난 사랑 받긴 글러먹은 놈이네.’ 

근데 아들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단 느낌이 기분 좋게 드는 아침이다. 불필요한 걷기를 하겠다는 아빠가 가여워서? 측은해서일까? 측은지심도 사랑일진대, 사랑을 받고 있긴 하구나하며 좌우로 흔들던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오전만 걷겠다고?’

한 시간쯤 걸었을까.

“대한민국에 흔하디흔한 길이잖아.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돌아가고 싶은 걸.”

하이데거가 한 말을 아들에게 들려준다. 

‘지루함이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게 한다.’

“그러니깐. 아깝단 생각이 들지. 시간이 말야.”

“아빠랑 함께 걷고 싶어서 오늘 예정에도 없던 동행이잖아.”

아빠의 하이데거에 아들이 오컴으로 응수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알지?”

“모르는데. 도루코 면도날은 알아도. 오컴? 우리집안 사람인가?”

지쳐가는 아들을 웃겨보자 한 말이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것도 몰라? 어떤 상황이나 현상에 대해서 설명하려 할 때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


오컴은 이 원칙에 의거하여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 실제적인 관계가 존재한다는 기독교 등 기존의 종교를 부정하고 신과 피조물과의 관계는 오로지 피조물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도 알려준다. 


“과학이나 철학, 더욱이 종교 같은 것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오로지 돈에만 관심있고? 그치 않나?”

“맞아. 관심 없어. 그냥 어디서 주워 읽은 거야. 아무튼 가장 단순한 게 진실이라 하니 이쯤에서 포기하자.”


아들은 결국 묻는다. 

“왜 휴전선길인데?”

“아빠 역시 그 나이에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군복무라는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겪어내야 할 의무를 큰 짐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그 짐을 아들과 함께 나눠보자 해서 휴전선 길을 택한 것이지. 아빠가 군대 가야 하는 것에 부모님, 그니까 할아버지께서 전혀 관심도 안 보이셨고 의례히 가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신 것에 솔직히 불만 있었거든. 섭섭함이랄까. 그래서 내 아들하고는...

근데 지금도 안일한 생각과 행동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려는 경향을 내가 많이 보이더라고. 이것도 깨거나 줄여야겠단 의지에서 휴전선길이 제일 적격이라 여긴 거지. 휴전선이라는 긴장감과 긴박감 있는 길을 선택한 거지.”

“근데 방법이 그 하나뿐일까? 암튼... 누가 아빠의 그 우직함을 꺾을 수가 있겠어. 완주해봐 그럼.” 

제스처로 짝짝짝 박수를 딱 세 번 쳐주는 아들의 손을 잡는다.

“고맙다. 걸어보는 거야. 휴전선과 그리고 아들과! 오컴의 단순 수제자!” 

또바기학당, 문지기(文知己) 오동명
momsal2000@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2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