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한국미술 인문학 비평 11]
“빛은 자기 자신은 보이지 않고 모든 사물과 온 세상을 밝힌다.
나는 돌로 조각하는 돌 조각가이다. 돌 작업을 하다 보면 빛이 작품에 비추어질 때 작품의 형상이 보인다. 그래서 작업 중에 잠시 생각한다. 돌과 빛이 하나가 되게 조각을 한다면 어떨까? 돌의 한 부분을 열어주고 그곳이 빛으로 채워진다면 조각과 빛이 하나가 되지 않을까? 어두운 밤에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돌 작품의 빈 공간에서 빛의 형체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조각 소재는 주로 동물 형상을 찾는데 주력한다. 동물들은 순수하다. 그런 동물들은 사람들에 의해 자기들의 소유물로 여겨진다. 동물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 작업을 한다.”
작가는 삼총사를 겨냥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힌다 : 빛, 돌, 동물. 각각의 독자적인 특성을 나타낼 뿐 아니라, 모두 연합하여 한 형상을 이루게 하려는 야심찬 표현 전략을 쓴다. 자세히 들여다볼까?
첫째, 그가 사랑하는 한 소재인 동물(여기서는 새)을 크게 단순화시켜서 형태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새가 커다란 펠리컨이라는 것은 제목을 보고서야 겨우 안다. 새의 부리를 빛을 향해 완전 박혀 있게 조각하고, 온몸이 한 방향으로만 집중해 있다. 빛의 생명력을 하나라도 빠짐없이 흡수하려는 듯한 부릅뜬 눈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빛이 있는 곳을 향해, 빛을 갈구하면서. 그래서 돌로 된 새는 더욱 명확한 생명을 얻는다.
둘째, 빛을 갈구한다는 점에서 동물(새)은 우리 인간이 대상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성정을 똑같이 나누어가진 피조물이다. 그들도 우리와 함께 빛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들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인간 스스로 겸손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간이 이 두 태도를 모두 가질 때에 비로소 이들을 보살필 자격과 특권을 얻는다.
셋째, 빛 자체에 집중해 보자. 그런데 왠지 이중적인 모습이 보인다. 먼저 그 빛이 환하게 밝기는 하지만 인공물에 갇혀있는 느낌이 든다. 잘 조각된 등경이나 조명조각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늘 켜져 있어서 주위를, 어두움을 밝히는 차원이 명백하다. 비록 태초의 찬란한 빛은 아니더라도, 당장에 내 주위를 소소하게 밝히는 빛으로서 겸손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아마 이‘돌 새’도 이런 겸손한 빛을 조성하는 인간들을 찾아오기에 함께 생명력을 나누어가지는 듯하다. 빛은 생명의 근원이다.
경기도 군포시 서인성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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