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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갈 차례, 인생의 방학

2020년 4월호(12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5. 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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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갈 차례,  인생의 방학

 

 

연년생 아들을 키우는 집에도 사춘기는 어김없이 온다. 중2, 중3 남학생 둘과 지냈던 작년이 정점이라고 믿고 싶은 우리 집 이야기다. 아이처럼 동글동글한 큰아들도 2차 성징을 거치며 어른으로 자라고 있고 큰아들에게서 겪은 일들을 둘째가 비슷한 패턴으로 보여주면서 엄마는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방학이라 그간 못 잔 아침잠을 몰아 자기라도 하듯 깨우지 않으면 한계가 없는 터라, 아침에 일어나 두 아들의 방을 사이에 끼고 있는 부엌에서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똑딱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며 소리를 만들어 낸다. 오전에 주부들이 주로 듣는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코로나로 방학이 길어지면서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안에서 같이 지내며 삼시 세끼 밥 챙겨 먹이는 일이 곤욕이라는 사연이 들려온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듣는 나는 오히려 방학이 길어져 행복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들들이 어려서는 직장맘으로 직접 키우지 못했다. 큰아들은 18개월까지 시댁 형님이 데려다 키워주셨고, 18개월 차이 나는 둘째 녀석이 태어나자, 형님네 집으로 보내고 큰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 녀석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먼저 유아반이 있는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는데, 한 달이면 적응된다던 원장님의 말씀과 다르게 아침마다 헤어지는 일이 더 길어지고 힘들었다. 처음엔 엄마에게 업혀 나오는 길이 마냥 좋아서 속기도 했지만, 그것도 금방 눈치 채고 어린이집 가지 않고 엄마랑 있고 싶다고 말도 못하는 큰 아들에게 나는 어찌 된 일인지 마음이 넘어가 방법도 없는데도 5분이면 도착하는 어린이집을 한 시간이나 걸렸다.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어린이집 문 너머 눈물을 훔치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출근해야 했다.

급기야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울고 토하는 아들의 상태를 보고는 입주 아줌마의 도움을 받았는데, 아이를 예뻐하는 맘과 돌보는 기술 모두가 필요한 그 일은 쉽지 않은 데다 돈을 받고 하는 의무적인 일이기에 말이 더뎠던 큰아들을 그분들이 세심하게 돌봐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들이 처음으로 배운 말은 엄마, 아빠 다음으로 물이었는데 아마도 생존을 위한 단어로 여겨진다. 목이 말라 손을 뻗어 물을 달라는 말에 손을 씻겨주는 도우미 할머니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18개월이 된 둘째가 집으로 와서는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연년생 아들 둘을 봐야하는 집은 입주 도우미 입장에서는 쌍둥이 둘 키우는 집보다 더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행여 힘들다고 도우미가 나갈까봐 아이들보다 도우미의 눈치를 더 많이 봐야 했다. 큰아이는 자연스럽게 일찍 학원으로 나가야 했고, 유치원도 일찍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하고도 나는 나대로 남편과 같이 운영하는 치과의 예약상황을 봐가면서 틈틈이 아들들을 돌봐야 했다.
당연히 내게 주어진 점심시간은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가며 살아가면서 아이들도 나도 버텨나갔다. 가장 난감한 것은 방학이었다. 둘째까지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게 되자, 시어머니처럼 구는 도우미들을 내보내고 육아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을 때 방학 중 점심과 늦어지는 저녁 전에 먹여야하는 간식을 챙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남에게 부탁하는 일이 어려운 내가 누구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부탁하고 들이대면서 아이들을 먹였지만, 초등학교 시절 내내 반에서 키가 작은 편에 속한 아들들을 보면 그때 못 먹여서 그런가 싶은 생각에 죄책감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우리 집에 큰 문제가 아들들 초등 3, 4학년 때 생겼는데 엄마인 내가 암에 걸려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하는 동안 집안을 비운 때였다. 시한부 삶을 진단받았던 터라, 아이들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챙길 여유가 없었고 기적적인 수술을 받고 나와서도 한동안 정상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드러누워서 아이들을 챙겨주지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만 봐야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의 손길보다 친구의 손길이 더 반갑고, 분식집의 음식이 더 맛있어 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회 될 때마다 아이들을 내 손으로 챙겨서 먹이는 것은 참 흐뭇하고 행복한 일이다.

아들이 둘이지만, 돌아가면서 딸 노릇 해주는 아들들이 한없이 고마운데 어쩌다 한 번씩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큰아들을 보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암 진단을 받고 혼란스러웠던 감정의 변화로 들쑥날쑥하던 때를 생각하면‘그래, 저 녀석도 일생일대의 변화를 겪고 있구나’ 라고 이해하는 마음을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암 치료 중, 드나들었던 소아암 병동을 떠올려보면 나의 투정이 한없는 사치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나름 건강하고 에너지 넘쳤던 삶에서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을 받아들일 수 없어 원망하고 우울증에 빠졌을 때, 나와 같은 병으로 머리칼을 빡빡 밀고, 그 작은 머리통에 긴 칼자국이 난 채로 링거 병을 밀고 다니는 아이들… 엄마 품에서 주사 줄을 잔뜩 달고 무기력하게 견디는 더 어린 유아들을 보면 그 독한 병이 우리 아들이 아닌, 내가 걸린 것에 도리어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방학인 요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삶의 여유를 찾아가려 애쓰는 나를 깨닫곤 한다. 내 몸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내 뜻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일찍이 접은 기대.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을 더 볼 수 있도록 하루만, 한 달만, 일 년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그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다른 기대 없이 그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한 집에 살아도 얼굴 마주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요즘 방학동안 뒹굴 거리며 하루 종일 부대끼는 일이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여유 있게 아침 겸 점심을 해서 먹이고, 딱히 하는 일 없이 뒹굴 거리다가 저녁밥을 해 먹는 일에 오늘도 감사의 기도를 해 본다.

아프게 되면서 무엇보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아픈 사람 없고, 사고 없이 오늘 하루도 무사히 가족과 함께 밥을 해먹고 텔레비전 보면서 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의 소중함. 전 국가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이 제한되는 요즘, 우리 모두 당연했던 일상의 기적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안양 샘병원 치과 과장 양은진

한국문인협회 회원
yeji3929@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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